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이 닫히는 순간에 성혜인은 소파에 드러누웠다.반희월이 한바탕 소동을 낸 것도 그녀를 힘들게 했는데 지금 또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반승제의 등을 보니 더 충격적이었다.이 어색한 거짓말이 도대체 언제 끝날는지.시시각각 경계해야 했다....방에서 야근하고 있던 반승제는 어차피 등이 아파 눕지를 못했기에 그냥 밤을 새기로 했다.한밤중에 방문을 나선 반승제는 소파에 얌전히 기대고 있는 성혜인을 보았다.미간을 찌푸린 그는 그녀와의 밤은 이미 끝났으니 오늘이 지나면 그녀와 거리를 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모의 말이 맞았다. 할아버지께서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절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테이블 앞에 서서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엄청 작았다. 평소 도도하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없이 얌전해 보였다.그가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할 때는 꿀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인제 보니 확실히 온시환이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그녀가 몇 번이나 남편에 대한 사랑을 보였었다. 아마 그날 밤, 그녀의 마음속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하긴 그녀는 남편과 몇 번이고 그런 밤을 보냈을 거니까.호흡이 또다시 가빠진 반승제는 얼른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그는 컵 변두리에 옅게 남겨진 핑크색 입술 자국을 보았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컵을 내려놓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성혜인은 소파 맞은편에 앉아있는 반승제를 발견했다.그녀는 얼른 눈을 비비고 똑바로 앉아 시계를 바라보았다.이제 여섯 시밖에 안 되었는데. 휴일에도 이렇게 빨리 일어난다고?“반 대표님?”방금 일어나 조금 잠긴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움이 섞여 있었다.반승제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응”이라고만 대답한 뒤 손에 든 서류를 치웠다.성혜인은 황급히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와 낮은 소리로 물었다.“반 대표님. 아침은 뭐로 드릴까요? 제가 내려가서 가져다 드릴게요. 그리고 등에 상처는 괜
확실히 성혜인은 성휘가 반 회장님께 연락을 드린 것을 몰랐다. 그저 마음만 더욱 힘들어졌다.지금 이 시각, 반승제가 성씨 본가에 가서 성씨 가문에 본때를 보여 줬다는 사실까지 들으니 이 ‘아내'라는 자리가 더 싫게만 느껴졌다.아버지는 항상 그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성혜인은 지금 아빠한테 불만을 표출하면 제일 이득을 볼 사람이 성혜원이라는 것을 알았다.“응, 알겠어.”그녀는 성혜원을 지나치고 자리에서 떠났다.성혜원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녀가 성휘와의 관계가 별로 좋지 못한 데다가 성휘가 멋대로 반 회장님과 연락하고 있다는데 왜 원망하지 않는 거지?성혜원은 원래부터 몸이 좋지 못한 데 새벽 네 시부터 두 시간 동안 여기서 기다렸다.게다가 지금 성혜인의 반응을 보니 폭발할 것 같았다.“언니, 반 대표님 어젯밤 다른 여자랑 이 호텔에 있었대.”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성혜인이 반승제랑 같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내 성혜인이 뱉어낸 말은 그녀로 하여금 속이 뒤집히게 만들었다.“알아, 어젯밤 나랑 같은 방에 있었거든.”담담히 뱉어낸 그 말은 비수처럼 성혜원의 마음에 꽂혔다.성혜원은 순간 반박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성혜인이 자리를 떠나려 하는 것을 보고 성혜원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네가 어떻게!”자신의 말투가 너무 세다는 것을 인식한 그녀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어떻게 반 대표님이랑 같은 방에 있어? 반 대표님 언니 안 좋아해. 언니, 가문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혹사시키지 않아도 돼. 언니 그냥 아빠한테 반항하기 싫은 거잖아.”성혜인은 의문스럽게 물었다. “나랑 반승제 씨는 부부 사이야. 같은 방을 쓰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아빠 말대로 제원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앞다투어 반승제랑 결혼하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당연히 그 사람을 내 곁에 오래 머물게 해야지. 안 그래?”성혜원은 그녀가
성혜인은 급히 티슈를 뽑아 우유를 닦아냈다.“죄송합니다, 반 대표님.”“응.”반승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성혜인은 우유를 다 닦아낸 뒤 반승제의 바지에도 우유가 몇 방울 튄 것을 보고 휴지 몇 장을 더 뽑아 닦았다.서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는데 순간 새하얀 손이 다리 쪽으로 뻗어졌다.반승제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손을 들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이 위치가 어색한 것은 아니지만 이건 그의 다리였다.성혜인은 고개를 들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반승제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식사부터 하지.”성혜인은 하는 수 없이 손을 거두고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반 대표님, 등 상처에 약 다시 발라야 하나요?”“아니, 괜찮아.”성혜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밥을 다 먹은 뒤 반승제와 함께 내려갔다.이 시각, 성혜원은 이미 없었다. 성혜인은 호텔 문 앞에 서 있었고 반승제는 심인우가 데리러 왔다.그가 차에 올라탈 때 곁눈질로 성혜인이 1억정도 되는 비싼 검은색 벤츠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차에서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남자가 내렸다. 그는 성혜인과 몇 마디를 나눴고 성혜인은 웃어 보였다.남자의 외모는 다른 사람보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없이 평범했다.성혜인이 그의 앞에 서 있으니 두 사람은 차원이 달라 보였다.성혜인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여 남자는 마치 하인 같았다.반승제는 시선을 거두고 다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운전석에서 운전하고 있던 심인우도 답답하긴 했지만 비서로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벤츠 차 안에서 서민규는 흥분되어 얼굴이 빨개졌다.“페니 씨, 저한테 자동차를 선물해 줄 줄은 몰랐어요. 저...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성혜인은 멈칫했다. 그녀는 서민규에게 차를 선물해 준 적이 없다. 그녀 또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 벤츠, 가격이 낮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강민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게다가 확실히 이번에는 조금 신경을 쓴 것이 원래 같으면 몇십억
서민규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그저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상대방은 감히 넘보지도 못할 엄청난 존재인 것처럼.반승제는 그저 덤덤히 훑어보고는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고는 대표와 같이 회사로 들어섰다.서천 쪽 투자는 몇천억이 걸려있기에 BK사에서도 극도로 중시했다.많은 회사에서 반씨 가문쪽에 계획안을 건넸는데 어젯밤 갑자기 BK사와 협상하기로 했었다.오늘 이렇게 반승제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대표는 이게 네이처 빌리지도 BK사쪽에서 시공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지금 보니 더욱 페니한테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BK사를 선택해서 BK사도 이런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BK사 대표는 반승제를 데리고 회사를 둘러보고는 중간층 복도 쪽에 멈춰 섰다. 이제는 쌍방의 협의를 진행할 차례였다.반승제가 회의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상사가 한 사람을 혼내는 것을 들었다. 혼나고 있는 사람은 마침 방금 성혜인을 데리러 왔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토요일이었고 BK사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 퇴근하고 주 6일 근무하는 제도를 실행하고 있었다.“어떻게 된 거야, 서민규. 이런 데이터도 다 틀리고. 시간이 나면 책이라도 읽으면서 실력 좀 쌓으란 말이야. 너희 부에서 너 빼고 다 인서울 출신이야. 지방대 주제에 내가 한소리 했다고 뭐라 하지 마?” 서민규는 속으로 상사를 욕했다. 이 사람은 학력 차별이 엄청 심했다. 그 때문에 서민규의 학력을 알고는 매일 그를 달달 볶았다.또한 이것 때문에 여러 번의 승진 기회도 다른 사람한테 뺏겼다.그래도 회사에서 주는 월말 보너스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반승제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그 남자는 대충 177센티미터 정도 돼 보이는 키였고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된 직원으로 보였다. 굳이 좋은 점을 말하자면 다른 남자보다 피부가 하얗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조금.이걸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나?
반승제는 한 바퀴 쓱 훑어보고는 종이컵을 들고 물을 받기 시작했다.서민규는 종이컵을 들고 있는 반승제의 모습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손은 마치 와인잔을 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공간은 반승제와 반승제가 아닌 것으로 나뉘어졌다. 반승제가 아닌 것에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고,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반승제는 느긋하게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입에 대지 않고 손을 내렸다. 그는 넋이 나가버린 눈앞의 두 사람에게 짧은 묵례를 하고는 다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서민규의 곁에 함께 있던 직원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 아우라가 장난 아닌데. 우리 회사 대표는 아니지?”서민규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우리 회사 대표님도 저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최근의 경제 뉴스라도 확인해 봐.”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사무실로 돌아갔다.반승제가 종이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현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BK의 대표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준비를 제대로 못 했네요.”그는 또 비서에게 눈치를 줘서 여러 번 소독한 유리컵을 갖고 오게 했다. 하지만 반승제는 물을 입에 대지도 않고 회의에만 집중할 뿐이었다.얼마 후, 두 사람은 악수로 회의를 끝냈다. 그리고 반승제를 선두로 수많은 BK사 임원이 함께 회사 밖으로 나섰다.반승제는 차에 올라탄 후에도 말 한마디 없었다. 심인우는 백미러를 통해 힐끔힐끔 눈치를 볼 뿐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류를 훑어보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분명히 이상했다. ...로즈가든으로 돌아온 성혜인은 잠깐 쉴 생각이었다. 이때 합작사에서 다시 합작하기로 했다는 전화가 왔고, 성혜인은 드디어 미간을 누르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반승제의 등에 난 상처가 떠올라 반태승에게 말이라도 남겨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성혜인은 당연히 증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반승제는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성혜원이 손을 뻗어 막아서며 말했다.“승제 씨, 제가 우연히 호텔 매니저가 들고 온 물건을 보고 걱정돼서 그러는데, 혹시 어디 다쳤어요? 다른 뜻은 없고 진짜 그냥 걱정돼서요.”반승제가 지내고 있는 곳을 알아낸 성혜원은 같은 층에 있는 스위트 룸에 묵고 있었다. 비슷한 방 구조에 같은 침구를 쓰고 있으니 공기조차 달콤해진 것 같았다.아침부터 성혜인 때문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반승제가 성씨 집안에 대한 태도로 봤을 때, 두 사람은 영원히 사이좋게 지낼 리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그녀는 반승제가 성씨 집안에 대한 태도를 전혀 개의치 않았고, 반승제를 좋아하는 자신이 마음만 중요했다.성혜원은 마른기침을 하며 얼굴을 더욱 붉혔다.“승제 씨, 제가 약 바르는 거 도와줄까요? 혼자서는 손이 안 닿을 거 아니에요.”반승제는 깊게 파인 치마에 투명한 외투를 걸친 성혜원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문을 닫지 못하게 막고 있는 손은 그녀의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반승제만 허락하면 성사될 일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배달을 보낸 사람이 성혜원이라고 여긴 그는 약을 복도로 던지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꺼져.”반승제의 말은 마치 비수처럼 성혜원의 심장에 꽂혔다.예고 없이 닫힌 문에 성혜원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문틈에 끼여 다쳤을지도 모른다.처음으로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한 성혜원은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 같았다. 그는 오늘 메이크업만 두 시간을 했다. 가녀린 매력을 강조한 메이크업 덕분에 위층으로 올라오는 길에만 번호를 몇 번 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반승제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당한 것은 뺨을 맞는 것과 다름없었다. 성혜원은 입술을 꼭 깨물고 반승제가 버린 봉투를 바라봤다. 이는 호텔 매니저가 들고 온 것이었는데 약이 아직도 그대로 들어 있었다.배달을 보낸 사람을 확인해 보니 성혜인이라
문자가 발송되고 성휘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하지만 서류를 보고 있던 그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소윤이 따듯한 우유를 들고 왔다가 반짝이는 휴대폰을 보고 서슴없이 들어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기에, 성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보, 문자 왔어요.”성혜인에게서 온 문자를 먼저 확인한 소윤은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성휘의 말투로 답장했다.「혜원이는 네 동생이야. 혜원이 어릴 적부터 몸이 아픈 데에는 내 책임도 있으니, 원하는 게 있다면 그냥 양보해. 동생이랑 네 것 내 것 따질 필요는 없잖니.」이는 성휘가 자주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소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냈다. 그리고 문자 기록을 깨끗하게 지웠다.소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성혜원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뒀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성휘는 아직 전처가 남겨 놓은 아이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지 않는 한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했다.SY그룹의 2차 융자가 끝난 지금은 회사 운영에만 신경 쓰면 되었다. 다른 투자자는 BH그룹을 봐서라도 끊임없이 몰려올 것이다. BH그룹과의 정략결혼은 사실 누구를 보내든 상관없었다. 예전에는 성혜원의 몸이 편치 못해 성급히 시집 보내지 못했지만, 그녀가 건강을 회복한 이상, 성혜인의 명성만 나락으로 떨어뜨리면 BH그룹의 며느리는 바뀔 수 있었다.“여보, 누가 문자 보냈어?”소윤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스팸 문자에요. 제가 처리했으니 하던 일 마저 해요.”몸이 불편했던 성휘는 기침 몇 번 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서재에서 나온 소윤은 거실에 앉아 있는 성한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이며 걸어갔다.“한아, 혜원이 반승제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성한은 성혜원에게 크게 관심 없었다. 그가 관심을 품고 있는 것은 SY그룹밖에 없었다.“한아, 넌 성혜인이 어떤 것 같아?”“어머니, 할 말이 있으면
성휘의 답장을 받은 성혜인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이틀 후, 성혜원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반승제의 호텔 방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그의 비서밖에 없었다.성혜원은 오늘 아침도 호텔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반승제가 분명히 출근하러 나오겠다고 생각하고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반승제가 정장을 입고 심인우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성혜원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직전 후다닥 달려가 막아섰다. 지난번 반승제의 태도로 생각해 봤을 때, 그녀는 우연인 척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승제 씨, 출근하는 거예요?”반승제의 안색은 성혜원을 만나자마자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녀는 반승제가 한평생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뻔뻔한 사람이었고, 반태승이 왜 좋게 평가하는지 이해가 안 될 따름이었다.반승제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성혜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용기가 없었다. 반승제의 아우라로 가득한 좁은 공간에서는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반승제가 차에 올라타자, 성혜원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반승제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십자로에서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는 여자를 본 후에야 약간 풀렸다.겨울이를 포레스트에서 데리고 나온 성혜인은 아침부터 산책하고 있었다. 드디어 합작사의 일을 해결하고, 내일 서천으로 가서 유창목 장판을 찾기 시작하면 한 달 정도 걸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시간이 있을 때, 겨울이와 많이 산책해야 했다.성혜인은 신호등을 기다리며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지만 겨울이는 반승제에게만 반응하는 레이더라도 탑재한 듯 귀신같이 그의 차를 발견하고는 따라가려고 했다. 덕분에 성혜인도 그의 차를 발견하고 짧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겨울이는 이미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었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