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두 오빠의 위로를 받고서야 중요한 부분을 깨달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장, 그 해파리 도장!”그건 나하늘이 임지연일 때부터 숨겨둔 것이었고 그녀에게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줬던 물건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 위험한 순간이었다.“오빠, 예전에 원진 씨가 여석진 집을 폭파하러 갔을 때 도장 하나를 가져온 적 있지 않아요? 원진 씨에게 연락해서 그 도장을 보내달라고 해요.”설기웅은 곧바로 원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원진은 제원에 있었고 직접 도장을 가져왔다. 이 도장은 플로리아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칸다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당시 연구소가 혼란에 빠졌을 때 원진도 자신의 사람들을 보내 반승제를 찾으려 했지만 반승제는 찾지 못하고 이상한 모양의 도장만 발견하게 되었다.원진의 부하가 그 도장을 가져온 후 성혜인이 그것을 원하자마자 별다른 말 없이 곧바로 넘겨주었다.원진은 소파에 앉아 무겁게 말했다.“그러고 보니 그때 최용호 쪽 사람들도 같이 있었는데, 그중에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두 개의 나무로 만든 작은 인형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석진 집 폭파 현장에서 주워온 건데, 누가 떨어뜨린 건지 알 수 없지만 꽤 신기해 보였어요.”나무로 만든 작은 인형?성혜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특이한 모양이라는 말을 듣자 눈가가 붉어졌다. 예전에 임지연도 그녀를 위해 이런 것들을 만들곤 했다. 그 당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장난감이 있었지만 그녀는 부러워하면서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지연은 그런 성혜인 몰래 나무로 장난감을 만들어주었고 그 장난감들은 매우 정교했다.그런 기억들 때문에 성혜인은 임지연을 꼭 만나고 싶었다. 자신에게 모든 따뜻함을 준 그 여인을.“그 나무 장난감들은 아직도 있어요?”“네, 있어요. 이번에 배신을 당했을 때 최용호한테 사람 몇 명 빌렸거든요. 그중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몇 개의 작은 물건들이 곧바로 전달되었다. 성혜인은 8번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8번이 나왔고 다른 한 사람은 그쪽을 감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지금 잡혀 있는 사람이 진짜 반승제인지, 가짜 반승제인지 말이다.두 사람이 너무 닮아서 성혜인 자신도 어두운 환경에서는 쉽게 혼동할 수 있었다. 8번이 반승제를 잘못 알아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지금 사라 박사가 그 작은 물건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기다리면서도, 김상아 쪽으로 가서 반드시 그 차를 멈추고 내부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한편, 백겸은 서랍에서 물고기 먹이를 꺼내 큰 수족관의 물고기들에게 주기 시작했다.물고기들은 앞다투어 먹이를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백겸은 수면 위로 퍼져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었다.“김상아가 사람을 데리고 갔나?”“네, 데려갔습니다.”“그렇다면 됐어. 그 아이가 일을 처리할 때 난 항상 믿음직하다고 생각해. 이제부터 그 상황을 조사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김상아에게 발목이 잡히게 될 거야.”김상아의 개인 능력이 뛰어나니, 양쪽 모두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백겸은 마지막 남은 먹이를 수족관에 던져넣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드디어 행동에 나설 수 있겠군. 내일 실험을 함께 진행하기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더는 미룰 수 없어.”“알겠습니다.”그렇게 말했지만 그 행동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저녁 7시, 성혜인은 강민지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성혜인은 이전에 강민지에게 만약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강민지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왔으니, 성혜인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강씨 저택으로 직접 가야만 했다.게다가 강민지가 보낸 메시지는 다름 아닌 여섯 글자였다.[혜인아, 잘 있어.]성혜인 눈에 비친 강민지는 언제나 자존심 강한 부잣집 아가씨였다. 이제 강씨 집안이 이토
설기웅은 원래 김상아 쪽으로 사람들을 보내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반승제 본인이 감옥에 보내지는 것을 막으려던 중이었다.하지만 그는 지시를 내리던 중 갑자기 이마를 찌푸렸다.만약 그가 백겸이라면 진짜 반승제를 보낼까?답은 ‘그럴 것’이었다.그래야만 자신의 다음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 김상아가 호송 중인 사람이 진짜 반승제라면 설기웅이 그 차량을 공격하는 순간 H국의 상층부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이들은 가까스로 백겸을 퇴직시키고 반승제를 감옥에 넣은 상황에서 설기웅이 이 일에 개입하려는 것은 그들의 눈에 결코 좋은 의도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결국 설기웅은 그들로부터 추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이 점을 깨달은 설기웅은 김상아의 차량을 납치하는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성혜인이 있는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성혜인이 현재 네이처 빌리지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설기웅은 순간적으로 초조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백겸이 노린 또 다른 ‘그릇’이 성혜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H국 내에서 설씨 가문과 연결된 인맥들 특히 고위직에 있는 몇몇 인사들과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설기웅은 설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명의로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지금 설씨 가문의 유일한 공주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그녀의 배 속에는 아이까지 있는 상황이다. 반승제가 잘못을 했든 아니든, 임신 중인 성혜인은 아무런 죄가 없다.만약 성혜인이 백겸에게, 아니면 백겸의 정적들에게 해를 입게 된다면 설씨 가문은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크게 부각할 것이다.현재 설씨 가문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매년 개발되는 IP들은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며 많은 어린이의 마음속에 꿈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만약 설씨 가문이 국제 언론에 가문의 공주가 H국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발표한다면 이는 H국에게 큰 신뢰도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한 나라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 다른 투자자들 역시 망설이게
설의종은 설기웅의 연락을 받은 후 단 3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었다.모든 언론 매체가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움직였다. 누구나 이 중요한 소식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기자회견이 열리는 장소는 이미 기자들로 가득 찼고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설의종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또래보다 훨씬 젊어 보였지만 최근 회복 중인 탓에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욱 활기차 보였다.밑에서는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다. 그러나 설의종은 차분한 모습으로 중앙 자리에 앉았다.이번 기자회견에는 여러 국가의 언론이 참석해 설씨 가문의 사업 부문에서 큰 변화가 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설의종은 기자들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의 목적을 밝혔다.“설씨 가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 유일한 딸이 누군가에 의해 바꿔치기 되어, 20여 년간 밖에서 방황하다가 최근 반년 만에 겨우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군가의 음모로 병상에 누워 지내며 딸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설씨 가문 대표로서가 아닌 평범한 아버지로서입니다. 저는 막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딸이 H국에서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H국 측과 연락을 취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모든 지분을 딸에게 넘겼습니다. 딸의 안전이 설씨 가문의 앞으로의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H국 언론이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주기를 바라며 제 딸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회사가 이렇게 대규모의 기자회견을 연 덕분에 각국에서 이 기자회견이 생중계되었다. 많은 이들이 H국 언론에 왜 설씨 가문의 딸을 구출하는 데 협조하지 않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일부 사람들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H국 측에서 설씨 가문의 국내 경제 거래를 제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래서 설씨 가문의 공주가 납치되는 것을 방조했다는 주장이 나왔다.이런 말들이 H국 상층부에 큰 압박을
나설희 같은 착한 아이가 왜 하필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그것도 부모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현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고 긴장감이 돌았다. 모두가 방금 말을 꺼낸 나경택을 바라보았다.나경택은 앞에 놓인 서류를 응시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조사해 보게. 만약 정말 백겸이 맞다면 나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걸세.”분명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나경택의 권력이 가장 컸다. 그가 이렇게 말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곧바로 상층부는 행동을 개시하여 포위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어느새 밤이 깊어졌다.성혜인이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눈동자는 움직일 수 있었지만 몸의 다른 부분은 감각이 없었다. 눈앞의 공간은 온통 하얗고 자신이 마치 휴면 캡슐 같은 곳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눈을 깜빡였지만 아무것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위쪽의 작은 유리창을 통해 겨우 바깥의 천장만이 보였다.휴면 캡슐 밖에서는 사라가 앞에 표시되는 일련의 데이터를 보며 차가운 눈빛을 드리운 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스크린을 몇 번 터치한 후 옆에 있는 서주혁을 바라보았다.서주혁의 실험이 가장 먼저 진행되었다. 이제 그의 신체 기능이 최상의 상태에 도달하기만 하면 두 번째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사라는 남은 데이터를 주시하며 실수 하나 없이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 동시에 그녀는 백겸에게 전화를 걸었다.“백겸 씨, 내일 저녁에 직접 와서 지켜보시겠어요? 서주혁의 실험은 아마 내일 저녁이면 완료될 겁니다. 그 이후 한 시간만 지나면 당신의 아들이 천천히 깨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바로 이어서 성혜인의 실험이 시작될 거고요. 모든 것이 끝나는 시간은 대략 밤 11시쯤 될 거예요. 그때 오시지 않겠어요?”수년간 준비해 온 일이니, 그가 이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백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긴장한 것이 분명했다.“내일 오후 2시에 갈게요. 사라 박사님,
누군가 일부러 던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원래는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 했지만 몇 미터 가지 않아 그녀는 귀신이라도 들린 듯 다시 뒤로 물러서서 쪼그리고 앉아 대나무 헬리콥터를 주웠다.대나무 헬리콥터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기억이 온전하지 않았기에 사라는 자신이 이 물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손에 쥐는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 물건을 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잎사귀 두 개가 저 멀리 날아갔다.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그 잎사귀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라의 눈앞에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옛날 옛적, 대나무 헬리콥터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고 어린 소녀가 소리쳤다.“우와, 엄청 높아요. 엄마, 헬리콥터가 엄청 높이 날고 있어요. 엄마가 만들어서 그렇나 봐요.”“너무 대단하다. 우리 헬리콥터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이 날고 있어요.”정체를 알 수 없는 기억에 두통이 시작되자 사라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그 대나무 헬리콥터의 날개는 그사이에 어디로 간 건지 사라는 순간 당황하여 여기저기 찾기 시작했다.잔디밭에서 여기저기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그녀는 또 서둘러 옆의 수풀을 헤집기 시작했다.한편, 사라가 그렇게 찾던 대나무 헬리콥터는 덤불 속에 고요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작은 나무 조각 장난감도 놓여있었다.사라의 눈동자가 매섭게 움츠러들더니 갑자기 무언가가 심장에 꽂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입술을 오므리고 떨리는 손을 뻗어 작은 장난감의 스위치를 천천히 눌러보았다.그 순간, 나무로 조각된 작은 곤충 한 마리가 그녀의 눈앞으로 뛰쳐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하늘아, 울지 말고 이거 봐.”“와, 셋째 삼촌 감사합니다.”“넌 항상 셋째 삼촌한테만 고맙지? 왜, 내가 만들어 준 대나무 헬리콥터는 마음에 안 들어?”“그럴 리가요. 전 다 좋아요!”주변 공기가
자신이 대체 왜 반승제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는 김상아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반승제를 본 순간, 그와의 깊은 인연을 느꼈을 뿐이다.앞으로 반승제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김상아는 피가 들끓어 오르고 입꼬리가 휘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여 그녀 역시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상아는 곧바로 모든 데이터를 최적화하기 위해 더욱 빨리 움직였다.오후 2시, 백겸은 정시에 차를 타고 출발하여 작은 양옥에 도착했다.입구의 경비원은 이미 2년 전, 백겸 측의 인원으로 교체해 두었다.하여 백겸은 매우 순조롭게 들어올 수 있었지만 막상 양옥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조금 망설여졌다.양옥의 익숙한 모습을 보니 심장이 조금 뻐근했지만 그 또한 한순간이었고 백겸은 이미 진즉 감정을 추슬렀다.하늘에서는 가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데 분명 저쪽 사람들이 이곳의 상황을 탐사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백겸은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 지금 이 구역은 이미 완전히 봉쇄되어 있고 그들이 이 안의 인질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한, 절대로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오늘 밤만 지나면 지하 감옥에서 바로 국경으로 도망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백겸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음침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방에 들어간 백겸은 심지어 부엌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곳은 예전에 나설희가 가장 즐겨 머물던 곳이었다.이윽고 백겸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이미 실험실로 개조된 위층을 바라보았다.백겸이 지시한 것이었지만 직접 와서 본 적이 없기에 오늘 처음 온 것이다.그때, 사라는 고개를 들었다가 백겸이 도착한 것을 보자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박사님, 오셨어요?”백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반재인도 있었다.김상아는 반승제와 똑 닮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살며시 얼굴을 붉혔다.이게 바로 반승제의 그 대역이란 말인가? 정말 반승제 본인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반재인은 백겸의 뒤에 서 있었는데 몸매도 그렇고
저 멀리 하늘가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마지막 햇빛 한 줄기마저 전부 사라지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자신이 가택연금을 당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온 가족이 거실에 앉아 그저 조용히 바깥에서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양측의 대화는 이미 끝나버렸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그들의 생명은 현재 모두 백겸의 손에 달려 있다.그러나 백겸은 현재 이미 미쳐버렸다. 아니, 어쩌면 옛날에 진즉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이윽고 백겸은 자리에 다시 앉아 천천히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바깥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백겸은 더욱 빈정거리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하여 그는 뒤에 있던 반재인에게 말을 건넸다.“재인아, 저 사람들 좀 봐라. 처자들이 위험에 처하니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잖니. 참말로 도덕군자인 양 점잔을 빼고 있네. 이 사람들이 대체 나와 무슨 차이가 있냐?”그러자 반재인은 그에게 차를 따라주며 답했다.“선생님, 차 드세요.”백겸은 반재인이 건네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물었다.“참, 오혜수 쪽은 어떻게 되었냐?”“오혜수 씨는 진짜 반승제를 데려갔지만 설기웅이 쉽게 속아주지 않더군요. 원래는 직접 쫓아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곧바로 설씨 가문으로 하여금 기자회견을 열게 하더라고요.”“그래도 뭔가 뜻이 있나 보군.”백겸은 차 반 컵을 마시고 수면창 안에서 깊게 잠들어 있는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아쉽게도 성혜인은 임신 중이라 데이터가 불안정하네. 임신만 아니었어도 가장 먼저 실험했을 텐데.”솔직히 백겸은 아들보다 아내가 더 마음에 걸렸다.“선생님, 걱정 마세요. 오늘 밤 11시면 수술이 끝날 거라고 박사님이 말씀하셨어요.”그러자 백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미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게다가 이제 곧 나설희가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렇게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