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의 시선이 차가워졌다.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사람과 단 한 번도 같이 지내본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서천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너무 어릴 때라 사실 기억이 좀 희미하다. 하지만 그녀는 또렷하게 두 노인이 빗자루를 들고 와서 어머니를 때린 걸 기억하고 있다.그때 아버지는 약간의 돈을 벌었다. 임지연은 효심이 있는 사람으로 돈을 벌었으니 부모님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하물며 그들은 확실히 성휘를 양육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임지연과 동생 임동원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두 사람의 관계는 나쁘지않다.하지만 집에 들어가기도 전, 두 노인은 그들이 생활고에 시달려 돈을 달라고 하는 줄 알고 임지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빗자루를 휘둘렀다.“꺼져! 딸 밖에 낳을 줄 모르는 돼지 같은 년! 우리는 너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을테니 평생 우리 집 문에 들어올 생각 마! 꺼져!”“창피해 죽겠어. 겨우 딸을 낳은 주제에. 우리 막내 봐봐, 둘째도 아들을 낳았어!”성혜인은 그때 임지연 품 속에 안겨있어 빗자루가 등을 때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이것이 바로 성혜인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다.지금 아버지는 아직 혼수상태인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성 씨 집안으로 향했다.성 씨 집안 거실.성무일과 아내 라정옥은 값비싼 소파에 앉아 계속 여기저기를 바라보았다. 정말 멋진 별장이다. 막내의 30여 평의 집보다 훨씬 널찍하다. 밖에 정원도 있고 이렇게 많은 도우미들이 시중들고 있다.첫째가 제원에서 이렇게 큰돈을 벌었는데도 동생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들은 너무도 화가 났다.소윤은 싱글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버님, 어머님. 혜인이가 곧 돌아올 테니 하실 말씀 있으면 혜인이에게 하세요.”성무일은 콧방귀를 뀌였고 라정옥도 눈을 희번덕거렸다. 임지연도 이미 죽었는데 맏이의 재혼 아내가 낳인 자식마저 또 여자애
라정옥은 서천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잘못된 구시대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아들을 둘이나 뒀을 뿐만 아니라 일도 잘하고 있는 막내 성훈만 편애했다.맏이 성휘가 임지연과 결혼하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반대했는지 모른다. 임지연의 엉덩이가 자그마한 꼴을 보아하니 아들을 낳기는 틀려먹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성휘와 한참 다투다가 결국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했었다.라정옥은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임지연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알고 나서는 또 얼마나 속앓이했는지 모른다. 만약 진작에 알았더라면 돈 낭비를 하면서 예물로 60만 원씩이나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라정옥은 곧바로 임신 사실을 숨기고 몸값을 올리려고 한 임지연을 삿대질하며 욕했다. 예물로 준 60만 원도 물론 다시 빼앗아 갔다. 그러고는 성휘 부부를 가장 작은 창고 방에 방치해 버렸다.임지연은 그림을 배웠다. 집안도 서천보다 큰 도시에서 장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사도 망하고 사람도 죽어 나간 마당에 지금은 말해봤자 소용없는 옛날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라정옥은 그녀가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임지연은 결혼하면서 예단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성씨 집안에 시집간 이후에도 라정옥에게 하녀처럼 부림을 받기나 했다. 그 와중에 임지연의 편을 들어주는 성휘 때문에 집안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아이를 낳고 나서 성휘는 임지연을 데리고 제원으로 올라갔다. 라정옥은 두 사람이 무조건 잘 살지 못할 것으로 단정 짓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괜히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하지 못하도록 말이다.그렇게 포기해 버린 성휘 일가가 제원의 별장에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연락 한번 없이 말이다. 라정옥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숱한 돈을 팔아가며 키운 아들에게 단단히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다.성혜인은 덤덤하게 소파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앞으로 죽어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은 할머니예요.”이는 성혜인이 임지연을 따라 서천에 내려갔을 때, 라정옥이
소윤은 라정옥과 성무일이 아주 싫었다. 아니, 혐오했다. 두 사람은 가난에 찌든 냄새를 풍기며 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곳곳을 훑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혜인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라도 소윤은 두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맞는 말씀이세요, 어머님. 대출이 얼마나 남았어요?”“4억 9000만 원 정도 남았어. 달마다 600만 원씩 나가는데 지천명의 나이에 막내가 많이 힘들어하더구나. 요즘 회사에서 정리해고까지 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직장까지 잃게 생겼다. 그러니 너희가 대신 대출금을 갚아주렴.”소윤은 싱긋 웃으며 은행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이 카드에 5억 원 정도 있어요. 일단 이걸로 대출을 갚으세요.”라정옥의 눈동자에는 빛이 돌기 시작했다. 소윤이 어토록 호탕하게 돈을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후다닥 은행 카드를 받아 들며 성혜인을 노려봤다.성혜인은 같은 거실에 있으면서도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소윤은 성휘의 서류상 아내일 뿐만 아니라 SY그룹의 지분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라정옥은 돈을 얻고 싱글벙글 웃는 것도 잠시 곧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어야 했다. 5억이라는 큰돈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내놓는 걸 보니 성휘 일가의 부유함이 더욱 크게 와 닿았다. 하지만 소윤도 쓸모없는 딸을 낳았다는 게 문제였다.이때 라정옥에게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성훈에게 아들이 있다는 핑계로 성훈 일가를 전부 이곳으로 이사시키면 그들이 덜 고생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면 자신들도 덕을 보지 않겠는가?‘호호호, 우리 막내가 퇴근하자마자 바로 얘기해줘야겠구나.’라정옥과 성무일은 흐뭇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일단은 5억 원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는 성훈 일가를 별장에 들이고 나서 받아도 늦지 않았다.혼수상태에 빠진 채 병원에 있는 성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정옥은 지금도 성휘를 불효자로 여겼으니 말이다. 그녀
성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별장에 들어섰다. 지난번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부터 줄곧 신경이 예민한 성한때문에 소윤은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한아, 혜인이는 잡았니?”성한은 피식 웃으며 소파에 가서 앉았다.“그럼요. 저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부터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어요.”소윤은 약간 걱정스러웠다. 어찌 됐든 성혜인은 아직 반태승의 예쁨을 받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사고를 당한다면 반태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반태승의 능력으로 사건 조사는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때가 되면 성한 뿐만 아니라 성씨 집안 모두가 영향받게 될 것이다.“내가 했던 말 아직 기억하지?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성한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소윤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의 분위기는 점점 더 음침해졌다. 그리고 무슨 일에서든 남 얘기를 듣기 싫어했다, 특히 어머니 소윤의 말에 대해서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성한은 자신이 이런 사고를 당한 게 전부 소윤과 허진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두 사람의 불륜 관계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면 그는 성혜인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성한은 충혈된 눈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결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어머니, 바람을 피우더라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런데 왜 자꾸 위험한 곳에서 만나려 하는 거예요!”소윤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나도 네가 반씨 집안에 보복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만약 반 회장이 나선다면 우리 다 끝장이야.”이때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성혜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서 이미 오빠한테 말해줬어요. 언니는 이번 일을 윤단미가 했다고 믿을 거예요. 그러니 반씨 집안에 말해 봤자 그들은 윤단미의 편을 들어줄 뿐이에요. 언니 곧 이혼한다면서요? 이혼한 다음
성혜인이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눈에 띄는 외모의 한 직원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무심한 눈길로 남자들에게 끌려가는 성혜인을 바라봤다.이 술집은 제원에서 유일하게 CCTV가 없는 술집이다. 덕분에 일부러 찾아가는 손님이 아주 많았고, 대부분 바깥세상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오죽하면 술집 입구에 가게 측은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겠는가.이 술집은 손님뿐만 아니라 직원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손님에게 추행당하는 일이 일상처럼 일어나기는 하지만 월급이 업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신예준은 빈 그릇을 들고 몸을 돌렸다. 남자들에게 끌려가는 사람이 강민지의 친구 성혜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귀찮은 일이라 딱히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이때 강민지가 신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일하는 곳을 구경하러 가겠다는 전화였다. 신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된 이상 성혜은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신예준은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다른 직원에게 빈 그릇을 건네주고는 성혜인이 끌려간 방향으로 걸어갔다.같은 시각, 성혜인은 남자들이 예약한 룸으로 들어갔다. 남자들은 그녀를 사정 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내장이 다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남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윤단미 씨가 뭐라고 했더라? 일단 옷을 벗기고 사진부터 찍어야겠지?”남자들은 성혜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는 비틀비틀 테이블 위의 술병을 잡고 두 사람 중 한 명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쨍그랑!술병이 깨지고 머리를 맞은 남자의 얼굴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자 멀쩡한 남자가 성혜인의 뺨을 향해 손을 들었다.성혜인은 반쪽 남은 술병으로 남자의 손을 막았다. 유리 조각을 힘껏 내리찍은 남자는 손을 부여잡고 신음을 냈다. 성혜인은 이 기회를 타서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곧장 정신 차린 남자들이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전화는 금방 연결되고 강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민지야, 나 좀 도와줘.”성혜인의 힘 빠진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이상했다. 그래서 강민지는 집안일이고 나발이고 모두 내팽개친 채 성혜인의 위치부터 물었다.강민지는 성혜인이 말한 술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신예준에게서 받은 주소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부랴부랴 성혜인이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혜인아!”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성혜인을 보고 강민지는 곧바로 달려갔다.성혜인은 흠칫 놀라며 머리를 들더니 상대가 강민지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술병을 내려놓았다.“나 병원으로 데려다줘.”“응!”강민지는 빠르게 겉옷을 벗어 성혜인의 목에 감아줬다. 밖에 있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성혜인을 데리고 룸 밖으로 나간 강민지는 홀에서 서빙하고 있는 신예준을 단번에 알아봤다. 느낌 탓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따라 그가 조금 달라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혜인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준 씨, 나 지금 예준 씨 왼쪽에 있어.” 신예준은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강민지와 눈을 마주친 순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민지야, 오면 온다고 말하지. 네 친구는 왜 그래? 취했어?”강민지는 신예준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일단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다줘. 급해.”신예준은 머리를 끄덕이며 성혜인을 부축했다. 앞에서 자신의 차가 있는 곳을 안내하고 있던 강민지는 신예준의 어두운 안색을 발견하지 못했다.‘그 남자들 실패한 모양이네.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술집 밖에 세워져 있는 몇십억짜리 차를 보고 신예준은 눈
“언니, 난 이제 망했어. 내가 경호원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사람들이 다 알아버렸다고. 나 이제 시집 못 가는 거 아니야?”반승제에게 그런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윤선미는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윤선미가 반승제를 쫓아다닌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여자로 대한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실내 디자이너와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또 윤단미와는 연애까지 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한 게 너무나도 억울했다.윤단미는 자신이 힘들지 않은 선에서 윤선미를 대충 부축하고 있었다.“그러게 누가 그렇게 경솔하게 움직이래?”윤선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모든 일이 성혜인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두 사람은 강민지와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딱히 인사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냥 서로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윤선미는 정밀 검사를 받으러 가고 윤단미는 밖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리고 윤선미는 그녀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날 때가 되어서야 검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윤선미의 안색은 아주 창백했다. 왜냐하면 의사들이 자꾸만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검사를 받는 사람 중 대부분이 문란한 생활을 하므로 그녀는 제풀에 찔리고 말았다.윤선미는 머리를 푹 숙인 채로 입술을 깨물고는 윤단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 병실에서 나가고 있는 성혜인과 마주쳤다. 성혜인은 화장실을 가려던 참이었다. 안 그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윤선미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불러세웠다.“페니 씨.”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머리를 돌렸다. 윤선미가 무엇 때문에 병원으로 왔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녀는 윤선미를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윤선미는 그녀를 순순히 보내줄 사람이 아니었다.“야, 당장 거기 서지 못해?! 내가 너 때문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 죽여버릴 거야!”금방 치욕스러운 검사를 받고 나온 윤선미는 분노 지수가 최대치를 뚫었다. 그
성혜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강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씨 집안의 힘으로 납치범에 대해 조사를 해볼 생각이었다.“그런 일이 있었어? 내가 당장 사람을 찾아서 조사할 테니까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서 쉬고 있어.”성혜인이 전화를 끊기 바쁘게 윤선미가 노크도 없이 병실 안으로 쳐들어갔다. 윤선미는 그녀를 죽어라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우리 형부가 곧 병원으로 온대요. 이제 어떻게 책임질래요?”성혜인은 지금의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그러는 본인은 왜 병원으로 왔는지 잊었나 봐요?”윤선미의 표정은 빠르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반승제가 오기 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흥!”윤선미는 콧방귀를 뀌며 윤단미의 병실로 돌아가 버렸다.혼자 남은 성혜인은 미간을 꾹꾹 눌렀다. 조금 전 윤단미를 발로 찬 건 남자들이 했던 말이 떠올라 화를 참지 못해서였다. 윤단미의 입원은 맹세코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마침 회진을 온 의사에게 물어보니 윤단미는 위병이 도졌을 뿐만 아니라 갈비뼈까지 부러졌다고 한다. 성혜인이 자신에게 감춰진 슈퍼 파워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때 의사가 설명을 덧붙였다.“갈비뼈는 생각보다 약해요. 지난주 부부 싸움을 하다가 아내한테 맞아서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진 남자도 지금 입원해 있거든요. 큰 상처는 아니지만 작은 상처도 아닌 셈이죠.”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가 다시 나가고 드디어 눈을 붙이려고 할 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발걸음 소리의 주인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반승제였다. 반승제는 먼저 윤단미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윤단미를 그를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승제야...”비록 윤단미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 있지만 속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성혜인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녀를 때린 덕분에 위병이 도지고 갈비뼈까지 부러져서 성혜인이 얼마나 악독한 여자인지 어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반승제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윤단미를 훑어봤다. 눈에 띄는 상처가 없는 것을 보고서는 낮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