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단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곁에 앉아 있던 윤선미가 윤단민의 표정을 보고 참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네이처 빌리지의 실내 디자이너가 내가 말했던 그 사람이야. 형부랑 과하게 가깝게 지내는 게 아무래도 꼬시려는 것 같아. 조심해.”윤단미는 반승제에 대한 믿음이 아주 두터웠다. 소매 단추 사건 이후로는 자신의 위치에도 자신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실내 디자이너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이때 곁에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물었다.“네 환영회에 반 대표님은 왜 안 와?”윤단미는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기더니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방금 통화했는데 곧 도착한대.”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반승제와 온시환이 함께 걸어들어왔다. 온시환은 자신이 챙겨온 선물 상자를 윤단미에게 건넸다.“오랜만이야, 이건 귀국 축하 선물.”윤단미는 뭘 이런 것까지 준비했냐는 얼굴로 선물 상자를 받아 들더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반승제를 바라봤다.반승제는 깔끔한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금방 일을 끝내고 왔는지 정장 외투를 팔에 걸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났다. 그가 작은 액세서리 상자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윤단미는 미소를 지었다.“승제야, 너까지 선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는데...”반승제가 준비한 선물을 힐끗 본 온시환은 눈썹을 튕겼다. 작은 선물 상자 속에 담긴 건 재벌 집 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브랜드의 목걸이였는데, 가격이 한 400억 정도 되었다.돈은 무뚝뚝한 반승제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얼마를 쓰든 놀라울 건 없었다. 게다가 이 목걸이는 심인우를 시켜서 가장 비싼 것으로 산 게 분명했다. 온시환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만나자마자 400억짜리 선물이라니, 두 사람 여전하구나.”자신이 가장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윤
반승제는 고개를 들어 신이한을 바라봤다. 윤단미를 대하는 신이한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직감이 뛰어난 반승제라고 해도 도대체 무엇이 이상한지 알아내지 못했다. 어찌 됐든 덕분에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게 생겼으니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룸 안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화젯거리를 찾아냈다. 그중 대부분이 업계에서 떠도는 소문이었다. 윤단미는 한결같이 단아한 미소로 반승제의 곁에 앉아있었다. 표정은 변치 않았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이 반승제의 부인에게 본때를 보여줄 딱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윤단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백연서에게 보낼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한때 서로 눈꼴 시려하는 존재였다. 윤씨 집안이 성에 차지 않았던 백연서에게 반승제와 만나는 윤단미는 꼴불견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반승제의 현 부인보다는 그녀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아주머니, 승제 부인 전화번호 알아요? 제가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백연서는 한때 반승제는 윤단미가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여자와 만났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마음에 들지도 않는 윤단미와 타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승제에게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다른 여자를 소개해 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래서 예전과 다르게 무미건조하게 전화번호만 보내줬다.윤단미는 번호를 보자마자 피식 웃더니, 남들이 눈치 못 챘다는 것을 확인하고 몰래 문자를 하나 더 보냈다.「승제가 취했어요. 위치를 보냈으니 데리러 와요.」같은 시각, 성혜인은 네이처 빌리지의 디자인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디자이너 담당의 설계도는 BK사 덕에 편의를 본 것과 별개로 중요한 것이었기에 신경을 써야 했다.성혜인이 피곤에 찌들어 미간을 꾹꾹 누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짧게 올렸다. 예상 밖의 사람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다.문자를 보낸 사람은 SY그룹의 임원인 김양훈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성휘와 함께 한 창업 멤
몇 시간 전, 퇴근한 김양훈은 성휘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 얼마 전 통화하며 성휘가 건강 문제로 병원 살이도 했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치료를 그만둔 것 같아 걱정되던 참이었다.비록 삼 년 전 성혜인 때문에 성씨 집안과 거리가 생기기는 했지만, 김양훈 여전히 SY그룹에 남아 있었다. 복지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아 퇴직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김양훈은 결재받아야 하는 서류와 함께 성휘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이번에 간 김에 허진이 성휘를 대신해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불편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아직 40대밖에 안 된 비서 나부랭이인 허진보다 자신이 성휘와 가장 오래된 사이였으니 말이다.이 시간의 임원층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성휘의 사무실 문이 열려 있는 곳을 보고 김양훈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이때 소윤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성휘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리를 내어준 덕분에 소윤도 가끔 회사로 출근하고는 한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지만 그래도 임원 회의에서 의견은 내놓을 수 있는 정도였다.사무실 안의 소윤은 평소 현모양처의 자태는 어디로 갔는지 낯부끄러운 소리만 낼 뿐이었다.“아아~ 진아, 너무 좋아. 더 빨리.”“죽어가는 늙은이에 비해 역시 젊은 게 다르지? 회사가 우리한테 넘어오고 나면 꼭 별장을 사줄게.”“한이가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곧 우리 손에 넘어오게 될 거야. 네가 해라고 했던 일도 전부하고 있어. 진아...”허진은 피식 웃으며 작게 욕설을 내뱉더니 움직임을 계속했다.문밖에 서 있던 김양훈은 순간 자신이 환청을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성휘의 사무실에서 그의 아내와 비서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김양훈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 치다가 곁에 세워져 있던 걸레를 넘어뜨리며 기척을 냈다. 쾌감에 휩싸인 소윤은 당연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나마 이성을 잡고 있던 허진이 예리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누구야?”허진은 후다닥 바지를 입고 밖
의사의 말을 들은 순간, 성혜인의 머릿속은 윙하고 울렸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 가는 순간이었다. 불과 40분 전에 문자를 받고 달려와 봤더니 시체만 남아 있는 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술집은 바로 폐쇄당하고 경찰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김양훈이 안으로 들어간 이후의 CCTV 영상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다. 경찰은 결국 김양훈 본인의 과음을 이유로 삼고 피살의 가능성을 배제했다.이런 술집은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지문 채취가 아예 불가능했다. 일일이 채취하는 것은 수천 명을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문 위에 지문이 덮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시간이 말도 안 되게 오래 걸릴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술집의 보안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다.병원 복도로 나온 성혜인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얼마 후 김양훈의 가족들이 도착했고 병원 복도는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최근 따라 병원에 자주 다녔던 성혜인은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누르며 김양훈이 생전 자신에게 보낸 문자를 바라봤다. 조금 전 경찰 측에 넘겨 조사를 부탁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성혜인은 답답한 마음에 다시 술집으로 돌아갔다. 증거가 없기는 했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으니, 주변에는 폴리스 라인이 있었다. 유흥을 즐기러 온 사람들은 빼도 박도 못하고 갇히게 되었다.그렇다고 해서 경찰들이 조사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의사도 알코올중독이라고 한 마당에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김양훈에게 해를 가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연락한 적 있는 사람인 성혜인은 사망 시간에 술집 밖에 있었으니 역시 혐의가 없었다.술집에서 헤매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겼다. 성혜인은 술집 사장에게 CCTV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경찰 조사를 받느라 긴장한 사장에게서 만족스러운 대답은 듣지 못했다. 현장에는 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먼저 밖으로
반승제는 자료를 확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길가에 서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혜인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봐서는 문제가 생긴 듯했다.성혜인의 뒤로 보이는 술집 앞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는 분주하게 오가며 사진 촬영을 막는 경찰도 있었다. 술집 주변에 둘린 노란색 폴리스 라인은 어두운 밤거리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반승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심인우에게 물었다.“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줘.”심인우는 반승제가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는 듯 잠깐 멈칫하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나서 반승제에게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대표님, 이곳에서 알코올중독으로 사람이 죽었답니다.”‘그게 페니랑 무슨 상관이길래 이 시간에 밖에서 서성거리는 거지?’온시환은 반승제의 곁에 앉아 그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온시환의 입에서 ‘페니’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반승제의 시선은 줄곧 창밖에 고정되어 있었다.병원 측과 통화하고 있던 성혜인은 반승제의 차가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차 안에서 반승제는 조금 전 다른 술집 앞에서 만난 유도현과 연관된 일은 아닌가 생각하다가 돌연 고개를 돌리며 덤덤하게 말했다.“심 비서, 출발해. 회의가 시작하겠어.”1초 전까지만 해도 온시환은 반승제가 남자로서의 모든 처음을 받친 성혜인에게 남다른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신체적 접촉도 일어난 적 없는 윤단미에 비해 특별하게 여기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성혜인이 난감한 처지에 빠진 게 분명한 지금, 조금 전과 다름없이 차갑게 돌아서는 걸 보면 잠깐 착각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온시환은 시선을 거두며 피식 웃었다.“승제야, 나 궁금한 게 있어. 너 페니 씨랑 자고 나서 다시 그때를 떠올린 적 있어?”반승제는 자료를 보던 동작 그대로 굳어버렸다.차는 어느덧 온시환의 별장 밑에 도착했다. 반승제는 창밖을 힐끗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도착했으니까 꺼져.”온시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차
성혜인은 하룻밤 새에 병원에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알코올중독밖에 없었다. 경찰 측도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CCTV 복구가 안 되는 관계로 유가족들에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고 했다.경찰도 반쯤 포기한 일이기는 하지만 성혜인은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일이 김양훈이 그녀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일과 연관 있는 것 같았다.성혜인은 부랴부랴 김양훈의 아내를 만나러 갔다. 김양훈은 꼰대스러운 성격과 별개로 아내와 사이가 아주 좋은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성혜인도 한때 그의 아내와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작은 다툼이 있었던 뒤로부터는 사이가 서먹해져서 별로 만난 적 없다.병원으로 돌아와 보니 김양훈의 아내는 아직도 복도에 앉아 울고 있었다.“아주머니, 아저씨 요즘 어디 어디 갔었는지 알아요?”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긴 듯했다. 짧은 몇 시간 사이에 훌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여러 문제가 나온 뒤로는 줄곧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술도 끊었어. 그런 사람이 알코올중독이라니 말도 안 돼...”그녀는 입을 막고 끙끙 소리를 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평소에 딱히 다니는 곳도 없어. 매일 회사 아니면 집이었으니까. 오늘 밤 집에 돌아와서는 이상하게 불안해 보인다 했더니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외출하더라고.”그게 마지막 외출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친척의 어깨에 기댄 그녀는 울음이 완전히 터져버렸다.성혜인은 덕분에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다. 김양훈은 오늘 회사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한 바탕 고민하고 난 뒤 그녀에게 연락한 게 분명했다.‘회사에서 도대체 뭘 발견했을까?’SY그룹에서 누군가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할 사람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소윤과 성한이 떠올랐다. 성휘가 자리를 비운 회사에서 둘이 과연 무슨 짓을 저릴렀을지, 성혜인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성한은 반반한 생김새와 다르게 검은 속내를 갖고 있었다. 평소 경영에 능한
성혜인은 곧바로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 들고 성한의 얼굴에 뿌렸다.“이거 뭐야?!”성한은 눈을 꼭 감은 채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주체가 되지 않고 줄줄 흘러내렸다.성한이 더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린 성혜인은 회사에 올 때마다 호신용품을 하나씩 들고 왔다. 드디어 성한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녀는 의자를 쳐들고 사정없이 내리쳤다.퍽!성한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자빠졌다. 하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화가 풀리지 않았던 성혜인은 이번에 남자의 가장 예민한 부위를 노리고 발로 걷어찼다.“악!!”성한의 비명이 귀를 찢었다. 안색은 통증으로 인해 완전히 창백해졌고, 식은땀은 온몸을 흠뻑 적셨다. 견디지 못할 통증에 차라리 정신이라도 잃고 싶은 지경이었다.이때 문밖에 있던 소윤이 이상을 눈치채고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떠는 성한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뜨고 털썩 주저앉았다.“성혜인! 너 우리 한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성휘가 회사 안에서 대놓고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진작에 밖에 누군가가 지키고 있겠거니 했다. 그 사람이 보디가드가 아닌 소윤일 줄은 몰랐지만...소윤은 벌떡 일어나 성혜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손을 올려 성혜인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성혜인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소윤은 자신의 볼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성한이 무슨 짓을 할지 뻔히 알면서 밖에서 지키고 서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성혜인만큼 젊고 힘 있지 못한 데다가 성한이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어서 마음이 급했던 소윤은 반격은커녕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성혜인 너 딱 기다려. 만약 한이한테 문제가 생긴다면 넌 꼼짝없이 감옥에 가게 될 테니까.”성혜인은 태연하게 휴대폰을 주워 들었다. 그러자 녹음 중이라는 화면이 떴다. 그녀
소윤은 단 한 번도 자기 아들이 생식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다. 장가를 못 가는 건 둘째 치고 아이를 못 가진다는 생각에 그녀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혜원이는 몸이 아프고, 한이는 생식 능력을 잃고... 이게 다 성혜인 때문이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든 복수할 거라고!’“한아...”소윤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생식 능력을 잃었다는 것은 남자에게 가장 큰 충격이니 말이다.성한은 안색이 창백한 채로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진통제를 맞고 나서도 조금 전의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성한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머릿속에는 성혜인을 상대할 여러 가지 방법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소윤마저 겁먹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이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와도 같았다.“어머니, 저 그년을 꼭 죽이고 말 거예요. 가장 더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거라고요!”소윤은 눈가가 빨개진 채로 성한을 꼭 끌어안았다.“그래, 한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엄마는 언제나 너의 옆에 있어. 흑흑흑... 이게 다 내가 복 없어서 그래.”병실 밖으로 나온 소윤은 허진에게 전화를 걸어 몰래 성한의 상황 전했다. 허진은 놀란 듯했지만 일단 진정하고 소윤을 위로했다.“윤아, 성혜인은 한이한테 맡겨서 직접 처리하도록 해.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성휘가 깨어나는 걸 막는 거야.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돼. 그러니 얼른 방법을 생각해 봐.”소윤은 허진의 말을 듣자마자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지금은 SY그룹을 삼켜야 할 때지, 속상하다는 핑계로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소윤은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가 성한의 손을 꼭 잡았다.“한아, 우리가 SY그룹을 얻기만 하면 성혜인을 너한테 넘길게.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뒷감당해 줄 테니까 마음대로 해도 좋아. 엄마가 미안해, 이번 일은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소윤은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