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또다시 찌르는 듯 아팠다. 고개를 숙인 채 강민지는 서민규가 계속 말을 이어가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의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강민지는 서민규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고, 서민규 또한 그녀가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강민지는 이마를 주무르려고 손을 들었지만 서민규가 먼저 그녀의 관자놀이에 손을 얹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대답했다.“그래요. 도망치죠. 근데 그때 가서 민규 씨가 못할까 봐 걱정이네요.”“할 수 있어요.”강민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웨딩드레스가 이미 저택으로 배달된 것을 보았다.신예준과 디자이너가 드레스의 치수를 재며 현장 분위기와의 조화를 고민하고 있었다.예전 강민지는 신예준과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지만 신예준이 중간에 조희서의 전화 한 통에 나가버리면서 결국 혼자 드레스를 입어봐야 했다.디자이너는 강민지를 보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민지 씨, 한 번 더 입어보시겠어요? 이번에 많은 부분을 수정했거든요.”솔직히 웨딩드레스 디자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동화 속 인어공주의 요소를 많이 녹여냈다고 들었다.하지만 강민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디자이너에게 가볍게 미소만 짓고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디자이너는 신예준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자 묵묵히 계속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밤 10시가 되자 신예준은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신예준이 그녀를 침대에 눌러놓았을 때 강민지는 이 상황이 불편해 눈살을 찌푸렸다.최근 며칠 동안 매일 이랬고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기에 그저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곧 잠이 들려고 할 때 손목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눈을 떠보니 손목에 아름다운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팔찌는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열쇠가 신예준에게 있었다.강민지가 반지를 던진 일 때문에 화가 난 듯 신예준은 그녀를
강민지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에도 그녀는 여전히 불안했다.반 달 전부터 강민지는 피임에 대해 특별히 신경 써왔고 절대 신예준의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예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그녀가 체질이 약하고 어린 시절 자주 병을 앓아 임신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신예준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강민지는 그가 곧 그녀에게 흥미를 잃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신예준은 더 자주 그녀를 괴롭히며 그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아붙였다.강민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피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신예준은 늘 그녀가 임신할까 봐 신경 쓰며 콘돔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콘돔을 쓰지 않았다. 대신 강민지가 스스로 피임약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침대에 앉아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몰려왔다.어젯밤 구토를 한 이후로 신예준은 그녀에게 외출을 금지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강민지는 자주 복용하던 피임약을 꺼내 보았다. 약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녀가 평소에 먹던 약과 똑같이 생겼다. 이건 신예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마를 문지르며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방 안에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베개 옆을 뒤지고 집 안 곳곳을 찾아봤지만 휴대폰은 어디에도 없었다.그제서야 그녀는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우미에게 휴대폰을 빌리려 했지만 그들 역시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강민지는 소파에 앉아 점점 더 불안해졌다.저녁 무렵 신예준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곧바로 물었다.“내 휴대폰 어디 뒀어?”신예준은 현관에서 코트를 걸어 놓으며 가볍게 대답했다.“일단 보관해 뒀어. 결혼식 전까지는 전자 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겠어.”강민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게 무슨 뜻이야?”신예준은 뒤돌아보며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모레가 결혼식이잖아. 외부의 방해 없이 결
강민지는 마치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추측이 있었지만 그 추측이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결국 피로를 못 이겨 잠들고 말았다.다음 날 아침, 신예준은 결혼식 준비로 다시 바빠졌다. 원래 오늘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강민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자 그는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떠났다.어제부터 오늘까지 신예준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다정했다. 강민지는 그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신예준은 결혼식이 열릴 호텔에 도착했고 현장은 이미 거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사회자도 현장에 있었고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신예준은 꼼꼼하게 모든 사항을 확인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고 서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서민규는 호텔에 도착해 화려하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보며 속에서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민지가 자신을 그저 장난삼아 대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신예준은 과연 강민지에게 어울리는 사람일까?아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강민지는 절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신예준은 서민규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랜 친구였고 신예준은 서민규가 언젠가 여자 문제로 큰일을 칠 것이라고 예상해 왔지만 그 대상이 강민지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민규야, 사회자랑 맞춰봐. 내일 들러리 동선까지 다 짰으니까.”서민규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 관리에 신경 썼다. 신예준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쩐 일인지 이상하게 잘 해내고 있었다.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서민규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강민지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리라.모든 확인을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었다. 서민규가 물었다.“술이나 한잔할래?”기분이 좋은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