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미의 시선이 유경아에게 향한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 마실 것도 안 내오고 뭐해요? 포레스트에 오늘 마실 것도 준비 안 됐나요?”유경아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유경아는 무의식적으로 반승제를 쳐다보았다. 윤단미는 반승제의 팔짱을 꽉 끼고 있었다. 계속 열이 내렸다 올랐다 반복한 바람에 안색이 조금 창백했지만 그만의 아우라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그가 자리에 앉자 윤단미도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유경아는 분통이 터졌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주방으로 들어가 차를 내리면서 성혜인에게 몰래 문자를 보냈다.「사모님, 아무래도 포레스트에 오셔야겠어요. 도련님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두 사람 아주 다정해 보여요.」그 시각 로즈 가든으로 돌아온 성혜인은 포레스트의 일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유경아는 차를 가져와 티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윤단미가 위층을 힐끗 보더니 씩 웃었다.“승제야, 네 와이프는 집에 없어?”아내의 행방을 몰랐던 반승제는 유경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유경아가 재빨리 설명했다.“사모님 아직 들어오지 않았어요.”윤단미가 놀란 척하며 입을 움켜쥐었다.“아까 아주머니랑 통화할 때 네 와이프가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자꾸 외박한다고 하더라고. 결혼했으면 일찍 집에 들어와야지, 안 그래? 승제 너 지금 몸도 안 좋은데 옆에서 챙겨주지도 않고 대체 어딜 갔대?”반승제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챙겨줄 필요 없어.”그녀가 없으면 오히려 더 자유롭고 편했다.그 말에 윤단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더는 그 꼴을 볼 수 없었던 유경아는 대충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 거실에 반승제와 윤단미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반승제가 한창 오전 회의 때의 데이터를 생각하고 있는데 윤단미가 옆에서 재잘거렸다.“아까 오는 길에 페니 씨를 만났는데 페니 씨가 내 고양이를 잃어버렸어. 승제야, 나 우리 집 고양이를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 고양이한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너무 걱정돼
반태승이 소파 앞에 가서 앉자, 유경아는 빙그레 웃으며 황급히 차 한 잔을 내왔다. 반태승은 그것을 받아 천천히 잔을 들어 위에 둥둥 뜬 찻잎을 옆에 있는 잔에 덜어냈다. 그러고는 기세등등한 말투로 윤단미를 꾸짖었다.“윤단미 씨, 우리 승제가 이미 결혼까지 한 유부남인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죠? 포레스트 별장은 내가 혜인이에게 선물한 신혼집입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남의 신혼집에 들어온 겁니까? 윤씨 집안에서는 윤단미 씨에게 이런 기본적인 인간 됨됨이도 가르치지 않았단 말입니까? 윤단미 씨는 예의도 염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할아버지, 그런 것이 아니라, 저는...”“입 다물어요, 누가 당신 할아버지입니까?”반태승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지금 당장 윤단미 씨 부모님께 전화하세요. 난 윤단미 씨 부모가 직접 포레스트 별장에 와서 딸을 데려가는 꼴을 꼭 봐야겠으니까요! 기왕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남의 가정이나 파탄 내는 상간녀 노릇을 자청했으니,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내가 오늘 제대로 가르쳐 줘야겠네요.”윤단미는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할아버지, 단미는 그저 지나가다가 잠깐 들린 손님일 뿐이에요.”“너도 입 닥쳐!”반태승은 책상을 다시 두드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승제야, 만약 네가 한마디만 더 한다면, 나는 병원에서 진행하는 그 어떤 치료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반승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반태승은 다시 윤단미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더니 차갑게 말했다.“어서 전화 걸지 않고 뭐 해요, 자기 부모님 연락처도 모르는 겁니까?”윤단미는 울면서 주춤거리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 순간 그녀는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만약 부모님이 친히 포레스트 별장까지 와서 자기를 데려간다면, 내일 이 일은 제원 전체에 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더 이
반태승은 말을 마치자마자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윤단미를 배웅하려던 반승제의 발걸음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다급히 할아버지를 부축하러 달려왔다.“할아버지, 제발 화내지 마세요. 제가 연락할게요, 혜인이한테 연락하면 되잖아요.”그가 반태승을 부축하여 소파에 앉히자, 반태승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애당초 네가 왜 윤단미와 함께하려 했는지 내가 모를 거로 생각하지 마, 단지 네 형의 일 때문이잖아.”반승제는 반태승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그의 등을 다독였다.“할아버지, 좀 괜찮아지셨어요?”반태승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대답했다.“진심으로 내 건강이 걱정된다면, 나를 화내게 만들지 말거라. 혜인이는 내가 너를 위해 고르고 고른 짝이다. 그러니 네가 그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틀림없이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반승제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혜인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이때 안정을 되찾은 반태승이 몸을 돌려 반승제의 손을 밀어냈다.“당장 혜인이한테 전화해. 다음에 또 네가 한 이런 황당한 일을 알게 되면, 내가 어떻게 너를 혼내줄지 두고 봐!”반승제도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반태승이 다른 것으로 그를 위협했다면, 예를 들어 반씨 집안의 후계자 자리나 BH그룹의 대표 자리를 내세워 그를 위협했다면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반태승은 하필이면 자신의 건강을 내세워 협박했다.그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그녀의 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는 성혜인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였다.이때, 성혜인은 이미 로즈가든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피곤이 많이 쌓였었다. 유현숙에 관한 일이 잘 마무리되자, 그녀는 마침내 푹 잘 수 있게 되었다.전화벨 소리를 듣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윤단미가 시비를 걸려고 전화를 걸어온 줄 알았다. 어쨌든 그녀가 먼저 윤단미를 찾아가지 않았으니 말이다.성혜인
그날 밤, 성혜인은 한잠 푹 자고 났더니 유달리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후,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켰다. 반승제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러 개 표시되어 있었는데, 게다가 전부 자신의 개인 번호로 걸려 온 부재중 전화였다. 성혜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또 할아버지한테 혼난 건 아니겠지?’그녀는 씻으면서 메시지를 보냈다.「무슨 일 있어요?」어젯밤 폭풍우가 불고 간 포레스트 별장에 비해,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가 비로소 담담하게 적어 보낸 답장은 분명 울화가 치밀어 오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반승제는 여자 때문에 쉽게 감정 기복을 느끼는 편이 아니었다.그는 문자를 읽고 나서 바로 삭제했다. 할아버지도 더 이상 따지지 않으셨으니 굳이 이 여자와 연락할 필요도 없었다. 성혜인도 반승제가 답장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개인 번호로 전화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할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건 것이 분명했다.간단하게 씻은 후, 그녀는 급히 반태승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건강을 물었다. 뜻밖에도 반태승은 그녀를 남편이 바람나서 버려진 불쌍한 처지로 알고 있었다.“혜인아, 걱정하지 말거라. 할아버지는 항상 네 편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할아버지한테 직접 말하거라. 내가 승제 그 자식을 끌고 와서라도 네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 테니.”반승제는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아이였다. 그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 할아버지가 강력하게 결혼을 밀어붙이실 때에도 그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반항조차 하지 못했었다.“윤단미 그 여자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말거라. 그 여자도 별수 없을 거야. 내가 절대로 그 여자를 반씨 집안에 들이지 않을 테니까! 혜인이가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그 여자는 반씨 집안에 들어오지 못했을 거야.”‘윤단미는 애초에 할아버지가 허락할 만한 여자가 아니었네.’성혜인은 반태승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할아버지,
윤선미는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언니, 걱정하지 마. 그 여자가 다시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들어 줄게.”윤단미가 냉랭하게 웃었다.‘원래 못생긴 얼굴, 이젠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들어 주겠어.’윤선미는 윤단미의 말을 듣고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러 카페와 단톡방에 이런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반승제랑 결혼한 그 여자가 글쎄 매일 밤 밖에서 유흥을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듣자 하니 반승제 대표님은 이 여자를 아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하더라니까요.”“정말인가요? 그런데도 반태승 회장님께서 지켜보시기만 한다는 말이에요? 회장님이 직접 고른 사람이라고 들었는데요?”“지금까지는 회장님께서도 그저 생명의 은인이라 눈 감아주셨나 본데요, 하지만 자기 손자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할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이미 그 여자에게 어떻게 돈을 주고 떼어낼지 의논하고 하루빨리 반씨 집안에서 쫓아내려고 할 겁니다.”“하긴, 이런 여자를 어찌 감히 윤단미 씨와 비교할 수 있겠어요. 어쩐지 윤단미 씨가 돌아오자마자 반승제 대표님이 윤단미 씨와 붙어 다니더라니.”이 소문들은 각 커뮤니티에 퍼졌고, 결국 모두가 반승제와 윤단미의 결혼을 기대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두 사람이 한 달 내에 결혼할 것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다음 주 중으로 윤단미가 반씨 집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내기를 했다.그때, 성혜인은 강민지와 함께 병원에 있었다.강민지는 워낙 부잣집 아가씨인데다 강씨 집안은 진정한 재벌가였기 때문에 그녀도 상류사회의 사람들만의 카페나 단톡방 한두 곳에 가입되어 있었다.그녀는 평소에는 이런 카페나 단톡방에서 발언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요란법석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혜인아, 잠자다 이 사람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봐봐. 네가 못생겼다고? 그 와중에 바람둥이라고? 지금 당장 사진을 찍어서 이 사람들한테 보여주자. 네가 못생긴 거면 윤
이어서 강민지도 자리를 떴다.성혜인은 두 변호사의 뒤를 따라 걸으며 아버지 성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변호사 두 명과 근처 공원에서 조용한 자리를 찾아가 의논하려던 그때,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스케치가 한창이던 반승혜를 보았다.반승혜도 그녀를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페니 씨! 오랜만입니다!”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향해 웃었다.“스케치하고 있었어요?”반승혜가 한숨을 쉬었다.“그럼요. 오빠를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요즘 통시간이 안 나는 모양이더라고요. 풀 스케줄이라고 들었어요.”반승혜는 옆에 있는 양복 차림의 두 사람을 한 번 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는데, 어디서 인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페니 씨, 바쁜 것으로 보이는데, 일 보세요. 전 스케치 좀 더 할게요. 이따가 시간 나면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음식 대접할게요. 어때요?”성혜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반승혜는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스케치를 이어갔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두 변호사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두 사람은 반씨 집안사람이 이곳에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성혜인은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을 보고 물었다.“아버지께서 변호사님들께 어떤 것을 문의하셨나요?”“성혜인 씨, 카페나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건 어떨까요?”성혜인은 조금 의아했다. 이곳은 병원과도 가까워서 얘기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기도 편리했는데, 굳이 왜 카페에 가려고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마음속에 언뜻 위기감이 스치자, 그녀는 즉시 일어섰고 손에 식은땀을 쥐었다. 설마 두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란 말인가?한편, 반승혜도 붓을 놓으려다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어디선가 본 적 있었던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정체가 생각났다. 그들은 바로 윤선미의 곁을 지키던 윤씨 집안의 경호원들이었던 것 같았다.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성한은 입 안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성혜인의 얼굴과 몸매가 떠오르자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아랫도리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죽어버린 그 부분과 상반된 기분이었다.그는 분노에 고함을 지르며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을 거세게 밀어버렸다. 그의 힘에 물건들이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다.성한은 별장에 와있는 상태였다. 마침 그의 인기척을 느낀 성혜원이 안으로 들어왔다.“오빠, 괜찮아?”그녀의 물음에 성한은 냉소를 머금었다. 눈빛에서도 냉기가 느껴졌다.“성혜인, 꼭 갖고 말 거야. 방법을 총동원해서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럽게 만들어 주겠어! 그래야 이 화가 풀릴 것 같아.”성혜원은 눈을 반짝였다. 성한은 성혜인을 원하고, 성혜원은 반승제를 원한다. 조만간 함께 힘을 합칠 수 있을 것 같았다.“오빠가 먼저 성혜인에게 오해 살 만한 행동을 보여주면 되잖아. 내가 오빠한테 윤씨 집안 경호원에게 맞서라고 한 것도 윤단미가 한 일로 오해하게 만들 생각이었던 거야. 윤단미가 다치게 된다면 반승제에게 가서 이야기할 생각이었고. 그렇다면 반승제도 성혜인을 도와주기는커녕 홧김에 이혼까지 할 걸?”성혜원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먼지를 털며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지금 아빠도 병원에 계시니까 이혼하고 나면 성혜인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내가 무슨 수를 쓰든 말이야.”모든 것이 성혜원이 계획한 아이디어였다. 바로 반승제와 성혜인을 하루빨리 이혼시키는 것이다.당분간은 윤단미의 덕을 좀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반승제와 잠자리했던 성혜인을제거하고 나서 윤단미를 제거할 궁리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윤단미에게 당한 모욕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우전 윤단미이라는 미끼를 성혜인에게 던질 생각이었다. 누가 먼저 떨어져 나가든 성혜원에게는 전부 이득일 테니까.성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없이 서 있었다.잠시 후,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혜원아, 갈수록 똑똑해지네.”“다 우리를 위해서지, 뭐.”...반승혜의 그림을 고친
순간 몸의 긴장이 풀렸다.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처음 만났던 그때의 관계를 회복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이사 갔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편하게 자요.”반승제는 서류를 다시 열었다.“다행이네.”옆에 앉은 반승혜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대화처럼 느껴졌다.“페니 씨, 오빠는 이따가 단미 언니 데리러 가야 하니까 저랑 같이 한 바퀴 돌아요. 여기 풍경이 정말 예쁘거든요. 돈 많으면 뭐 해요, 이렇게 다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 적은데. 불편하면 밥만 먹어도 되고요.”반승혜는 그림도 잘 그리고 예쁜 얼굴에 좋은 성격까지 갖춘 성혜인을 진심으로 좋아했다.‘페니 씨가 올케언니면 참 좋을 텐데.’아쉽게도 반승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윤단미였다.윤단미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페니와 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반승혜가 대화에 끼어들자 성혜인은 마음이 더 편해졌다.차가 멈추고, 밖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윤단미였다.윤단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승제야.”바깥에 서서 울음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승제를 불렀다. 성혜인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포레스트에게 반태승에게 망신을 당한 후 위로를 받기 위해 반승제를 찾아온 듯 했다.차 문이 열렸다. 차 안에 앉아있는 성혜인을 발견한 순간 윤단미의 얼굴이 빠르게 일그러졌다.“페니 씨, 고양이는 찾았어요?”윤단미는 냉기 품은 목소리로 물으며 픽 웃었다.성혜인은 반승혜의 손에 이끌려 함께 차에서 내렸다. 반승혜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고양이?”“페니 씨가 내 고양이를 잃어버렸어.”윤단미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반승혜와 성혜인의 사이가 좋아 보이자 마음도 불편해졌다.“승혜야, 페니 씨를 어떻게 알아?”반승혜는 사실 윤단미와의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앞에서나 ‘언니’라고 칭할 뿐, 성혜인이 더 좋았다.“페니 씨가 내 그림을 몇 번 수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