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곧바로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 들고 성한의 얼굴에 뿌렸다.“이거 뭐야?!”성한은 눈을 꼭 감은 채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주체가 되지 않고 줄줄 흘러내렸다.성한이 더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린 성혜인은 회사에 올 때마다 호신용품을 하나씩 들고 왔다. 드디어 성한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녀는 의자를 쳐들고 사정없이 내리쳤다.퍽!성한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자빠졌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화가 풀리지 않았던 성혜인은 이번에 남자의 가장 예민한 부위를 노리고 발로 걷어찼다.“악!!”성한의 비명이 귀를 찢었다. 안색은 통증으로 인해 완전히 창백해졌고, 식은땀은 온몸을 흠뻑 적셨다. 견디지 못할 통증에 차라리 정신이라도 잃고 싶은 지경이었다.이때 문밖에 있던 소윤이 이상을 눈치채고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떠는 성한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뜨고 털썩 주저앉았다.“성혜인! 너 우리 한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성휘가 회사 안에서 대놓고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진작에 밖에 누군가가 지키고 있겠거니 했다. 그 사람이 보디가드가 아닌 소윤일 줄은 몰랐지만...소윤은 벌떡 일어나 성혜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손을 올려 성혜인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성혜인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소윤은 자신의 볼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성한이 무슨 짓을 할지 뻔히 알면서 밖에서 지키고 서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성혜인만큼 젊고 힘 있지 못한 데다가 성한이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던 소윤은 반격은커녕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성혜인 너 딱 기다려. 만약 한이한테 문제가 생긴다면 넌 꼼짝없이 감옥에 가게 될 테니까.”성혜인은 태연하게 휴대폰을 주워 들었다. 그러자 녹음 중이라는 화면이 떴다. 그녀
소윤은 단 한 번도 자기 아들이 생식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다. 장가를 못 가는 건 둘째 치고 아이를 못 가진다는 생각에 그녀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혜원이는 몸이 아프고, 한이는 생식 능력을 잃고... 이게 다 성혜인 때문이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든 복수할 거라고!’“한아...”소윤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생식 능력을 잃었다는 것은 남자에게 가장 큰 충격이니 말이다.성한은 안색이 창백한 채로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진통제를 맞고 나서도 조금 전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성한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머릿속에는 성혜인을 상대할 여러 가지 방법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소윤마저 겁먹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이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와도 같았다.“어머니, 저 그년을 꼭 죽이고 말 거예요. 가장 더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거라고요!”소윤은 눈가가 빨개진 채로 성한을 꼭 끌어안았다.“그래, 한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엄마는 언제나 너의 옆에 있어. 흑흑흑... 이게 다 내가 복 없어서 그래.”병실 밖으로 나온 소윤은 허진에게 전화를 걸어 몰래 성한의 상황 전했다. 허진은 놀란 듯했지만 일단 진정하고 소윤을 위로했다.“윤아, 성혜인은 한이한테 맡겨서 직접 처리하도록 해.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성휘가 깨어나는 걸 막는 거야.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돼. 그러니 얼른 방법을 생각해 봐.”소윤은 허진의 말을 듣자마자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지금은 SY그룹을 삼켜야 할 때지, 속상하다는 핑계로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소윤은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가 성한의 손을 꼭 잡았다.“한아, 우리가 SY그룹을 얻기만 하면 성혜인을 너한테 넘길게.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뒷감당해 줄 테니까 마음대로 해도 좋아. 엄마가 미안해, 이번 일은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소윤은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
BH그룹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에 있는 최효원이 보였다. 성혜인을 발견한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스쳐 지나갔지만, 곧 콧방귀를 뀌며 곁에 있던 다른 직원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그래, 경헌 씨가 2억이나 주고 사줬다니까. 차 한 대 나올 값이라 아까워 죽겠어.”최효원이 임경헌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최효원의 자랑을 들은 직원들은 저마다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BH그룹의 안내 데스크에 설 수 있을 정도면 다들 용모가 아주 뛰어났고, BH그룹의 임원과 만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대표 반승제의 사촌 동생과 만나는 최효원은 벌써 사모님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임경헌은 또 여자친구인 최효원에게 호탕한 씀씀이를 보였다. 몇억짜리 목걸이부터 마세라티까지 거침없이 선물하니 말이다. 덕분에 최효원은 공주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최효원은 또 팔찌를 자랑하며 말했다.“나랑 경헌 씨는 순수한 사랑이야. 내가 누구처럼 여기저기 다 흘리고 어장관리 하지는 않잖아? 사람이 말이야, 욕심이 적당해야지. 안 그러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나의 이런 순수한 생각 때문에 경헌 씨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최효원은 성혜인을 바라보며 이 말을 했다. 그녀는 미래 반씨 집안에 시집갈 몸이었기에 성혜인이 더 이상 반씨 집안과 엮이지 말았으면 했다. 지난번 반희월에게 그런 문자를 보냈으니 반승제가 마음이 있다고 해도 이뤄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최효원은 성혜인의 뒷모습을 향해 콧방귀를 뀌더니 자랑을 계속했다.성혜인은 최효원이 자신을 저격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못 들은 척했다. 지난번 일에는 그녀의 잘못도 있고, 또 아플 때 보살핌을 받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최효원은 성혜인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은 윤단미가 회사로 찾아온 날이다. 성혜인과 윤단미가 반승제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장면이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디자이너 주제에 꿈도 크네, 하하.’임경헌과 만나기 시작한 뒤로 최효원은 아
성혜인은 사무적인 태도로 앞장섰다.“최근에 시공팀에서 문제가 조금 생겼어요. 예전에 보셨던 설계도의 이쪽 구역을 조금 바꿀까 해요.”뽀얀 손가락으로 기둥이 놓여야 했던 곳을 짚었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설계도를 들여다볼 뿐 윤단미에게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성혜인이 나타나는 순간, 윤단미는 눈을 가늘게 떴다.‘선미가 말한 그 디자이너인가?’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윤단미는 반승제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때마침 반승제는 성혜인이 건넨 설계도를 받고자 손을 들었다.허공에 홀로 남은 윤단미의 손은 괜히 머쓱해 보였다. 윤단미는 민망한 듯 손을 거두며 성혜인을 노려보았다.성혜인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반승제의 대답을 기다릴 뿐.반승제는 한 손으로 설계도를 들고 한 손은 검은색 사무용 책상을 짚고 있었다. 공기에 맞닿은 손목이 얼음처럼 차가워 보인다. 볼펜을 쥐고 있어 튀어나온 핏줄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휴일이 되면 근력 운동에 매진하는 게 분명하다.사실 반승제의 시선은 줄곧 설계도가 아닌 성혜인을 향하고 있었다. 성혜인이 끝까지 윤단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자 미간이 좁아졌다.“시공팀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데?”“제가 설계한 조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드시 없애야 하는 기둥이 있어요. 이쪽에서 들어오는 일조량이 많아질 거예요.”보통 디자이너들은 조명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미술 전공을 한 성혜인은 달랐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조명이다.그래서 까다로운 고객도 성혜인이 설계한 집을 모두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다.반승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윤단미가 입을 열었다.“승제야, 나 현장에 가볼래. 나도 그림 그리잖아. 현장 가보면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야. 나도 이번 설계에 참여하고 싶어.”윤단미는 반승제의 팔뚝을 귀엽게 껴안았다.반승제 역시 들고 있던 설계도를 내려놨다.“페니, 그래도 돼?”그의 시선은 여전히 성혜인을 향했다. 그녀의 대
입구에 서 있던 윤단미는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 봤어도 반승제의 고의성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여자에게 늘 차가운 반승제가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플러팅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밖으로 나가 사무실 문을 닫자마자 윤단미의 시선이 성혜인의 얼굴로 향했다.처음에 봤을 때 놀랄 정도로 예쁜 외모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윤선미가 주의를 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이 여자가 꼬리 치려는 마음을 먹었더라면 반승제 역시 적어도 하룻밤을 보내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윤단미는 근처에 있던 윤선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윤선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줄곧 반승제의 사무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밖으로 나온 윤단미와 성혜인을 발견하는 순간 눈을 반짝였다.“언니, 무슨 일이야?”“승제가 가서 집 보고 오래. 내 아이디어 좀 추가하고 싶거든. 너도 같이 가자.”윤선미는 기뻐하면서도 질투가 났다.가서 집을 보라고 할 정도면 이미 윤단미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 아닌가.윤선미는 옆에 서 있던 성혜인을 쳐다봤다. 화풀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들었어요? 대표님의 디자이너잖아요. 어서 안내하지 않고 뭐 해요?”성혜인은 굳이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 정중히 말했다.“이쪽으로 오세요.”윤단미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성혜인의 뒤를 따랐다.윤선미는 살짝 뒤처져 걸었다. 질투에 몸서리칠 지경이었다. 자기도 반승제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정확히 말하면, 반승제 같은 남자를 싫어할 여자는 없다.반승제처럼 잘생긴 남자와는 몇 마디만 섞어도 기쁠 것이다. 하지만 윤단미가 돌아온 이상 그럴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혹여 누군가 윤단미에게 일러바친다면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성혜인은 1층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 안에는 세 사람뿐이었다. 윤선미는 성혜인의 심기를 건드리고자 보란 듯이 반승제를 언급했다.“형부가 언니랑 결혼하려는 생각인가 봐. 집 설계에도 참여하라고 하는 거 보면 몰래 웨딩드레스도 다
가방이 성혜인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받지 않아 바닥으로 모두 떨어졌다.윤선미는 더 난리 쳤다.“언니 가방이 얼마인 줄 알기나 해요? 한정판이라 몇십억 한다고요! 당신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라고!”성혜인은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선미 씨, 저는 도우미가 아니라 디자이너예요. 같이 갈 생각 없으면 회사에서 기다리셔도 돼요.”“뭐라고요?!”성혜인에게 한 방 먹었지만 윤선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하지만 윤단미는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쿨하게 주우면서 윤선미의 것도 함께 챙겼다.“페니 씨는 승제가 고용한 디자이너인데 이렇게 무례하게 굴면 안 되지. 집에서는 그렇다 쳐도 밖에서 이러지 마.”이미 충분히 골탕 먹였다고 생각했다. 윤단미가 반승제의 와이프가 될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 것으로 충분하다.정말 대놓고 실랑이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격 떨어지니까.그녀의 말에 윤선미는 급히 자기 가방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언니.”윤단미는 성혜인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아직 철이 안 들어서요. 미안해요. 갈까요?”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윤단미가 여우 같다고 생각했는데, 꽤 격식을 갖춘 여우짓이었다. 윤선미가 바로 그런 윤단미의 총알받이 역할이고 말이다. 세 사람은 함께 로비 프런트를 지나쳐 갔다. 성혜인을 발견한 최효원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하지만 윤단미를 보는 순간 아주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아가씨, 가시려고요?”밖에서는 겸손을 유지하는 윤단미는 공손히 웃으며 답했다.“네. 디자이너님과 같이 승제 집 보러 가요.”“축하드려요. 다음에 또 오세요.”최효원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성혜인을 쳐다보는 순간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성혜인은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 차를 타려 했다.하지만 성혜인의 차를 본 윤선미는 또 소리쳤다.“이 차, 1억도 안 하겠는데요?”이 차는 성혜인이 스스로 구입한 것이었다. 비싸지 않지만 핸들링이 좋고 성혜인의 첫 자가
그렇게 30분을 달려 네이처 빌리지에 도착했다.성혜인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뒤따라 도착한 윤단미와 윤선미가 차에서 내리자 건물 안쪽을 가리켰다.“이쪽으로 오세요.”성혜인의 태도가 만족스러운 윤단미는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300평 규모의 정원이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네이처 빌리지의 구조는 초반에 큰 인기를 끌었다.별장 독채로 되어 있지만 지금은 정원이 황무지처럼 비어 있어 이곳도 성혜인의 손길이 필요했다.성혜인은 두 사람을 데리고 문제의 기둥 앞으로 갔다. 시공 중인 내부는 시끄럽고 먼지가 자욱했다.윤단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 앞을 휘저었다. 윤선미 역시 먼지를 마시지는 않을까 입을 막았다.성혜인은 앞으로 가 기둥을 없앤 곳을 가리켰다.“여기예요.”해가 떠 있는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햇빛이 건물 안으로 쏟아졌다. 햇빛을 가리는 기둥을 없애니 채광이 좋았다.하지만 네이처 빌리지는 구조 자체가 좋아 일조량이 충분했다.윤단미는 사방이 온통 먼지투성이인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여기에 20평 정도 되는 반려동물 놀이터를 하나 만들죠. 햇빛도 잘 들겠네요.”성혜인은 흠칫했다.“단미 씨, 대표님은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는걸요.”“알아요. 전 고양이 키워요. 랙돌이랑 골든 친칠라인데, 승제도 본 적 있고 좋아해요. 여기 채광도 좋은데 쓸 만한 용도가 없다면 여기에 고양이방을 만들면 되겠어요.”생각하지 못한 윤단미의 아이디어에 성혜인은 반승제의 의견을 물으려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윤단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지금 승제한테 전화하려는 거예요? 승제가 저한테 아이디어 내라고 했잖아요.”하지만 성혜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여기 단미 씨 명의로 되어있나요?”윤단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무슨 뜻이죠?”“죄송하지만 전 디자이너고 부동산 소유자가 제 고객이어서요. 소유자가 나중에 트집이라도 잡으시면 단미 씨가 책임지셔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지금
반승제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윤단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윤단미는 귀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짤막했다.“회의 들어갈게.”“알았어, 승제야.”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은 윤단미는 성혜인에게 시선마저 따뜻해졌다.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달랐다. 반승제가 결혼한 여자에게 마음을 품을 리가 없었다.과격한 말이지만, 이미 남편과도 꽤 잠자리를 했을 텐데 깔끔한 반승제라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윤단미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제 말대로 진행하세요. 그리고 벽면과 바닥은 칠보 장식품으로 깔아 주세요. 제가 칠보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해외에서 유행이기도 하고요.”성혜인은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칠보는 최근 수십억에 호가할 만큼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재료였다. 칠보 기법에서 볼 수 있는 푸른색은 사실 디자이너들에게 ‘매혹적인 푸른빛’이라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색상이기는 하다.고급 저택에서 꽤 인기 있는 석재이기 때문에 성혜인도 칠보 스타일의 석재를 후보로 꼽았었지만, 집 전체를 칠보 스타일로 깔아버린다면 오히려 칠보 스타일이 주는 우아한 느낌을 해칠 수 있다.“단미 씨,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바닥에 사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윤단미는 거절당한 게 불만이었는지 얼굴을 구겼다.“제가 방금 한 말 잊었어요? 이 집은 제가 앞으로 살 곳이니까 제가 말한 대로 디자인해야죠. 승제도 허락했는데 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왜 참견이에요?”성혜인은 깊게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이 좋아하시는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칠보 스타일로 전부 깔아버리면 비싼 느낌만 부각될 뿐 멋이 없어요.”윤단미의 요구는 반려동물 놀이터에서 그칠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바닥 전체를 칠보 스타일로 깔겠다니. 성혜인이 생각한 디자인과 너무나도 다른 길이다. 설계도를 완전히 엎게 생겼다.게다가 이렇게 한다면 디자인이 촌스러워질 게 분명했다. 반승제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