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혁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여전히 장하리의 두 발을 움켜쥐고 있지만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도무지 말이 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장하리는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정말 백번 양보한다고 쳐요. 정말 저를 좋아한다면 먼저 제 의사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 사과를 원하는데 당신은 저에게 강제로 배를 쥐여주면서 속으로는 제가 주제를 모른다고 욕하고 있잖아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서주혁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장하리의 발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주었다.“제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상의할 필요 없어.”장하리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꽉 막혀있어 소통할 수 없다.어쨌든 오늘 제원으로 돌아가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니 아직 기회가 있다. 수액 한 병을 다 맞고 나서 장하리는 자신의 배를 감싸며 말을 꺼냈다.“나 죽 먹고 싶은데 밑에 가서 사다 주세요.”그러자 서주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을 사러 내려갔다.그가 떠나자마자 장하리는 또 문을 열고 입구에 있는 경호원에게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경호원은 남자이기에 화장실 내부까지 따라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성공적으로 화장실에 진입한 장하리는 화장실 안의 큰 창문을 보고는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을 끌고 가 그 위를 밟고 기어나갔다.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그녀는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피해 곧장 계단으로 내려갔다.맨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장하리는 우연히 동료 전아영을 만나게 되었다.심지어 정면으로 부딪쳤고 전아영의 눈에는 순간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이번에 장하리에게 자리를 빼앗긴 후, 전아영은 며칠 동안 홀로 화를 삭여야만 했다. 서주혁이 매일 유치원에서 아들 서보겸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을 보면 그가 아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만약 그녀가 서보겸의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면, 겸사겸사 그대로 서주혁의 침대로 올라갔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성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두컴컴한 방안을 보며 장하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자기 전에 불을 끈 기억이 없는데 누가 끈 거지?쓱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자리에 앉은 장하리가 무심코 침대 옆을 바라보았다.침대 옆 1인용 소파에는 웬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바깥의 희미한 불빛을 통해 그녀는 곧바로 그 실루엣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장하리는 마치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마냥 멍해지고 머릿속은 펑 터질 것만 같았다.하루 종일 도망만 다녔는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서주혁이 옆에 있다고? 말이 돼?허둥지둥 방안의 조명을 켜보자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역시나 서주혁이었고 그의 안색은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고 말로 이룰 수 없는 공포가 발바닥으로부터 파도처럼 밀려왔다.그러나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물고 불도 붙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물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 같아 보였다.담배꽁초는 이미 한참 동안 타액에 절여져 잔뜩 찌그러져 있었고 장하리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 것을 보고 서주혁은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자신의 기세를 꺾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죽은 먹을 거예요? 아직 따뜻해요.”그의 손가락이 옆 테이블을 가리켰다.장하리는 그제야 테이블 위의 냄비에 죽 한 그릇이 데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윽고 서주혁이 몸을 일으켰다. 온갖 고생은 전부 겪은 듯 옷가지와 머리가 헝클어져 있는 것을 보니 도착한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그는 그릇을 꺼내 숟가락으로 두어 번 젓고는 다시 침대 옆에 앉아 장하리에게 그릇을 건넸다.“잠에서 깼으면 좀 먹어요.”장하리는 갑자기 눈앞의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화를 낼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슬퍼 보였다.누군가의 슬픔은 한바탕 크게 울고 밖으로 토해내면 그만이지만 서주혁의 슬픔은 내성적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러한 모습은 서보겸도 그를 똑 닮았다. 하지만
서주혁의 한마디에 장하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서주혁의 성격을 극혐하는 건 맞지만 어딘가 처량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게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잘해주니 장하리는 괜스레 마음이 불안해졌다.그들은 만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었는데 서주혁은 장하리를 강제로 제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니 그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서주혁은 또 하필 소통이 잘되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이라 가끔 장하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그녀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방안은 조용했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밤새도록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서주혁도 지쳐버린 것이다. 그는 장하리의 한 손을 잡고는 그녀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다.장하리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에 닿은 수염 자국이 쿡쿡 사람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장하리는 그대로 침묵을 지킬 예정이었지만 서주혁이 다시 한번 그녀에게 물었다.“아직도 배가 아파?”장하리는 아직 생리 중인 데다 밤새 너무 많은 고생을 했고 바깥에는 또 비가 내리고 있는데 오는 길에 맞진 않았을까?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서주혁은 장하리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조금요.”그 말에 서주혁은 곧바로 이불을 젖히고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장하리는 서주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번 정도 그를 피했고 놀랍게도 서주혁은 계속하여 질척거리는 것이 아닌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고 잠을 청했다.“발은 내가 따뜻하게 녹여줄 테니 얼른 자.”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주혁은 두 다리로 장하리의 발을 걸어 그의 두 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뜬금없어.그러나 장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다.그녀가 잠들고 서주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곳에 오기까지 서주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 속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이곳은 장하리의 고향이 아니다. 게다가 제대로 등록되지 않은 불법 차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