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준이 집에 들어서자 강민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강민지에게 인내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때 침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준아, 침실로 와.”신예준이 침실로 걸어가자 침대 머리맡에 섹시한 차림으로 앉아 있는 강민지가 보였다. 강민지는 일어나서 한 바퀴 돌며 물었다.“어때, 예뻐?”강민지는 이런 상황에서 부끄러워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교제한 지도 세 달이 넘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늘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이런 옷을 입어본 그녀는 신예준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신예준은 문가에 서서 눈빛이 잠깐 날카로워졌다. 방 안에서 가장 밝은 조명은 꺼져 있었고, 침대 머리맡의 조명만 켜져 있어 분위기가 더욱 묘했다. 강민지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아직 말 안 했잖아. 예뻐?”신예준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예뻐.”“정말?”강민지는 그의 반응이 궁금해 손을 아래로 가져갔다. 그러나 신예준은 그녀의 손을 잡아채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 그 순간 강민지는 달콤한 감정이 밀려오며 손을 거두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었고, 그것도 밤새도록 이어졌다.하지만 신예준은 강민지와 함께할 때마다 항상 눈에 안대를 씌우거나 등을 돌리게 했다. 강민지는 자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가끔은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침대 위에서 그는 감정을 깊이 숨기고 있었다.그다음 달 동안 신예준은 그녀에게 무척 잘해주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데리러 갔고, 그녀의 아파트에 있을 때면 항상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해주었다. 그들의 생활은 마치 신혼부부 같았다. 그런 시간은 반승제가 귀국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강민지는 원래 성혜인을 만나려고 했지만 신예준과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쉬워서 결국 만나지 못했다. 신예준이 너무 바쁘다 보니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성혜인을 다시 만난 것은 성혜인이 네이처 빌리지의 리모델링을
강민지는 일상생활에 완전히 서툰 사람이었다. 혼자서 생활하는 법을 전혀 몰랐고, 집에서는 가정부가 옆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 주었기 때문에 밥을 어떻게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신예준과 함께 있을 때면 그가 자연스럽게 이런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하지만 신예준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강민지가 일상생활에 서툴다고 해서 그가 이런 것들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신예준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어두워졌지만 강민지는 등 뒤에 있어 그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예준아, 너 갈비찜도 했어?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신예준은 손에 쥔 빗자루를 꽉 쥐었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강민지가 그의 앞에 다가와 물었다.“왜 웃어?”“네가 혼자 있을 때면 과연 밥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지금까지 강민지는 죽과 라면밖에 끓일 줄 몰랐다. 죽도 겨우 한 번 해본 게 전부였다.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 신예준은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에게 밥을 해주었고, 그녀가 배달 음식을 시킬까 봐 걱정되어 다음 날 먹을 것까지 미리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 사용법도 가르쳐 주어, 그녀는 그냥 도시락을 꺼내 데우기만 하면 되었다.그래서 집에 돌아가지 않은 몇 개월 동안 강민지는 처음 아팠을 때 몇 킬로그램 빠졌던 몸무게가 다시 불어나고 오히려 1.5킬로그램이나 더 찌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신예준 덕분이었다.“못하지. 네가 있잖아?”게다가 강민지는 집이 잘 살기 때문에 굳이 직접 요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신예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을 깨끗이 닦고 나서 화장실로 들어갔다.이 아파트의 화장실은 매우 좁았다. 신예준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동안 강민지와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는 강민지를 감정적으로 속인 것을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철저히 돌봐주었다. ‘유능한 보모’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그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었지만 어쩔
강연지는 원래 심심해서 영상 통화를 걸었고, 이제는 화면 앞에서 계속 헬멧을 닦고 있었다. 강민지는 그런 강연지가 정말 어이없었다. “강연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해?”“알지, 언니 생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전화한 거야. 생일 선물은 집으로 보냈어. 축의금은 카톡으로 보냈고.”강민지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나마 양심은 있네. 이제 끊는다. 나 케이크 먹으러 갈 거야.”“언니, 올해는 생일 파티 안 해? 예전엔 케이크가 열 층이나 됐는데, 한 번도 안 먹었잖아. 살찔까 봐 안 먹는다며?”“그때랑 이번엔 달라. 이번 케이크는 예준이가 직접 만들어 준 거거든. 이런 완벽한 남자가 또 있을까 싶어. 뭐든지 다 잘해. 너도 예준이가 요리할 때 모습이나 슈트 입은 모습을 봤어야 해. 내가 지난번에 2천만 원짜리 슈트를 사줬는데, 아직 꺼내지도 못했어. 조금 있다 그걸 선물하고 4만 원짜리라고 속인 다음에 침대로 유인해야지.”강연지는 더 이상 듣기 힘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사랑에 빠지면 모든 걸 거는 성격인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말이 많다는 것도.“끊을게. 진짜 끊는다. 난 아직 그런 얘기 들을 나이가 아니거든.”강민지는 다 자랑하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거실로 돌아갔을 때 신예준은 이미 저녁상을 차려놓았다.강민지는 그대로 의자에 앉아 젓가락도 들지 않고 턱을 괸 채 그가 주방에서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오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신예준은 식탁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4인치짜리 케이크를 꺼내어 거실의 불을 껐다.“민지야, 소원 빌어.”촛불이 켜지자 강민지는 이번에 빌 소원을 조금 고민하게 되었다. 매년 그녀의 생일이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었고, 그때마다 소원을 대충 넘겼다. 이미 그녀는 모든 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신예준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직시할 용기가 없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촛불이
거실로 돌아왔을 때 강민지는 이미 씻고 소파에 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신예준은 현관에 걸어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던 중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예준아, 나도 오늘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 일단 먼저 씻고 와.”신예준은 반신반의하며 씻고 나왔다. 그는 소파 위에 놓인 슈트 한 벌을 보았다.신예준은 강민지 앞에서 이런 브랜드를 모르는 척했다. 그녀는 그가 정말 모르는 줄 알고 매번 수억 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녔다.이번에 준비한 옷도 결코 싼 것이 아니었다. 패션쇼에서 선보인 신상으로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도 않았다.“이거 한 번 입어봐. 백화점 지나가다가 샀는데, 너한테 딱 어울릴 것 같았어. 너 슈트 입으면 정말 멋지잖아. 우리 이거 입고 하자.”강민지는 정말 기대에 가득 차 있었고, 자기 말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강민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솔직한 편이었다. 처음 몇 번은 조심스러운 척했지만 나중에는 직접적으로 행동하며 그를 이끌었다. 그녀는 슈트를 들고 그를 침실로 끌고 갔다.침실 안에는 그녀가 뿌린 향수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신예준은 침대에 밀려 앉았고, 강민지는 슈트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얼른 갈아입어봐. 보고 싶어.”신예준은 이런 상황에서 말을 잘 듣는 편이었기에 바로 옷을 입었다. 그는 키가 컸고, 이 옷은 탄탄한 역삼각형 체형을 완벽하게 돋보이게 했다. 게다가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강민지는 속으로 환호했다. 자기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처음 그를 쫓아다니며 고생한 것도 충분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멋졌다!강민지는 손을 뻗어 넥타이를 잡고 신예준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녀를 맞추기 위해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한쪽 무릎을 꿇어봐.”신예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릎을 꿇었다. 강민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을 천천히 들어 그의 가슴에 올렸다.마음속으로는 내일 이 브랜드의 모든 슈트를 신예준에게 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남자를
강민지는 신예준에게 밀려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거의 침대에 주저앉을 뻔했다.“예준아?”신예준은 어두운 얼굴로 서 있다가 곧바로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강민지도 약간 화가 났다. 이 몇 달 동안 신예준은 그녀를 극진히 대해주었다. 처음 일 주일 동안은 분명히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 후로는 언제나 그녀에게 양보하며 맞춰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를 밀치고 혼자 나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도대체 왜 이래? 선물을 주는데도 기분이 안 좋아? 오늘 내 생일이란 말이야...”강민지의 생일이면 항상 강씨네 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고, 그 사치스러움은 과히 엄청났다. 지금은 그저 남자에게 슈트를 입혀보고 싶은 건데, 그는 완전히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신예준은 이미 문가에 다다랐지만 그녀가 생일을 언급하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저 몇 초간의 망설임만 있었을 뿐 그는 이내 거실로 빠르게 걸어 나가더니 그대로 집을 나갔다.강민지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고 심지어는 이별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집과 냉장고에 남아 있는 반쪽짜리 케이크를 보자 조금씩 화가 누그러졌다.뭐, 아직 이별할 정도는 아니지. 신예준은 여전히 자신에게 잘해주고 있으니까.신예준은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담배를 피웠다. 그는 강민지 앞에서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녀가 담배 냄새를 참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지금 신예준은 여러 대를 연달아 피워도 속이 후련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민규가 사는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신예준은 평소 매우 절약하며 살았고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했으며 택시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택시비가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신예준은 서민규의 집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서민규는 문을 열고 그를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직접 약을 가지러 올 정도야? 대체 얼마나 자주 했길래 벌써 다 써버렸어? 참, 부럽다.”서민규의 방은 매우 작아서 두 사람이 서 있으면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소파 위에는 옷들이
강민지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여성은 자신이 조금 과장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잠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때 맞장구를 쳤다.“사실 맞아요. 민지 씨 남자 친구 정말 잘생겼어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봤던 잘생긴 남학생과는 비교도 안 돼요. 민지 씨,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멋진 남자를 만난 거예요?”남자 친구가 칭찬받자 강민지는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역시 그녀가 첫눈에 반한 남자다웠다. 막 대답하려던 찰나 사람들의 화제가 바뀌었다.“잘생기긴 했는데, 듣자 하니 정식 직업은 없고 계속 아르바이트만 한다면서요? 그것도 여러 개를 한다던데, 완전 가난한 거 아니에요?”“안타깝네. 집안 형편만 좋았어도 그 남자를 선택할 사람은 많았을 텐데.”“이 정도로 잘생겼으면 돈 많은 여자들이 많이 접근했겠죠? 그래도 민지 씨한테는 꽤 충실한 것 같던데요.”“요즘 세월에 충실함이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2억이 더 낫지.”강민지는 이 무리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원래 신예준 때문에 여기에 일하러 온 것이었고, 평소에는 사람들과 잘 지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지금 모두가 각자 한마디씩 하는데 겉으로는 잡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를 비꼬아 평생 가난하게 살 운명이라는 듯, 가슴을 찌르는 말들이었다.강민지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곧 한 직원의 남자 친구가 여러 개의 우산을 가지고 왔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우산을 받았지만 강민지만 받지 못했다.그 남자는 처음에 강민지에게도 우산을 주려 했지만 여자 친구에게 눈치를 받자 머쓱해하며 다시 가져갔다.결국 여기에는 강민지 혼자만 남았다. 그녀는 점점 더 화가 나고, 점점 더 서러워졌다.강민지는 휴대폰을 꺼내 망설임 없이 신예준의 대화창을 열어 세 글자를 보냈다.[헤어져!!!]막 메시지를 보낸 순간 그녀는 멀리서 누군가가 우산을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바로 신예준이었다.아마도 메시지 알림 소리 때문에 그는 휴대폰을 꺼내 누가 보낸 메시지인지 확인하려는
집에 도착하자 강민지는 차에서 내렸다. 신예준은 우산 절반을 강민지 쪽으로 기울였다. 그녀는 그의 팔짱을 끼고 꼭 붙어서 작은 아파트로 들어갔다.목욕을 마친 후 강민지가 물었다. “오늘 출근했어?”“응.”“네가 입은 슈트 멋지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어?”“아니, 다들 바빴어.”강민지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정말 눈썰미가 없는 사람들이야.’신예준은 오늘 밤 서민규에게서 받은 약을 강민지 모르게 몇 알 삼켰다. 그러나 약병 뚜껑을 막 닫으려는 순간 강민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거 매번 먹는 거 뭐야? 비타민이야?”병에 비타민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강민지는 신예준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 쑥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비타민이야. 그냥 재미로 먹는 거지.”신예준은 병을 치우고 강민지를 품에 끌어안았다. 강민지는 신예준의 얼굴을 보며 그의 다크서클이 예전보다 더 짙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최근에 잠을 잘못 잔 거야?”“아니. 근데 지금 그런 거 물어볼 때야?”강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신예준의 목에 팔을 감았다.“그래. 이제 안 물어볼게.”둘은 곧 침대에서 뒤섞였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기꺼이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했다.땀방울이 신예준의 코끝을 타고 흘러내려 강민지의 가슴에 떨어졌다.강민지의 눈동자가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듯 번뜩이더니 곧이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예준은 그녀를 끌어올려 품에 안았다. 강민지는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에 그의 목에 얼굴을 비볐다.“예준아, 너 요즘 너무 힘들어 보여. 일이 너무 고된 거 아니야? 평소에는 또 날 돌보느라 쉬지도 못하고. 아니면 내가 요리라도 배워볼까?”신예준은 바로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예준은 옆에 놓인 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창문을 열고 팔꿈치를 창틀에 얹은 그는 깊은 눈빛으로
신예준은 10여 분이 지나서야 병실로 돌아갔다.희서는 안색이 좋지 못했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전엔 병문안 올 때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으면서. 오빠 저 여자 좋아해?”“아니야.”그는 옆 의자에 앉아 능숙하게 희서를 위해 사과를 깎아주었다.희서는 여전히 불안한 듯했다.“예쁘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오빠랑 동료란 말이야?”“전엔 부잣집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파산했어.”그제야 조희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있는 집안 사람 같더라니.“그래도 좀 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에 부잣집 사람들은 노는 것도 방탕하다고 들었어. 혹시 저 사람이 오빠를 마음에 두었을까 봐 겁나. 오빤 저런 사람들 상대가 아닌걸.”신예준은 조용히 사과를 깎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조희서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 신예준의 보살핌에 익숙해져 있었다.신예준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에게 꼭 희서를 잘 보살피고 꼭 희서와 결혼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신예준의 아버지는 희서네 운전기사였다.희서의 부모님은 모두 신예준의 아버지가 운전기사였을 당시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신예준의 아버지 역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후에 신예준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아들이 보는 앞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불과 한 달 만에 희서는 부잣집 자제로부터 부모님을 잃은 고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안 회사는 제이엔 쥬얼리에 인수되었고 이는 희서의 한평생 아픔이었다.부모가 없었기에 회사는 빠르게 인수되었고 그녀와 신예준은 서로 의지하기 시작했다.신예준의 어머니는 모든 게 남편의 잘못이라 생각했고 투신하기 전 신예준에게 당부했다.“희서를 잘 돌봐줘. 우리 가족이 조씨 집안에 빚졌어. 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희서가 고아가 될 일도 없었어. 엄마가 부탁할게. 너 혼자 두고 가는 거, 내가 이기적이란 걸 알아. 하지만 정말 이제 더 견디지 못하겠다.”어머니의 당부 때문에 이 몇 년간 신예준은 그녀에게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그러나 희서가 몸을 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