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아내의 친정에 일이 터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냉정했다.심인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보니 대표인 반승제는 부인을 썩 좋아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는 다시는 승제 앞에서 SY그룹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대표님, 회장님께서도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단미 아가씨와 만났냐고 물으셨어요.”반태승은 줄곧 윤단미와의 만남을 극구 반대해왔었다.인우가 건네는 계약서를 받아들며 승제는 할아버지 반태승이 막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됐다.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승제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승제에게는 매일 참가해야 할 회의 스케줄이 많았는데, 하루 종일 그는 회의를 하고 있지 않으면 회의하러 가는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회의할 때 승제는 종래로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았기에 반태승과 윤단미가 걸어온 전화 역시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단미 아가씨도 대표님께서 보러 오길 원하십니다.”“단미는 많이 회복됐어요?”“부상 정도가 심해서, 아직 한동안은 더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승제는 앞에 놓인 계약서를 그저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한참 후, 그는 인우에게 물었다.“결혼 후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걸 분명 아는데 왜 여자는 이혼하려 하지 않을까요?”누가 승제에게 데이터를 계산하고 손실을 연구하라 하면 그는 누구보다 잘 해낼 것이다. 하지만 여자를 연구하는 일에 있어서 승제는 전혀 재주가 없었다.그가 가진 두 번의 경험 역시 모두 혜인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이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을 감싸고 도는 혜인을 승제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인우는 대화의 주제가 이렇게 급작스레 바뀔 줄 생각하지 못해 잠깐 당황해했다.몇초가 흐른 후.“대표님, 제 생각에 많은 여자들은 결혼 후에 화를 참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전업주부는 더더욱 그렇고요. 페니 씨는 비록 유능하지만, 결혼에 대한 여자들의 전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이혼은 결혼의 실패를 의미하는
가까스로 선미의 습격을 피한 혜인은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손안에 들려있던 단검을 빼앗았다.병원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두 경비원이 이 험악한 광경을 목격하고 달려와 순식간에 윤선미를 제압했다.선미의 눈동자는 여전히 무섭도록 혜인을 응시하고 있었다.“망할 것, 너 딱 기다려!”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지 해고되었을 뿐인데 왜 이리도 길길이 날뛰는 건지 알 수 없었다.선미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너를 도와주다니, 너를 도와주다니! 너희 둘 사이에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니가 꼬리 친 거지? 망할 년! 죽일 거야!”혜인은 우습게 느껴졌다. 그제야 윤선미가 반승제에게 한 통 크게 당했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퇴사 통보를 받자마자 반승제를 찾아갔을테고, 거기서 그에게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선미의 막말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경호원이 그녀를 제압한 사이, 혜인은 곧바로 다가가 뺨을 두번 내려쳤다.뺨을 맞고 당황한 선미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혜인을 바라보았다.“네가 감히 나를 쳐?”혜인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혜인이 오늘 경찰서에 잡혀가 단미에게 도움을 청해 빠져나올 것을 예상했다. 윤씨 집안이 일단 손을 쓰기만 한다면, 윤선미는 쉽게 나올수 있었다.하지만 혜인은 차마 이 말을 참을 수 없었다.“그래, 때렸다, 어쩔래? 승제 씨가 아무리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그 여자가 절대 네가 될 수는 없어. 하물며 그날 승제 씨한테 네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도, 너는 그 사람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싶니? 아마 승제 씨는 네 얼굴을 보자마자 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통곡하던 장면이 떠올랐을 거야.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겠지.”혜인의 말에 자극받은 선미의 눈동자가 잔뜩 움츠러들었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그러나 경호원이 그녀를 막아섰다.“망할! 망할! 너 딱 기다려!”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반 시간 뒤, 윤단미는 윤선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언니, 흑흑... 꼭 와서 나 풀어줘야 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혜인은 신문을 한 편에 내려놓았다. 승제를 기다리는 동안 화가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당장 해야 할 일을 잊은 건 아니었다.“반 대표님.”혜인이 정중하게 불렀다.반승제는 검은색 대리석 테이블 뒤로 가 가죽 의자에 앉았다.“일이 있는 거면 두 시간 뒤에 다시 얘기해, 지금은 회의가 있어.”어차피 오늘 밤 안에 해결하면 되는 일이였기에 혜인은 두 시간 더 기다려도 상관없었다.“알겠습니다. 볼일 먼저 보세요.”고개를 든 승제의 시선이 그녀의 몸으로 향했다.그때, 승제에게 줄 커피를 들고 인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커피를 건네고 문을 나서려던 인우의 귀에 승제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저녁은 먹었어?”선미의 일로 내내 화가 나 있던 혜인은 저녁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아뇨.”“심 비서, 페니가 먹을 저녁 식사 준비 부탁해요.”인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승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볼 때 그는 무척 세심하게 혜인을 챙기는 것 같았다.“저 안 배고파요, 대표님.”혜인은 승제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승제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옆에 놓인 컴퓨터를 천천히 열었다.“언제 회의가 끝날지 몰라.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야. 그러니 뭐 좀 먹어둬.”혜인은 더 거절하지 않았다.인우는 직원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의 음식을 대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하는 수 없이 급히 특급 호텔에 연락해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 반 시간도 채 안돼 서 작은 배식카가 꼭대기 사무실 층에 있는 혜인의 앞에 도착했다.혜인이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녀는 문득 윤단미의 병실 입구에 있었던 배식카가 생각났다.작은 테이블이 그녀의 앞에 놓였고, 그 위에는 애피타이저부터 식후 디저트까지 없는게 거의 없었다.본래 혜인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이 광경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참지 못한 혜인은 포크를 들어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승제는 가죽의자에 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계속
승제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고, 왠지 모르게 화가 난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자신이 디자인을 맡고 싶어 온갖 수단을 쓰며 노력할 땐 언제고, 이젠 하기 싫으니 바로 기회를 차버리네...’승제가 제자리에 선 것을 눈치채지 못한 혜인이 미처 멈추지 못하고 승제의 등에 코를 박았다. 코가 시큰시큰 하며 아파 났다.“원인은?”그의 말투에는 이렇다 할만한 기복은 없었지만 어쩐지 평소보다도 차가워 보였다.혜인은 사실대로 말했다.매번 선미가 와서 자신을 위협하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풀려나면, 자신은 도대체 목숨이 몇 개나 있어야 선미를 상대할 수 있냐고 말이다.승제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혜인도 뒤따라 같이 탔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데?”“대표님이 직접 풀어주시고는 저랑 일이 생겨서 잡혀갔다는 것도 모르셨어요? 며칠전에 산장에서 저를 공격하려 했을 때, 성공하지 못했으니 더는 말 하지 그냥 참았어요. 그리고 나서는 윤단미 씨가 남자 둘을 시켜서 저를 위협했고요, 다행히 제 친구 덕분에 살았어요, 저. 목에 난 상처도 그때 생긴거고 오늘에야 붕대를 풀었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마주쳤을때 참지 못하고 손을 댄 거예요. 오늘 오후에는 어땠는지 아세요? 윤선미가 와서 단검으로 저를 찌르려 했다고요! 제가 피했으니 망정이니 하마터면 정말 죽을 뻔했어요. 그런 윤선미를 대표님이 반 시간 만에 풀어주신 겁니다. 저희 집안이 윤씨 집안, 또 대표님네 집안하고도 비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거 잘 압니다. 그러니 제가 눈치 있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겠죠.”혜인이 말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지하 주차장에 도달했다.반승제는 혜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들려고 하지 않았다.그는 혜인의 턱을 탁 잡고는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좁은 엘리베이터 안은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울어?”혜인은 울지 않았다. 다만 말하다 보니 억울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게다가 아빠도 여전히 깨어나시지 못했고 SY그룹이 곧 파산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요 며칠
가는 길 내내 그들 사이에는 말없이 정적만이 흘렀다. 이윽고 차가 로즈가든에 도착했다.혜인은 차문을 열고 내리려다 말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돌아와 앉았다.“후에 윤단미 씨가 또 저를 찾아온다면, 제가 대표님께 일러바쳐도 되나요?”일러바친다는 단어를 그녀는 더욱 힘주어 당당하게 얘기했다.모두가 알다시피 혜인이네 집안은 윤씨네보다, 반씨네 집안보다 힘이 없었다.윤단미는 승제의 여자친구라는 이유로 그를 등에 엎고 무슨 짓이든 할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윤단미를 혜인은 결코 당해낼 수 없다.반승제는 혜인을 바라보며 몇 초간 침묵하더니 물었다.“왜 내가 네 편에 설거라 생각하지?”“제 편에 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있는 쪽에 설거라 생각하는거죠. 앞으로 적어도 제가 먼저 나서서 단미 씨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쪽에서 늘 저를 가상의 적으로 두는거죠. 하지만 대표님과 제 사이는 정말 결백하잖아요.”결백이라는 단어를 들은 남자의 시선이 어딘가 위험해 보였다.혜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몸을 살짝 기울고 그녀의 두 다리를 바라보며 비웃는듯한 말투로 말했다.“어떻게 네 입에서 결백이라는 소리가 나와?”혜인의 볼이 빨개지며 그 기세가 한 풀 꺾였다.승제는 운전대를 잡은채 묵묵히 앞을 바라보았다.“내가 너를 도운건, 우리 사이가 더는 결백하지 않아서야.”혜인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것 같았다. 그녀는 이것이 승제가 한 말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밤이 너무 깜깜했던 탓인지 그녀는 왠지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페니야, 우리 둘 사이가 여전히 그렇게 결백했다면, 아마 너는 내 얼굴도 보지 못했을거야.”사실이었다.그게 아니면 그는 절대 이 늦은 시간에 여자를 직접 바래다주지 않았을거고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을 것이다.모든것은, 더이상 결백한 사이가 아니였기 때문이었다.“가봐.”혜인의 머릿속은 마치 폭죽이 터진듯이 복잡해져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얼떨떨해 차에서 내린 혜인이 뒤돌아보기도 전
혜원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때, 밖에서 성한이 물건을 깨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요 며칠 성한은 쭉 이래왔다. 아주 작은 사소한 일에도 성한은 불같이 화를 냈다.게다가 성혜인과 윤단미가 완전히 싸운것도 아니고 윤선미까지 외국으로 보내졌으니 그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성혜원은 자신의 집안이 어떻게 되든, 자신이 얼마만한 재산을 분할받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반승제를 원했다.오직 반승제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비로소 원만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혜원은 문을 열고 나갔다.“오빠, 화 내지마 먼저. 윤선미가 외국으로 보내진걸 보면 반승제가 성혜인 편에 선게 분명해.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어.”“무슨 기회가 더 있긴 있어! 혜원아, 넌 아마 모를거야,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허 비서님과 바람을 피우는 걸 보신 모양이다. 그래서 충격받고 입원하신거야. 아버지가 깨어나시면 우리 셋은 끝났어. 어머니한테 있던 주식 지분도 모두 도로 뺏길거고, 그러면 SY그룹은 성혜인 혼자의 몫이 되는거지!”성혜원은 놀라 움츠러 들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런 이유로 쓰러지신 건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혜원의 낯빛이 순식간에 안 좋아졌다.성한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 윤단미를 보호하기 위해 반승제가 성혜인과 이혼하게 되면 내가 성혜인을 죽이 되도록 만들어도 반씨 집안에서 뭐라 할 수 없을거야. 또 어머니는 갖은 수단으로 아버지가 못 깨어나시게 하면 되고... 결국 SY그룹은 우리께 되는거지!”“하지만 오빠도 봤잖아. 성혜인이 데려온 보디가드 두명이 아버지 병실을 지키고 있서서 엄마도 손을 쓸 수 없다는걸. 게다가 허 비서님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지... 엄마랑 허 비서님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았을가봐 무서워 죽겠어!”성혜원의 낯빛이 창백해졌다.그녀는 다시 예전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다시 숨을 들이마시더니 무슨 좋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피식 웃었다.“할아버지 할머니
그래서 그는 어디서 들은지 모를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늙은 부모님이 혹여나 사기를 당할까봐 가지 마시라고 충고했다.하지만 충고를 무시하고 무작정 성휘를 찾아갔던 부모님은 뜻밖에도 6억이나 되는 돈을 갖고 돌아왔다.그 돈으로 은행에 가 대출금을 물기 전까지만 하여도 성훈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싶었다.30년의 집대출을 이렇게 한꺼번에 물었는데도 몇천만원이 남았으니까.“어머니, 대출 조기상환신청은 통과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뗐어요. 이제 매달마다 대출을 갚지 않아도 됩니다.”라정옥의 눈빛이 흥분으로 가득차더니, 곧이어 탐욕으로 변했다.“성휘네가 아주 돈을 잘 버는것 같더라. 6억을 눈 깜빡하지 않고 내놓는걸 보면 말이야. 별장도 어찌나 아름답고 으리으리한지, 몇백평은 족히 되어보이는것 같더라. 우리가 들어가서 살아도 문제 없을만큼 말이야! 이사가서 살게 되면 이 집은 임대로 내놓자꾸나.”성훈 역시 그 말에 눈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몇년동안 큰형의 안부는 물론이고 생활비 한번 보태주지 않았던 부모님이 갑자기 들어가 같이 살겠다고 하면 과연 성휘가 동의할지 성훈은 의문이였다.“어머니, 근데 형님이 아직 병원에서 깨지 못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그래, 네 형 아직 의식불명 상태다. 재혼한 여자가 아들을 데려왔던데 혹시나 네 형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회사며 재산이며 모든건 그 친자식도 아닌 놈한테 떨어지는것 같더라. 친딸이 두명 있는데, 하나는 성혜인이라고 하고 하나는 성혜원. 성혜인이라는 애는 네가 본적이 있어. 성혜원이라는 애는... 많이 비실거리더라. 힘 없는 딸 둘이서 뭘 할수 있겠니. 그러니 만약 일이 생기면 그 아들놈을 네 호적에 올리게 해야지, 그럼 네 형도 분명 엄청 고마워할거다.”성무일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어미 말이 맞다. 딸들은 아무 소용 없어. 아들, 얼른 SY그룹에 가보도록 해라. 네 형이 제원에서 회사를 세웠는데 그깟 회사에서 잘리는게 뭐가 무서워! 우리 모두 SY그룹에 가서 일할수 있다고!”성훈 역시 가만히 앉
혜인은 모처럼 어젯밤 푹 잘 잤는데, 결국 아침에 또 일이 터지고 말았다.그는 미간을 푹 찌푸린 채 차를 몰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리정옥과 성무일 이 땅에 누워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 죽이네, 사람 죽여.”라고 연신 말을 뱉으면서 말이다.눈앞이 캄캄해진 혜인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소란 그만 피우시죠?”혜인이 온 것을 발견한 라정옥이 순간 소리를 멈추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 할머니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뭐냐? 나는 네 할미야. 어째, 윗어른을 공경하는 표현이 하나도 없는것 같구나. 양심은 개나 줘 버렸니?”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 혜인의 눈에 보디가드 얼굴에 나있는 손바닥 자국이 들어왔다. 이 노부부가 손을 댄 것임을 단번에 알아챘다.“아가씨.”두 보디가드는 민지가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들 역시 혜인을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무척 예의가 발랐다.혜인은 골치가 아파났다.“계속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그냥 여기서 던져버리세요. 배상금은 제가 나중에 다 댈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혜인의 말을 들은 라정옥이 황급히 땅을 짚고 일어섰다.“뭐라고?! 사람 죽이려고 그래? 여러분 다들 와서 한번 봐보세요, 이게 제 친소녀입니다, 글쎄. 저랑 자기 할아버지를 여기서 던져버리라네요. 어떻게 이런 못된 계집애가 다 있습니까! 제 어미를 똑닮았네요!”혜인은 그들이 억지 부리는 것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염치도 없이 자신의 엄마를 언급하는 소리에 순식간이 안색이 어두워졌다.“지금 당장 저 사람들 던져버리세요. 한번에 죽이지 못하면, 두번이라도 더 던지세요. 이 정도의 배상금은 저희 집에 차고 넘쳐요.”두 보디가드는 서로 마주보더니 바로 라정옥을 들어올려 창문으로 향했다.혜인이 그저 큰소리를 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라정옥은 진짜로 이렇게 손을 쓸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창문곁이 들려있던 라정옥의 눈에는 건물 아래 풍경이 힐끗힐끗 들어왔다.땅에 누워 여전히 행패를 부리던 성무일이 그 장면을 목격하자 놀라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