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로 돌아왔을 때 강민지는 이미 씻고 소파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신예준은 현관에 걸어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던 중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예준아, 나도 오늘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 일단 먼저 씻고 와.”신예준은 반신반의하며 씻고 나왔다. 그는 소파 위에 놓인 슈트 한 벌을 보았다.신예준은 강민지 앞에서 이런 브랜드를 모르는 척했다. 그녀는 그가 정말 모르는 줄 알고 매번 수억 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녔다.이번에 준비한 옷도 결코 싼 것이 아니었다. 패션쇼에서 선보인 신상으로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도 않았다.“이거 한 번 입어봐. 백화점 지나가다가 샀는데, 너한테 딱 어울릴 것 같았어. 너 슈트 입으면 정말 멋지잖아. 우리 이거 입고 하자.”강민지는 정말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자기 말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강민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솔직한 편이었다. 처음 몇 번은 조심스러운 척했지만 나중에는 직접적으로 행동하며 그를 이끌었다. 그녀는 슈트를 들고 그를 침실로 끌고 갔다.침실 안에는 그녀가 뿌린 향수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신예준은 침대에 밀려 앉았고, 강민지는 슈트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얼른 갈아입어봐. 보고 싶어.”신예준은 이런 상황에서 말을 잘 듣는 편이었기에 바로 옷을 입었다. 그는 키가 컸고, 이 옷은 탄탄한 역삼각형 체형을 완벽하게 돋보이게 했다. 게다가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강민지는 속으로 환호했다. 자기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처음 그를 쫓아다니며 고생한 것도 충분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멋졌다!강민지는 손을 뻗어 넥타이를 잡고 신예준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녀를 맞추기 위해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한쪽 무릎을 꿇어봐.”신예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릎을 꿇었다. 강민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을 천천히 들어 그의 가슴에 올렸다.마음속으로는 내일 이 브랜드의 모든 슈트를 신예준에게 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남자를
강민지는 신예준에게 밀려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거의 침대에 주저앉을 뻔했다.“예준아?”신예준은 어두운 얼굴로 서 있다가 곧바로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강민지도 약간 화가 났다. 이 몇 달 동안 신예준은 그녀를 극진히 대해주었다. 처음 일 주일 동안은 분명히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 후로는 언제나 그녀에게 양보하며 맞춰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를 밀치고 혼자 나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도대체 왜 이래? 선물을 주는데도 기분이 안 좋아? 오늘 내 생일이란 말이야...”강민지의 생일이면 항상 강씨네 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고, 그 사치스러움은 과히 엄청났다. 지금은 그저 남자에게 슈트를 입혀보고 싶은 건데, 그는 완전히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신예준은 이미 문가에 다다랐지만 그녀가 생일을 언급하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저 몇 초간의 망설임만 있었을 뿐 그는 이내 거실로 빠르게 걸어 나가더니 그대로 집을 나갔다.강민지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고 심지어는 이별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집과 냉장고에 남아 있는 반쪽짜리 케이크를 보자 조금씩 화가 누그러졌다.뭐, 아직 이별할 정도는 아니지. 신예준은 여전히 자신에게 잘해주고 있으니까.신예준은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담배를 피웠다. 그는 강민지 앞에서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녀가 담배 냄새를 참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지금 신예준은 여러 대를 연달아 피워도 속이 후련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민규가 사는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신예준은 평소 매우 절약하며 살았고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했으며 택시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택시비가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신예준은 서민규의 집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서민규는 문을 열고 그를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직접 약을 가지러 올 정도야? 대체 얼마나 자주 했길래 벌써 다 써버렸어? 참, 부럽다.”서민규의 방은 매우 작아서 두 사람이 서 있으면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소파 위에는 옷들이
강민지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여성은 자신이 조금 과장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잠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때 맞장구를 쳤다.“사실 맞아요. 민지 씨 남자 친구 정말 잘생겼어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봤던 잘생긴 남학생과는 비교도 안 돼요. 민지 씨,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멋진 남자를 만난 거예요?”남자 친구가 칭찬받자 강민지는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역시 그녀가 첫눈에 반한 남자다웠다. 막 대답하려던 찰나 사람들의 화제가 바뀌었다.“잘생기긴 했는데, 듣자 하니 정식 직업은 없고 계속 아르바이트만 한다면서요? 그것도 여러 개를 한다던데, 완전 가난한 거 아니에요?”“안타깝네. 집안 형편만 좋았어도 그 남자를 선택할 사람은 많았을 텐데.”“이 정도로 잘생겼으면 돈 많은 여자들이 많이 접근했겠죠? 그래도 민지 씨한테는 꽤 충실한 것 같던데요.”“요즘 세월에 충실함이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2억이 더 낫지.”강민지는 이 무리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원래 신예준 때문에 여기에 일하러 온 것이었고, 평소에는 사람들과 잘 지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지금 모두가 각자 한마디씩 하는데 겉으로는 잡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를 비꼬아 평생 가난하게 살 운명이라는 듯, 가슴을 찌르는 말들이었다.강민지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곧 한 직원의 남자 친구가 여러 개의 우산을 가지고 왔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우산을 받았지만 강민지만 받지 못했다.그 남자는 처음에 강민지에게도 우산을 주려 했지만 여자 친구에게 눈치를 받자 머쓱해하며 다시 가져갔다.결국 여기에는 강민지 혼자만 남았다. 그녀는 점점 더 화가 나고, 점점 더 서러워졌다.강민지는 휴대폰을 꺼내 망설임 없이 신예준의 대화창을 열어 세 글자를 보냈다.[헤어져!!!]막 메시지를 보낸 순간 그녀는 멀리서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바로 신예준이었다.아마도 메시지 알림 소리 때문에 그는 휴대폰을 꺼내 누가 보낸 메시지인지 확인하려는
집에 도착하자 강민지는 차에서 내렸다. 신예준은 우산 절반을 강민지 쪽으로 기울였다. 그녀는 그의 팔짱을 끼고 꼭 붙어서 작은 아파트로 들어갔다.목욕을 마친 후 강민지가 물었다. “오늘 출근했어?”“응.”“네가 입은 슈트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어?”“아니, 다들 바빴어.”강민지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정말 눈썰미가 없는 사람들이야.’신예준은 오늘 밤 서민규에게서 받은 약을 강민지 모르게 몇 알 삼켰다. 그러나 약병 뚜껑을 막 닫으려는 순간 강민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거 매번 먹는 거 뭐야? 비타민이야?”병에 비타민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강민지는 신예준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 쑥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비타민이야. 그냥 재미로 먹는 거지.”신예준은 병을 치우고 강민지를 품에 끌어안았다. 강민지는 신예준의 얼굴을 보며 그의 다크서클이 예전보다 더 짙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최근에 잠을 잘못 잔 거야?”“아니. 근데 지금 그런 거 물어볼 때야?”강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신예준의 목에 팔을 감았다.“그래. 이제 안 물어볼게.”둘은 곧 침대에서 뒤섞였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기꺼이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했다.땀방울이 신예준의 코끝을 타고 흘러내려 강민지의 가슴에 떨어졌다.강민지의 눈동자가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듯 번뜩이더니 곧이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예준은 그녀를 끌어올려 품에 안았다. 강민지는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에 그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예준아, 너 요즘 너무 힘들어 보여. 일이 너무 고된 거 아니야? 평소에는 또 날 돌보느라 쉬지도 못하고. 아니면 내가 요리라도 배워볼까?”신예준은 바로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예준은 옆에 놓인 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창문을 열고 팔꿈치를 창틀에 얹은 그는 깊은 눈빛으로
신예준은 10여 분이 지나서야 병실로 돌아갔다.희서는 안색이 좋지 못했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전엔 병문안 올 때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으면서. 오빠 저 여자 좋아해?”“아니야.”그는 옆 의자에 앉아 능숙하게 희서를 위해 사과를 깎아주었다.희서는 여전히 불안한 듯했다.“예쁘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오빠랑 동료란 말이야?”“전엔 부잣집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파산했어.”그제야 조희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있는 집안 사람 같더라니.“그래도 좀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에 부잣집 사람들은 노는 것도 방탕하다고 들었어. 혹시 저 사람이 오빠를 마음에 두었을까 봐 겁나. 오빤 저런 사람들 상대가 아닌걸.”신예준은 조용히 사과를 깎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조희서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 신예준의 보살핌에 익숙해져 있었다.신예준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에게 꼭 희서를 잘 보살피고 꼭 희서와 결혼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신예준의 아버지는 희서네 운전기사였다.희서의 부모님은 모두 신예준의 아버지가 운전기사였을 당시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신예준의 아버지 역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후에 신예준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아들이 보는 앞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불과 한 달 만에 희서는 부잣집 자제로부터 부모님을 잃은 고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안 회사는 제이엔 쥬얼리에 인수되었고 이는 희서의 한평생 아픔이었다.부모가 없었기에 회사는 빠르게 인수되었고 그녀와 신예준은 서로 의지하기 시작했다.신예준의 어머니는 모든 게 남편의 잘못이라 생각했고 투신하기 전 신예준에게 당부했다.“희서를 잘 돌봐줘. 우리 가족이 조씨 집안에 빚졌어. 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희서가 고아가 될 일도 없었어. 엄마가 부탁할게. 너 혼자 두고 가는 거, 내가 이기적이란 걸 알아. 하지만 정말 이제 더 견디지 못하겠다.”어머니의 당부 때문에 이 몇 년간 신예준은 그녀에게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그러나 희서가 몸을 내주
병원 밖으로 나갔더니 잔디밭 의자에 앉아 있는 강민지가 눈에 띄었다. 아마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장하는 듯했다.천천히 그녀에게로 걸어가 머리를 쓰다듬었다.신예준의 발소리를 듣고 민지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어쩐지 자꾸 몸에서 향기가 나더라니. 병원에 온 거였구나! 전엔 바람난 거 아닌가 의심까지 했었는데.”강민지가 의자에서 일어나 예준의 손을 잡았다.“친구가 이번 주면 의사가 올 수 있대. 직접 수술 지도할 거고, 문제없을 거야.”“응.”“그럼 집에 갈까? 나 네가 해준 족발 먹고 싶어.”“민지야.”“왜?”족발 먹을 생각에 신나있던 강민지는 신예준이 문득 이름을 부르자 조금 불안해졌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 기분.“고마워.”고맙긴.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는 일인데.하지만 이번 일로 신예준을 조금 더 부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강민지는 기뻤다.강민지는 폴짝 뛰어올라 신예준의 등에 업혔다.“피곤해 죽을 것 같아. 오늘 하이힐 신었더니 걷기가 힘들어. 업어줄 거지?”“간호사가 이 근처에 공원이 있다던데 산책 좀 하다 가자!”신예준은 별말 없이 업어주었고 강민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예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이번에 의사를 요청하기 위해 그녀가 이용한 것은 강씨 가문의 세력이었다. 그는 아버지께 친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강상원은 이런 청은 두말없이 들어주곤 해다.지난번 성혜인의 손 때문에 진세운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때 역시 강상원이 도왔던 것이었다.의사는 빠르게 도착했고 신예준도 이 며칠간 더욱 바빠졌다. 물어보면 늘 병원에 희서를 돌봐주러 가야 한다고 했다.강민지는 의심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몰래 가서 돌봐줄까 생각까지 했다. 최근 신예준이 알바하랴 돌봐주랴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으니까.오후가 되자 강민지는 알바하러 가지 않고 집에서 죽을 만들고는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조희서가 그녀를 보고는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또 그쪽이에요? 여긴 왜 또 왔어요!”
강민지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차가워진 안색으로 흐느끼는 조희서를 품에 안았다.“울지 마.”조희서는 원망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더 짜증 나는 건 자신은 병상에 누워만 있는데 그 여자는 매일 신예준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그 일 그만두면 안 돼? 정말 이제 견디지 못하겠어. 너무 혼란스럽고 나조차 자꾸 나를 의심하게 돼.”“알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조희서가 순간 울음을 그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내일 의사가 온대. 그때 건강 검진하려면 지금부터 몸조리 잘해야 해. 그래야 수술 성공률이 높아져.”“성공률이 얼마래?”“전에 70%라고 했어.”신예준의 대답에 희서는 순간 당황했다. 성공률이 이렇게까지 낮을 수가. 그녀는 정말이지 신예준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겁먹은 모습에 신예준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맞잡았다.“아무 일 없을 거야.”이후 병원을 나선 그는 강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디야?”이제 아파트로 돌아온 강민지는 이마의 아픔이 가시지 않아 거울에 비춰보았다. 이마에 빨갛고 크게 혹이 나 있었다.조희서가 신예준의 사촌 동생만 아니었으면 화를 내고도 남았을 거이다.신예준의 물음에 그녀가 사촌 동생이 사과를 던졌다고 말하려 했으나, 민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신예준이 먼저 말했다.“이제 희석 보러 오지 마. 전에 말했잖아. 걔 지금 감정조절 잘 안된다고. 너가 나타나면 희석 자극돼.”순간 강민지는 억울한 마음에 이마를 문지르며 입술을 짓씹었다.신예준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우리 관계 걔한테 말했어?”“아니.”“그럼 됐어.”순간 강민지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전화를 끊었다.지난번 이유를 알 수 없는 냉전을 제외하고 이 몇 달 동안 둘은 거의 다툰 적이 없었다.뭘 하든 그는 강민지에게 양보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희서 때문에 마음속에 폭탄을 하나 품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러나 희서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기 아버지 때문이라는 신예준의 메시지에 치밀어올랐던 화
신예준의 시선이 강민지를 넘어 희서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강민지가 또 무슨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되는 듯했다.강민지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과일 바구니를 움켜쥐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신예준은 병실로 가지 않고 민지를 따라 들어와 1층 버튼을 눌렀다.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자 강민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앞으로 보러 오지 않을게. 미안. 네가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려고 한 건데, 날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어.”엘리베이터는 천천히 하강해 1층 로비에 도착했다.그녀는 지나가는 환자 가족에게 과일 바구니를 건넸고 가족들은 모두 고맙다며 인사했다.다행히 한 간호사가 민지의 손 상처를 발견하고 바늘로 꿰매주었다.신예준은 종일 민지의 곁을 지켰고 그저 종종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장하는 듯 휴대전화를 보았다.상처 치료가 끝나자 그가 민지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버스에 오르자 그 역시 따라 올랐다.순간 민지는 마음이 약해졌다.“희서 씨 보러 가던 거 아니었어?”“너 먼저 데려다주고. 손 다쳤잖아.”강민지의 화가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녀는 신예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지만 여전히 우울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앞을 바라보던 신예준은 어깨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민지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강민지는 예뻤다. 길을 걸으면 남자들이 늘 뒤돌아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성격 역시 호탕했다. 연애한 지 2주도 안 되어 신예준을 이것저것 시키고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명문가의 아가씨로서 종래로 이렇게 억울한 일은 당한 적이 없었다.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옷 속을 적셨다.신예준은 순간적으로 짜증이 밀려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에 손을 얹었다.“왜 울어?”희서가 부모를 잃었을 땐 강민지보다 훨씬 비참하게 울었었다.어머니가 자살했을 때 그는 심지어 울지도 못했다. 그때 그들이 고작 몇 살이었다고.그런데 강민지는 그렇게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