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일부러 던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원래는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 했지만 몇 미터 가지 않아 그녀는 귀신이라도 들린 듯 다시 뒤로 물러서서 쪼그리고 앉아 대나무 헬리콥터를 주웠다.대나무 헬리콥터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기억이 온전하지 않았기에 사라는 자신이 이 물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손에 쥐는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 물건을 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잎사귀 두 개가 저 멀리 날아갔다.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그 잎사귀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라의 눈앞에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옛날 옛적, 대나무 헬리콥터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고 어린 소녀가 소리쳤다.“우와, 엄청 높아요. 엄마, 헬리콥터가 엄청 높이 날고 있어요. 엄마가 만들어서 그렇나 봐요.”“너무 대단하다. 우리 헬리콥터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이 날고 있어요.”정체를 알 수 없는 기억에 두통이 시작되자 사라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그 대나무 헬리콥터의 날개는 그사이에 어디로 간 건지 사라는 순간 당황하여 여기저기 찾기 시작했다.잔디밭에서 여기저기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그녀는 또 서둘러 옆의 수풀을 헤집기 시작했다.한편, 사라가 그렇게 찾던 대나무 헬리콥터는 덤불 속에 고요히 누워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작은 나무 조각 장난감도 놓여있었다.사라의 눈동자가 매섭게 움츠러들더니 갑자기 무언가가 심장에 꽂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입술을 오므리고 떨리는 손을 뻗어 작은 장난감의 스위치를 천천히 눌러보았다.그 순간, 나무로 조각된 작은 곤충 한 마리가 그녀의 눈앞으로 뛰쳐나왔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하늘아, 울지 말고 이거 봐.”“와, 셋째 삼촌 감사합니다.”“넌 항상 셋째 삼촌한테만 고맙지? 왜, 내가 만들어 준 대나무 헬리콥터는 마음에 안 들어?”“그럴 리가요. 전 다 좋아요!”주변 공기가
자신이 대체 왜 반승제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는 김상아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반승제를 본 순간, 그와의 깊은 인연을 느꼈을 뿐이다.앞으로 반승제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김상아는 피가 들끓어 오르고 입꼬리가 휘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여 그녀 역시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상아는 곧바로 모든 데이터를 최적화하기 위해 더욱 빨리 움직였다.오후 2시, 백겸은 정시에 차를 타고 출발하여 작은 양옥에 도착했다.입구의 경비원은 이미 2년 전, 백겸 측의 인원으로 교체해 두었다.하여 백겸은 매우 순조롭게 들어올 수 있었지만 막상 양옥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조금 망설여졌다.양옥의 익숙한 모습을 보니 심장이 조금 뻐근했지만 그 또한 한순간이었고 백겸은 이미 진즉 감정을 추슬렀다.하늘에서는 가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데 분명 저쪽 사람들이 이곳의 상황을 탐사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백겸은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 지금 이 구역은 이미 완전히 봉쇄되어 있고 그들이 이 안의 인질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한, 절대로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오늘 밤만 지나면 지하 감옥에서 바로 국경으로 도망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백겸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음침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방에 들어간 백겸은 심지어 부엌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곳은 예전에 나설희가 가장 즐겨 머물던 곳이었다.이윽고 백겸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이미 실험실로 개조된 위층을 바라보았다.백겸이 지시한 것이었지만 직접 와서 본 적이 없기에 오늘 처음 온 것이다.그때, 사라는 고개를 들었다가 백겸이 도착한 것을 보자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박사님, 오셨어요?”백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반재인도 있었다.김상아는 반승제와 똑 닮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살며시 얼굴을 붉혔다.이게 바로 반승제의 그 대역이란 말인가? 정말 반승제 본인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반재인은 백겸의 뒤에 서 있었는데 몸매도 그렇고
저 멀리 하늘가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마지막 햇빛 한 줄기마저 전부 사라지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자신이 가택연금을 당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온 가족이 거실에 앉아 그저 조용히 바깥에서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양측의 대화는 이미 끝나버렸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그들의 생명은 현재 모두 백겸의 손에 달려 있다.그러나 백겸은 현재 이미 미쳐버렸다. 아니, 어쩌면 옛날에 진즉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이윽고 백겸은 자리에 다시 앉아 천천히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바깥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백겸은 더욱 빈정거리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하여 그는 뒤에 있던 반재인에게 말을 건넸다.“재인아, 저 사람들 좀 봐라. 처자들이 위험에 처하니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잖니. 참말로 도덕군자인 양 점잔을 빼고 있네. 이 사람들이 대체 나와 무슨 차이가 있냐?”그러자 반재인은 그에게 차를 따라주며 답했다.“선생님, 차 드세요.”백겸은 반재인이 건네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물었다.“참, 오혜수 쪽은 어떻게 되었냐?”“오혜수 씨는 진짜 반승제를 데려갔지만 설기웅이 쉽게 속아주지 않더군요. 원래는 직접 쫓아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곧바로 설씨 가문으로 하여금 기자회견을 열게 하더라고요.”“그래도 뭔가 뜻이 있나 보군.”백겸은 차 반 컵을 마시고 수면창 안에서 깊게 잠들어 있는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아쉽게도 성혜인은 임신 중이라 데이터가 불안정하네. 임신만 아니었어도 가장 먼저 실험했을 텐데.”솔직히 백겸은 아들보다 아내가 더 마음에 걸렸다.“선생님, 걱정 마세요. 오늘 밤 11시면 수술이 끝날 거라고 박사님이 말씀하셨어요.”그러자 백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미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게다가 이제 곧 나설희가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렇게 오랜
그러자 사라는 또 김상아를 다독여주며 말을 덧붙였다.“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기억하고 있잖아요. 상아 씨는 옆에서 협조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호들갑은 떨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요. 백겸 선생님께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는데 상아 씨도 나쁜 인상을 남기고 싶진 않잖아요.”반재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김상아는 사라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반승제와 너무 비슷한 얼굴을 한 반재인이 바로 옆에 있으니 김상아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심지어 이 중요한 순간에도 그녀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반재인에게 향하곤 했다.그리고 이 순간에 사라의 위로를 듣고 나니 김상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협조할게요.”하여 사라는 눈을 내리깔고 계속하여 그 안에 약물을 투입했다.하지만 곧 마지막 단계에 다다르자 김상아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사라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고개를 들어 김상아를 바라보았다.김상아의 행동에 대해 경고한 지 불과 30분이 지났고 현재 저녁 7시가 되었다.같은 시각, 하늘에는 희미한 저녁노을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김상아는 사라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 굳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박사님, 저 약물에 대한 이해는 박사님보다 못할지도 모르지만 저도 연구기지에 오래 머물면서 천재로 불리던 사람입니다. 박사님 약물은 서주혁을 혼수상태에 빠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깨우기 위한 약물이에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반재인이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이윽고 김상아는 일찌감치 텅 비어버린 시험관을 보며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틀릴 수는 있어도 그 번호를 전부 틀릴 수는 없어요.”두 사람의 소란에 반재인이 성큼성큼 걸어와 어두운 안색으로 캐물었다.“어찌 된 일입니까?”그러자 김상아는 옆 서랍을 가리키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사라 박사님께서 오늘 오전에 외출한 후, 작은 물건 몇 개를 가지고 오더니 오늘따라 뭔가 이상해졌어요. 혹시 그 작은 물건들에 영향을 받아 기억이 회
사라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구성 전에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여러 시약을 계속 투입하기 시작했다.한편, 김상아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기양양한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반드시 반승제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녀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다. 정말 당장이라도 서주혁의 몸에서 실험을 시작하고 싶을 지경이다.같은 시각, 방 안에서 가장 평온한 사람은 오히려 백겸이다.그는 심지어 반재인 더러 스테이크와 와인을 준비하도록 지시한 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천천히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밖에 있는 저격수들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 지역에도 이미 백겸 측의 사람을 마련해두었고 그에게도 저격수가 있다. 만약 누가 감히 이곳에 침입한다면 바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땅에는 폭탄이 매설되어 있고 손안에는 인질도 많았다.이번에야말로 이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승리를 만끽하며 천천히 스테이크를 썰다가 옆에서 오랫동안 연주하지 않은 피아노를 보며 반재인에게 물었다.“재인아, 지금 상황에 맞는 곡을 연주해 봐.”반재인의 모든 것은 백겸이 가르친 것이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기술도 포함해서 말이다.백겸은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젊었을 때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도 알았는데 심지어 그 실력도 엄청났다.심지어 당시 나설희가 피아노를 칠 때 옆에서 바이올린을 켜서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두 사람은 더욱이 소꿉친구였기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약혼했다.반재인은 옆에 있던 구형 피아노 앞에 앉아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와인을 한 모금 마신 백겸은 창밖으로 이따금 날아가는 헬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새벽 6시 반, 실험은 제시간에 시작되었다.사라는 이미 서주혁에게 다가가 첫 번째 약물을 주입하였고 밖에서는 갑자기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백겸은 앞에 놓인 와인을 우아하게 흔들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이 일은 거의 모두에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렇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자살이라니.하지만 나설희는 확실히 자살한 것이 맞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백겸도 모른다.그는 줄곧 자신의 결혼생활이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내와 부부 관계가 화목하고 아들도 활발하게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백발이 되도록 머리를 쥐어 잡고 고민해봐도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그 후 나경택과 아내는 너무 슬퍼 바로 이 구역에서 물러나며 더 이상 외부 일을 상대하지 않았다.그렇게 백겸도 그때부터 명목상의 장인어른을 만난 적이 없었다.그리고 현재 백겸은 휘청거리며 다가오는 나경택을 보고 나서야 나설희의 죽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나경택의 모습은 마치 죽을 고비를 넘긴 노인처럼 심지어 걸을 때도 숨을 헐떡거렸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아마도 백겸이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백겸은 순간 불에 데기라도 한 듯 뒤로 물러섰고 나경택은 곧바로 집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무르며 옆에 있는 반재인에게 알렸다.“재인아, 네가 내려가서 어르신께 이번 일에는 끼어들지 말라고 전해라.”반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뛰쳐나갔다.백겸은 나경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반재인을 바라보았는데 나경택은 숨을 헐떡이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이윽고 반재인은 다시 백겸에게 뛰어왔고 조금 망설이는 듯 말을 더듬었다.“선생님, 어르신께서 이렇게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어젯밤에 어르신의 부인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즉 선생님의 장모님 말씀입니다. 어르신께서 선생님께 전해주고 싶은 편지가 있으시다는데 나설희 사모님께서 남긴 편지라고 합니다. 직접 선생님께 주고 싶다고 합니다.”나설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에 관한 수수께끼가 잔뜩 남아 있었다.처음 3년 동안 백겸은 계속하여 꿈을 꾸었다. 아주 작은 기억부
나경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백겸은 묵묵히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그와 나경택은 몇 년 동안 이렇게 한 테이블에서 식사한 적이 없었다.콜록콜록.나경택은 언제라도 기절할 것처럼 계속하여 기침해댔다.백겸은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경택도 이제 정말 늙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예전에 나설희가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아우성칠 때까지만 해도 나경택은 직접 채찍을 휘두를 정도로 기력이 넘쳤다. 다만 그때 채찍을 휘두른 것은 시늉일 뿐이었고 사실 나경택은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아꼈었다.백겸이 이틀 동안 나씨 가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을 때도 나경택은 창가에서 그를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나설희에게 말했다.“봐라, 저 녀석도 기껏해야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말 것이야. 스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절대 잊지 마. 너와 백겸은 함께 할 인연이 아니야. 백겸은 널 해칠 뿐이야.”“아버지. 제발 그런 허튼소리 하지 마세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걸 믿으세요?”“그 스님의 점괘가 얼마나 정확한지 몰라서 그래? 그해 네 어머니가 아이를 임신하지 못했을 때도 스님은 나중에 딸을 낳을 거라고 하셨어.”나설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백겸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 났다.그리고 나경택은 백겸이 절대 오래 버틸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백겸의 고집은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셌고 나설희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마침내 무너지기 직전이 되자 나설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풀썩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아버지, 저와 겸이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결혼 허락해주세요. 꼭 포동포동한 사내아이를 낳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때 가서 손자 얼굴을 보고 그와 놀아주며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나경택은 진심으로 나설희를 아껴주었다. 그런데 그런 딸이 덩달아 자신에게 무릎
창밖의 경보음은 계속되었고 온 하늘을 뒤흔들도록 울려 퍼지고 있었다.말을 마친 백겸은 떨리던 가슴을 멈추고 입가를 꼭 오므렸다.나경택은 몸이 너무 안 좋아 기침을 몇 번 했더니 기운을 모두 쓴 모양이다.그는 손에 든 편지를 건네주다가 부주의로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이제 멈춰라. 그리고 잘 봐. 이게 바로 네가 그토록 원하던 진실이니.”진실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백겸이 그토록 오랫동안 쫓던 진실이 갑자기 나타나니 백겸은 감히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그러자 나경택은 부르르 떨면서 그의 손을 잡고 편지를 백겸에게 건네주었다.“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라. 주혁이와 승제 두 아이는 어릴 적부터 너도 함께 봐왔잖아. 설희가 그 두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넌 지금 뭘 하는 거냐? 주혁이를 죽이고 승제의 아내를 따라 죽게 하고 말이야. 게다가 승제의 아내는 지금 임신 상태잖아. 네가 저지른 죄는 이미 충분하다.”“그게 뭐 어때서요?”백겸의 대답은 매우 가벼웠다. 여전히 자신이 한 일에는 그 어떤 잘못도 없다는 모양이다.나경택은 창백한 안색으로 입가의 피를 손수건으로 닦았다.“보면 알 거다. 이제 난 주혁이와 혜인이를 데려갈 거다. 만약 날 막겠다면 나도 이 방에서 죽을 거다. 마침 설희와도 만날 수 있겠네.”나설희는 바로 이 작은 양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경택도 이미 완전히 지쳐버려 이제 그녀를 따라 떠나고 싶었다.백겸의 눈동자가 매섭게 움츠러들더니 그는 손에 든 편지를 꽉 움켜쥐었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편지 봉투를 열어보지 않고 천천히 서주혁이 누워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나경택을 바라보았다.옆에 있던 반재인이 다급히 그를 말리려 발걸음을 옮겼지만 백겸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당장이라도 나경택을 쏴 죽이고 싶었던 반재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러나 나경택은 겁도 없이 약물을 투여하던 사라의 손을 잡아버렸다.사라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백겸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백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고 그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