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정말 힘들어 보이네. 내가 도와줄게.”조희서는 계속해서 몸을 꿈틀거리며 천천히 신예준에게 기어갔다.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진 신예준은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강민지는 어디 갔어?”“강민지는 왜 신경 써? 지금 중요한 건 우리 둘이잖아. 오빠, 내가 도와줄게. 난 이미 준비됐어. 사실 전에도 준비됐었어. 오빠가 나를 아껴서 못 건드린 거 다 알아. 하지만 이제는 내 몸도 괜찮아. 그러니까 오빠, 날 가져.”조희서는 부끄러움도 없이 신예준의 발을 감싸안았다.신예준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여전히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그 생각을 억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조희서를 내려다보며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 나한테 약이라도 탄 거야?”조희서는 순간 멈칫했다. 신예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민지가 약을 썼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곧바로 부인했다.“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강민지가 그런 거야. 내가 왔을 때, 오빠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어.”“누가 너를 오라고 했는데?”“강민지가 불렀어. 일부러 나한테 문자까지 보냈다고. 오빠, 강민지 진짜 대단하지 않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가다니, 분명 다른 남자 만나러 갔을 거야. 이제 더는 신경 쓰지 마. 내가 오빠를 편하게 해줄게.”조희서는 일어나 신예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신예준은 그녀를 단번에 밀어냈다.조희서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며 팔꿈치에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신예준을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조희서는 자신이 착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눈앞의 신예준은 마치 무섭기 짝이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의 등 뒤로 끝도 없는 어둠이 서서히 퍼져 나와 당장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조희서는 두려움에 입술이 떨렸다. 원래는 그를 더 유혹하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더는 다가갈 수가 없었다. 조희서는 고개를 떨군 채 몸을 떨며 감히 일어
조희서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힘들게 얻은 기회였으니까.그녀는 아예 결심한 듯 몸에 걸친 옷을 전부 벗어버리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수치스러운 자세를 취했다.“오빠, 나 좀 봐. 강민지를 불러서 뭐 해? 여기 있으면 우리 사이를 방해할 뿐이야. 봐, 강민지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어.”그러나 신예준은 시선을 돌리고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가슴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통증이 너무 강해져서인지, 오히려 이 순간 매우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신예준은 강민지가 얼마나 단호한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명료한 상태였다.“강민지한테 전화해.”신예준이 전화를 걸었지만 강민지는 받지 않았다.조희서는 이미 옷을 다 벗은 상태였다. 하지만 신예준이 전혀 반응하지 않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심지어 그는 한 번도 그녀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왜? 도대체 왜 이 중요한 순간에 강민지를 원하고 있는 거지?조희서는 일어나 다시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신예준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희서야, 난 강민지만 원해.”조희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정말 미친 걸까?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강민지와 결혼하려는 게 강민지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신예준...”조희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머리를 숙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강민지는 주저 없이 신예준에게 약을 최대한으로 먹였다. 이 모든 건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예전 그녀와의 관계에서 약이 필요했던 사람은 바로 그였으니까. 이 모든 상황은 자업자득이었다.조희서는 더 이상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밖에 있던 사람들이 소란을 감지하고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문이 밖에서 잠긴 것 같습니다.”신예준은 손을 들어 이마를 문지르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문 부숴요.”곧바
이때 신예준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사람이 없어서 실망했어?”강민지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지만 이미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강민지는 신예준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아주 큰 분노였다. 그대로 자리에 서 있던 강민지에게 신예준이 다시 말했다.“민지야, 나 화 안 났어. 이리 와.”그러나 강민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신예준은 이불을 확 걷어차고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채더니 그대로 침대 위로 던져 버렸다.강민지는 침대에 부딪혀 허리가 아팠다. 일어나려던 찰나 신예준이 그녀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침대에 눌러 버렸다. 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보며 온몸이 제압당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콜록콜록참지 못하고 기침이 터져 나왔다. 신예준은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다가와 입술을 거칠게 깨물었다. 강민지는 입안에 피 맛이 느껴지며 눈이 크게 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쿡쿡 아파지기 시작했다. 목이 세게 눌려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신예준은 잠시 키스를 하더니 다시 그녀의 목을 따라 내려가며 자국을 남겼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강민지는 자신의 목이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신예준은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그녀의 손을 거칠게 묶고 그녀를 뒤집어 눌렀다. 그는 손을 뻗어 방 안의 조명을 모두 껐다.침대 머리맡에 남은 조명 하나만이 방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방 안은 곧 다른 소리로 가득 찼다.강민지는 신예준의 행동에 진심으로 겁을 먹었다. 허리가 그의 손에 의해 끊어질 것만 같았다.“아파, 그만해!”그는 멈추지 않고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강민지는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두 손이 뒤로 묶여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신예준은 마치 분노를 해소하듯 그녀의 어깨와 목을 여러 번 깨물었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조희서가 제대로 못 해줬어? 아직도 이렇게 미쳐 날뛸 힘이 남
강민지는 신예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 그토록 화가 나 있던 그가 이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더 이상 따지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지금 그의 감정 상태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그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오늘이 오랜만에 잠을 푹 자는 날이었다.강민지는 갑자기 이유 모를 짜증이 밀려와 휴대전화를 꺼내 조희서에게 문자를 보내려 했다.‘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조희서가 그를 붙잡지 못했지?’만약 신예준이 정말 조희서에게 빠져 있었다면 후반부에서 그렇게 거칠게 밀어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곧 화면에 ‘메시지 발송 실패’라는 알림이 떴다.조희서가 그녀를 차단한 것 같았다. 아마도 조희서가 직접 차단한 것이 아니라 신예준이 그렇게 지시한 걸지도 몰랐다.강민지는 다시 한번 문자를 보냈지만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과 조희서의 모든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문득 어젯밤 방에 설치해 둔 녹화 장비가 떠올랐다. 원래는 신예준과 조희서의 관계를 찍으려던 것이었는데 이제 보니 자신만이 촬영된 셈이었다.그녀는 장비가 있던 곳을 바라봤지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미 누군가가 치운 모양이었다. 아마도 신예준이 가져갔을 것이다. 그녀는 침대에서 깊이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정오가 되어 신예준이 일어났다.강민지는 그의 움직임을 일부러 무시하며 등을 돌리고 있었다.신예준은 세수를 마치고 양복을 입은 후 그녀 앞에 서서 얼굴을 살폈다. 강민지가 자지 않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이를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강민지는 그의 행동이 너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너무도 평소와 달라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결혼식이 5일 남았어. 오늘 오후에 호텔에 가서 점검해야 해. 넌 집에서 쉬어.”강민지는 온몸이
강민지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지금은 신예준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후 이틀 동안 신예준은 전보다 더 바빠졌다. 결혼식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업계 사람들은 이 결혼식을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예준이 결혼식에서 강민지를 망신시킬 계획인지, 아니면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바꿀 계획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강민지 역시 그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결혼식이 3일 남았을 때 서민규가 그녀에게 연락해 함께 도망치지 않겠냐고 물었다.강민지는 그 메시지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서민규에게 자신이 그를 농락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조금만 이성적이었다면 그는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을 것이다. 일부러 신예준 앞에서 서민규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도 서민규는 이성을 잃고 이 중요한 순간에 도망치자고 말하다니.강민지는 서민규의 메시지를 보며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까?서민규를 만나러 갈 때 강민지는 꽁꽁 싸매고 나갔다.서민규는 그녀를 보자마자 신예준이 또 침대에서 그녀를 괴롭혔다는 걸 알아챘다.“민지 씨, 제가 생각해 둔 곳이 있어요. 우리 같이 그곳으로 가면 돼요. 예나의 미래도 이미 계획해 뒀거든요. 당신만 동의한다면 바로 전학시킬 수 있어요.”서민규가 이미 미래를 다 계획했다는 듯이 지도까지 꺼내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강민지는 왜 신예준이 그가 여자들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강민지는 턱을 괴고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물었다.“생각 다 해봤어요?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네, 후회하지 않아요.”강민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민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민규 씨, 3일 뒤면 난 당신 친구와 결혼해요. 그런데 지금 도망치는 것보다는 결혼식 당일에 도망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당신이 그날 들러리잖아요.”
심장이 또다시 찌르는 듯 아팠다. 고개를 숙인 채 강민지는 서민규가 계속 말을 이어가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의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강민지는 서민규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고, 서민규 또한 그녀가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강민지는 이마를 주무르려고 손을 들었지만 서민규가 먼저 그녀의 관자놀이에 손을 얹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대답했다.“그래요. 도망치죠. 근데 그때 가서 민규 씨가 못할까 봐 걱정이네요.”“할 수 있어요.”강민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웨딩드레스가 이미 저택으로 배달된 것을 보았다.신예준과 디자이너가 드레스의 치수를 재며 현장 분위기와의 조화를 고민하고 있었다.예전 강민지는 신예준과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지만 신예준이 중간에 조희서의 전화 한 통에 나가버리면서 결국 혼자 드레스를 입어봐야 했다.디자이너는 강민지를 보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민지 씨, 한 번 더 입어보시겠어요? 이번에 많은 부분을 수정했거든요.”솔직히 웨딩드레스 디자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동화 속 인어공주의 요소를 많이 녹여냈다고 들었다.하지만 강민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디자이너에게 가볍게 미소만 짓고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디자이너는 신예준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자 묵묵히 계속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밤 10시가 되자 신예준은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신예준이 그녀를 침대에 눌러놓았을 때 강민지는 이 상황이 불편해 눈살을 찌푸렸다.최근 며칠 동안 매일 이랬고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기에 그저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곧 잠이 들려고 할 때 손목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눈을 떠보니 손목에 아름다운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팔찌는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열쇠가 신예준에게 있었다.강민지가 반지를 던진 일 때문에 화가 난 듯 신예준은 그녀를
강민지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에도 그녀는 여전히 불안했다.반 달 전부터 강민지는 피임에 대해 특별히 신경 써왔고 절대 신예준의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예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그녀가 체질이 약하고 어린 시절 자주 병을 앓아 임신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신예준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강민지는 그가 곧 그녀에게 흥미를 잃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신예준은 더 자주 그녀를 괴롭히며 그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몰아붙였다.강민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피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신예준은 늘 그녀가 임신할까 봐 신경 쓰며 콘돔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콘돔을 쓰지 않았다. 대신 강민지가 스스로 피임약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침대에 앉아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몰려왔다.어젯밤 구토를 한 이후로 신예준은 그녀에게 외출을 금지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강민지는 자주 복용하던 피임약을 꺼내 보았다. 약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녀가 평소에 먹던 약과 똑같이 생겼다. 이건 신예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마를 문지르며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방 안에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베개 옆을 뒤지고 집 안 곳곳을 찾아봤지만 휴대폰은 어디에도 없었다.그제서야 그녀는 휴대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우미에게 휴대폰을 빌리려 했지만 그들 역시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강민지는 소파에 앉아 점점 더 불안해졌다.저녁 무렵 신예준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곧바로 물었다.“내 휴대폰 어디 뒀어?”신예준은 현관에서 코트를 걸어 놓으며 가볍게 대답했다.“일단 보관해 뒀어. 결혼식 전까지는 전자 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겠어.”강민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게 무슨 뜻이야?”신예준은 뒤돌아보며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모레가 결혼식이잖아. 외부의 방해 없이 결
강민지는 마치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추측이 있었지만 그 추측이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그렇게 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결국 피로를 못 이겨 잠들고 말았다.다음 날 아침, 신예준은 결혼식 준비로 다시 바빠졌다. 원래 오늘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강민지가 가고 싶어 하지 않자 그는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떠났다.어제부터 오늘까지 신예준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다정했다. 강민지는 그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신예준은 결혼식이 열릴 호텔에 도착했고 현장은 이미 거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사회자도 현장에 있었고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신예준은 꼼꼼하게 모든 사항을 확인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신하고 서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서민규는 호텔에 도착해 화려하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보며 속에서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민지가 자신을 그저 장난삼아 대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신예준은 과연 강민지에게 어울리는 사람일까?아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강민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결혼식장을 강민지는 절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신예준은 서민규의 속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랜 친구였고 신예준은 서민규가 언젠가 여자 문제로 큰일을 칠 것이라고 예상해 왔지만 그 대상이 강민지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민규야, 사회자랑 맞춰봐. 내일 들러리 동선까지 다 짰으니까.”서민규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 관리에 신경 썼다. 신예준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쩐 일인지 이상하게 잘 해내고 있었다.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서민규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강민지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리라.모든 확인을 마쳤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었다. 서민규가 물었다.“술이나 한잔할래?”기분이 좋은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