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서주혁은 싸늘한 얼굴로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더니 장하리를 다시 끌어오려 손을 뻗었다.그러자 장하리는 순간 손을 움츠리더니 그를 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이제 그녀도 서주혁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돈도 많고 얼굴도 나쁘지 않은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평범한 장하리에게 집착한단 말인가?그리고 같은 시각, 장하리가 피하는 바람에 서주혁의 안색은 더욱 험악해졌다.쓸쓸히 허공에 머무른 손을 거두며 서주혁은 피식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같은 남자로서 그의 도발을 느낀 소준호가 버럭 화를 냈다.“하리야, 저 사람 너한테 해코지한 건 아니지?”장하리가 막 고개를 가로저으려 할 때, 소준호는 대뜸 그녀의 손목을 가로채 가더니 빨갛게 부어오른 손목을 보며 소준호의 목소리도 점점 차가워져 갔다.“설마 저 사람이 너한테 이런 거야? 학대했어?”그러나 괜히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던 장하리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준호를 다독여주려 안간힘을 썼다.“아뇨, 준호 씨, 우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주혁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만하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주혁은 손을 들어 강제로 장하리를 끌어당겼다.그의 야만에 놀란 소준호는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내리쳤다.갑작스러운 무게감에 고개가 한쪽으로 쏠리고 서주혁 역시 무의식적으로 소준호를 발로 걷어찼다.제원이든 어디든 지금까지 서주혁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물론 성인 남자들 간에도 힘의 차이는 존재했다. 서주혁은 군대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싸움 솜씨가 일품이었고 갖은 역경을 겪으며 잘 단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준호처럼 곱게 자란 사람이 어떻게 서주혁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한번 차였을 뿐인데 소준호는 순간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냈다.장하리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화들짝 놀라 온몸이 뻣뻣해지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이윽고 경호원이 또 소준호에게 손을 대려는 것을 보고 장하리는 바로 서주혁을 밀어내며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서주혁의 안색이 무서울 정도로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을.서주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는데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기운은 마치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소준호의 폭탄 발언을 들은 장하리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감동을 한 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불안함이 더 컸다.아마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들 사이의 감정에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준호 씨...”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호원을 부르는 서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기 서서 뭐합니까? 다 죽었어요?”곧이어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오더니 소준호를 끌고 나가버렸다.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장하리는 더욱 초조해졌다.“서주혁 씨,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경고할게요. 지금은 엄연히 법치 사회이고 당신도 법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행동하지 마시죠.”그러나 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장하리를 강제로 끌고 들어와서는 거실문을 닫아버렸다.장하리는 그제야 비로소 무서울 정도로 서주혁의 흰 셔츠를 새빨갛게 물들인 그의 상처를 알아챘다.서주혁은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한쪽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러자 장하리가 즉시 그에게 물었다.“당신 부하들... 소준호 씨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심산이에요?”서주혁의 부상은 여전히 그녀의 관심 밖인듯했다.손발이 점점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서주혁은 자리에 앉아 멍하니 넋을 잃었다.과거 장하리가 죽기 살기로 서주혁을 사랑해줄 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가 언젠가 이렇게 모질게 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모질다 못해 서주혁이 다친 걸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다른 남자 걱정을 하고 있고, 모질다 못해 서주혁의 생사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다쳐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상처가 가슴 속을 파고드는 것마냥 쓰라리고 아팠다.입술을 꾹 깨문 서주혁은 이내 침착하게
거실 안은 조용했고 두 사람은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장하리의 입장에서 그녀는 정말 서주혁에게 호감이 생길 수가 없었다. 그의 등장만으로 그녀의 삶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원래 장하리는 평화롭게 지내면서 소준호와 혼사를 잘 상의해 수 있었지만 서주혁이 강성에 오면서 모든 일은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애초에 장하리가 원했던 건 그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그때, 묵묵히 담배만 피우던 서주혁이 손끝으로 담뱃불을 비벼 꺼버렸다. 현재 그의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 장하리가 소준호는 감싸던 모습뿐이었다.눈매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지고 서주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소준호와 해본 적 있습니까?”장하리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고개를 들어 되물었다.“네?”“당신들 해 봤냐고요?”무례한 질문에 화가 치밀어오른 장하리는 손가락마저 바들바들 떨려 났다.이 남자 정말 미친 거 아냐?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장하리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답했다.“했든 안 했든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요? 그렇다면 서주혁 씨는 또 어떤 신분으로 저에게 그런걸 묻는 겁니까?”“그렇다면 했다는 거네.”그 말 한마디에는 너무나도 깊은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그 순간, 장하리는 덜컥 겁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 방금 서주혁이 다쳤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겁을 먹고 있었다.서주혁의 얼굴은 깊은 어둠 속에 잠긴 사람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좋지 않은 예감에 입술을 꾹 깨물고 탈출하기 위해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막상 거실문을 열어보니 별장 밖에는 경호원이 대문을 지키며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서주혁은 가슴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원래도 라인이 선명했던 근육은 현재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마치 그 속에 무서운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허무하게 탈출에 실패한 장하리는 서주혁의 손에 이끌려 다시금 집안으로 끌려갔고 거대한 거실문은 다시금 무거운 소리와 함께 닫혀버렸다.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곧이어 장하리는 다른 한쪽의 벽에 부딪혀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