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은 흔쾌히 대답했다.“알겠어. 가서 실험하고 있어.”소유진은 신이 나서 실험실로 돌아가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선배, 데이트에 정신이 팔려서 제 밥을 까먹지 마세요.”김성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안 까먹어.”당시연은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시간을 확인했다.“학교 안에서 먹자. 그렇게 하면 포장해서 가져다주기 쉽잖아.”“화났어?”“아니. 이따가 나도 볼 일이 있어서.”“그래.”두 사람은 학교 식당으로 갔다. 당시연은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김성진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면서 답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답장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당시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누구랑 문자 보내는 거야?”“유진이. 유리병을 터뜨렸대. 이따가 또 교수님한테 혼나게 됐어. 유리병을 터뜨리는 경우는 처음 봐. 좀 바보 같아.”당시연은 입을 삐죽거리면서 밥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원진한테서 온 메시지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고맙긴. 수업시간에 핸드폰 보면 안 돼.」답장은 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수업시간인듯했다.당시연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누구한테 고민을 털어놨으면 좋을지 몰랐다. 대학교 4학년인 이 시점에는 다들 바쁘게 보내기 때문이다.김성진의 앞에 앉아서 그가 핸드폰을 보면서 웃는 모습을 보니 당시연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만약 이 일을 가지고 또 난리를 치면 아버지 쪽에서 또 원진을 돌려보낸다고 협박할 것이다. 피로감이 확 몰려와서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갈게. 너도 돌아가서 실험을 계속해.”“그래. 유진이 식사를 포장하러 갈게. 보름 후면 내 생일인데 친구들을 초대할 거야. 너도 일찍 와.”당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두 사람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성진은 아직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보름이 지났다. 지난 보름 동안 당시연은 일이 아주 바빴다. 그녀는 원진에게
김성진은 이 말을 듣고 민망해졌다. 방금 소유진이 스카프를 선물했을 때, 바로 그 스카프를 착용했기 때문에 당시연이 똑같은 것을 준다고 하면 착용할 수가 없고 곁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현장의 분위기는 아주 미묘해졌는데 소유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여전히 천진한 말투로 말했다.“선배님, 우리는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향이 참 맞는 것 같네요.”당시연은 살짝 웃었다.“그래? 너는 또 뭐 좋아해?”소유진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가 곧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선배님, 화나셨어요?”김성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당시연을 끌어당겼다.“진짜 화났어? 유진이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두 사람이 같은 선물을 살 줄 누가 알았겠어. 유진이가 선물한 거 빼고 네가 준 거로 착용할게. 그러면 되지?”당시연은 따귀를 때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괜찮아. 그러면 내가 속 좁아 보이잖아. 노래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더 부르지 않을 거야?”그녀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여자친구가 뻔히 있는데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이랑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김성진이 말을 하기도 전에 소유진은 눈치 빠르게 마이크를 내려놓았다.“선배님, 저는 그저 분위기를 띄우려는 것뿐이에요. 이제 선배님이 부르실래요?”소유진의 말은 아주 적절해 보였고 현장의 분위기도 한껏 누그러들었다. 당시연의 성격대로라면 이런 경우에는 그저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살짝 시선을 들어 소유진을 훑어보았다.“괜찮아. 너 노래 잘 부르잖아. 내가 왔다고 네가 노래를 안 부르려고 하는 건 너도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랑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 맞지 않은 일이라는 걸.”올 것이 왔다. 이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느낀 첫 기분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살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당시연의 모습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김성진은 당시연이 자신의 체면을
“시연아.”김성진은 당시연의 팔을 잡고 생각 없이 말했다. “그만해. 네가 다른 사람이랑 그럴 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우리 둘 다 똑같아.”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 눈치만 봤다. 하지만 소유진은 마치 약점이라도 잡은 듯 눈이 번쩍 뜨였다.“네? 선배님한테 남자가 생겼어요? 그래서 성진 선배가 기분이 안 좋았던 거군요. 선배님, 그건 선배님이 잘못하셨어요. 저랑 성진 선배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호감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당시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뒤돌아 당당하게 김성진을 바라봤다.“나한테 다른 사람이 있다고? 누구?”“누군지 내 입으로 말해야 해?”보아하니 또 원진의 얘기이다. 그녀는 이게 우스웠다.“네 마음속이 더럽다고 해서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지마. 김성진, 우리 헤어지려면 깨끗하게 헤어지자. 네가 또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서 이르고 그런다면 정말 지저분하게 되는 거고, 멍청해 보일 거야. 나는 네가 소유진이랑 사귀는 걸 막지 않아. 그러니 너도 내 생활을 간섭하지 마.”정말 자신을 화낼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건가? 당시연은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김성진은 더 다급해져서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났다.“당시연!”당시연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소유진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김성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사과를 건넸다.“미안해. 오늘 저녁에 시연이가 기분이 안 좋았나 봐. 일부러 너한테 그러는 건 아니야.”소유진은 눈물을 닦았다.“저는 괜찮아요. 선배, 가서 시연 선배님을 달래주세요.”만약 그녀가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김성진은 당시연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 까밝혀 진 상황에서 쪽팔렸다. 방금 당시연의 얘기도 지나쳤는데 지금 따라가면 자신이 매달리는 꼴이 되어버린다.그는 학교에서 무척 촉망받는 사람이니 여자친구가 고플 일은 없다. 당시연은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도수가 높은 술을 연속 세잔 들이켰다.“안 가. 헤어지면 헤어지는
“원진?”“네.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돼서요.”당시연은 미간을 누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원진에게서 온 전화가 확실했다.“미안해. 나 지금 집 아래...”말을 하면 할수록 당시연은 발음이 어눌해졌다. 원진은 다급하게 내려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서 아파트 단지의 대문 앞에 있는 편의점까지 와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당시연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잠이 들었고 테이블 위에는 술이 몇 병 정도 있었고 과자도 한 봉지 열려있었다.그는 마음이 따뜻해져서 웃음이 났지만 그래도 허리를 숙여서 당시연을 부축했다.“누나?”당시연은 정신이 든 것 같기도 깨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상태로 원진의 품에 기대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당시연은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인 원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착각인지 아닌지 원진의 키가 더 큰 것 같았다. 금방 집에 왔을 때 178센티 정도였는데 지금은 180센티가 되는 것 같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서 당시연은 헛디딜 뻔했지만, 원진이 잡고 있었다. 165센티 정도 되는 당시연의 키에 원진의 손을 잡아야만 넘어지지 않을 수가 있었다. 당시연은 몸에서 술 냄새가 났고 얼굴에는 연한 화장이 남아있었다. 원진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잠깐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어떻게 화장을 지우는지 검색해보았다.“누나, 화장 지워줄게요.”당시연은 소파에 기대서 살짝 움직이더니 더 반응하지 않았다. 원진은 화장품과 기초 제품에 대해서 몰랐지만, 딥클렌징이라는 글자는 알아보았다.인터넷에서 찾아본 순서대로 그는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화장을 지웠다. 당시연의 얼굴이 깨끗하게 씻겨진 것을 보고 나서야 원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원진은 당시연을 부축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당시연이 침대에 누운 다음 원진은 그녀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하지만 원진은 당시연의 옷에는 손을 대지 못했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방안의 불을 끄고 나갔다.거실로 돌아와서 원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더러워진 화장솜들을 보고 그것들을 모두
당시연은 칭찬을 건네고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원진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더니 꼭 다물고 있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어색하게 자신의 소매를 정리하고 있었다.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당시연은 자리에 앉자마자 옆 테이블에 있는 김성진을 보았다.김성진과 같은 전공의 학생들이 나와서 모임을 하는 것 같았는데 조촐한 모임인 듯 모두 네 명이었다.당시연을 보았을 때, 김성진은 멈칫했다가 원진을 보고서 화가 치밀어 얼굴이 빨개졌다.“이게 누구야? 당시연, 새 남자친구 생겼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이 생길 수가 있어? 너는 애초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당시연은 김성진의 화난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김성진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느끼고 얼른 진정했다.당시연은 자리를 바꾸고 싶었지만, 이 레스토랑이 너무 인기가 많은 탓에 남은 자리가 없었다. 이 레스토랑은 해산물 요리가 메인이었는데 주문하는 즉시 죽여서 요리하는 거로 유명했다.당시연은 원진의 맞은편에 앉아 먼저 시그니처 세트를 주문한 다음 메뉴판을 원진에게 건넸다.“먹고 싶은 거 한번 봐봐.”불이 뿜어져 나올 듯한 김성진의 눈빛은 원진을 불태울 것만 같았다. 원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메뉴판을 건네받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주문했다.“누나, 제가 살게요. 지난번 화학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요.”이 일을 이수희가 얘기했었지만, 당시연은 받은 돈을 원진이 직접 갖고 용돈으로 쓰게 했다.자신이 계속 도와주던 아이한테서 음식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뿌듯함이 느껴졌다.“그래.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김성진은 그제야 그 사람이 원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의 눈에는 질투하는 기색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원진의 변화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그때 쭈뼛쭈뼛하던 남자애는 어느새 학교에서 무척 환영받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김성진은 칼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표정이 일그러졌다.예전에 원진과 당시연
김성진의 시선은 원진에게로 향했는데 원진이 당시연을 보는 시선이 불순하다고 느껴졌다. 그는 당시연과 같은 여자애들이 남자의 마음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예쁘게 생긴 데다가 성격도 좋고 매사에 열심히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감이 더해졌다.“당시연, 얘기 좀 해.”당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할 얘기 없어. 천천히 식사해. 나는 먼저 가볼게.”김성진은 체면이 중요한 사람인데 여러 번 거절을 당하고 나니 화가 치밀었다.“너 원진이랑 잤지?”당시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예전에 원진이 처음 그녀의 집에 왔을 때부터 김성진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지금 반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당시연,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 우리 지인들 가운데서도 그렇게 어린 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성진은 따귀를 세게 맞았다. 김성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얼굴을 움켜잡았다.“지금 저 자식 때문에 나를 때렸어?”당시연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김성진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곱게 자랐고 또 집에 돈이 많았기 때문에 본성은 아주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받는 것에 익숙했고 누군가가 자신을 받들어주지 않는다면 그걸 못마땅해했다.“김성진, 네가 이렇게까지 저질일 줄 몰랐어!”김성진은 곁눈질로 자신의 동기들이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문득 후회했다. 당시연과 이렇게 난리를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뺨을 맞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김성진은 깊은 곳에서 불쑥 어떠한 힘이 치밀어 올랐다. 따귀도 맞은 마당에 오늘 반드시 말을 끝까지 해야 했다.“아니야? 이 자식이 너를 보는 눈빛을 못 봤어? 나도 남자야. 그러니까 그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고!”당시연은 화가 치밀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원진은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다가가서 당시연의 등을 토닥였다.“누나, 저 때
말이 최선이지 사실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두 번째 학기 때, 원진은 반에서 1등을 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17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당시연도 이때에는 졸업했고 선생님이 될 생각이었지만 자신의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남게 되었다.대학교 4년 동안 당시연은 계속 이 교수님의 밑에 있었고 그 기간에 많은 대회에 참가했었다. 지금 교수님은 그녀가 계속 학업을 3년 정도 지속하기를 제안했고 그렇게 되면 그녀를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게 추천할 수 있었다.당시연은 고민도 하지 않고 승낙했고 이것 때문에 더 바빠졌다. 아무래도 교수님한테 있는 프로젝트들은 모두 해외와 관련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녀는 대부분 시간에 따라서 외국으로 출장을 가야 했다.대학의 교수님들은 겸손하시지만 사실 밖에 나오면 대부분이 대단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연도 외국에 나와서야 자신의 교수님이 그쪽 연구소에서의 명예 교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연은 거기서 두 달 정도 지냈는데 그 기간에 이수희의 전화를 받게 되어 원진이 처음으로 1등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직 성적표를 나눠주지 않았어. 먼저 너한테 전화해서 말하는 거야. 그 아이가 참 영리해. 그런데 너 요즘 외국에 있지 않아? 진이는 매일 학교에서 아주 늦게까지 남아있던데.”“선생님, 저 지금 외국에 있는 거 맞아요.”“너랑 진이는 얘기를 별로 안 하지? 나한테 네 스케줄을 묻더라고.”당시연은 자신의 핸드폰을 한번 보았다. 얘기를 안 하는 건 아닌데 시차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메시지가 원진이 휴식하는 걸 방해할까 봐 시간에 따라 연락하고 답장이 적어진 것뿐이다.“휴식하는 데 방해될까 봐 그래요. 너무 열심히 하잖아요. 매일 잠도 얼마 자지 않으면서 말이에요.”이수희는 자신의 손에 있는 시험지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때 이 아이를 반에 데리고 왔을 때 다른 선생들은 모두 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어. 모두 우리 반의 짐이 될 거로 생각
공교롭게도 오늘 밤 김성진도 이 술집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인들과 나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미 졸업한 김성진은 집에서 경영하는 회사를 이어받을 예정이었고 자연스레 경영진들과 술자리를 함께해야 했다.이 사람들은 모두 여자 파트너를 데리고 왔고 술을 마시고 나서는 계속 여자의 옷에 손을 넣고는 했다.김성진은 이 모습을 보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중 한 사람이 여자 파트너를 데리고 화장실을 가겠다면서 떠났다. 정말 화장실로 가는 게 맞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몇 분 후, 밖에서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미친년, 너 이게 무슨 뜻이야? 내가 늙었다고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고등학생한테 번호를 물어봐? 젠장, 내가 너를 너무 봐줬지?”“이거 놔요! 이 손 놔요!”“미친년, 저 자식을 보는 네 눈에 빛이 도는 걸 봐서는 네가 뒤에서 얼마나 더럽게 노는지 다 알 텐데, 번호를 물어보러 가? 내가 너 때려죽일 거야!”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김성진은 방금 나간 자신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얼른 일어서서 나왔다.이때,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원진을 보게 되었다. 원진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김성진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분노가 또다시 타올랐다. 저번 학기에 원진에게 저격당한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한 학기를 못 봤는데 키가 더 크고 더 품격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마치 당시연이 한번 다시 키운 듯했다.김성진은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그는 이미 소유진을 명확히 거절했고 그렇게 하면 당시연이 언젠가는 마음이 돌아지리라 생각했는데 몇 달이 지나고 두 사람이 각자 졸업을 한 마당에도 당시연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예전에도 김성진은 당시연과 싸움을 하지 않은 게 아니지만, 매번 당시연은 스스로 돌아왔었다.하여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김성진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의 원진을 본 그는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그제야 그는 무언가가 자신의 인지를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