“승제야, 나 SY그룹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어.”책상 앞에 앉은 반승제는 윤단미의 말을 듣고서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이렇게 빨리?”“응. 사실 나도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 SY그룹이 그만큼 볼품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성혜인 씨는 오늘 출근도 안 했던데 집안에서 물건이나 깨부수고 있는 건 아닌지 몰라.”윤단미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반승제는 전혀 관심 없는 표정으로 노트북에 타자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단미야, 나는 너랑 다시 만날 생각 없어.”윤단미는 당연히 반승제의 칭찬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무나도 예상 밖의 말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고 귀를 의심하는 듯 조심스럽게 되물었다.“승제야, 너 지금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반승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들어 윤단미를 바라봤다. 이는 연애를 하는 내내 변함없이 그의 얼굴에 걸려 있던 표정이기도 했다.그는 단 한 번도 먼저 윤단미와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한 적이 없었다. 윤단미도 팔짱을 끼는 것 외의 스킨십은 감히 하지 못했다. 어쩌다 용기를 내야만 우연인 척 품에 부딪혀 볼 수 있었다.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에 윤단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흑흑, 네가 나를 잘 보살펴 줄 거라고 승우 오빠가 그랬단 말이야...”반승우가 언급되자 반승제는 손을 흠칫 떨었다.“미안해. 나도 한때는 너와 결혼할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 너도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윤단미의 입안에서는 피비린내가 돌기 시작했다. 긴 손톱으로 꽉 잡은 바지는 거의 찢길 지경이었다.“내가 아니면 누구랑 결혼할 생각인데?”윤단미의 표정은 마치 반승제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 여자를 잘근잘근 씹어 죽일 것처럼 살벌했다.“난 아무하고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반승제의 빠른 대답에 윤단미는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렇다면 왜 나한테 시간 낭비라고
윤단미는 BH그룹 밖으로 나와서도 미처 진정하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혹시 반승제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윤단미가 귀국한 이후로 반승제에게 다가간 적 있는 여자는 페니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결벽증이 있는 반승제가 신이한과 뽀뽀하려던 페니의 모습을 보고서도 계속 만날 것 같지는 않았다. 둘이 보는 눈이 없는 데서는 어디까지 갔을지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그래도 윤단미는 페니를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 성혜인을 없애버리고 난 다음은 페니의 차례가 될 것이다.윤단미는 시계를 힐끗 봤다. 곧 있으면 저녁 9시가 된다. 지금 반씨 저택으로 출발하면 그녀를 좋아하는 집안 어른들과 함께 성혜인의 비굴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후련했다.반씨 저택에 도착하자 이미 윤단미를 기다리고 있는 김경자와 백연서의 모습이 보였다. 세 사람은 함께 차와 과일을 준비해 놓은 테이블 앞으로 가서 앉았다. 성혜인이 무조건 무릎 꿇고 사과하러 올 것이라고 단정 지은 듯한 모습이었다.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경자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윤단미가 SY그룹을 인수한 것은 기쁜 일이었기 때문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야, 이번에는 진짜 잘했어.”김경자는 미소를 지으며 윤단미의 손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윤단미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반승제의 마음이 어찌 됐든 김경자는 그녀의 편을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돌려 보니 백연서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정받을 수 있을 듯했다.윤단미는 이제 와서 걱정되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근데 이 일을 할아버지한테 들키면 어떡해요?”김경자는 피식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느긋하게 대답했다.“네가 아직도 승제에 대해 잘 모르나 보구나. 승제는 처음부터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영감탱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했다. 이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넘어 증오까지 생겨났겠지. 영감탱
“이건 제가 사장직에 오르기 전에 체결한 계약이니 그냥 취소해 주면 안 돼요?”윤단미도 자신이 얼마나 파렴치한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SY그룹을 인수하자마자 4조 원의 빚을 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파렴치한 일도 할 수 있었다.‘SY그룹을 인수하는 데 쓴 돈만 해도 이미 수천억이야. 근데 돈을 벌기도 전에 SY그룹을 팔아버려도 2조 원이나 더 물어내야 한다고?’아무리 윤씨 가문이라도 해도 이 정도의 돈을 꺼내기는 어려웠다. 꺼낼 수 있는 돈도 최근 며칠 동안 전부 써버리고 말았다. 김경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샀다가 오히려 창피한 당한 가짜 그림과 SY그룹을 인수하기 위해서 말이다.만약 윤씨 집안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윤단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숱한 모욕과 비웃음을 감당해야 할 게 눈에 뻔히 보이기도 했다.윤단미는 인수의 성공이 곧 승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HS그룹과 체결한 계약서가 등장하자 이는 승리가 아닌 비극이 서막이 되어버렸다.‘젠장!’윤단미는 김경자와 백연서가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분노를 얼굴에 고스란히 담았다.“취소가 어려우면 성혜인 씨한테 연락해서 위약금을 받던가요.”“SY그룹의 사장은 성혜인 씨가 아닌 윤단미 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윤단미는 점점 빨개지는 눈시울로 입술을 깨물었다.“계약 기간은 다음 주까지라고 했죠?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해요.”“하하, 저희도 재촉하는 것이 아닌, 그냥 알려주는 것뿐이니 천천히 준비해요. 지난번 성혜인 씨한테도 똑같이 연락했으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요.”전화를 끊고 난 윤단미는 잇몸이 다 아프기 시작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어쩐지... 어쩐지 성혜인이 쿨하게 꺼져준다고 했어! 진작 빚더미에 나앉을 걸 예상하고 사장 자리를 나한테 넘긴 거야. 그럼 나는 괜히 SY그룹을 인수해서 남의 빚을 대신 물어주게 생긴 거네?’윤단미가 제대로 열 받고 숨도 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김경자와 백연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
반승제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최근 해외 계열사에 문제가 생겨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래서 최근 이틀 동안 최대한 빨리 본사 일을 마치고 출장을 가야 했다.윤단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오전에 금방 BH그룹까지 찾아가서 자랑했으니 말이다. 어쩐지 성혜인에게 당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만약 이 모든 것이 다 성혜인이 짠 덫이라면 바보와 같이 뛰어드는 자신이 퍽 우스웠겠다고 윤단미는 생각했다. 그녀가 득의양양해서 문자를 보냈을 때도 성혜인은 비웃었을지도 모른다.이런 생각에 윤단미는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짜 그림을 산 것이 들통났을 때보다도 쪽팔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빚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복수는 잠시 뒤로 미뤄뒀다.“승제야, 나 대신 이한 씨한테 잘 좀 말해주면 안 돼? 네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줄 거야. 이번 일 나한테 진짜 중요하단 말이야.”윤단미는 핸드폰 건너편에서 대성통곡을 했다.반승제는 신이한과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뜸 전화해서 부탁하기가 약간 불편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기도 전에 심인우가 들어오며 10분 후에 회의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해외 계열사에 관한 회의였다.출장을 가기 전까지는 아마 끝도 없이 회의해야 할 것이다. 윤단미의 일에 신경 쓸 시간 또한 없었다. 그래서 반승제는 그냥 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신이한은 반승제가 전화 온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진짜 윤단미를 위해 나서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앞에 앉아 있는 성혜인을 힐끗 바라봤다.성혜인은 누가 전화 온 것인지 예상했는지 말없이 머리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마침 레스토랑에 함께 있었다. 신이한과의 일을 비밀리에 해나가기 위해서는 늦은 시간에 따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신이한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수락 버튼을 누른 다음에는 일부러 스피커폰 모드로 하고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반 대표님이 웬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하세요?”신이한의 말투는
“페니 씨,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성혜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반승제의 전화에 전혀 영향받지 않은 듯 덤덤하게 말했다.“저는 윤단미 씨한테서 4000억 원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2000억 원으로 44%의 지분을 회수했고, 나머지 2000억 원으로는 윤단미 씨의 지분을 회수할 생각이에요.”신이한은 처음으로 성혜인을 건드린 윤단미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자기 돈으로 성혜인이 지분을 100%까지 모으도록 도와줬으니 말이다.성혜인은 돈 한 푼 쓰지 않고 SY그룹을 얻었다. 덕분에 반승제는 신이한에게 신세를 지고 말았다. 그녀의 지적인 모습에 신이한의 심장은 또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장하리는 같은 날 저녁 세한그룹에 연락해 2000억 원으로 윤단미의 지분을 사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지분을 팔고 나면 윤단미는 더 이상 SY그룹의 사장이 아니게 되고 빚 또한 책임지지 않게 된다.윤단미는 주식을 위해 찾아온 장하리가 신이한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승제가 얼마 전 금방 그녀를 위해 나서줬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닥치는 대로 계약서에 사인해 버렸다.저녁 10시, 장하리는 계약서를 들고 로즈가든으로 가서 성혜인을 만났다. 짧은 이틀 동안, 정신없이 바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혜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성혜인은 계약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윤단미에게 문자를 보냈다.「단미 씨, 고마워요.」윤단미는 아직 성혜인의 문자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저 그녀가 또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윤단미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그녀가 SY그룹에서 퇴출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쯧,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멍청한 년 주제에...’이튿날 아침, 윤단미는 눈을 뜨자마자 SY그룹에서 발표한 소식을 보게 되었다. 성혜인이 어마어마한 지분과 함께 사장으로 복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고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아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SY그룹의 임원진 중에는 아무도 성혜
온시환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반승제를 바라봤다.얼마 전 BH그룹은 온시환의 대본에 투자하는 것을 계기로 엔터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 BH그룹에서 찾은 감독과 미팅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반승제의 사무실에 들렀다.“성혜인 씨 말이야, 꽤 대단한 것 같지 않아?”통화를 하고 있던 반승제는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온시환에게 소파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온시환은 그가 바쁜 것을 보고 말없이 소파로 가서 앉았다.한 번 시작된 통화는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골치 아픈 일들을 해결하느라 애썼다. 이때 심인우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대표님, 비행기는 세 시간 뒤 출발합니다.”반승제는 이제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미간을 눌렀다.“임원진한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해줘요.”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한쪽에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온시환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온시환은 성혜인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반승제가 너무 바빠 보였기 때문이다.“출장 가는 거야?”“응.”반승제는 휴게실로 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온시환도 그를 방해하지 않고 이만 밖으로 나갔다.반 시간 만에 출국 준비를 끝내고 차에 올라탄 반승제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협력사와 회사 임원 외의 연락은 여전히 없었다. 물론 성혜인도 포함해서 말이다.반승제는 어두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를 돌리며 심인우에게 말했다.“이번 출장은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으니까, 이틀 뒤의 귀국 비행기 티켓을 미리 사줘요.”“네, 대표님.”반승제는 아무에게도 출국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성혜인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같은 시각, 성혜인은 로즈가든에서 유경아의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어젯밤 경비가 포레스트에서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회장님께서 직접 마련하신 별장이라 지금껏 도둑 한 번 든 적 없는데, 혹시 요즘 사모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성혜인은 임신 테스트기를 한쪽에 놓고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포레스트로 출발했다. 유경아는 마치 그녀가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다가 야식이 필요한지 물었다.제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꼽으라면 성혜인은 단연 포레스트를 선택할 것이다. 포레스트는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반태승이 그녀에 대한 마음과 정비례하기도 했다.유경아의 질문에 성혜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야식을 즐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단 방으로 가서 책상 서랍을 열어봤다. 텅 빈 노트북, 편지, 반지... 다행히 걱정하던 물건들은 전부 다 있었다.사실 성혜인도 자신이 왜 이 물건들부터 확인하는지 몰랐다. 그저 상대가 노리는 것이 이것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것 외에는 사라져서 안 될 물건이 없기도 했다.서랍을 닫은 성혜인은 불안한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서야 화장실에 들어갔다.영원할 것만 같은 기다림이 지속되고 있을 때 유경아가 노크하며 말했다.“사모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길래 따듯한 우유를 준비해 왔어요. 요즘은 별장에서 남아서 편히 쉬세요.”성혜인은 우유를 마시고 나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임신 테스트기에 뜬 선명한 두 줄을 보고서는 손에 힘이 풀려 테스트기를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머릿속은 창백해졌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임신 테스트기를 쓰레기통 속에 버린 성혜인은 터덜터덜 밖으로 나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분명히 번마다 피임을 제대로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머리카락을 헝클었다.그렇게 뜬 눈으로 보낸 밤이 지나고 해가 떴다. 유경아는 성혜인의 방 앞으로 가서 아침 식사가 준비됐음을 알렸다. 성혜인은 짙은 다크서클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사모님, 요즘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성혜인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머리를 절레
백연서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핸드폰을 쳐들고 사진 증거를 남겼다.‘내가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감히 사고를 쳐? 역시 재수 없는 년이야!’백연서는 심호흡하고 나서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반승제가 아닌 심인우였다. 반승제는 오늘 하루 종일 회의할 예정이라 아예 핸드폰을 그에게 맡겨버렸다.“안녕하세요, 사모님. 저 심 비서입니다.”“내가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승제한테 전화 좀 바꿔줘.”심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서는 지금 회의 중이시라 대략 네 시간 후에 통화할 수 있습니다.”백연서는 단 일 초도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윤단미에게 전화를 걸었다.“단미야, 너 혹시 승제랑 혜인이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니?”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았던 윤단미는 성혜인의 이름을 듣자마자 흥분하며 대답했다.“두 사람 이혼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승제가 그 여자를 싫어한다고 했잖아요!”윤단미의 대답을 듣고 난 백연서는 약간 시름이 놓였다. 하지만 아무리 반승제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해도 이 소식이 퍼져나가면 반씨 집안이 창피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이젠 하다 하다 바람까지 피워? 그래도 덕분에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네.’안 그래도 성혜인을 집안에서 쫓아낼 구실을 찾고 있던 백연서는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며 포레스트를 떠나 김경자에게 전화를 걸었다.보수적인 김경자는 이런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경자는 집안 어르신이 첩을 들이는 모습을 본 적 있는 건 물론이고 남존여비의 사상이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원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손주며느리가 다른 남자와 바람나서 애까지 배었다니, 김경자는 당연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백연서의 말을 듣자마자 테이블을 쾅 소리 나게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승제가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