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장하리는 반드시 순종해야만 했다. 계속 저항했다가는 서주혁이 정말 다른 짓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여 그녀는 깊이 심호흡을 하고 아무렇게나 한 페이지를 넘기더니 곧바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장하리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고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하지만 그런데도 장하리의 목소리를 들으니 서주혁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코끝에는 여전히 그녀의 부드러운 숨결이 남아있었고 입가에 환한 미소를 그린 채 장하리의 허리를 품에 끌어안고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하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고 마지막에는 그녀마저 잠이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오늘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온 데다 계속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탓에 이제 긴장이 풀리니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그렇게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낮아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고 서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책을 치우고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장하리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눈은 여전히 부어 있었고 꿈속에서도 마냥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서주혁은 손끝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그려보았다.분명히 눈매는 4년 전과 같지만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지금은 반항심이 가득했다.곧이어 서주혁은 몸을 숙여 장하리의 목라인에 입술을 포개어 세심하면서도 부드럽게 키스를 이어갔다.서주혁은 일부러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장하리는 어딘가 간지럽기만 할 뿐 너무 졸려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그렇게 날이 밝아올 때까지 키스를 하고 나서야 서주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비로소 장하리에게서 떨어졌다.장하리가 깨어났을 때 곁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멍하니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정말 꿈만 같았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하리는 완전히 깨어났다. 그건 꿈이 아니다.순간 수치심이 몰려온 장하리는 아예 이곳에서 뛰어내려 탈출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집 안의 창문
양보?대체 언제 양보를 한 적이 있단 말인가? 서주혁이 무슨 면목으로 이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는 거지?말이 통하지 않는 남자와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 거지? 서주혁은 독재적이고, 유아독존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다.순간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지만 서보겸이 아직 거실에 있기에 너무 큰 소리로 욕을 하기도 난감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을 앞세우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대해야만 한다.“당신 일부러 보겸이를 위해 강성까지 와서 유치원에 보내놓고 이제 와서 다시 데려가려고요? 보겸이의 기분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서주혁 씨는 인생에서 당신의 감정만이 가장 중요한가요?”장하리의 말에 서주혁은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차갑게 굳어버린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자포자기한 듯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어차피 내가 뭘 해도 당신은 날 좋아하지 않을 거잖아요.”그녀를 놓아주고 서주혁은 다시 냄비 안의 요리를 볶기 시작했다.그러자 장하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듯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협상을 시도했다.“저는 제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애초에 저는 서주혁 씨의 마음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당신이 저에게 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이 높은 여자도 아니에요. 당신 같은 신분의 남자라면 원하는 여자도 전부 얻을 수 있겠죠.”서주혁은 빵과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으며 담담하게 답했다.“하리야, 난 오직 너만을 원해.”그 말 한마디에 장하리는 갑자기 무언가에 물린 듯 심장으로부터 거센 통증이 몰려왔고 심지어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껴졌다.낯선 감정에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그녀의 안색은 더욱 차가워졌다.그러자 서주혁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밥 먹으러 나와요. 다 먹고 출발하자.”한편, 서보겸은 의자에 앉아 서주혁과 장하리를 번갈아 보았다.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음을 금방 눈치챈 서보겸은 눈시울을 붉히며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나이프와
서보겸을 바라보는 표정이 자애로울수록 장하리는 마음속으로 서주혁에게 화가 났다.식사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자신을 데리러 온 경호원 몇 명을 발견했다.서주혁은 정말 장하리를 제원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서주혁과 얘기해보려 애썼다.“서주혁 씨, 우리 얘기 좀 잘 해보면 안 돼요? 그래요, 당신이 정말 나를 좋아한다 쳐요, 그런데 정말 좋아한다면 제 마음 좀 들여다봐 주면 안되겠어요?”같은 시각, 서주혁은 이미 서보겸을 차에 태웠고 이제 그 자리에는 그와 장하리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하리야, 네 마음속에 내가 있긴 해? 네 미래에 내가 있긴 하냐고. 없으면 듣고 싶지 않아.”그러자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장하리는 어떻게 반박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그녀는 정말 강성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장하리는 강성이 좋았다. 게다가 제원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온몸이 떨리고 소름이 돋아 장하리는 제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욱 거북했다.다시금 감정이 복받쳐 오르자 장하리는 갑자기 복통을 느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곧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챈 서주혁이 그녀를 불렀다.“하리야?”그러나 서주혁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장하리는 점점 강해지는 통증에 옆에 천천히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을 쉴 수 없었다.“하리야, 왜 그래?”당황한 서주혁이 손을 들어 장하리의 이마를 살폈지만 손에 닿는 것은 식은땀뿐이었다.“병원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장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여전히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서주혁은 즉시 차를 몰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잠시 후, 의사가 수액을 투여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건강을 잘 챙겨야겠어요. 몸이 너무 허약해요. 아이를 낳은 적 있죠? 그런데 몸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어요. 주의하세요. 그리고 이제 둘째는 갖지 마세요. 안 그래도 몸이 어렸을 적부터 영양실조였던 모양인데 어른이 되어서도 장기간 스트레스
서주혁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여전히 장하리의 두 발을 움켜쥐고 있지만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도무지 말이 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장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정말 백번 양보한다고 쳐요. 정말 저를 좋아한다면 먼저 제 의사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 사과를 원하는데 당신은 저에게 강제로 배를 쥐여주면서 속으로는 제가 주제를 모른다고 욕하고 있잖아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서주혁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장하리의 발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주었다.“제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상의할 필요 없어.”장하리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꽉 막혀있어 소통할 수 없다.어쨌든 오늘 제원으로 돌아가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니 아직 기회가 있다. 수액 한 병을 다 맞고 나서 장하리는 자신의 배를 감싸며 말을 꺼냈다.“나 죽 먹고 싶은데 밑에 가서 사다 주세요.”그러자 서주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을 사러 내려갔다.그가 떠나자마자 장하리는 또 문을 열고 입구에 있는 경호원에게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경호원은 남자이기에 화장실 내부까지 따라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성공적으로 화장실에 진입한 장하리는 화장실 안의 큰 창문을 보고는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을 끌고 가 그 위를 밟고 기어나갔다.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녀는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피해 곧장 계단으로 내려갔다.맨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장하리는 우연히 동료 전아영을 만나게 되었다.심지어 정면으로 부딪쳤고 전아영의 눈에는 순간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이번에 장하리에게 자리를 빼앗긴 후, 전아영은 며칠 동안 홀로 화를 삭여야만 했다. 서주혁이 매일 유치원에서 아들 서보겸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을 보면 그가 아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만약 그녀가 서보겸의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면, 겸사겸사 그대로 서주혁의 침대로 올라갔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성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두컴컴한 방안을 보며 장하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자기 전에 불을 끈 기억이 없는데 누가 끈 거지?쓱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자리에 앉은 장하리가 무심코 침대 옆을 바라보았다.침대 옆 1인용 소파에는 웬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바깥의 희미한 불빛을 통해 그녀는 곧바로 그 실루엣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장하리는 마치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마냥 멍해지고 머릿속은 펑 터질 것만 같았다.하루 종일 도망만 다녔는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서주혁이 옆에 있다고? 말이 돼?허둥지둥 방안의 조명을 켜보자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역시나 서주혁이었고 그의 안색은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고 말로 이룰 수 없는 공포가 발바닥으로부터 파도처럼 밀려왔다.그러나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물고 불도 붙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물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 같아 보였다.담배꽁초는 이미 한참 동안 타액에 절여져 잔뜩 찌그러져 있었고 장하리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 것을 보고 서주혁은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자신의 기세를 꺾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죽은 먹을 거예요? 아직 따뜻해요.”그의 손가락이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장하리는 그제야 테이블 위의 냄비에 죽 한 그릇이 데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윽고 서주혁이 몸을 일으켰다. 온갖 고생은 전부 겪은 듯 옷가지와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것을 보니 도착한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그는 그릇을 꺼내 숟가락으로 두어 번 젓고는 다시 침대 옆에 앉아 장하리에게 그릇을 건넸다.“잠에서 깼으면 좀 먹어요.”장하리는 갑자기 눈앞의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화를 낼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슬퍼 보였다.누군가의 슬픔은 한바탕 크게 울고 밖으로 토해내면 그만이지만 서주혁의 슬픔은 내성적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러한 모습은 서보겸도 그를 똑 닮았다. 하지만
서주혁의 한마디에 장하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서주혁의 성격을 극혐하는 건 맞지만 어딘가 처량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게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잘해주니 장하리는 괜스레 마음이 불안해졌다.그들은 만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었는데 서주혁은 장하리를 강제로 제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니 그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서주혁은 또 하필 소통이 잘되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이라 가끔 장하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그녀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방안은 조용했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밤새도록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서주혁도 지쳐버린 것이다. 그는 장하리의 한 손을 잡고는 그녀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다.장하리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에 닿은 수염 자국이 쿡쿡 사람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장하리는 그대로 침묵을 지킬 예정이었지만 서주혁이 다시 한번 그녀에게 물었다.“아직도 배가 아파?”장하리는 아직 생리 중인 데다 밤새 너무 많은 고생을 했고 바깥에는 또 비가 내리고 있는데 오는 길에 맞진 않았을까?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서주혁은 장하리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조금요.”그 말에 서주혁은 곧바로 이불을 젖히고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장하리는 서주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번 정도 그를 피했고 놀랍게도 서주혁은 계속하여 질척거리는 것이 아닌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고 잠을 청했다.“발은 내가 따뜻하게 녹여줄 테니 얼른 자.”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주혁은 두 다리로 장하리의 발을 걸어 그의 두 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뜬금없어.그러나 장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다.그녀가 잠들고 서주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곳에 오기까지 서주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 속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이곳은 장하리의 고향이 아니다. 게다가 제대로 등록되지 않은 불법 차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서주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장하리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인지 아닌지를 간절히 확인하고 싶었다. 제원은 두 사람의 시작이 담겨있는 곳이었고 서주혁은 장하리를 제원으로 데려가 그녀의 등장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서주혁은 강성이 익숙하지 않았다. 하여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장하리가 언제라도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하여 서주혁은 장하리를 곁에 묶어두고 싶었다. 가장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그녀가 그의 코앞에 머물러있기를 원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장하리는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어젯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한편, 서주혁은 이미 아침을 사서 옆 침대맡에 두었다.장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 천천히 씻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지만 장하리는 서주혁이 큰 꼼수를 숨겨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그녀를 괴롭힐 것 같았다.그러나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치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장하리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하는 듯 서주혁은 줄곧 장하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에 장하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서주혁에게 물었다.“서주혁 씨, 대체 뭘 원하는 겁니까?”그러자 서주혁은 다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며 마침내 장하리의 앞에서 두손 두발 전부 들었다.“제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강성에 계속 있고 싶다고 했었죠?”“네.”“그럼 저도 강성에 머물면서 당신 집 맞은편에 살 거예요. 보겸이가 하리 씨를 엄청 좋아해요. 그러니까 앞으로 당신이 매일 와서 보겸이와 함께 저녁 한 끼 먹어줘요. 그래도 돼요?”갑자기 부드러워진 서주혁의 말투에 장하리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아니나 다를까, 서주혁은 줄곧 첫 만남부터 타인의 의사는 거의 묻지 않고 항상 멋대로 결정을 내리곤 했었다.그런데 지금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묻고 있다.갑자기 달라진 서주혁의 모습에
디저트를 가지고 온 서주혁은 음식을 장하리의 눈앞에 내려놓았다.순간 미안한 감정이 든 장하리가 우물쭈물하자 서주혁이 먼저 물었다.“먹고 강성으로 돌아갈래? 하리 넌 기억을 잃었을 테니 아직 이곳에 익숙하지 않잖아. 돌아가서 계속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고 매일 보겸이와 저녁만 먹어주면 돼. 너한테는 다른 일을 강요하지 않을게.”장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다.다 먹은 후, 그녀는 서주혁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차에 탄 후 자동차가 슈퍼마켓을 지나자 서주혁은 또 차에서 내려 간식을 사주기도 했다.“네가 배고플까 봐... 차에서 먹어.”장하리는 타인이 그녀에게 잘해주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그녀에게 잘해주면 장하리는 항상 배로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앞 좌석에서 운전하던 비서가 백미러를 통해 그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서주혁은 약간의 결벽이 있는 탓에 특히 차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하물며 간식을 먹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어떤 간식이든 냄새가 남기 때문이다.그런데 현재 서주혁은 직접 장하리에게 간식을 먹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순순히 간식을 받아먹는 장하리의 모습을 보다 보니 무언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심장이 쿡쿡 쑤셨다.그의 기억 속에서 서주혁과 장하리 사이에는 이토록 평화로운 추억이 많지 않았다.4년 전 서주혁은 사사건건 장하리를 모욕하며 괴롭혔고 4년 후 다시 마주쳤을 때는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날카롭게 맞섰다. 그러니 지금처럼 따뜻하게 서로를 대하는 장면은 정말 보기 드물었다.심지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하지만 그들의 아이는 어느새 이미 네 살이 넘었고 그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실패가 담겨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편으로서의 서주혁의 실패이다.한편, 오물오물 간식을 받아먹는 장하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주혁이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장하리는 순간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어리둥절한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