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여자의 말소리에 소준호는 순간 두피가 저린 기분이 들었다. 장하리가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는 몸을 흠칫 떨고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미안해, 나 다른 여자와 잤어.”술에 취해 저지른 짓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부정할 수 없다.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한편, 장하리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목에 거대한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줄곧 소준호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소준호만큼은 절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좋아요.”장하리는 마음이 아팠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그럼 준호 씨도 행복하세요. 앞으로 결혼식은 강성에서 할 건가요?”장하리의 말에 순간 당황한 소준호는 덩달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소준호도 일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응. 하리야, 정말 미안해. 나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푹 쉬세요.”전화를 끊고 돌아서자 서주혁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라이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심지어 기분은 상당히 괜찮아 보였고 긴 손가락은 손안의 라이터를 이리저리 돌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하리는 서주혁을 무시하고 별장 안으로 들어가려 발걸음을 옮겼지만 곧바로 그에게 허리를 잡히고 말았다.“누구한테서 온 전화예요?”애매한 말투와 조금 전보다 더 친밀한 스킨쉽까지.큰 키에 장하리를 끌어안고 있으니 장하리는 당장이라도 서주혁의 품에 삼켜질 것만 같았다.순간, 장하리는 어마어마한 무력감을 느끼며 그를 밀어냈다.“이거 놔요.”“안 놔. 그러니까 말해봐요. 누구 전화인데요?”그의 말투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주혁의 얼굴은 장하리가 소준호와 헤어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밝게 웃고 있었다.“소준호요.”“뭐라고 했는데요?”왠지 모르겠지만 장하리는 소준호와 헤어진 사실을 이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
장하리가 막 그의 손을 밀어내려는데 이번에는 서주혁이 먼저 손을 빼어냈다. 마치 그녀의 생각 정도는 전부 간파하고 있다는 듯 말이다.그러나 같은 시각, 장하리는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소준호의 일까지 더해지니 그녀의 감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한편, 장하리의 옆에 서 있으니 서주혁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이윽고 서주혁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저녁에 뭐 먹고 싶어요?”반응이 없자 서주혁이 다시 한번 물었다.“뭐 먹고 싶어요?”“마음대로 하세요.”장하리는 별로 흥미가 돋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대충 답하고는 다시 서보겸에게 걸어갔다.물론 서주혁도 딱히 서두르지는 않았다. 때로는 몰아붙일수록 원하던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이다.위층 서재에 올라가 자리에 앉는 순간, 서주혁의 휴대폰이 다시금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성사되었다는 전화였다.서주혁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손끝으로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한 글자를 뱉어냈다.“응.”전화를 끊고 서주혁의 시선은 다시금 비즈니스 정보가 빼곡히 들어찬 컴퓨터를 향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만약 과거였다면... 누군가 그에게 미래의 서주혁이 한 여자에게 푹 빠질 거라고 말해준다면 서주혁은 무조건 웃기지도 않은 유머로 여기며 대충 웃어넘길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장하리가 아래층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방금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손끝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바들바들 떨려 났다. 그는 애써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려 미간을 힘껏 주물럭거렸다.남자라면 알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그리고 들뜬 성욕을 억제할수록 편해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통증이 거세질 뿐이라는 것을.서주혁은 단단해진 아랫도리를 애써 무시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마른 침을 삼키며 침착하게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단단해진 아랫도리는 쉽사리 기가 죽지 않았다.
주방을 떠나던 장하리의 뺨은 여전히 발그레했다.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서보겸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엄마는 아빠를 볼 때마다 설레고 부끄러워한다는 생각을 했다.이게 바로 사랑일까?아빠가 말하길,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서보겸의 기분은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엄마가 아빠를 좋아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빠른 시일 내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장하리가 다시 소파에 앉던 그때, 서보겸의 기분은 눈에 띄게 좋아 보였다.서보겸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장하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서주혁이 말한 대로 확실히 장하리의 존재가 서보겸의 병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어 있었다.장하리는 뉴스로 오늘 밤 대규모의 불꽃 축제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접했다. 장소는 그들이 머무는 별장으로부터 3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이었다.그 소식에 마음이 동한 장하리는 이미 잠든 서보겸을 발견하고는 서주혁과 의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주혁 씨, 저 나가서 좀 돌아다니고 싶은데요.”손에 서류를 들고 있던 서주혁은 그녀의 말에 살짝 움찔하는 듯했다.그의 반응이 미안함을 느낀 장하리가 말을 이었다.“보겸이가 지금 자고 있어서요. 오늘 밤 제원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축제가 불꽃놀이 장인인 이시완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거래요. 저도 한번 보고 싶어서요.”아무 대답 없는 서주혁에 장하리도 다시 몸을 돌렸다.“저 그럼 다녀올게요. 3시간 뒤에 돌아올 거예요.”장하리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같이 가요.”“아니에요, 기사님 차 타고 가면 돼요.”장하리의 말에 서주혁의 기분이 묘하게 좋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은 같은 차에 올라타 불꽃놀이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차 안에 올라탄 장하리는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추위에 몸을 약하게 떨었다.그녀는 제원이라는 곳에 와본 적이 없었지만 창밖으로 스
서주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더니 숨소리마저 불안정해졌다.하지만 장하리는 여전히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 뭔가가 계속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하리는 직접 문을 열고 건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차 문고리를 잡는 순간, 서주혁에 의해 손목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서주혁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장하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앞자리에 앉아있던 비서는 재빨리 칸막이를 올렸다. 그렇게 지금 뒷좌석이라는 공간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장하리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서주혁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만의 착각일지도 몰랐지만 이 순간, 서주혁이 뭔가를 아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서주혁이 누구인가? 제원의 진정한 재벌 2세로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가지 마.”세 글자만 겨우 내뱉은 서주혁이 다시 장하리를 꼭 끌어안았다.장하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저항하는 것도 잊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서주혁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장하리의 손은 천천히 서주혁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고개를 든 서주혁은 그녀를 밑으로 내리눌렀다.그의 입술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이 다가왔다.장하리의 눈이 크게 떠지며 손을 들어 서주혁을 밀어내려 했지만 연약했던 그녀의 힘은 서주혁에게 힘없이 물속에 내던져진 돌처럼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다.“음, 이거 놔요.”서주혁의 손이 장하리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장하리는 얇은 옷 너머로 무언가가 자신을 계속 짓눌러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알 수 없는 물체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웠다.순식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이미 서주혁의 허리 위에서 다리를 벌린 채 앉아있었다.서주혁의 옷은 단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었지만 그의 손을 여전히 자신의 허리 뒤에 놓인 채 두 사람의 거리를 점점 좁혀왔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달한 자동차는 적당한 위치를 찾아 멈춰 섰다. 그 자리는 최적의 관측 장소였고 아래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 서 있었다.그 자리는 분명 예약하고 구매해야 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들이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한 건 분명 임시로 결정한 일이었다. 보아하니 이 구역의 모든 위치를 전부 사들인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없었고 그들의 차만 조용히 멈춰서 있을 뿐이다.차 문을 열자 바깥에서는 마침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장하리는 여전히 그의 품에 엎드려 있어 고개만 돌리면 창밖을 볼 수 있었다.바깥의 찬 바람이 불어와 차 안의 애매한 분위기를 중화시켰다.서주혁의 손바닥은 여전히 장하리의 등에 살포시 놓여 있었고 마치 아이를 달래듯 툭툭 두드려주기도 했다.방금 가라앉았던 부끄러움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장하리가 막 몸을 일으키자 서주혁은 또다시 그녀를 꾹 누르며 눕혔다.“제 다리 위에 앉아요.”장하리는 다시금 양 볼이 붉어지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괜찮아요.”“그럼 또 해보고 싶어요? 조금 전에 당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주혁의 입술은 장하리에 의해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어둑어둑한 등불을 빌려 서주혁은 온통 노여움으로 가득 찬 장하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 입 다물어요. 제발.”순간 재밌는 생각이 스친 서주혁의 눈가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흘러나왔고 그는 일부러 혀끝을 내밀어 그녀의 손바닥을 쓱 핥았다.눈동자가 매섭게 움츠러들고 장하리는 순간 자신의 손을 그냥 버리고 싶었다.“서주혁, 당신 정말...”정말 어처구니없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로군.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손을 등 뒤에 숨기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그때의 이상한 느낌이 또다시 치밀어 올랐다. 서주혁은 정말 그녀를 유혹하고 있다.예전에는 가벼운 유혹에 그쳤는데 지금은 정말 진지하게 폭탄을 날리고 있다.서주혁은 제원에서도 인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었다. 만약 온 힘을 다해 여자를 유혹하려 한다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
차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비서도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는 바람에 그 공간에는 오직 둘만 남게 되었다.장하리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서주혁은 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같은 시각, 서주혁은 혹여나 장하리가 도망갈까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장하리를 삼켜버릴 듯 날카로웠다.서주혁이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 누가 당해낼 수 있겠는가?결국, 장하리는 고개를 숙이며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것 봐. 또 시작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미남 계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 서주혁은 자신의 외모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윽고 서주혁은 장하리의 손을 끌어당겨 그녀의 손끝을 살짝 깨물고는 다시 자신의 벨트 위에 가져다 놓았다.서주혁의 뜻은 분명했다. 할건지 물어보는 것이다.장하리는 자신의 손을 거둬들이고 싶었지만 막상 그의 눈빛을 마주하니 없던 힘도 전부 빠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그러자 서주혁은 그녀의 손을 가져다 손쉽게 벨트의 단추를 풀었다.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서는 마치 금기를 깨뜨리는 스위치가 된 것만 같았다.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주혁은 제대로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관계를 맺는 동안 장하리는 줄곧 손을 유리에 받친 채, 혹시라도 몸이 튕겨 나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4년을 굶주린 사람이 배를 채우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그렇게 자동차는 한밤중까지 그곳에 주차되어 있었고 마지막에 이르러 장하리는 맥없이 시트에 주저앉았다.그러나 호텔에 도착한 후에도 그는 장하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너무 피곤했는지라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서주혁에 화가 난 장하리가 있는 힘껏 그를 걷어찼다.그러자 서주혁은 또 그녀를 살살 달래주며 이제 명분을 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물었다.장하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서주혁도 그녀가 잠이 들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써가며 괴롭혔다.결국, 그녀
장하리는 이제야 비로소 의식이 몽롱한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어색한 분위기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그녀는 지금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서주혁은 휴대폰을 잘 챙겨두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번복하고 싶어요?”그 말에 장하리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고 이젠 목까지 화끈거렸다.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가 그녀는 비로소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입을 열었다.“아니, 전 그냥...”두 사람 사이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하물며 그녀는 방금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서주혁은 정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단 말인가?너무 다급한 나머지 서주혁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착각도 들었다.하지만 어느 쪽이든 서주혁의 실력은 장하리를 훨씬 능가하는데 그녀에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어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장하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다만 그의 얼굴과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하리의 마음도 점점 그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사실 자세히 계산해 보면 두 사람이 강성에서 알게 된 이후로 서주혁은 정말 그녀에게 단 한 번도 해를 끼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다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마음속의 저울은 이미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계속하여 품에 안겨있는데 서주혁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뭐 먹고 싶어요?”밤새 뒤척이며 오랫동안 잤으니 지금 시각이면 분명 배고플 것이다.하지만 장하리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자 그는 사람을 시켜 준비를 시작하도록 당부했다.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 장하리는 문득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씻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아마 그녀가 잠든 사이 씻겨준 모양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장하리의 양 볼은 또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거실에 나갔을 때 서주혁의 눈앞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기분이 좋은 것인지 서주혁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가를 도무지 주체할 수
장하리는 순간 멈칫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서보겸이 이미 그녀의 다리에 매달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엄마, 뭐 먹을 거예요?”서보겸은 장하리에게 저녁으로 뭘 먹을지 묻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이때 서주혁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어제 밤엔 아주 잘 먹었지.”장하리는 몸이 터질 듯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낮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주혁 씨!”서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만지작거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 말의 다른 의미를 알 리 없는 서보겸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순수하게 물었다.“어제 뭐 먹었어요?”장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녀는 손으로 서보겸의 귀를 막으며 서주혁을 노려보았다.“아이한테 신경 좀 써요!”서주혁은 다가와서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오늘 밤도 먹을래요?”장하리는 그에게 따귀를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갑자기 이렇게 뻔뻔해진 거지? 아니 원래 진지한 남자들도 상황이 변하면 이렇게 변해버리는 걸까?장하리는 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귀 끝까지 빨갛게 변한 모습을 본 서주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만 놀릴게요.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서보겸은 귀가 막혀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장하리에게서 서주혁으로, 서주혁에게서 다시 장하리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장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더 이상 장난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다행이었다.“가벼운 음식으로 해요.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서주혁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알았어요. 내가 준비할게요.”그 입맞춤은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졌다. 장하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아이에게는 천천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서주혁은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장하리는 서보겸의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서주혁이 자리를 떠난 뒤 장하리는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느꼈다. 서보겸의 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