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신예준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사람이 없어서 실망했어?”강민지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지만 이미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강민지는 신예준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아주 큰 분노였다. 그대로 자리에 서 있던 강민지에게 신예준이 다시 말했다.“민지야, 나 화 안 났어. 이리 와.”그러나 강민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신예준은 이불을 확 걷어차고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채더니 그대로 침대 위로 던져 버렸다.강민지는 침대에 부딪혀 허리가 아팠다. 일어나려던 찰나 신예준이 그녀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침대에 눌러 버렸다. 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보며 온몸이 제압당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콜록콜록참지 못하고 기침이 터져 나왔다. 신예준은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다가와 입술을 거칠게 깨물었다. 강민지는 입안에 피 맛이 느껴지며 눈이 크게 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쿡쿡 아파지기 시작했다. 목이 세게 눌려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신예준은 잠시 키스를 하더니 다시 그녀의 목을 따라 내려가며 자국을 남겼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강민지는 자신의 목이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신예준은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그녀의 손을 거칠게 묶고 그녀를 뒤집어 눌렀다. 그는 손을 뻗어 방 안의 조명을 모두 껐다.침대 머리맡에 남은 조명 하나만이 방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방 안은 곧 다른 소리로 가득 찼다.강민지는 신예준의 행동에 진심으로 겁을 먹었다. 허리가 그의 손에 의해 끊어질 것만 같았다.“아파, 그만해!”그는 멈추지 않고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강민지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두 손이 뒤로 묶여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신예준은 마치 분노를 해소하듯 그녀의 어깨와 목을 여러 번 깨물었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조희서가 제대로 못 해줬어? 아직도 이렇게 미쳐 날뛸 힘이 남
강민지는 신예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 그토록 화가 나 있던 그가 이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더 이상 따지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지금 그의 감정 상태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그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오늘이 오랜만에 잠을 푹 자는 날이었다.강민지는 갑자기 이유 모를 짜증이 밀려와 휴대전화를 꺼내 조희서에게 문자를 보내려 했다.‘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조희서가 그를 붙잡지 못했지?’만약 신예준이 정말 조희서에게 빠져 있었다면 후반부에서 그렇게 거칠게 밀어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곧 화면에 ‘메시지 발송 실패’라는 알림이 떴다.조희서가 그녀를 차단한 것 같았다. 아마도 조희서가 직접 차단한 것이 아니라 신예준이 그렇게 지시한 걸지도 몰랐다.강민지는 다시 한번 문자를 보냈지만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과 조희서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문득 어젯밤 방에 설치해 둔 녹화 장비가 떠올랐다. 원래는 신예준과 조희서의 관계를 찍으려던 것이었는데 이제 보니 자신만이 촬영된 셈이었다.그녀는 장비가 있던 곳을 바라봤지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미 누군가가 치운 모양이었다. 아마도 신예준이 가져갔을 것이다. 그녀는 침대에서 깊이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정오가 되어 신예준이 일어났다.강민지는 그의 움직임을 일부러 무시하며 등을 돌리고 있었다.신예준은 세수를 마치고 양복을 입은 후 그녀 앞에 서서 얼굴을 살폈다. 강민지가 자지 않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이를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강민지는 그의 행동이 너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너무도 평소와 달라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결혼식이 5일 남았어. 오늘 오후에 호텔에 가서 점검해야 해. 넌 집에서 쉬어.”강민지는 온몸이
강민지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지금은 신예준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후 이틀 동안 신예준은 전보다 더 바빠졌다. 결혼식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업계 사람들은 이 결혼식을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예준이 결혼식에서 강민지를 망신시킬 계획인지, 아니면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바꿀 계획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강민지 역시 그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결혼식이 3일 남았을 때 서민규가 그녀에게 연락해 함께 도망치지 않겠냐고 물었다.강민지는 그 메시지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서민규에게 자신이 그를 농락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조금만 이성적이었다면 그는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을 것이다. 일부러 신예준 앞에서 서민규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도 서민규는 이성을 잃고 이 중요한 순간에 도망치자고 말하다니.강민지는 서민규의 메시지를 보며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까?서민규를 만나러 갈 때 강민지는 꽁꽁 싸매고 나갔다.서민규는 그녀를 보자마자 신예준이 또 침대에서 그녀를 괴롭혔다는 걸 알아챘다.“민지 씨, 제가 생각해 둔 곳이 있어요. 우리 같이 그곳으로 가면 돼요. 예나의 미래도 이미 계획해 뒀거든요. 당신만 동의한다면 바로 전학시킬 수 있어요.”서민규가 이미 미래를 다 계획했다는 듯이 지도까지 꺼내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강민지는 왜 신예준이 그가 여자들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강민지는 턱을 괴고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물었다.“생각 다 해봤어요?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네, 후회하지 않아요.”강민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민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민규 씨, 3일 뒤면 난 당신 친구와 결혼해요. 그런데 지금 도망치는 것보다는 결혼식 당일에 도망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당신이 그날 들러리잖아요.”
심장이 또다시 찌르는 듯 아팠다. 고개를 숙인 채 강민지는 서민규가 계속 말을 이어가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의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강민지는 서민규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고, 서민규 또한 그녀가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강민지는 이마를 주무르려고 손을 들었지만 서민규가 먼저 그녀의 관자놀이에 손을 얹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대답했다.“그래요. 도망치죠. 근데 그때 가서 민규 씨가 못할까 봐 걱정이네요.”“할 수 있어요.”강민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웨딩드레스가 이미 저택으로 배달된 것을 보았다.신예준과 디자이너가 드레스의 치수를 재며 현장 분위기와의 조화를 고민하고 있었다.예전 강민지는 신예준과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지만 신예준이 중간에 조희서의 전화 한 통에 나가버리면서 결국 혼자 드레스를 입어봐야 했다.디자이너는 강민지를 보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민지 씨, 한 번 더 입어보시겠어요? 이번에 많은 부분을 수정했거든요.”솔직히 웨딩드레스 디자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동화 속 인어공주의 요소를 많이 녹여냈다고 들었다.하지만 강민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디자이너에게 가볍게 미소만 짓고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디자이너는 신예준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자 묵묵히 계속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밤 10시가 되자 신예준은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신예준이 그녀를 침대에 눌러놓았을 때 강민지는 이 상황이 불편해 눈살을 찌푸렸다.최근 며칠 동안 매일 이랬고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기에 그저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곧 잠이 들려고 할 때 손목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눈을 떠보니 손목에 아름다운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팔찌는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열쇠가 신예준에게 있었다.강민지가 반지를 던진 일 때문에 화가 난 듯 신예준은 그녀를
강민지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에도 그녀는 여전히 불안했다.반 달 전부터 강민지는 피임에 대해 특별히 신경 써왔고 절대 신예준의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예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그녀가 체질이 약하고 어린 시절 자주 병을 앓아 임신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신예준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강민지는 그가 곧 그녀에게 흥미를 잃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신예준은 더 자주 그녀를 괴롭히며 그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아붙였다.강민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피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신예준은 늘 그녀가 임신할까 봐 신경 쓰며 콘돔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콘돔을 쓰지 않았다. 대신 강민지가 스스로 피임약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침대에 앉아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몰려왔다.어젯밤 구토를 한 이후로 신예준은 그녀에게 외출을 금지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강민지는 자주 복용하던 피임약을 꺼내 보았다. 약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녀가 평소에 먹던 약과 똑같이 생겼다. 이건 신예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마를 문지르며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방 안에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베개 옆을 뒤지고 집 안 곳곳을 찾아봤지만 휴대폰은 어디에도 없었다.그제서야 그녀는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우미에게 휴대폰을 빌리려 했지만 그들 역시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강민지는 소파에 앉아 점점 더 불안해졌다.저녁 무렵 신예준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곧바로 물었다.“내 휴대폰 어디 뒀어?”신예준은 현관에서 코트를 걸어 놓으며 가볍게 대답했다.“일단 보관해 뒀어. 결혼식 전까지는 전자 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겠어.”강민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게 무슨 뜻이야?”신예준은 뒤돌아보며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모레가 결혼식이잖아. 외부의 방해 없이 결
강민지는 마치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추측이 있었지만 그 추측이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결국 피로를 못 이겨 잠들고 말았다.다음 날 아침, 신예준은 결혼식 준비로 다시 바빠졌다. 원래 오늘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강민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자 그는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떠났다.어제부터 오늘까지 신예준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다정했다. 강민지는 그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신예준은 결혼식이 열릴 호텔에 도착했고 현장은 이미 거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사회자도 현장에 있었고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신예준은 꼼꼼하게 모든 사항을 확인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고 서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서민규는 호텔에 도착해 화려하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보며 속에서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민지가 자신을 그저 장난삼아 대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신예준은 과연 강민지에게 어울리는 사람일까?아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강민지는 절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신예준은 서민규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랜 친구였고 신예준은 서민규가 언젠가 여자 문제로 큰일을 칠 것이라고 예상해 왔지만 그 대상이 강민지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민규야, 사회자랑 맞춰봐. 내일 들러리 동선까지 다 짰으니까.”서민규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 관리에 신경 썼다. 신예준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쩐 일인지 이상하게 잘 해내고 있었다.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서민규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강민지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리라.모든 확인을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었다. 서민규가 물었다.“술이나 한잔할래?”기분이 좋은
“예준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도 희서가 얼마나 슬프게 우는지 들었잖아. 너 예전에는 절대 희서를 울게 하지 않았잖아. 그때 넌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희서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했잖아. 회서를 좋아한다고 평생 책임지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네 행동은... 솔직히 말해서 쓰레기랑 다를 바가 뭐야?”신예준은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민규야, 넌 내가 희서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해?”“당연하지. 넌 희서한테 정말 뭐 하나 부족함 없이 해줬잖아. 그래서 난 너희가 정말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어.”“희서가 원하는 게 뭐든지 어떻게든 손에 넣었어. 비싸든 내가 보기에 별로 가치가 없든 상관없었지. 그냥 내가 희서한테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우리 집안이 희서한테 빚진 게 많았으니까. 사실 희서의 요구는 가끔 무리한 것들이 많았어. 학교 다닐 때도 명품을 좋아했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주고 장학금도 항상 먼저 희서한테 줬어. 희서한테 잘해주는 건 나한테 당연한 일이었고 나도 진심으로 희서를 보호하고 싶었어.”신예준은 술 한 모금을 마시고 손에 쥔 잔을 천천히 돌렸다.“희서가 병에 걸린 뒤로 의료비를 대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고 심지어 사채까지 손을 댔어. 만약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내가 더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하셨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는데, 도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해?”“그러니까, 넌 희서랑 결혼해야 하는 거잖아. 너희는 어릴 때부터 함께했고 서로 사랑했잖아. 희서는 널 그토록 사랑하는데, 네가 내일 정말 결혼하면 희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내 계획대로라면 맞아, 나는 희서랑 결혼해야 해.”“그럼 왜...”서민규가 더 물어보려 했을 때 신예준이 말을 끊었다.“내가 왜 강민지와 결혼하냐고?”이건 업계에서도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신예준이 협력사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듣는 질문이었다. 강민지를 도대체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질문이 항상 뒤를 따랐다.모두
신예준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저택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강민지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코트를 한쪽 소파에 놓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저녁은 먹었나요?”“아가씨께서 입맛이 없다고 하셨어요.”신예준의 시선이 강민지에게 향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걸 알면서도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가슴이 조금 아려왔지만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녀 옆에 앉았다.“왜 저녁을 안 먹었어?”“혜인이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게 있어.”신예준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눈짓을 보냈다. 비서는 곧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왔다.강민지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서민규에게서 온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짧은 음성 파일이었다.강민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낮추고 이어폰을 귀에 대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신예준의 목소리에는 강한 집착과 미움이 담겨 있었다.“내가 강민지와 결혼하는 건 그저 강민지를 내 곁에 묶어두기 위해서야. 그래야 계속 괴롭힐 수 있잖아. 강민지는 나와 깨끗이 끝낼 수 없을 거야.”강민지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며 손가락이 굳어버린 듯 타자를 하지 못했다.서민규는 그녀가 메시지를 읽은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여러 개의 메시지를 연달아 보냈다.[이건 방금 예준이가 술 마시면서 한 말이에요. 술김에 진심이 튀어나온 거죠. 민지 씨. 예준이는 정말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강민지는 서민규의 말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굳이 서민규가 말해주지 않아도 신예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긴 강민지는 성혜인에게 전화해 도망갈 계획을 상의하려 했지만 배 속의 아이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일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히고 복수만을 꿈꾸는 남자 곁에 묶여 있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밤에 또 한 번 구토하면서 아이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신예준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