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연은 잠옷을 입은 채 원진의 방에 들어가 침대를 정리해 주고 1층 마트에 내려가 그를 위한 세면도구를 사 왔다.“부족한 건 내일 가서 더 사자. 이제 곧 배달 음식이 올 거니까 먼저 저녁부터 먹어.”당시연은 음식을 많이 주문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원진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많이 먹어. 먹는 거로 절대 아끼지 마. 배불리 먹지 않으면 다 남겨서 낭비하는 거야.”원진은 고모 집에 있을 때 한 번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 고기라도 먹으려고 하면 항상 빈정거림과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런 생활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방에서 지내는 건 꿈만 같았다. 그래서 자꾸만 이 달콤한 꿈에서 깰까 봐 걱정되었다.당시연은 원진이 얌전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 떡갈비 좀 더 먹어. 내가 현장에서 먹어봤는데,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거라 깨끗하고 좋아. 너는 지금 단백질을 더 보충해야 해.”원진은 고개를 들어 당시연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시연 누나, 고마워요.”당시연은 마음이 따뜻해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차를 몰고 오는 내내 그녀는 자신이 너무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아직 자신도 학생인데 이런 큰 책임을 짊어지는 게 맞는지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원진을 마주한 이 순간 그녀는 그냥 이렇게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느꼈다.“고맙긴. 내가 너를 데리고 나온 이상, 네 모든 걸 책임질 거야.”원진이 저녁을 다 먹자 당시연이 일어나서 치우려 했지만 원진이 먼저 일어섰다.“제가 치울게요. 저도 요리할 수 있어요. 다만 집에서 하던 것들이라 단순한 가정식인데, 누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너는 요리할 필요 없어. 월요일에 학교 가면 공부량이 많아질 거야. 네가 마을에서는 우수한 학생일지 몰라도, 여기서는 그만큼 치열할 거야. 각오하고 있어야 해. 원진, 네가 이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
당시연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집안이 조용해진 후에야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그녀는 김성진을 정말 좋아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와 사귀지 않았을 것이다.잠시 울고 난 뒤 당시연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카드를 주워 현관에 있는 열쇠 상자에 넣었다.손님방 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었고 그 문이 다시 조용히 닫혔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원진은 문에 기대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래는 나가서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불편함이 자신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차마 나가지 못했다. 혹시 그녀가 마음을 바꿔 자신을 다시 돌려보낼까 봐 두려웠다.그는 몹시 불안했다. 긴장한 나머지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당시연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울음소리는 매우 억눌려 있고 작았지만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울음소리는 멈췄고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꽃잎들을 정리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그날 밤, 원진은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여전히 그 습하고 어두운 방에 있는 건 아닌지, 여전히 작은 고깃덩어리 하나를 집어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는 행복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여기 있는 이불은 매우 따뜻했다. 반면 그가 평소에 덮던 이불은 얇은 한 겹뿐이었고 머리까지 덮으면 발이 드러났다. 겨울에도 그 얇은 이불로 버텼기 때문에 그는 늘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야 했다.결국 원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뭔가 아침을 차리려고 했으나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었다.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숙제 책을 꺼내 들고 조용히 거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당시연은 아침 9시에 일어났고 배달 음식을 시켰다.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한 뒤 당시연은 원진을 데리고 쇼핑몰로 향했다.하지만 원진은 옷의 가격표를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반팔 셔츠
두 사람은 오전 내내 밖에서 쇼핑을 했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연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원진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당시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방 한쪽에 있는 0.6평 정도 되는 빈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에 책상을 하나 놓아줄까? 아니면 네 방에 놓을까? 숙제할 때 편하겠지.”“방에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누나를 방해할까 봐 걱정돼요.”“그래, 그럼 방에 놓자. 그렇게 하면 너도 네 공간이 생길 테니까.”원진의 방은 6평 정도로 꽤 넓어서 책상을 놓기에는 충분했다.당시연은 그가 입을 새로 산 옷들을 옷장에 정리하고 새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두었다.“진아, 너 예전에 입던 안 맞는 옷들이랑 신발들은 버려도 되지? 이제 새 옷 입자.”원진은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제가 버릴게요.”“괜찮아. 네가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1층까지 내려가야 하거든.”당시연의 다정한 말투에 원진은 더 이상 큰 소리로 말하기가 어려웠다.그러나 저녁이 되자 당시연의 아버지 당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는 더 엄격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김성진이 또 무언가 불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당시연은 그 순간 더 피로감을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시연아, 성진이가 그러던데 네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하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돈이 드는지 알아? 그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라면 반쯤은 남자나 다름없잖아. 너 그 아이와 함께 지낸다고?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너 점점 말을 안 듣는구나!”당시연은 원래도 피곤했고 김성진과의 이별로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다. 그래서 한층 더 답답해졌다.“아빠, 성진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네가 잘못한 거니까 사과하고 선물이라도 사가서 화해해. 결혼 얘기까지 나왔던 사이인데, 어떻게 외부 사람 하나 때문에 헤어질 수가 있냐. 그리고 그 집에 데려온 그 아이,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빨리 돌려보내. 너는 언제나 이
“우리 딸 하나뿐인데, 왜 자꾸 아이한테 뭐라 그래요? 시연이처럼 착한 애가 어디 있다고요? 당신이 지방에서 근무할 때도 딸내미는 내가 다 챙겼어요. 난 시연이가 아주 잘 컸다고 생각하는데요.”“두 모녀가 아주 작정하고 나를 화나게 하려는 거지!”*당시연은 원래 마음이 답답했는데 원진에게 여러 번 이런 모습을 들켜서 더욱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진아, 우리 아빠는 원래 저런 성격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네가 이렇게 착하고 잘하는데 결국에는 다들 널 좋아하게 될 거야.”원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당시연은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조금 있으면 저녁 먹어야 하니까 방에 가서 공부해.”원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월요일이 되어 당시연은 원진을 데리고 학교로 갔다. 이미 개학한 지 반달이 지났고 임시로 전학을 오기에는 일정이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수희가 당시연의 고등학교 담임이었고 마침 학교에서도 전학생을 받는 정책이 나와서 어렵게 부탁을 드리게 되었다.당시연은 선생님께 선물을 직접 드리기보다는 집으로 택배를 보내기로 했다.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선물을 드리면 괜히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수희 선생님은 올해 38세로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엄격해 보이는 분이었지만 당시연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시연아, 대학 가더니 더 예뻐졌구나!”이수희는 당시연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당시연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선생님, 진이 정말 잘 부탁드려요. 아이가 아주 똑똑해요. 성적도 정말 잘 나올 거예요.”당시연은 원진의 사정을 이수희에게 미리 이야기했고 이수희도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동했다.“우리 사이에 무슨 부탁까지야, 내가 맡기로 했으니 당연히 잘 돌봐줘야지.”이수희 선생님은 원진을 쳐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원진이 잘생기긴 했지만 많이 말라 있어서 그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더욱 두드러졌다.“시연아, 원진은 정말 배우 쪽으로 가도 될
이수희 선생님은 원진을 데리고 교정을 걸었다.이 순간 원진은 비로소 이곳이 자신이 다니던 시골 학교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학교는 멋지게 지어진 건물들과 나무들이 늘어선 깔끔한 도로, 체육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한 운동장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이수희는 원진을 데리고 계단식 교실로 가서 새 교과서를 건네주었다.그러다 원진의 얼굴을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시연이가 너 이제 겨우 열여섯이라고 했지? 오늘 우리 반으로 전학 오니까 내가 하나만 주의 줄게. 절대 연애하지 마라.”원진은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이수희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왜? 네 얼굴이 얼마나 인기가 많을지 모르는 거야?”원진은 얼굴이 굳으며 서툰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농담하지 마세요.”이수희 선생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를 반으로 데리고 갔다.원진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순간 정적이 흘렀고 이내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고등학교에서 전학생이 온다는 건 늘 주목받는 일임을 원진도 알고 있었다.원진은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쓴 뒤 창가 쪽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학생들은 다시 교과서를 펴고 책 읽는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새 교과서의 종이 냄새를 맡으며 원진은 잠시 안도했다. 이제 그는 이곳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시연 누나가 이제는 나를 다시 보내지 않겠지?’원진은 손에 쥔 펜을 꼭 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열심히 해서 1등을 해야겠다고.그 시각, 당시연은 제원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나서 곧바로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소유진을 마주쳤다.소유진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새로 나온 향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성진 선배가 지난번에 해외에서 사다 준 향수야. 어때? 향 좋지? 생각보다 독특하더라고. 선배가 이래 봬도 은근히 안목 있지 뭐야?”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성진 선배 진짜 헤어진 거야? 소유진, 너 성진 선배만 잡으면 졸업 후 취업 걱정도 없겠는데? 선배네 집에서 운영하는 회사
김성진은 화가 나서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당시연!”멀리서 그들이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더 이상 장난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당시연은 몇 걸음 더 걷다가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를 들었다.김성진이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나 원진에 대해 알아봤어. 그 애 아버지는 강도죄로 감방에 갔다가 나와서 자기 여동생을 성폭행했대. 마을에서도 악명이 높았고 10년 전에 사형당했지. 그 엄마도 똑같은 사람이었어. 남편이 죽고 나서 여기저기 다른 남자랑 얽혀 지내다가 결국 현장에서 잡혀 맞아 죽었대. 너, 그런 유전자를 가진 애가 진짜 좋은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생각해? 당시연, 이제 고집 좀 그만 피워. 네가 심성 좋은 건 알겠는데, 괜히 문제를 키우면 그땐 정말 감당 못 해.”당시연은 걸음을 멈췄다. 처음 원진을 만났을 때 원진의 집안 사정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김성진이 말한 것처럼 그의 원가족은 엉망이었다.그 폐쇄된 산골 마을에서 원진은 늘 혼자였고 아이들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외롭게 자랐고 고모 집에서는 고된 일을 도맡아 하며 굶주린 채 살았다.당시연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죄 때문에 아이까지 그 운명을 떠안게 하는 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칼날을 칼집에서 꺼내기 전에는 누구도 그 칼이 사람을 상처 입힐지, 혹은 지켜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김성진은 그녀가 마음이 약해진 것을 눈치채고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살짝 입을 맞췄다.“우리가 사귄 지 3년이 됐잖아. 이렇게 심하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당시연, 너도 나에 대해 잘 알잖아. 내가 유진이랑 술에 취해서 잠깐 껴안은 건 실수였어. 정신도 없었고 지금까지 너에게 잘못한 적 있었어? 몇 년 동안 수많은 유혹도 있었지만 한 번도 네 마음을 저버린 적 없었잖아.”당시연은 얼굴을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유진이한테 사과해. 나랑 같은 실험실에서 일하는
당시연은 너무 지쳐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했으니 더는 버틸 힘도 없었다.“아빠, 원진 얘기는 이제 그만해 줄 수 없어요? 저 정말 너무 힘들어요.”“그 얘기 듣기 싫으면 원진을 다시 산골로 보내. 난 내 딸 집에 그런 아이를 절대 들일 수 없어.”원진이 집에 들어온 뒤로 당시연은 부모님, 남자 친구와 수없이 다퉜다. 이제는 정말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당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당지석은 이를 딸의 반항으로 받아들였다.“만약 네가 그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지금 당장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 집에 낯선 사람이 침입했다고 말이야.”당시연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아빠, 제발 그만 좀 해요. 김성진이랑 화해하길 바라죠? 좋아요, 김성진을 만나고 졸업 후에 조용히 결혼할게요. 지금은 더 이상 아빠랑 싸우고 싶지 않아요.”당지석은 그녀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너도 곧 알게 될 거다, 내가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걸.”많은 부모가 ‘널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녀의 인생에 간섭한다.당시연의 눈은 붉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가방을 꽉 쥔 채 말했다.“원진 일만 빼고 다른 건 다 아빠 말대로 할게요. 우리 서로 한 발씩 양보해요. 이따가 김성진한테 바로 전화할게요.”“좋아. 하지만 원진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그 아이를 돌려보내야 해.”당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해서 눈을 깜빡였다.당지석은 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가 차 문을 열며 한숨을 내쉬었다.“시연아, 네가 날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너도 결혼하면 알게 될 거다. 세상은 실력만으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김성진에게 부족한 점이 많을지 몰라도 그 아이는 널 진심으로 아끼고 있어. 결혼하면 평생 고생할 일 없을 거야. 네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아. 지금은 날 원망해도 사회에 나가 보면 아빠한테 감사하게 될 거다.”당지석은 그렇게 말하고 차에 올라탔다.당시연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비몽사몽 하던 중에 당시연은 거실에 있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지만,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못했다. 씻고 준비를 마친 다음 밖으로 나와서야 식탁에 요리가 세 가지 놓여 있고 밥솥에는 밥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음식을 살짝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다.당시연은 원진에게 연락해서 음식을 만드는 데 시간을 쓰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고등학교가 워낙 바빠서 5시 남짓하면 기상해야 했고 매일 늦게 잠드는데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이 제일 중요한 일을 까먹었다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바로 원진에게 핸드폰을 사주는 일이었다.당시연은 빠르게 식사를 하고 핸드폰 가게로 가서 60만 원가량의 휴대폰을 하나 샀다.김성진과의 약속 시각이 거의 임박한 것을 보고 그녀는 메시지를 보냈다.「나 30분 늦게 도착할 것 같아.」당시연은 원진의 교실로 갔다. 그때는 수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는데 원진은 턱을 괴고는 칠판을 보면서 수시로 고개를 숙이고 필기를 했다.당시연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수희의 사무실로 향했다.“선생님, 이건 제가 원진에게 사준 핸드폰과 전화카드입니다. 안에는 제 번호와 선생님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요. 이따가 원진에게 전해주세요.”이수희는 당시연이 또 올 줄 몰랐지만, 핸드폰을 건네받으며 대답했다.“알겠어.”“원진이 잘 따라가고 있어요? 저의 시간이랑 진이의 시간이 마침 엇갈려서 하루가 가도 얼굴 한번을 못 볼 수 있더라고요. 요즘 저의 번역업무가 바빠서요.”“어제 수업에서 시험을 봤었는데 성적이 중상급이야. 그런 곳에서 나온 아이들이 이런 성적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나는 꼴등을 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도 했는데 정말 총명한 아이야. 열심히 하기도 하고.”당시연은 마음이 놓여서 웃음을 지었다.“알겠어요. 핸드폰 꼭 좀 부탁할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전화하라고 해주세요.”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자 이수희는 원진을 사무실로 불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