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 선생님은 원진을 데리고 교정을 걸었다.이 순간 원진은 비로소 이곳이 자신이 다니던 시골 학교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학교는 멋지게 지어진 건물들과 나무들이 늘어선 깔끔한 도로, 체육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한 운동장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이수희는 원진을 데리고 계단식 교실로 가서 새 교과서를 건네주었다.그러다 원진의 얼굴을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시연이가 너 이제 겨우 열여섯이라고 했지? 오늘 우리 반으로 전학 오니까 내가 하나만 주의 줄게. 절대 연애하지 마라.”원진은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이수희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왜? 네 얼굴이 얼마나 인기가 많을지 모르는 거야?”원진은 얼굴이 굳으며 서툰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농담하지 마세요.”이수희 선생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를 반으로 데리고 갔다.원진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순간 정적이 흘렀고 이내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고등학교에서 전학생이 온다는 건 늘 주목받는 일임을 원진도 알고 있었다.원진은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쓴 뒤 창가 쪽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학생들은 다시 교과서를 펴고 책 읽는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새 교과서의 종이 냄새를 맡으며 원진은 잠시 안도했다. 이제 그는 이곳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시연 누나가 이제는 나를 다시 보내지 않겠지?’원진은 손에 쥔 펜을 꼭 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열심히 해서 1등을 해야겠다고.그 시각, 당시연은 제원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나서 곧바로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소유진을 마주쳤다.소유진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새로 나온 향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성진 선배가 지난번에 해외에서 사다 준 향수야. 어때? 향 좋지? 생각보다 독특하더라고. 선배가 이래 봬도 은근히 안목 있지 뭐야?”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성진 선배 진짜 헤어진 거야? 소유진, 너 성진 선배만 잡으면 졸업 후 취업 걱정도 없겠는데? 선배네 집에서 운영하는 회사
김성진은 화가 나서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당시연!”멀리서 그들이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더 이상 장난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당시연은 몇 걸음 더 걷다가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를 들었다.김성진이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나 원진에 대해 알아봤어. 그 애 아버지는 강도죄로 감방에 갔다가 나와서 자기 여동생을 성폭행했대. 마을에서도 악명이 높았고 10년 전에 사형당했지. 그 엄마도 똑같은 사람이었어. 남편이 죽고 나서 여기저기 다른 남자랑 얽혀 지내다가 결국 현장에서 잡혀 맞아 죽었대. 너, 그런 유전자를 가진 애가 진짜 좋은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생각해? 당시연, 이제 고집 좀 그만 피워. 네가 심성 좋은 건 알겠는데, 괜히 문제를 키우면 그땐 정말 감당 못 해.”당시연은 걸음을 멈췄다. 처음 원진을 만났을 때 원진의 집안 사정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김성진이 말한 것처럼 그의 원가족은 엉망이었다.그 폐쇄된 산골 마을에서 원진은 늘 혼자였고 아이들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외롭게 자랐고 고모 집에서는 고된 일을 도맡아 하며 굶주린 채 살았다.당시연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죄 때문에 아이까지 그 운명을 떠안게 하는 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칼날을 칼집에서 꺼내기 전에는 누구도 그 칼이 사람을 상처 입힐지, 혹은 지켜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김성진은 그녀가 마음이 약해진 것을 눈치채고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살짝 입을 맞췄다.“우리가 사귄 지 3년이 됐잖아. 이렇게 심하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당시연, 너도 나에 대해 잘 알잖아. 내가 유진이랑 술에 취해서 잠깐 껴안은 건 실수였어. 정신도 없었고 지금까지 너에게 잘못한 적 있었어? 몇 년 동안 수많은 유혹도 있었지만 한 번도 네 마음을 저버린 적 없었잖아.”당시연은 얼굴을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유진이한테 사과해. 나랑 같은 실험실에서 일하는
당시연은 너무 지쳐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했으니 더는 버틸 힘도 없었다.“아빠, 원진 얘기는 이제 그만해 줄 수 없어요? 저 정말 너무 힘들어요.”“그 얘기 듣기 싫으면 원진을 다시 산골로 보내. 난 내 딸 집에 그런 아이를 절대 들일 수 없어.”원진이 집에 들어온 뒤로 당시연은 부모님, 남자 친구와 수없이 다퉜다. 이제는 정말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당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당지석은 이를 딸의 반항으로 받아들였다.“만약 네가 그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지금 당장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 집에 낯선 사람이 침입했다고 말이야.”당시연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아빠, 제발 그만 좀 해요. 김성진이랑 화해하길 바라죠? 좋아요, 김성진을 만나고 졸업 후에 조용히 결혼할게요. 지금은 더 이상 아빠랑 싸우고 싶지 않아요.”당지석은 그녀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너도 곧 알게 될 거다, 내가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걸.”많은 부모가 ‘널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녀의 인생에 간섭한다.당시연의 눈은 붉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가방을 꽉 쥔 채 말했다.“원진 일만 빼고 다른 건 다 아빠 말대로 할게요. 우리 서로 한 발씩 양보해요. 이따가 김성진한테 바로 전화할게요.”“좋아. 하지만 원진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그 아이를 돌려보내야 해.”당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해서 눈을 깜빡였다.당지석은 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가 차 문을 열며 한숨을 내쉬었다.“시연아, 네가 날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너도 결혼하면 알게 될 거다. 세상은 실력만으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김성진에게 부족한 점이 많을지 몰라도 그 아이는 널 진심으로 아끼고 있어. 결혼하면 평생 고생할 일 없을 거야. 네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아. 지금은 날 원망해도 사회에 나가 보면 아빠한테 감사하게 될 거다.”당지석은 그렇게 말하고 차에 올라탔다.당시연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비몽사몽 하던 중에 당시연은 거실에 있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지만,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못했다. 씻고 준비를 마친 다음 밖으로 나와서야 식탁에 요리가 세 가지 놓여 있고 밥솥에는 밥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음식을 살짝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다.당시연은 원진에게 연락해서 음식을 만드는 데 시간을 쓰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고등학교가 워낙 바빠서 5시 남짓하면 기상해야 했고 매일 늦게 잠드는데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나 말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이 제일 중요한 일을 까먹었다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바로 원진에게 핸드폰을 사주는 일이었다.당시연은 빠르게 식사를 하고 핸드폰 가게로 가서 60만 원가량의 휴대폰을 하나 샀다.김성진과의 약속 시각이 거의 임박한 것을 보고 그녀는 메시지를 보냈다.「나 30분 늦게 도착할 것 같아.」당시연은 원진의 교실로 갔다. 그때는 수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는데 원진은 턱을 괴고는 칠판을 보면서 수시로 고개를 숙이고 필기를 했다.당시연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수희의 사무실로 향했다.“선생님, 이건 제가 원진에게 사준 핸드폰과 전화카드입니다. 안에는 제 번호와 선생님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요. 이따가 원진에게 전해주세요.”이수희는 당시연이 또 올 줄 몰랐지만, 핸드폰을 건네받으며 대답했다.“알겠어.”“원진이 잘 따라가고 있어요? 저의 시간이랑 진이의 시간이 마침 엇갈려서 하루가 가도 얼굴 한번을 못 볼 수 있더라고요. 요즘 저의 번역업무가 바빠서요.”“어제 수업에서 시험을 봤었는데 성적이 중상급이야. 그런 곳에서 나온 아이들이 이런 성적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나는 꼴등을 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도 했는데 정말 총명한 아이야. 열심히 하기도 하고.”당시연은 마음이 놓여서 웃음을 지었다.“알겠어요. 핸드폰 꼭 좀 부탁할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전화하라고 해주세요.”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자 이수희는 원진을 사무실로 불러서
김성진은 흔쾌히 대답했다.“알겠어. 가서 실험하고 있어.”소유진은 신이 나서 실험실로 돌아가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선배, 데이트에 정신이 팔려서 제 밥을 까먹지 마세요.”김성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안 까먹어.”당시연은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시간을 확인했다.“학교 안에서 먹자. 그렇게 하면 포장해서 가져다주기 쉽잖아.”“화났어?”“아니. 이따가 나도 볼 일이 있어서.”“그래.”두 사람은 학교 식당으로 갔다. 당시연은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김성진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면서 답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답장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당시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누구랑 문자 보내는 거야?”“유진이. 유리병을 터뜨렸대. 이따가 또 교수님한테 혼나게 됐어. 유리병을 터뜨리는 경우는 처음 봐. 좀 바보 같아.”당시연은 입을 삐죽거리면서 밥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원진한테서 온 메시지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고맙긴. 수업시간에 핸드폰 보면 안 돼.」답장은 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수업시간인듯했다.당시연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누구한테 고민을 털어놨으면 좋을지 몰랐다. 대학교 4학년인 이 시점에는 다들 바쁘게 보내기 때문이다.김성진의 앞에 앉아서 그가 핸드폰을 보면서 웃는 모습을 보니 당시연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만약 이 일을 가지고 또 난리를 치면 아버지 쪽에서 또 원진을 돌려보낸다고 협박할 것이다. 피로감이 확 몰려와서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갈게. 너도 돌아가서 실험을 계속해.”“그래. 유진이 식사를 포장하러 갈게. 보름 후면 내 생일인데 친구들을 초대할 거야. 너도 일찍 와.”당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두 사람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성진은 아직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보름이 지났다. 지난 보름 동안 당시연은 일이 아주 바빴다. 그녀는 원진에게
김성진은 이 말을 듣고 민망해졌다. 방금 소유진이 스카프를 선물했을 때, 바로 그 스카프를 착용했기 때문에 당시연이 똑같은 것을 준다고 하면 착용할 수가 없고 곁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현장의 분위기는 아주 미묘해졌는데 소유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여전히 천진한 말투로 말했다.“선배님, 우리는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향이 참 맞는 것 같네요.”당시연은 살짝 웃었다.“그래? 너는 또 뭐 좋아해?”소유진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가 곧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선배님, 화나셨어요?”김성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당시연을 끌어당겼다.“진짜 화났어? 유진이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두 사람이 같은 선물을 살 줄 누가 알았겠어. 유진이가 선물한 거 빼고 네가 준 거로 착용할게. 그러면 되지?”당시연은 따귀를 때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괜찮아. 그러면 내가 속 좁아 보이잖아. 노래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더 부르지 않을 거야?”그녀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다. 여자친구가 뻔히 있는데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이랑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김성진이 말을 하기도 전에 소유진은 눈치 빠르게 마이크를 내려놓았다.“선배님, 저는 그저 분위기를 띄우려는 것뿐이에요. 이제 선배님이 부르실래요?”소유진의 말은 아주 적절해 보였고 현장의 분위기도 한껏 누그러들었다. 당시연의 성격대로라면 이런 경우에는 그저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살짝 시선을 들어 소유진을 훑어보았다.“괜찮아. 너 노래 잘 부르잖아. 내가 왔다고 네가 노래를 안 부르려고 하는 건 너도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랑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 맞지 않은 일이라는 걸.”올 것이 왔다. 이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느낀 첫 기분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살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당시연의 모습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김성진은 당시연이 자신의 체면을
“시연아.”김성진은 당시연의 팔을 잡고 생각 없이 말했다. “그만해. 네가 다른 사람이랑 그럴 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우리 둘 다 똑같아.”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 눈치만 봤다. 하지만 소유진은 마치 약점이라도 잡은 듯 눈이 번쩍 뜨였다.“네? 선배님한테 남자가 생겼어요? 그래서 성진 선배가 기분이 안 좋았던 거군요. 선배님, 그건 선배님이 잘못하셨어요. 저랑 성진 선배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호감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당시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뒤돌아 당당하게 김성진을 바라봤다.“나한테 다른 사람이 있다고? 누구?”“누군지 내 입으로 말해야 해?”보아하니 또 원진의 얘기이다. 그녀는 이게 우스웠다.“네 마음속이 더럽다고 해서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지마. 김성진, 우리 헤어지려면 깨끗하게 헤어지자. 네가 또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서 이르고 그런다면 정말 지저분하게 되는 거고, 멍청해 보일 거야. 나는 네가 소유진이랑 사귀는 걸 막지 않아. 그러니 너도 내 생활을 간섭하지 마.”정말 자신을 화낼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건가? 당시연은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김성진은 더 다급해져서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났다.“당시연!”당시연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소유진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김성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사과를 건넸다.“미안해. 오늘 저녁에 시연이가 기분이 안 좋았나 봐. 일부러 너한테 그러는 건 아니야.”소유진은 눈물을 닦았다.“저는 괜찮아요. 선배, 가서 시연 선배님을 달래주세요.”만약 그녀가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김성진은 당시연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 까밝혀 진 상황에서 쪽팔렸다. 방금 당시연의 얘기도 지나쳤는데 지금 따라가면 자신이 매달리는 꼴이 되어버린다.그는 학교에서 무척 촉망받는 사람이니 여자친구가 고플 일은 없다. 당시연은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도수가 높은 술을 연속 세잔 들이켰다.“안 가. 헤어지면 헤어지는
“원진?”“네.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돼서요.”당시연은 미간을 누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원진에게서 온 전화가 확실했다.“미안해. 나 지금 집 아래...”말을 하면 할수록 당시연은 발음이 어눌해졌다. 원진은 다급하게 내려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서 아파트 단지의 대문 앞에 있는 편의점까지 와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당시연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잠이 들었고 테이블 위에는 술이 몇 병 정도 있었고 과자도 한 봉지 열려있었다.그는 마음이 따뜻해져서 웃음이 났지만 그래도 허리를 숙여서 당시연을 부축했다.“누나?”당시연은 정신이 든 것 같기도 깨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상태로 원진의 품에 기대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당시연은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인 원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착각인지 아닌지 원진의 키가 더 큰 것 같았다. 금방 집에 왔을 때 178센티 정도였는데 지금은 180센티가 되는 것 같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서 당시연은 헛디딜 뻔했지만, 원진이 잡고 있었다. 165센티 정도 되는 당시연의 키에 원진의 손을 잡아야만 넘어지지 않을 수가 있었다. 당시연은 몸에서 술 냄새가 났고 얼굴에는 연한 화장이 남아있었다. 원진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잠깐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어떻게 화장을 지우는지 검색해보았다.“누나, 화장 지워줄게요.”당시연은 소파에 기대서 살짝 움직이더니 더 반응하지 않았다. 원진은 화장품과 기초 제품에 대해서 몰랐지만, 딥클렌징이라는 글자는 알아보았다.인터넷에서 찾아본 순서대로 그는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화장을 지웠다. 당시연의 얼굴이 깨끗하게 씻겨진 것을 보고 나서야 원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원진은 당시연을 부축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당시연이 침대에 누운 다음 원진은 그녀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하지만 원진은 당시연의 옷에는 손을 대지 못했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방안의 불을 끄고 나갔다.거실로 돌아와서 원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더러워진 화장솜들을 보고 그것들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