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는 서주혁의 이런 초췌한 모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서주혁은 늘 오만하고 냉정하며 여자에게는 가차 없던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지금은 고개를 파묻고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장하리는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가 너무 세게 잡고 있었다.“미안해요...”“미안해, 하리야.”“여보, 미안해요.”서주혁은 계속해서 사과하며 그녀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장하리는 너무 피곤했다. 그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했는지, 또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알 수 없었다.눈이 시려왔다. 아마도 천장 불빛이 너무 강해서일 것이다. 장하리는 다시 눈을 감았고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장하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서주혁은 여전히 그녀 곁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의사가 약을 갈아끼우다가 그녀가 손을 빼내려고 하는 걸 보고는 급히 막았다.“서주혁 씨가 나흘간 한숨도 쉬지 못했습니다. 그냥 잠시라도 잘 수 있도록 해주세요.”장하리는 눈을 한 번 깜빡였고 의사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나흘 밤낮으로 잠도 안 자고 버텼어요.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쓰러지고 말 겁니다. 정말로 하리 씨를 걱정하고 있어요.”장하리는 뭐라 말할지 몰랐다. 그녀 자신도 여전히 지쳐 있었고 머리가 아팠다.의사는 조심스럽게 약을 갈아 끼우고 그녀의 상태를 살핀 후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야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의사가 떠나자 병실에는 장하리와 서주혁만 남게 되었다.서주혁은 정말 지쳤는지 여전히 그녀 옆에서 고개를 떨군 채 잠들어 있었다.장하리는 밖을 바라보았다. 저녁노을이 창문 너머로 방을 따스하게 물들였다.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귓가에 서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는 아직 쉬고 계셔. 조금만 기다리자.”“엄마, 괜찮아졌어요?”“아직이야. 병원에 반 달은 더 있어야 해.”장하리는 온몸이 뽀송뽀송한 것을 느꼈다. 누군가 그녀의 몸을 닦아준 것 같았다.그녀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그때 작은
서보겸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바라보자 장하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가 이렇게 컸는데 자신이 아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몇 년을 놓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그녀가 강성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아이는 엄마가 가장 필요했던 시기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녀는 도망쳤고 그렇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장하리의 시선은 서보겸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많이 울었는지 코끝이 빨개진 채 그녀를 조심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눈을 뜨는 순간 다시 어디론가 떠나갈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자 장하리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장하리는 이 모든 상황과 서주혁이라는 남자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세상이 그녀에게 터무니없는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4년 전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을 때는 그에게 정말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랑도, 증오도 전부 사라져 버린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 서주혁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계속해서‘여보’라고 부를 때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세상은 끝내 장하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미 잊어버린 것들을 왜 다시 마주하게 하는 걸까.목구멍이 꽉 메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서주혁이 서보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보겸아, 아빠가 엄마랑 잠깐 이야기 할게. 먼저 나가 있을래?”서주혁은 장하리가 모든 것을 기억해 낸 것임을 알아차렸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동안 기대했던 모든 행운은 날아가 버렸고 과거의 잘못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그의 가슴에 꽂혔다.서보겸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병실을 나섰다. 서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안아 들고 병원 밖에 대기 중이던 검은색 차에 태웠다.서보겸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엄마, 가요?”아이조차도 장하리가 이곳에 머물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주혁은 가슴 한가운데 큰 구멍이 뚫려 피
“보겸아, 아빠를 도와주기 싫어?”“도와줄래요.”서보겸은 귀여운 목소리로 말하며 작은 손을 들어 서주혁의 어깨를 토닥였다.“아빠, 울지 마세요.”“아빠 안 울어. 하지만 보겸이랑 엄마가 가버리면 아빠는 진짜 울지도 몰라.”“안 갈게요.”서주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카드는 아이뿐이었다.그는 장하리를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 그녀가 아이를 바라보던 눈빛에는 진지함과 함께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분명 서보겸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서보겸은 자폐증이 있었다. 한동안 엄마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고열에 쓰러질 정도로 아파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장하리는 그 모든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더 깊어질 것이다.그 죄책감이 남아 있는 한 장하리는 떠나지 못할 것이다.장하리는 서주혁에게는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있어도 서보겸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서주혁은 손을 들어 서보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아빠가 한 말 기억해. 나중에 많이 울어야 해. 엄마랑 아빠가 화해하면 아빠가 너한테 보상해 줄게.”“네.”서주혁은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병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막상 손잡이를 잡자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모든 용기가 한순간에 사라진 듯 그의 손끝은 문손잡이 위에서 망설였다. 한참을 주저한 끝에 그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문이 열리자마자 그가 본 건 병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장하리였다.그녀는 평온해 보였다. 고요하고 조용하게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서주혁은 문을 닫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여보.”그는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장하리는 그가 그 호칭을 부르자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감정을 억눌렀다.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서주혁은 침대 곁에 앉아 그녀를 꼭 껴안았다.“다 기억해 낸 거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장하리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으며 애원했다.
[예전에 경제 뉴스를 볼 때 서산 그룹 대표가 너무나도 고고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줄이야.][역시나 아무리 차갑고 고고한 사람도 결국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다 포기할 수 있네요.][저분 우리 교수님이 계신 연구소에 지원금을 냈을 때 정말 차가웠어. 행사장 내내 아무도 저분과 말을 섞지 못했어. 서 있는 모습은 정말 얼음산 같았어. 저런 사람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서산 그룹이 공식적으로 직접 발표한 거면 진짜로 서씨 가문과 연을 끊은 게 맞겠지? 서씨 가문 어르신들의 인맥이 워낙 대단해서 윗선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그쪽 인재라던데. 또 제자들도 워낙 많은데 이렇게 연을 끊은 건 자기 정치계의 모든 자원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잖아.][독할 땐 정말 독하고 사랑할 땐 정말 일편단심인가 보네요.][위에 댓글 단 님들아. 추측은 그만해. 듣기로는 여자 쪽이 대표에게 아이를 낳아줬다고 하더라고. 그 아이를 대표가 혼자 키우면서 지금껏 서씨 가문에 데려가지 않았다던데, 아마 4년 전부터 이미 연을 끊은 것 같아.]네티즌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억측이 오갔다.그러나 서주혁은 이런 여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장하리의 병실에만 머물렀다.장하리는 그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지만 서주혁은 그런 그녀라도 좋았다. 적어도 그녀가 자신에게 꺼지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그는 병실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모든 일을 직접 챙기며 발 벗고 나섰다.성혜인과 S.M의 다른 사람들도 문병을 왔다. 장하리는 그들을 보자 한순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몸 둘 곳을 잃은 듯한 기분에 눈가가 붉어지고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특히 성혜인을 마주했을 때였다. 그녀가 감옥에 있을 때 성혜인은 여러 번 전해왔다. 나가고 싶다면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그러나 그때 장하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저 1년 동안 모든 걸 잊겠다고 마음먹
장하리는 아직도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 큰 불길이 어제 일어난 일 같았고 자신의 선택도 어제의 일인 것만 같았다.지금 병상 곁에 모여 있는 이들은 모두 오랜 친구들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때의 뜨거운 열정은 사라져 버렸다.그녀는 너무 지쳤다. 잊기로 결심했던 순간에 느꼈던 그 절망감이 아직도 선명했다.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운명이 그녀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녀의 목숨을 거둬가길 바랐다.장하리는 속눈썹을 내리깔며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민지는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민지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신예준의 전화였다.신예준은 여전히 강민지를 꽉 붙들고 있었다. 몇 시간만 보이지 않아도 바로 전화를 걸어 물어볼 정도였다.예전에 강민지가 협력사 사람들과 술을 마시러 갔을 때도 막 앉자마자 신예준이 직접 그녀를 데리러 왔다.주변 사람들의 놀림에 그녀는 매우 부끄럽고 화가 났다.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구나 알게 되었다. 강민지가 밤 9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신예준이 반드시 전화를 한다는 것을.가끔은 그녀가 귀찮아할까 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도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강민지와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었다.처음에는 짜증이 났지만 4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강민지도 이 제약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사람이란 어쩔 수 없었다.강민지는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또 뭐야?”“다온이가 회사에 와 있어. 이따가 같이 저녁 먹으러 갈까?”“오늘은 밥 안 할 거야?”“네가 질릴까 봐.”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그래, 그럼 네가 음식점 정해. 근데 난 조금 더 있어야 해. 우리 지금 하리 씨 보러 왔거든.”“알았어.”강민지가 막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지난번에 네가 갖고 싶다던 한정판 가방 오늘 도착했어. 내가 비서한테 집으로 보내라고 했으니까, 이따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도망갈까? 하지만 보겸이는 어떡하지?’장하리는 이미 아이의 첫 4년을 흘려보냈다. 하여 서보겸은 아직도 그녀가 다시금 그의 곁을 떠나는 건 아닐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물론 아이를 데리고 함께 떠날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 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보겸이의 곁을 지켜준 건 장하리가 아닌 서주혁이었다. 그런데 서보겸이 과연 서주혁의 곁을 떠나려 할까?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선택은 없었다.게다가 보겸이의 눈물을 마주하고 나니 장하리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 들었다.그런데 그때, 서보겸이 장하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구슬같이 투명한 눈물은 여전히 말캉한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아이의 손에 쥐어진 사진은 다름 아닌 장하리의 사진이었다.순간 장하리는 서주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보겸이가 항상 그녀의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눈가가 찌릿해 나며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려 서보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간다고 한 적 없어.”그러자 서보겸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더니 간절함이 담긴 눈빛으로 장하리를 바라보았다.“정말이에요?”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마주하자 장하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망설임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낸 서보겸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왜 또 울어?”“기뻐서 그래요. 엄마가... 엄마가 나... 버리지 않아서...”눈물을 흘리며 이토록 힘겹게 말을 내뱉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속상하지 않을 엄마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게다가 장하리는 원래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 어떤 환경에서, 그리고 어떤 마음에서 눈앞의 이 아이를 낳았는지를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하지만 장하리는 어른이다. 어른으로서 아이의 앞에서 쉽사리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녀는 아이를 다독여주어야 했다.“엄마는 널 버린 적 없어. 다만 과거에 있었던 일 때
“물 좀 마셔.”부드러운 말투로 장하리의 고개를 쓰다듬으며 컵의 가장자리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장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서주혁을 피하고 싶었지만 불현듯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서보겸의 시선에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아이의 시선은 너무나도 간절해 보였다. 진심으로 부모님의 사이가 좋아지길 바라는 눈치였다.그런데 만약 장하리가 서주혁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서보겸은 분명 슬퍼할 것이고 슬프면 또 말없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하지만 장하리는 더 이상 서보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결국, 체념해버린 장하리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서주혁이 건네준 물을 꿀꺽꿀꺽 마셔버렸다.이어 서주혁은 손끝으로 그녀의 입가에 묻은 물방울을 부드럽게 닦아주며 물었다.“더 마실래?”장하리는 묵묵히 고개를 가로젓더니 찐빵같이 퉁퉁 부어오른 서보겸의 작은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보겸이에게도 한잔 따라줘요.”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보겸에게도 물을 따라주려 하자 장하리가 다시금 입을 열어 서주혁을 말렸다.“다른 컵으로 바꿔요. 저 지금 입원했는데 보겸이도 저 때문에 옮으면 어떡해요?”그러자 서주혁은 가볍게 싱긋 미소를 짓더니 새로운 컵으로 바꿔주었고 보겸이도 말없이 컵을 들고 물을 홀짝홀짝 들이켰다.순진한 서보겸의 모습은 어린 짐승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어린 짐승도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라는데 보겸이는...장하리는 또다시 마음이 욱신거렸다.세 식구 모두 병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곧이어 잠이 쏟아져 오기 시작하고 장하리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그러자 서주혁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이불을 걷어 올리며 부드럽게 물었다.“저녁은 뭐 먹고 싶어?”특별히 저녁 메뉴를 물어본 것도 이번 기회를 빌려 장하리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장하리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대충 답했다.“아무거나 상관없어요.”“어... 그럼 수프 먹을래?”“무슨 수프?”“
하지만 너무 오래 울었는지라 서보겸은 서주혁의 말을 들을 겨를도 없이 조수석에 앉자마자 깊은 잠이 들고 말았다.한편, 서주혁은 고요히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안전벨트를 매어주고 서보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후에야 운전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어느덧 보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장하리의 몸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서보겸과 함께하며 아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서주혁이 서보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전방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발견하지 못한 채, 후방의 자동차까지 돌진해 오는 바람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서주혁은 무의식 간에 서보겸을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깨진 바람막이 유리 조각이 서주혁의 팔에 꽂히고 붉은 선혈이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품속에 안긴 서보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곧이어 서주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여 아들을 확인했다.“보겸아, 괜찮아?”다행히도 서보겸은 꽤 침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서주혁의 팔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빠... 많이... 아파요?”“아니야, 아빠는 괜찮아. 안 아파.”마침 그때, 서주혁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장하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러나 서주혁은 손이 끼어있는 탓에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장하리가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건 극히 드문 상황이었기에 서주혁은 더욱 초조해졌다.“보겸아, 전화 받아줘.”그의 말대로 서보겸은 몸을 숙여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휴대폰을 주워들고는 전화를 받았다.그런데 같은 시각, 또 한 대의 차가 연이어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이 귀를 타고 들려왔다. 연쇄 추돌 교통사고였다. 게다가 그사이에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목소리도 뒤섞여 있었다.“엄마, 사고 났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은 먹통이 되어버렸다.곧이어 구급대원이 도착하고 서주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