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원진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토록 완벽하던 그도 당시연 앞에만 서면 한없이 멍청해지는 것 같다.당시연은 원래 원진에게 음식을 집어주려고 했지만 원진의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두 사람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분위기는 일순간 침묵으로 변했다.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성혜인은 반승제의 인정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갚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여 성혜인은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배를 슬쩍 어루만졌다. 그리고 원진의 농담거리를 지켜보고 있던 반승제는 그녀의 이 동작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바로 그녀를 부축해주었다.“어디 아파?”“조금요. 바람 쐬러 나가고 싶어요.”“내가 부축해줄게.”그렇게 두 사람은 일어나서 함께 룸을 나섰다.그들이 떠나자 룸 안에 남겨진 두 사람은 더욱 어색해졌다.원진은 당시연에게 차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당시연은 눈앞에 나타난 훤칠한 손가락을 쳐다보며 추억에 잠겼다.원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고 안색이 약간 병적인 느낌이 드는 것을 보아 명백한 영양실조였다.그 후 1년 동안 꾸준히 몸조리한 후에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었다.“진아, 수능 끝나고 왜 인사도 없이 갔어? 혹시 우리 부모님이 너 곤란하게 하셨어?”“아니에요.”이번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원진이 천천히 앞에 놓인 잔을 쥐어 잡았다.시연 누나라는 말은 아무리 노력해도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묵묵히 원진을 지켜보던 당시연은 입꼬리를 올리고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그러나 다 쓰다듬은 뒤에야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동작에 충격을 받았고 곧이어 원진은 이미 24살의 성인 남자라는 것을 떠올리며 어색하게 손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쓰다듬어주는 게 익숙해서... 그때 우리 부모님과 심하게 싸우며 듣기 싫은 말들이 오갔는데 아직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네. 어렵게 연락처를 얻
그러자 성혜인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팔짱을 끼며 차에 올라탔다.원진과 당시연만 행복하다면 그녀의 노력도 결코 물거품이 아니다.위층.반승제의 조롱을 받고 원진의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그는 손을 대지도 않은 눈앞의 요리들을 바라보며 한쪽의 공용 젓가락으로 당시연에게 갈비를 하나 집어주었다.당시연도 원래 더 머물고 싶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어머니였다.당시연은 수신 버튼을 누르고는 조금 허탈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엄마, 나 오늘 진짜 야근했어. 일부러 안 만난 거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그래, 그럼 한 시간 후에 만나.”전화를 끊은 뒤, 당시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진아, 너 제원에서 며칠 동안 지낼 계획이야? 나 앞으로 며칠 동안은 외지로 출장 갈 것 같은데 혹시 나중에 제원에 다시 오게 되면 그때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까?”어머니가 당시연에게 소개팅 상대를 주선해 주며 이미 그 사람과 약속을 잡았으니 멋대로 바람맞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러자 원진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꺼냈다.“내가 배웅해줄게요.”“나 차 가지고 왔어.”“그럼 저 배웅해줘요.”“....”결국, 두 사람은 함께 자동차에 올라탔다.당시연은 운전석에 앉아 호텔 위치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는데 뜻밖에도 이 호텔은 그녀의 집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이렇게 가까운 데 있으며 한 번도 그녀에게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단 말인가?서운함을 금치 못한 당시연이 눈꺼풀을 내리 드리우며 눈 속에 담긴 감정을 애써 감췄다.원진은 조수석에 앉아 여러 가지 화제를 떠올렸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진아, 대학은 어디서 다녔어?”당시 원진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집을 떠나는 바람에 그가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당시연 역시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첫해에는 갖은 방법을 써도 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플로리아요.”“졸업한 지도 1년이 지났겠다. 제원으로 돌아와 일할 생
애초에 핸드폰을 깜빡했다는 건 핑계일 뿐 그는 핸드폰을 두고 나온 적이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마음이 심란해져 바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내려간다는 것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원진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숙였지만 저 너머의 유리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혹여나 목도리에 담배 냄새가 배지 않을까 다시 담배를 내려놓았다.그렇게 위에서 7~8분을 머무른 후에야,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당시연은 최근에 외지로 출장을 가게 되며 관련 과제를 연구하느라 연달아 이틀 밤을 새운 상태였다. 하여 짧은 시간이었지만 벌써 운전대에 엎드려 잠들어있었다.원진이 차 문을 당겼을 때도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그는 조수석에 다시 앉아 차 문을 닫고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당시연은 워낙 피부가 맑고 깨끗한지라 눈을 감으니 속눈썹에 의해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천천히 당시연의 얼굴을 뜯어보던 원진의 시선은 결국 그녀의 꾹 닫힌 입술에 그쳤다. 당시연의 입술은 타고난 웃는 상으로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어 사람들에게 항상 친화력을 주었다.입술에 몇 초간 시선이 머물렀지만 원진은 좀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고 그때 차창 밖으로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알고 보니 당시연의 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뒤에 있던 차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켕기는 게 있는지 원진은 순간 꼿꼿이 앉아 입을 꾹 다물었다.당시연은 잠에서 깨어나 먼저 시간을 보고 나서야 얼굴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왜 나 안 깨웠어? 혹시 또 잊은 게 있어?”“아니요.”이에 당시연은 그제야 액셀을 밟고 자리를 떴다.한참을 달려 차는 호텔 입구에 다시 멈춰 섰다.“출장 며칠 동안 가 있는 거예요?”“음... 3일 정도.”이윽고 다른 얘기를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당시연의 핸드폰이 또다시 시끄럽게 울려댔다. 이번에는 소개팅 상대에게서 온 전화이다.당시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했고 먼저 상대에게 차가 막힌다
같은 시각, 성혜인은 반승제와 함께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간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신난 얼굴로 온시환에게 전화하는 반승제를 보게 되었다.“야, 너 원진 알아? 그 사람...”통화를 마친 후, 그는 또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주혁아, 너 원진이...”가만히 듣고 있던 서주혁은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한번 화면을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반승제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맞다.말하는 내용만 듣고 진심으로 온시환인 줄 알았다.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막 몇 마디 답장을 해주기 위해 입을 뻥긋거렸다. 예를 들어 원진이 너한테 복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그런데 서주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저쪽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혜인아, 너 왜 내 귀를 잡아당겨? 말로 해, 말로.”“제발 그만 하세요, 반승제 씨. 꼭 그렇게 원진 씨와 걸고넘어져야겠어요?”서주혁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커플들의 사랑싸움을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어떤 종류인지를 불문하고 커플 싸움은 극혐이었다.넓은 별장 안에는 서주혁 혼자뿐이었고 옆 탁자 위에는 그가 법원에서 가져온 두 장의 서류가 놓여있었다.그날 무심코 놔두고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그 두 서류를 본 서주혁은 눈이 데기라도 한 듯 갑자기 두 권의 책을 고이 안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리는 입구를 지키며 왕왕 짖다가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붕붕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별장 안에는 비록 두 마리의 개가 더 많아졌지만 서주혁은 분명히 이 회색빛이 도는 작은 토종 개를 더 좋아하고 있다.그는 아리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그의 턱을 긁어주었다.아리는 기분이 좋은지 편안한 소리를 냈고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옆에 있던 도우미는 낯선 주인의 모습에 겁이 나 발을 동동 굴렀다. 별장에 갑자기 개 두 마리가 늘어난 것도 모자라 그중 한 마리는 주혁 씨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니.예전에 서주혁은 이런 작은 동물들을 가장 싫어하고 더럽다고 여
“됐어요.”이 집의 남 주인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은 또 처음이라 도우미는 전전긍긍하며 털을 말리기 시작했다.아리는 아직 어린 강아지라 털을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털을 다 정리하자 서주혁은 바로 아리를 데리고 나가 아리에게 강아지 이름표를 달아주었다.하지만 아리는 아직 너무 작은지라 이름표 하나를 달았을 뿐인데 걷는 것조차 영향을 받았다.하여 서주혁은 침실 모퉁이에 이름표를 다시 내려놓고 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그리고 한밤중에 서주혁은 아리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재빨리 침대 머리맡의 불을 켜보니 아리는 자신의 따뜻한 보금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침대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순간 마음이 급해진 서주혁이 아리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그러나 아리는 눈을 뜨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서주혁은 너무 놀라서 즉시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방문하도록 요구했다.하지만 이윽고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또 서둘러 트렌치코트를 입기 시작했다.“아닙니다. 그냥 제가 지금 갈 테니까 병원에서 기다려주세요. 약 같은 것도 갖춰두시고요.”그는 급한 대로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한쪽에 놓여있던 목도리로 아리의 작은 몸을 돌돌 말고 바로 집에서 나가 차를 탔다.운전기사를 부를 겨를도 없이 서주혁이 직접 운전에 나섰다.진료소에 도착한 건 10분 후였다. 그는 아리를 안고 빠른 걸음으로 진료소에 들어갔는데 안색은 세상을 잃은 것처럼 어두웠다.수의사는 강아지에게 진찰을 해주고 또 여러 가지 실랑이를 한 끝에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주혁 씨, 강아지는 그저 악몽을 꾼 것 같습니다.”아마 전에 익사할 뻔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잠을 자는 게 불안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몇몇 의사들이 서주혁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안에 검은색 잠옷을, 그리고 겉에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사람들에게 알려진 서주혁의 이미지는 항상 냉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잔뜩 흐트러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다른
백겸의 신분은 조금 특이한 편이다. 하여 그들 같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은 모두 철저한 비밀 유지가 필요하다.반승제가 그곳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자 백겸은 편해 보이는 일상복을 입고 그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이윽고 반승제의 얼굴을 보자 백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이번에 네가 기지 자료를 찾아오며 큰 공을 세워 그 영감들이 너에게 상을 주기로 상의했잖니. 그래서 너에게 특권을 주려고 하는데 갖고 싶은 게 있냐?”특권?반승제가 자리에 앉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있어야 할 건 진작에 모두 손에 넣었기에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그런데 순간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며 반승제가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렇다면 정말 제가 원하는 건 다 주실 거예요?”“물론이지. 워낙 중요한 자료라 그 꼰대들이 아무리 인색해도 인센티브는 줘야지.”“그럼 의사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예약해주세요. 저와 혜인이의 결혼식은 그곳에서 진행할게요.”차를 따르던 백겸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의사당은 상층 고위 인사들이 회의를 개최하는 곳으로 절대 외부에 개방하지 않으며 결혼식도 허용될 리가 없었다.만약 그가 이 제안을 정말 동의한다면 반승제는 아마 일인자가 될 것이다.“난 자네가 후대를 위한 권력을 원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틀렸나 보군.”“아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뭐. 저와 혜인이의 결혼식은 뒤로 미룰 수 있어요. 그러니 결혼식을 의사당에서 하면 신선하고 혜인이도 좋아할 것 같아요.”그 의사당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인데 예전에는 왕이 조정을 올랐던 곳으로 곳곳이 고풍스러운 광경으로 가득했다.그러니 결혼식을 이러한 곳에서 진행한다면 사진빨도 엄청나게 잘 받을 것이다.한편 백겸은 손을 들어 자신의 미간을 문지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안 될 건 없지. 그때 너한테 1달 정도 빌려주마.”“네, 그럼 이대로 정하죠. 그런데 오늘 저를 부른 이유가 정말 이것 때문입니까?”“아니. 배현우 일 때문이다. 내
“심 비서, 일단 먼저 돌아갑시다.”반승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홱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심인우도 어쩔 수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집에 돌아온 후, 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의사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을 꺼냈지만 이게 웬걸, 성혜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네이처 빌리지는 제가 디자인한 곳이니 저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결혼식은 그저 친한 친구들도 초대하면 되니까 크게 진행할 필요 없어요.”그러자 반승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들어 그녀의 배를 어루만져주었다.검사 결과 성혜인과 아이의 상태는 모두 정상이었다.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반승제는 더 이상 그들 사이에 그 어떠한 변고도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반승제가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자, 그럼 결혼식은 네이처 빌리지에서 하고 웨딩사진을 의사당에서 찍을까? 지금까지 의사당에서 웨딩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성혜인은 그러한 반승제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내세우는 걸 좋아한다니까.이윽고 반승제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보고 티테이블의 휴지를 뽑아 천천히 닦아주었다.하지만 1초 후, 반승제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승제 씨?”처음에는 너무 피곤해 그런 것이라 여겨 몇 번 흔들어 보았지만 반승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하여 성혜인은 서둘러 심인우에게 연락하여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동시에 사라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곧바로 성혜인을 찾아온 사라는 순간 책임감을 느끼며 무슨 말을 하려다 천천히 입술을 오므리고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괜찮아요. 무언가에 영향을 받으며 몸 안에 있는 약성이 자극받았나 봐요. 평소에도 계속 참아오다가 한계에 도달해 쓰러진 것 같아요.”그러자 성혜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애원했다.“정말 방법이 없나요? 상아 씨를 불러온다면요?”사라는 손을 들어 손안의 데이터를 자세히 관찰해보았다.“상아 씨의 피는 확
성혜인은 서주혁 측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반승제를 네이처 빌리지로 데려갔다. 그리고 빌리지 내부의 모든 인원을 샅샅이 검사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빌리지 내부에서 발견되지 않자 그녀는 또 심인우에게 물었다.“혹시 오늘 누구를 만나러 갔습니까?”심인우가 솔직하게 하나하나 전부 다 설명해주었다.성혜인은 소파에 앉아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백겸이라면 확실히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그녀는 또 설우현을 불러냈다.“오빠, 그때 칸다에서 수색할 때 혹시 승제 씨와 닮은 남자 본 적 있어요? 제가 처음 칸다에 도착한 그 날 밤, 한 남자가 승제 씨를 사칭해서 저를 데리러 왔는데 승제 씨와 똑 닮아 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수상한 사람이 나타난 적 없는데 승제 씨가 쓰러졌어요. 승제 씨 주변에 나타났던 다른 사람은 저도 전부 알고 있지만 그 남자는 아직도 정체를 모르고 있어요.”게다가 연구기지의 일이 생기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남자가 속한 세력은 아직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그렇다면 이미 움직인 건가, 아니면 애초에 움직이지 않은 걸까?적들의 행보를 알 수 없으니 그들은 계속하여 피동적인 상황에 부닥쳐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하루빨리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아니. 그런 남자 본 적 없어. 하지만 너도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는 건 정말 반승제와 닮았다는 건데 그럼 널 노리고 찾아갔단 말이야?”“네. 저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승제 씨가 즉시 저에게 전화해준 덕분에 그 사람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어요.”성혜인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미 진짜를 대체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만약 상대방이 반승제로 속여서 뭔가를 한다면?“혜인아, 넌 어쩔 생각이야?”성혜인은 설우현을 데리고 위층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침실 침대에는 반승제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그녀는 문을 닫고 침대 곁으로 가 반승제의 손을 꼭 잡으며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저를 노리고 찾아왔다는 건 제 몸에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