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는 금방 연결되고 강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민지야, 나 좀 도와줘.”성혜인의 힘 빠진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이상했다. 그래서 강민지는 집안일이고 나발이고 모두 내팽개친 채 성혜인의 위치부터 물었다.강민지는 성혜인이 말한 술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신예준에게서 받은 주소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부랴부랴 성혜인이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혜인아!”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성혜인을 보고 강민지는 곧바로 달려갔다.성혜인은 흠칫 놀라며 머리를 들더니 상대가 강민지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술병을 내려놓았다.“나 병원으로 데려다줘.”“응!”강민지는 빠르게 겉옷을 벗어 성혜인의 목에 감아줬다. 밖에 있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성혜인을 데리고 룸 밖으로 나간 강민지는 홀에서 서빙하고 있는 신예준을 단번에 알아봤다. 느낌 탓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따라 그가 조금 달라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혜인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준 씨, 나 지금 예준 씨 왼쪽에 있어.” 신예준은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강민지와 눈을 마주친 순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민지야, 오면 온다고 말하지. 네 친구는 왜 그래? 취했어?”강민지는 신예준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일단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다줘. 급해.”신예준은 머리를 끄덕이며 성혜인을 부축했다. 앞에서 자신의 차가 있는 곳을 안내하고 있던 강민지는 신예준의 어두운 안색을 발견하지 못했다.‘그 남자들 실패한 모양이네.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술집 밖에 세워져 있는 몇십억짜리 차를 보고 신예준은 눈
“언니, 난 이제 망했어. 내가 경호원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사람들이 다 알아버렸다고. 나 이제 시집 못 가는 거 아니야?”반승제에게 그런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윤선미는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윤선미가 반승제를 쫓아다닌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여자로 대한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실내 디자이너와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또 윤단미와는 연애까지 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한 게 너무나도 억울했다.윤단미는 자신이 힘들지 않은 선에서 윤선미를 대충 부축하고 있었다.“그러게 누가 그렇게 경솔하게 움직이래?”윤선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모든 일이 성혜인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두 사람은 강민지와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딱히 인사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냥 서로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윤선미는 정밀 검사를 받으러 가고 윤단미는 밖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리고 윤선미는 그녀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날 때가 되어서야 검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윤선미의 안색은 아주 창백했다. 왜냐하면 의사들이 자꾸만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검사를 받는 사람 중 대부분이 문란한 생활을 하므로 그녀는 제풀에 찔리고 말았다.윤선미는 머리를 푹 숙인 채로 입술을 깨물고는 윤단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병실에서 나가고 있는 성혜인과 마주쳤다. 성혜인은 화장실을 가려던 참이었다. 안 그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윤선미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불러세웠다.“페니 씨.”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머리를 돌렸다. 윤선미가 무엇 때문에 병원으로 왔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녀는 윤선미를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윤선미는 그녀를 순순히 보내줄 사람이 아니었다.“야, 당장 거기 서지 못해?! 내가 너 때문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 죽여버릴 거야!”금방 치욕스러운 검사를 받고 나온 윤선미는 분노 지수가 최대치를 뚫었다. 그
성혜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강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씨 집안의 힘으로 납치범에 대해 조사를 해볼 생각이었다.“그런 일이 있었어? 내가 당장 사람을 찾아서 조사할 테니까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서 쉬고 있어.”성혜인이 전화를 끊기 바쁘게 윤선미가 노크도 없이 병실 안으로 쳐들어갔다. 윤선미는 그녀를 죽어라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우리 형부가 곧 병원으로 온대요. 이제 어떻게 책임질래요?”성혜인은 지금의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그러는 본인은 왜 병원으로 왔는지 잊었나 봐요?”윤선미의 표정은 빠르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반승제가 오기 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흥!”윤선미는 콧방귀를 뀌며 윤단미의 병실로 돌아가 버렸다.혼자 남은 성혜인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조금 전 윤단미를 발로 찬 건 남자들이 했던 말이 떠올라 화를 참지 못해서였다. 윤단미의 입원은 맹세코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마침 회진을 온 의사에게 물어보니 윤단미는 위병이 도졌을 뿐만 아니라 갈비뼈까지 부러졌다고 한다. 성혜인이 자신에게 감춰진 슈퍼 파워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때 의사가 설명을 덧붙였다.“갈비뼈는 생각보다 약해요. 지난주 부부 싸움을 하다가 아내한테 맞아서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진 남자도 지금 입원해 있거든요. 큰 상처는 아니지만 작은 상처도 아닌 셈이죠.”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가 다시 나가고 드디어 눈을 붙이려고 할 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발걸음 소리의 주인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반승제였다. 반승제는 먼저 윤단미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윤단미를 그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승제야...”비록 윤단미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 있지만 속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성혜인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를 때린 덕분에 위병이 도지고 갈비뼈까지 부러져서 성혜인이 얼마나 악독한 여자인지 어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반승제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윤단미를 훑어봤다. 눈에 띄는 상처가 없는 것을 보고서는 낮은 목소리
반승제가 윤단미의 편을 들어주리라는 것을 진작에 예상했던 성혜인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싫어요.”“회사와 가족, 또는 네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반승제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협박마저도 이토록 차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밖에 없을 것이다.반승제는 또 머리를 들며 이어서 말했다.“물론 네 남편이 힘들게 얻은 승진 기회도 포함해서.”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혜인은 반승제의 말투가 미세하게 바뀐 것 같았다. 세상만사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일관하던 사람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한 것도 이상했다.반승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던 성혜인의 표정이 남편 얘기가 나오자마자 어두워진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다시 봐도 참 금실 좋은 부부야.”반승제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더욱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퇴원하기 전에 무조건 단미한테 사과해.”만약 성혜인이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윤단미가 홧김에 신고할지도 몰랐다. 윤단미는 증거가 충분하므로 성혜인을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서천에 이상한 친척들을 둔 것으로 봤을 때, 성혜인은 재력도 권력도 달리는 집안 출신인 것 같으니 남달리 도움받을 곳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윤단미는 윤씨 집안의 변호사에게 맡겨 소송을 걸 수도 있었다. 만약 일이 그 정도로 커진다면 성혜인은 직업적으로 영향받는 건 물론이고 감옥까지 가게 된다.반승제는 다시 윤단미의 병실로 돌아갔다. 그가 곧바로 돌아온 것을 보고 윤단미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신고하고 싶었지만 반승제의 입장이 궁금했기 때문에 꾹 참고 있었다.“승제야...”윤단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반승제가 침대 곁의 의자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페니한테 말해뒀어. 퇴원하기 전에 사과하러 올 거야.”윤단미의 눈동자에는 빛이 돌기 시작했다. 반승제의 입장 정리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반승제가 이렇게 나왔으니, 그녀는 너그러운 척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이는 신고는 하지 않
반승제는 한 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 건너편의 사람은 심인우였다.“대표님, 제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가 SY그룹의 운영에 개입한 이후로 성 사장님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비서가 사장직을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 가까이 지내는 회사가 BH그룹의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기꾼으로 만약 계약이 성공한다면 2조 원 정도의 벌금을 내게 될 것입니다. SY그룹의 상황으로 봤을 때는 아마 벌금을 내지 못하고 파산하게 될 것 같습니다.”심인우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SY그룹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찌 됐든 성혜인은 반승제의 아내였기 때문에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반승제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다.SY그룹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반승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덤덤하게 답했다.“SY그룹의 파산이 저와 무슨 상관이죠?”이 말을 들은 성혜인은 우뚝 멈춰서서 머리를 돌려 반승제를 바라봤다. 그녀를 발견한 반승제는 시선을 돌리며 계속해서 말했다.“지금 단미를 만나러 병원에 왔으니까 먼저 끊을게요.”전화를 끊은 반승제는 성혜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성혜인은 반승제가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혹시 SY그룹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반승제는 엘리베이터 벽면의 반사를 통해 성혜인을 바라봤다. 그날 밤의 일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듯했다. 책임을 지려고 했던 자신만 우스워지는 꼴이었다.성혜인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그날 밤의 적극적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서주혁에게 흔적을 지워달라고 한 것은 남자로서 이런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 않아서였다.반승제는 머리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평소보다 더욱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대표님.”엘리베이터에서 나가며 성혜인이 반승제를 불러세웠다. 반승제는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지?”“방금 통화하면서 하신 말씀 무슨 뜻이에요?”“오지랖도
이때 병실 문이 열리고 윤단미가 나왔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승제의 품에 있던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승제야!”윤단미는 머리를 숙이고 꽃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곧바로 윤선미에게 꽃병을 구해오라고 일렀다. 윤선미는 반승제가 꽃을 선물한 것을 보고 심술 나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크게 티를 내지 않고 순순히 꽃병을 구해왔다.사실 꽃다발은 반승제가 큰 생각 없이 산 것이었다. 빈손으로 병문안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참에 마침 꽃집이 보여서 들어간 것뿐이니 말이다.“몸은 좀 어때?”아무리 어째도 뼈를 다친 것이니 윤단미는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반승제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은 달콤하기만 했다.“많이 괜찮아졌어. 셰프가 준비한 음식도 너무 맛있고. 근데 너 바쁘지 않아? 진짜 올 거라고는 기대 안 했는데.”윤단미는 미소를 지으며 반승제와 팔짱을 꼈다.“우리 집안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입원한 걸 몰라. 걱정할까 봐 말 안 했거든.”반승제는 팔을 빼내면서 말했다.“난 회의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해. 누워서 쉬어.”“어휴... 알겠어. 회의 끝나고 시간 있으면 또 만나자.”윤단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가 병실 문에 노크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성혜인이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입에서 나온 ‘파산’이라는 말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퇴원하고 SY그룹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허진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아직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퇴원하기 위해서는 윤단미와의 일을 빨리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성혜인은 윤단미의 병실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성혜인이 들어온 것을 발견한 윤단미는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오만한 태도로 물었다.“페니 씨가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아, 혹시 사과하러 왔어요?”사실 성혜인이 지금 사과하러 온 것도 다 계산된 것이었다. 반승제와 함께 있어야 윤단미가 심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그녀의 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반승제가 그녀에게 물었다.“목은 어쩌다 다쳤어?”“조심하지 않아서요.”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녀의 말투는 차갑게 변해있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자, 그녀는 스스로 퇴원 수속을 밟으러 갔다.반승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늘 혼자인 것 같았다.그가 차에 올라타려는데 혜인이 밖으로 나와 길가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승제는 차에 앉아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는, 손끝으로 가볍게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모른 척하는건지 아니면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날 밤의 일을 어떻게 전혀 언급하지 않을수 있지?’그는 손을 들어 눈썹을 긁적거렸다.승제는 차를 몰아 그녀의 앞에 천천히 세웠다. 창문이 열리고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어디 가?”혜인은 그가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때마침, 이곳은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혜인은 그에게 물었다. “로즈가든이요. 저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대표님?”“타.”혜인은 차 문을 열어 조수석에 올라탔다.100메터쯤 운전해 차는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도로에는 차가 붐벼 교통 체증이 심했다.“왜 단미에게 손을 댄 거지?”그녀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였지만 결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건 사소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감시카메라에 담긴 그녀의 행동은 확실히 인정사정없어 보였다.물론, 먼저 손을 든 건 윤단미였다. 하지만 그녀는 실질적으로 혜인의 뺨을 때리지 못했다.혜인의 과잉방위였다.당시 혜인은 두 남자의 사건과 더불어 자신이 다친 것 때문에 단미에게 손을 댄 것이었지만, 이 사실을 차마 승제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단미 씨가 제가 못마땅하신지 늘 저를 괴롭히시는데... 선미 씨가 저희 둘 사이를 이간질 하는 말을 몇마디 전했더라고요. 단미 씨는 그걸 믿었고요. 그래서 저를 손 봐주려고
혜인은 자신이 그 말을 뱉은 후, 차 안에 더욱 어색한 공기가 흘러 답답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에게는 그저 가벼운 농담이었을 뿐인데 말이다.분위기를 풀고자 해명하려는 순간, 승제가 물었다.“만약 찾는다면, 어떤 사람을 찾을 건데?”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이 없이 맑고 부드러웠다.혜인은 잠시 멍해졌다. 왠지 뒤이어 승제가 할 말이 예상이 되는듯했다. ‘혹시... 나는 어때?’그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반승제 같은 사람이 내연남이 될 거로 생각하다니.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혜인은 머리를 숙이고 피식 웃고 말았다.“대표님, 아까는 그냥 농담한 거예요.”승제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이윽고 차가 로즈가든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혜인은 허리 숙여 승제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전하려 했으나, 그는 인사 한번 없이 다시 차를 몰아 매몰차게 떠났다.혜인은 몸을 일으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성질 한번 고약하네, 도대체 알수가 없어 알수가.’로즈가든에 도착해 혜인은 쉴 틈도 없이 재깍 옷을 갈아입고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그녀가 로비에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이 곧바로 허진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성휘의 자리에 앉아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허진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최근 성한은 어떻게 하면 혜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만 늘 생각하느라 회사 일은 제쳐둔 지 오래 전이었다.이때다 싶었던 허진은 소윤의 지분과 더불어 여태껏 자신이 쌓아온 신뢰도를 기반으로 회사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PW사와의 계약은 이미 오전 9시에 끝마쳤다. 혜인이 소식을 듣고 되돌려 보려 애써도 이미 늦은 것이었다.허진은 흥얼거리며 옷걸이에 걸려 있는 외투를 걸쳐 입으며 마치 자신이 대표인양 굴었다.혜인이 이곳에 들어왔을때, 허진은 사라지고 없었다.불안해진 그녀는 얼른 마케팅부로 달려갔다.“최근 우리 회사와 비교적 큰 프로젝트 계약을 맺은 회사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마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