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대성통곡을 하는 장하리의 얼굴을 보다 보니 서주혁은 조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아마 장하리가 그의 앞에서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는 건 처음이라지?장하리는 대부분의 고통을 묵묵히 홀로 삼켜내는 편이었다. 서주혁이 아무리 상처를 줘도 단지 예쁜 두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사랑, 슬픔, 모든 감정이 그 눈에 숨겨져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거의 울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침대에 누워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울고 있는 장하리의 모습을 보니 서주혁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동시에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비열함을 느꼈다.오직 서주혁만이 그녀를 이렇게 울릴 수 있다.과거에도, 지금도.몸 안의 무서운 기세가 사그라들고 서주혁의 손가락은 끝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장하리가 막 한숨 돌리려는데 곧이어 서주혁이 면 한 겹을 사이에 두고 꾹 누르는 것이 느껴졌다.순간 머릿속은 팡 터져버렸고 얼굴은 활활 불타오르는 듯 빨갛게 달아올랐다.“변태! 미친놈! 이거 놔! 나가 죽어버려!”마음속 가장 소중한 곳을 짓밟힌 듯 장하리는 생각나는 대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그런데도 장하리가 끊임없이 되뇌는 것은 미친놈이라는 세글자뿐이었다.더러운 욕이 그토록 많은데 막상 하려니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그러나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장하리의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었다.장하리는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서주혁이 또다시 그녀의 몸을 짓누르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재인 법이다.그녀의 외투는 이미 벗겨진 상태였고 신발도 걷어차여 애먼 곳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그때, 서주혁이 침대 위의 이불을 잡아당겨 두 사람을 덮어씌웠다.장하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 손을 대지 않아도 그녀를 모욕할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다.너무나도 다행이지만 만약 서주혁이 정말 스킨쉽을 이어나갔더라면 장하리는 아마 내일 아침 벽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렸을 것이다.서주혁은 장하리의 옆에 누워 어둠 속에서도
그러나 장하리는 반드시 순종해야만 했다. 계속 저항했다가는 서주혁이 정말 다른 짓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여 그녀는 깊이 심호흡을 하고 아무렇게나 한 페이지를 넘기더니 곧바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장하리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고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하지만 그런데도 장하리의 목소리를 들으니 서주혁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코끝에는 여전히 그녀의 부드러운 숨결이 남아있었고 입가에 환한 미소를 그린 채 장하리의 허리를 품에 끌어안고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하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고 마지막에는 그녀마저 잠이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오늘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온 데다 계속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탓에 이제 긴장이 풀리니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그렇게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낮아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고 서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책을 치우고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장하리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눈은 여전히 부어 있었고 꿈속에서도 마냥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서주혁은 손끝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그려보았다.분명히 눈매는 4년 전과 같지만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지금은 반항심이 가득했다.곧이어 서주혁은 몸을 숙여 장하리의 목라인에 입술을 포개어 세심하면서도 부드럽게 키스를 이어갔다.서주혁은 일부러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장하리는 어딘가 간지럽기만 할 뿐 너무 졸려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그렇게 날이 밝아올 때까지 키스를 하고 나서야 서주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비로소 장하리에게서 떨어졌다.장하리가 깨어났을 때 곁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멍하니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정말 꿈만 같았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하리는 완전히 깨어났다. 그건 꿈이 아니다.순간 수치심이 몰려온 장하리는 아예 이곳에서 뛰어내려 탈출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집 안의 창문
양보?대체 언제 양보를 한 적이 있단 말인가? 서주혁이 무슨 면목으로 이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는 거지?말이 통하지 않는 남자와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 거지? 서주혁은 독재적이고, 유아독존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다.순간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서보겸이 아직 거실에 있기에 너무 큰 소리로 욕을 하기도 난감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을 앞세우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대해야만 한다.“당신 일부러 보겸이를 위해 강성까지 와서 유치원에 보내놓고 이제 와서 다시 데려가려고요? 보겸이의 기분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서주혁 씨는 인생에서 당신의 감정만이 가장 중요한가요?”장하리의 말에 서주혁은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차갑게 굳어버린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자포자기한 듯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어차피 내가 뭘 해도 당신은 날 좋아하지 않을 거잖아요.”그녀를 놓아주고 서주혁은 다시 냄비 안의 요리를 볶기 시작했다.그러자 장하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듯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협상을 시도했다.“저는 제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애초에 저는 서주혁 씨의 마음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당신이 저에게 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이 높은 여자도 아니에요. 당신 같은 신분의 남자라면 원하는 여자도 전부 얻을 수 있겠죠.”서주혁은 빵과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으며 담담하게 답했다.“하리야, 난 오직 너만을 원해.”그 말 한마디에 장하리는 갑자기 무언가에 물린 듯 심장으로부터 거센 통증이 몰려왔고 심지어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껴졌다.낯선 감정에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그녀의 안색은 더욱 차가워졌다.그러자 서주혁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밥 먹으러 나와요. 다 먹고 출발하자.”한편, 서보겸은 의자에 앉아 서주혁과 장하리를 번갈아 보았다.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음을 금방 눈치챈 서보겸은 눈시울을 붉히며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나이프와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