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꿈속에 나타났던 사람은 분명 서주혁이었다.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입술이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려 났다.그때, 마침 서주혁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장하리의 침대 옆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꿈 때문인지 장하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순간 뒤로 물러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서주혁을 향한 장하리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그녀는 손에 이불을 꽉 쥐고 있었다.그러자 서주혁은 허공에서 갈 길을 잃은 손끝을 살짝 움츠렸다가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악몽 꿨어요?”장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있어 그 꿈은 확실히 악몽이었다.심지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서주혁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여운이 깊은 악몽이었다.장하리는 며칠 전의 서주혁은 이미 충분히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꼭 냉혹하고 무자비한 군주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꿈속의 서주혁은 차마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악랄했다. 마치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고 모욕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경찰서에서의 대화는 장하리의 존엄을 바닥에 짓밟고 뭉개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장하리의 기억 속에서 그녀와 서주혁은 그렇게 인연이 깊은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남자의 꿈을, 심지어 이토록 무서운 꿈을 꾸게 된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장하리는 진심으로 꿈속에 다시 들어가 괴롭힘을 당하는 자신의 뺨을 한 대 내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왜 그렇게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한 남자에게 매달린단 말인가? 대체 남자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자신의 인생을 망칠 필요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고 분해도 그건 결국 꿈일 뿐 현실이 아니다. 만약 꿈속의 감정을 현실까지 끌고 온다면 그건 장하리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유치원엔 내일 말해둘게. 내일부터 계속 출근해요. 아
장하리는 침대에 앉아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지만 어디서 본 건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아래층에 내려가 거실 문을 열어보니 그곳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장하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여행 중이어서 집에는 그녀뿐이었다.어느덧 밤이 되었고 장하리는 방의 불을 켰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인터폰 화면을 보니 서보겸이 서 있었다.“선생님, 먹어요.”서보겸의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2인분의 음식이 담긴 크고 작은 식판이 놓여 있었다.장하리는 얼른 문을 열고 쟁반을 받아서 들었다.‘서주혁도 참, 어떻게 어린애한테 이렇게 무거운 걸 들게 한담.’“보겸아, 손 아프지 않아?”서보겸은 집 안을 둘러보며 눈망울을 반짝였다. 드디어 엄마가 사는 집에 들어왔다.그의 행동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이자 장하리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녀는 한 손으로 쟁반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서보겸의 손을 잡아 식탁으로 데려갔다.서보겸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꼭 작은 토끼 같았다.장하리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식판을 열었다. 안에는 밥과 함께 먹음직스러운 요리 몇 가지가 들어 있었다.“아빠가 만든 거예요.”‘서주혁이?’장하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네가 먹는 음식을 전부 아빠가 만들어 주시는 거야?”서보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빠, 최고.”장하리는 서주혁의 독단적인 성격 탓에 서보겸이 말수가 적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가 아들에게 이렇게 잘해줄 줄은 미처 몰랐다. 그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더 좋아졌다.“보겸아, 먹자.”서보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이의 좋아하는 마음이 숨겨지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애정이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장하리는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며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다음엔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돼. 내가 너희 집에 가서 같이 먹을게.”
다음 날 장하리가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동료들의 눈빛에는 묘한 멸시가 서려 있었다.그녀가 막 자리에 앉았을 때 옆에 있던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하리 씨, 가서 해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영 씨가 당신이 밖에서 몸을 팔아서 이제는 부자를 만나 일도 그만둘 거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장하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문득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전아영이 떠올랐다.그때 전아영이 그녀의 뒤에서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전아영의 아버지는 강성에서 관직을 맡고 있어 약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전아영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으로 자랐다.게다가 그녀는 남자에 대해 상당히 까다로웠고 사무실에서 부잣집으로 시집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늘어놓곤 했다.하지만 강성은 작은 도시일 뿐이었기에 이곳에서 말하는 부잣집은 제원에 가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눈이 높았던 전아영은 이번에 아예 서주혁을 노렸다. 반드시 서주혁을 차지하겠다는 심산으로 말이다.그러다 병원에서 장하리를 만났을 때 서주혁까지 목격하게 되자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장하리가 서주혁을 따라 병원까지 쫓아온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이 년이 평소에는 고상한 척하더니 돈 많은 남자만 보면 누구보다 앞장서잖아!’게다가 무슨 수를 써서인지 서보겸이 장하리의 반으로 배정된 일까지 생각하니 더욱 화가 치밀었다.어제 장하리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전아영은 장하리가 부자에게 붙어먹어 산부인과를 간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유치원에는 여자 선생님이 대부분이어서 워낙 수다를 떨기 좋아하던 터라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장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침에 학교에 올 때부터 찝찝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곧바로 전아영을 찾아갔더니, 그녀는 다른 선생님들과 한창 수군거리고 있었다.“내가 직접 본 거니까 가짜일 리가 없어요. 사생활이 엉망이면서 우리 앞에서는 온갖
저녁 무렵, 원장이 장하리를 원장실로 불렀다. 원장실 문을 열자마자 사무용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중년 남자가 장하리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옆에는 원장이 무척이나 공손한 태도로 서 있었다.전아영은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앞에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장하리가 들어오자 그녀는 냉소적으로 코웃음을 쳤다.잔뜩 긴장한 원장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도 이전부터 장하리 집안에 어느 정도 배경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주혁이 서보겸을 장하리의 반에 배정해달라고 직접 지목하지 않았더라면 원장은 전아영의 반으로 보냈을 것이다.전아영은 그날 밤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그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하리와 전아영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그것이 전아영의 아버지에게까지 전해져 직접 찾아오게 만든 상황이었다.전필준은 강성에서 높은 관직은 아니었지만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어서 전화를 돌리기만 해도 오늘 원장에게 큰 곤란을 줄 수 있을 터였다.그래서 장하리를 보자마자 원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장 선생님,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선생님이 어떻게 싸움을 할 수 있어요? 전아영 선생님에게 사과하세요. 그러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장하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에 서 있었다. 그녀의 말투는 차분하고 단호했다.“아영 씨가 먼저 제에 대해 헛소문을 퍼뜨렸잖아요. 그럼 먼저 사과해야 할 사람은 아영 씨 아닌가요? 아영 씨도 선생님인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리고 원장 선생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자기 자식을 때렸다고 지금 부모가 나서는 건가요?”이 말에 원장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전아영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장하리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싸가지 없는 년, 어디서 잘난 척이야!”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장하리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원장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리에 앉아 있던 전필준이 전아영을 제지하며 장하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카페에 들어와 장하리가 자리에 앉자 전아영은 가서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이 카페는 유치원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선생님들의 휴식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소였다.지금은 점심시간도 아닌 데다 다른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기에 카페 안에는 장하리와 전아영 두 사람뿐이었다.전아영은 몰래 커피잔에 약 가루를 넣고 저은 뒤 장하리에게 건넸다.“하리 씨, 마셔요.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말해 주시면 바로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사실대로 말할게요. 이게 다 제 잘못만은 아니라니까요? 그날 하리 씨가 무척 당황한 것처럼 보였거든요. 제가 불렀는데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제가 뭔가 수상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장하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굴에는 여전히 냉담한 기색이 감돌았다.그녀는 전아영과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아영은 비록 집안에 관직에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자주 언급하지 않았지만 평소에 유치원에서 꽤 오만한 태도를 보였고 게다가 원장도 그녀에게 어느 정도 예의를 차렸기에 그녀는 누구든 험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강성 유치원은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유치원으로, 학생들의 부모 대부분이 부유층이었다. 전아영이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부자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전필준이 작은 관직을 맡고 있긴 하지만 요즘은 나라에서 감시가 워낙 엄격해 뇌물을 챙긴다고 해도 고작 수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게 전부였다. 진정한 부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명품 가방 하나 사는 데만 수억 원을 단번에 쓰기도 하니, 전아영은 그런 삶을 동경하며 자신에게 맞는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고른 사람이 바로 서주혁이었는데 그 기회를 장하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장하리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자 전아영이 말을 이었다.“하리 씨도 이제 나이가 있고 결혼할 때도 됐잖아요. 우리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요?”순간 장하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전아영의 아버지?아까 본 그 뱃
전아영은 이내 장하리의 사무실에서 서보겸을 찾아냈다. 아이는 속상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를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하리가 없으니 홀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었다.전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보겸아, 혼자 여기서 뭐 하고 있어?”그녀는 서보겸에게 다가가 그의 뺨이 부어오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필준이 때린 손길이 얼마나 거셌는지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전아영은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서보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서보겸의 눈에 혐오감이 스치며 그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전아영은 사실 서보겸을 진심으로 예뻐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서보겸의 뒤에 있는 서주혁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척하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그녀는 서보겸이 몹시 싫었다.어차피 전아영은 앞으로 서주혁과 결혼할 계획이었다. 서보겸은 기껏해야 그녀가 거둬들일 양자에 불과했다. 지금 그가 맞은 것도 결국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만약 이 아이가 계속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중에 서주혁과 결혼한 후에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이런 생각이 들자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차가워졌다.“보겸아, 말 잘 들을 수 있지? 네가 맞은 일은 절대 아빠에게 말하면 안 돼. 네 아빠는 지금 회사 일로도 바쁘시잖아. 이렇게 사소한 일로 귀찮게 하면 아빠는 분명 널 싫어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너도 이제 알아둬. 네 아빠는 곧 나랑 결혼할 건데, 그때부터는 내가 널 관리할 거야. 네가 하루에 용돈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전부 내 허락을 받아야 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말 잘 들어야겠지?”전아영은 서보겸을 힘껏 붙잡고 그의 턱을 거칠게 쥔 채 뺨을 살폈다.얼굴이 너무 심하게 부어올라 당분간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에 서주혁이 이 아이를 데리러 올 텐데 당장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그녀는 한참 눈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아니면 이렇게 할까? 아빠가 널 데리러 오면
전화를 끊은 후 서보겸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비비며 엄마가 무사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한편, 장하리는 이미 전필준의 집에 끌려와 있었다. 그 집은 한 층에 한 가구가 살고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집 전체가 전필준의 소유였다.장하리는 그 늙은 남자에게 부축되어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쓰러졌다. 그녀의 머리가 나무로 된 소파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순간적으로 혹이 생겼다. 그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필준이 다급하게 바지를 벗는 모습이었다.“하리 씨, 오늘 원장실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어요. 저도 아직 결혼 안 했고 하리 씨도 미혼이라고 들었는데 우리 서로 인연인 것 같네요. 자, 이제 먼저 할 일부터 하고 나중에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때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바깥에 있는 여자들과도 곧 정리할 테니까.”장하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남자가 다가오자 그녀는 서둘러 옆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약기운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져 도망치기가 쉽지 않았다.전필준은 번번이 허공을 덮치고 화가 났지만 이내 다시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이라며.“자기야, 자꾸 어디로 도망가는 거야? 오늘 당신을 구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 꿈도 꾸지 마. 내 손에 들어온 여자는 결국 내 침대에 오르게 되어 있어!”장하리는 앞으로 몇 걸음 걷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전필준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채 단번에 그녀를 끌어당겼다.그의 기름진 얼굴을 보는 순간 장하리는 너무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놔! 이거 놔!”분명히 분노에 찬 목소리였지만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이상하게도 그를 더 자극하는 듯했다.전필준이 다급하게 그녀의 치마를 들추려고 할 때 장하리가 말했다.“생리 중인데 더럽지 않아요?”뜻밖에도 그 말을 듣고 전필준의 표정은 더욱 흥분으로 일그러졌다.“잘 됐군. 아직 생리 중인 여자랑은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장하리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장하리는 자신의 옷자락을 꼭 그러쥐었다. 서주혁을 보는 순간 죽다가 살아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제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귓가에는 전필준과 전아영의 비명 섞인 애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장하리의 옷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있었다.서주혁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장하리의 어깨에 덮어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장하리는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그러다 서주혁이 그녀를 안아 올리고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방금 전필준이 자신을 깔아뭉개고 덮치려 했을 때 장하리는 정말로 끝이라고 생각했었다.동료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없었고 그저 자주 가는 카페라서 전아영이 그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장하리는 머리를 서주혁의 가슴에 기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서주혁은 그녀를 안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뒤에서는 전필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차에 태워졌을 때도 장하리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잠시 후 서보겸이 차에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서보겸은 여전히 얌전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장하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자리에서 전아영과 전필준을 다시 찾아가 수십 대씩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손을 대다니.차 밖에는 강성의 여러 관계자들이 서 있었고 원장도 그들 틈에 섞여 있었다.원장의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곳에 있던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대투자자의 아들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맞았고 투자자가 아끼는 여자가 지역 관료에게 강간당할 뻔했다. 이런 일을 겪고도 강성이 무사할 수 있을까?원장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불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다른 이들도 침묵하고 있었다.서주혁은 그들에게 한마디의 설명도 하지 않고 비서에게 차를 몰라고 지시했다.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장하리는 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