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30분을 달려 네이처 빌리지에 도착했다.성혜인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뒤따라 도착한 윤단미와 윤선미가 차에서 내리자 건물 안쪽을 가리켰다.“이쪽으로 오세요.”성혜인의 태도가 만족스러운 윤단미는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300평 규모의 정원이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네이처 빌리지의 구조는 초반에 큰 인기를 끌었다.별장 독채로 되어 있지만 지금은 정원이 황무지처럼 비어 있어 이곳도 성혜인의 손길이 필요했다.성혜인은 두 사람을 데리고 문제의 기둥 앞으로 갔다. 시공 중인 내부는 시끄럽고 먼지가 자욱했다.윤단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 앞을 휘저었다. 윤선미 역시 먼지를 마시지는 않을까 입을 막았다.성혜인은 앞으로 가 기둥을 없앤 곳을 가리켰다.“여기예요.”해가 떠 있는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햇빛이 건물 안으로 쏟아졌다. 햇빛을 가리는 기둥을 없애니 채광이 좋았다.하지만 네이처 빌리지는 구조 자체가 좋아 일조량이 충분했다.윤단미는 사방이 온통 먼지투성이인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여기에 20평 정도 되는 반려동물 놀이터를 하나 만들죠. 햇빛도 잘 들겠네요.”성혜인은 흠칫했다.“단미 씨, 대표님은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는걸요.”“알아요. 전 고양이 키워요. 랙돌이랑 골든 친칠라인데, 승제도 본 적 있고 좋아해요. 여기 채광도 좋은데 쓸 만한 용도가 없다면 여기에 고양이방을 만들면 되겠어요.”생각하지 못한 윤단미의 아이디어에 성혜인은 반승제의 의견을 물으려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윤단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지금 승제한테 전화하려는 거예요? 승제가 저한테 아이디어 내라고 했잖아요.”하지만 성혜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여기 단미 씨 명의로 되어있나요?”윤단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무슨 뜻이죠?”“죄송하지만 전 디자이너고 부동산 소유자가 제 고객이어서요. 소유자가 나중에 트집이라도 잡으시면 단미 씨가 책임지셔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지금
반승제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윤단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윤단미는 귀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짤막했다.“회의 들어갈게.”“알았어, 승제야.”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은 윤단미는 성혜인에게 시선마저 따뜻해졌다.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달랐다. 반승제가 결혼한 여자에게 마음을 품을 리가 없었다.과격한 말이지만, 이미 남편과도 꽤 잠자리를 했을 텐데 깔끔한 반승제라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윤단미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제 말대로 진행하세요. 그리고 벽면과 바닥은 칠보 장식품으로 깔아 주세요. 제가 칠보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해외에서 유행이기도 하고요.”성혜인은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칠보는 최근 수십억에 호가할 만큼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재료였다. 칠보 기법에서 볼 수 있는 푸른색은 사실 디자이너들에게 ‘매혹적인 푸른빛’이라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색상이기는 하다.고급 저택에서 꽤 인기 있는 석재이기 때문에 성혜인도 칠보 스타일의 석재를 후보로 꼽았었지만, 집 전체를 칠보 스타일로 깔아버린다면 오히려 칠보 스타일이 주는 우아한 느낌을 해칠 수 있다.“단미 씨,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바닥에 사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윤단미는 거절당한 게 불만이었는지 얼굴을 구겼다.“제가 방금 한 말 잊었어요? 이 집은 제가 앞으로 살 곳이니까 제가 말한 대로 디자인해야죠. 승제도 허락했는데 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왜 참견이에요?”성혜인은 깊게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이 좋아하시는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칠보 스타일로 전부 깔아버리면 비싼 느낌만 부각될 뿐 멋이 없어요.”윤단미의 요구는 반려동물 놀이터에서 그칠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바닥 전체를 칠보 스타일로 깔겠다니. 성혜인이 생각한 디자인과 너무나도 다른 길이다. 설계도를 완전히 엎게 생겼다.게다가 이렇게 한다면 디자인이 촌스러워질 게 분명했다. 반승제가 예
성혜인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누군가 의구심을 품었다는 것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화가 났다.이건 자신의 면전에다 욕을 한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이었다.성혜인은 웃음기 없는 얼굴에 유리 같은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그럴 리가요. 단미 씨가 전화하는 걸 들어서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다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반승제는 한참 동안 성혜인을 쳐다보다 목젖을 들썩였다.“결혼한 사람이 이렇게 호텔에서 오래 묵으면 집에서 뭐라 안 하나?”성혜인은 반승제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하는 게 의아했지만 성실히 답했다.“가족한테 일이 생겨서요. 이곳이 병원에서 더 가까워요.”“왜 나랑 같은 층에 묵는 거야?”반승제는 여전히 방문을 열지 않은 채 성혜인을 쳐다봤다.여유롭게 서 있는 그에게서 무심한 듯한 잘생긴 아우라가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 반승제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마치 성혜인의 내면을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예약했던 방에 문제가 생겨서 호텔이 보상 차원으로 스위트룸을 줬어요.”성혜인은 빙긋 웃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BH 그룹의 호텔답게 서비스가 정말 좋네요.”하지만 그 순간 주변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그녀의 피부를 스쳤다.무심해 보이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반승제의 눈동자가 블랙홀처럼 검게 변했다.“그 이유 때문에?”성혜인은 순간 반승제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BH그룹을 칭찬하면 안 되는 건가?’머리를 굴리던 성혜인은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반승제는 픽 웃었다.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다.처음으로 여자 때문에 화가 나는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그는 시선을 거두며 문을 열었다.“날 찾아온 용건이 뭐야?”성혜인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네이처 빌리지 디자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요.”반승제의 발걸음이 멈췄다. 반승제가 불을 켜지 않으니 성혜인 역시 굳이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다.성혜
성혜인의 얼굴 앞을 가로지르는 반승제의 손.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기다란 손에 시선을 빼앗긴다.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숨어있는 야수가 그의 손끝에서 요동친다. 차가우면서도 위협적인 기운이 느껴진다.성혜인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바로 그때, 반승제는 반대 손으로 성혜인을 잡아당겨 벽으로 밀쳤다.빠져나갈 곳이 없었다.성혜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벽에 바짝 붙었지만 반승제와의 거리를 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반승제는 양팔로 퇴로를 완전히 봉쇄했다.성혜인은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차마 그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성혜인이 반승제의 품속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분위기에 혼을 빼앗길 것 같았지만 상대가 반승제였기 때문에 성혜인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반승제와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다.때마침 성혜인의 휴대폰 벨 소리가 간지러운 분위기를 내쫓았다. 성혜인은 왜인지 모르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성혜인은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해 보았고 바로 서민규였다.평소에는 제멋대로 전화를 거는 서민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반승제 역시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꾹 물며 기뻐하며 통화 버튼을 누르는 성혜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심지어 성혜인은 전화 덕분에 살았다는 듯이 뻣뻣하게 굳었던 몸도 풀어졌다.반승제는 천천히 손을 풀며 성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승진했어? 응, 알겠어. 곧 갈게.”서민규는 정말 승진을 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성혜인이 그의 체면을 살려주려 직접 로비에서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더라면 승진의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그렇기에 성혜인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다.서민규는 사실 다른 생각도 품고 있었다. 성혜인과 진지하게 잘해보려는 생각.성혜인이 흔쾌히 승낙하자, 서민규는 곧바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성혜인은 레스토랑 이름을 한 번 읊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사이 눈앞을 막고 있던 커다란 팔뚝은 사
등 뒤에서 마치 호랑이가 달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을 번쩍 안아 현관 수납장 위에 올렸다.“대표님!”성혜인은 놀란 나머지 목이 메었다. 수납장 위에 올라앉으면서 188cm의 반승제와 눈높이가 같아졌다.성혜인이 깜짝 놀라 벽으로 바짝 붙었지만 반승제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성혜인은 알고 있다. 그날 밤, 침대에서 괴력을 보여준 반승제는 평상시 냉랭한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는 것을.곧바로 병원에 가야 할 정도였다.턱을 잡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성혜인의 눈동자에서 물보라가 일었다.반승제는 그런 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는 곧바로 입을 맞췄다. 성혜인이 거절할 틈도 없이 치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놀란 성혜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반승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하지만 반승제의 입술은 숨 쉴 틈도 내어주지 않았다. 성혜인은 아찔한 기분에 다리 마저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문득 눈앞이 뿌옇게 변하면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마치 수많이 손이 그녀를 수렁 안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기분이었다.반승제의 입술이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다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바로 그 순간, 성혜인은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반승제를 그대로 밀쳤다.강한 힘에 반승제 역시 힘쓸 새 없이 뒤로 밀려났다.성혜인은 황급히 수납장에서 내려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하지만 너무 경황이 없던 나머지 문을 열자마자 넘어지고 말았다.손에 쥐고 있던 자료들이 공중 위로 날아 사방에 흩뿌려졌다.반승제는 성혜인을 부축하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을 쓰기도 전에 성혜인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성혜인은 다리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뒤로 하고 자료 더미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자료들을 한 장 한 장 줍기 시작했다.반승제 역시 허리를 숙였다. 성혜인이 고개를 들지 않자 손가락으로 마지막 종이 한 장을 꾹 눌렀다.다급하게 종이를 줍다 마지막 한 장에 손을 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반승
성혜인은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아닌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안녕하세요, 시환 씨.”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그를 지나쳐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두 군데가 온시환의 눈에 띄었다. 몸에 난 흔적과 손에 들고 있던 네이처 빌리지의 설계도. 옅게 붉어진 눈시울과 작게 떨리는 손끝만 봐도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페니 씨.”온시환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린 성혜인에게 짓궂은 질문을 날렸다.“승제가 꽤 과격했나 봐요.”성혜인의 어깨가 들썩였다. 하지만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이곳을 벗어났다.온시환은 씩 웃으면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렀다.꼭대기 층에서 내린 그는 반승제 방의 방문을 두드렸다.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온시환은 슬쩍 방 안 냄새를 맡았다. 일을 치른 이후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지금 애들 불러서 얘기해. 결혼한 여자랑 한 판 놀았다고. 사람들이 과연 믿을까?”그 사이 반승제는 실크 재질의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덕에 손과 발이 더 길쭉해 보였다.온시환은 반승제가 반응이 시큰둥하자 더 흥미로워졌다.“방금 엘리베이터에서 페니 씨 봤어. 귀신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데.”그 말에 볼펜을 쥐던 반승제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온시환은 마음속으로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진짜 한 거야? 엥, 자고 싶으면 바로 잘 수 있는 윤단미가 떡하니 있는데, 다른 남자랑 잔 적 있는 여자와 자는 건 더럽지 않아?”굳이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는 여자를 골라 만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비웃음을 사게 되는 취향이다.반승제는 말없이 눈앞에 있던 서류에 사인을 하고 앞으로 밀었다.“이거 갖고 꺼져.”오늘의 약속 상대는 온시환이었다. 국내 최고 극작가인 온시환은 지금 극본을 하나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다분야 경영을 하고 있는 BH그룹은 명품점, 호텔, 자동차, 놀이공원, 여행지 등 십여 종의 다양한 분야를 산하에 두고 있다.하지만 가장 핫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는 줄곧 투자를 아껴왔었다.오늘
온시환은 서류를 들며 침실 쪽을 향해 소리쳤다.“나 간다. 오늘 일, 다른 사람한테 얘기 안 할 테니까 걱정 마. 윤단미한테도.”현관문이 닫히고, 방 안에 적막이 찾아왔다.침실 창가에 서 있던 반승제는 창밖을 쳐다봤다.도시 전체에 내려앉은 네온사인 불빛이 한눈에 담겼다.하지만 반승제는 무심하게 시선을 내려 손가락을 바라봤다.부드럽고 따뜻한 온기, 그리고 향기. 모든 게 손끝에 남아 모공을 뚫고 사지 전체로 퍼져 나간다.온시환의 말이 맞았다.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사슴처럼 공포에 떨고 있는 여자를 보고 참지 못해서 달려들었던 걸까.입술을 삼키는 것으로 모자라 그녀의 뼛속까지 파고들고 싶었다.욕구를 너무 오래 방치한 탓일까.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너무 오래 참아서 그런 걸까.관자놀이를 문지르던 그때, 마침 윤단미에게서 전화가 왔다.“승제야, 회의 끝났어? 과일 좀 준비해서 갈까 해. 심 비서가 오늘 밤에 해외 회의가 있다고 알려줬어. 늦게 끝날 거라고.”윤단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윤단미는 그사이 도우미를 시켜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쯤 혼자 있을 것이라는 온시환의 문자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반승제 앞에서 늘 단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의 뒤를 쫓아 다니는 다른 여자들과 차별점을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반승제가 유일하게 허락한 여자친구이기 때문에 조급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완벽한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다.온시환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지금 반승제에게는 여자가 필요할 것이다.윤단미는 얼굴을 붉히며 도우미를 재촉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나 지금 가고 있으니까 거절하지 마. 우리 제대로 대화 나눈 지 정말 오래됐잖아.”그사이 반승제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놀랄 만한 자제력이었다.거실로 나와 컴퓨터를 켰다. 해외 회의 연결까지 30분 남았다.“알았어.”미지근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한편 윤단미는 눈을 반짝이며 빙긋 웃
반승제가 성혜인을 단지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성혜인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성혜원은 윤단미에게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프런트직원은 성혜원을 무의식적으로 쳐다보았다. 이 여자는 전에 꼭대기 층 스위트 룸에 온 적이 있는 여자인데 오늘 그녀는 또 왔고 그 룸의 손님 정보를 꼭 알아내려 한다.꼭대기 층은 반 대표의 룸이다. 기나긴 복도에는 두 개의 스위트 룸만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새로 인테리어를 한 반 대표가 고정으로 숙박하고 있는 룸이고 다른 하나만 외부 고객의 예약을 받는다.그렇다면 누구든 그 방을 예약할 수 있는데 왜 이 여자는 굳이 예약한 손님의 정보를 묻는 걸까? 반 대표 때문에 온 것이 분명하다.프런트직원은 괜히 번거로운 일과 엮이고 싶지 않아 반사적으로 부정을 하려고 하였는데 방금 그 눈빛은 이미 성혜원을 배신했다.성혜원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고 이내 몸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나 윤단미는 웃으면서 물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성혜원은 그녀 앞에서 패기가 부족하여 입술만 오므리고 윤단미에게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윤단미는 눈을 가늘게 떴고 포스가 넘쳤다.“이름도 못 알려주면서 감히 내 남자를 노리는 거예요? 누가 이런 배짱을 당신에게 준거죠? 다시 한번 내 눈앞에 띄면...”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성혜원의 귓가에 속삭였다.“당신과 당신 가족 모두 제원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줄게요.”윤 씨 집안에게 그 정도 능력은 없지만 그녀의 배후에는 반승제가 있다.윤단미의 목소리는 그녀와 성혜원만이 들을 수 있다.성혜원의 눈시울은 순간 빨개졌고 강렬한 굴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얼른 몸 돌려 떠났고 눈에는 원망스러움으로 가득 찼다.‘천한 년! 기다리고 있어, 하루빨리 반승제와 사랑의 결실을 맺을 테니.’윤단미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비웃고 프런트직원을 향해 미소를 짓고서야 반승제가 있는 룸으로 향했다.프런트직원은 두 명은 모두 떠난 후에야 한숨을 돌리고 옆에 있는 동료에게 토로했다.“방금 단미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