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린 후 강민지는 기사에게 20만 원을 송금했다.운전기사는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웃음꽃을 띄며 말했다.“아가씨, 기분이 좋지 않으면 제가 좀 풀어드릴까요?”강민지는 온몸이 굳었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걷잡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다.그녀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지금 그녀는 물에 빠진 생쥐와 다를 것이 없었다. 빗물 소리에 운전자의 웃음소리가 섞여 그녀의 고막을 울렸다.그녀는 몇 걸음 빨리 걸어서 아파트로 들어갔지만, 아파트의 보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계속 그녀의 뒤를 쫓아오려고 했다.아마 밖에서 그녀를 데려오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전의 통화가 그저 거짓이라 생각했을 것이다.혼자 사는 여성이 밖에서 견뎌야 할 악의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다.강민지는 곧 옆에 있는 24시간 편의점으로 달려갔다.편의점에는 폭우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10여 명 있었다. 그 택시 기사는 편의점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욕설을 퍼부으며 떠났다.강민지는 우산을 손에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편의점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녀가 왜 우산을 쓰지 않는지 궁금해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강민지는 혼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예 맨 끝자리를 찾아 앉았다.그녀는 또 재채기를 했다. 밖이 매우 춥게 느껴졌다.한편, 신예준은 이미 병원에 와 있었다.그는 비가 내리는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머릿속은 온통 희서가 깨어났다는 말로 가득 찼다.병실에 와서 조희서가 눈을 뜬 것은 보았으나 아직 말은 할 수 없었다.“희서야.”그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는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았다.옆에 있던 의사가 각종 지표를 체크하며 평온하게 말했다.“며칠만 지나면 내려와서 걸을 순 있을 거예요. 하지만 좋은 현상은 아니에요. 아직 약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니 얼른 수술해야 해요.”신예준이 조희서의 손을 잡고 볼에 갖다 대었다.이 부부의 사랑을 잘 알고 있는 의사는 한숨을 내쉬
신예준은 아파트 아래로 내려와서 입술을 몇 번 문질렀다. 담배를 꺼내서 피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목이 간질거리며 가슴도 불편해졌다. 버스에 앉은 후, 서민규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준아, 지난번에 처리해 준 양아치들한테 각자 20만 원씩 줬어.”“그래.”“그리고 조희서에게 신분 좀 빨리 정해줘. 강민지의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아끼는데, 만약 너희 관계를 알면 당장 네 뒷조사를 시작할 거야. 그럼 조희서도 숨길 수 없어.”“신분은 이미 정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서민규는 전화기 너머에서 쯧쯧 혀를 차더니,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속이 시커먼 네 걱정을 내가 왜 하지. 나 이제 출근해야 하니까 끊을게.”“응.”신예준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강민지를 성추행하려 했던 세 명의 양아치는 그가 고용한 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민지는 의식이 혼란스러워지며 그로 인해 그에게 빠르게 호감을 느끼게 될 수 있었다.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캐필라노의 법칙 흔히 흔들다리 효과라고 불린다. 사람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심장이 자연스럽게 빨리 뛰게 되는데, 이때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심장 박동이 그 사람에게서 오는 설렘으로 오해될 수 있는 것이다.더군다나 강민지는 이미 신예준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그녀의 호감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강민지는 여러 명의 전 남자 친구가 있었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녀에게 집착하거나 절대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면 금방 질리게 될 것이다.그래서 적당히 밀고 당기며 진심을 주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녀는 계속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고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신예준은 지금 버스에서 등을 뒤로 기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어젯밤에는 큰비가 내렸고,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 맑았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신예준은 정말 잘생겼다. 게다가... 그는 휴대폰을 꺼내 강민지의 취향이
서민규는 입꼬리를 몇 번 씰룩거리더니 담배를 발치에 버리고 발로 비벼 껐다.“아직 좀 남았지만 적당히 써라. 그거 부작용 있는 거 알지? 게다가 불법 약물이라 구하기 힘들어.”“알았어.”휴대폰 벨 소리가 멈추자 신예준은 그제야 휴대폰을 들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강민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민지야, 무슨 일이야?”“나 열이 나는 것 같아.”“지금 갈게. 집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응.”강민지는 조금 실망할 뻔했지만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는 아마도 일하는 중이라 휴대폰 벨 소리를 못 들었던 것 같았다.강민지는 몇 번 기침하고 소파에 몸을 웅크렸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졌다.서민규는 옆에서 이 광경을 보며 입안 속살을 깨물었다.“강씨 집안 딸이 정말 너한테는 못 당하나 보다. 넌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데는 정말 타고난 것 같아. 자연스럽게 길들이고 있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는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 것 같고. 내가 보기엔 그 여자가 정말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단순한 장난이 아니야. 예준아, 너도 너무 심하게 굴진 마.”이 말을 꺼냈을 때 서민규는 신예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서민규는 순간 자신이 잘못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예준이 심하다니?강상원은 심하지 않았던가?죽은 사람들의 죗값은 누가 치를 것인가. 강민지는 원수의 딸이었다.서민규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한 말이야. 난 휴식 시간이 끝나서 올라가 봐야겠다. 요즘 부장이 자꾸 나를 괴롭혀. X발. 보나 마나 학벌 때문에 그러는 거지 뭐. 짜증 나 죽겠어. 그때 내가 왜 좋은 대학에 못 갔지. 지금 부서에서 나만 전문대 출신이거든. 그 부장이 나를 하루 종일 감시하는 것 같아.”서민규는 불평을 쏟아내며 골목을 나섰다.신예준은 남은 반 개비의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야 천천히 강민지의 아파트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그는 과일을 좀 사고 근처 약국에서 해열제를 샀다. 아파트 문 앞에
신예준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방으로 향했다. 강민지는 볼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채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곧 그녀의 앞은 다시 캄캄해졌다. 신예준이 안대를 씌운 것이었다.“예준아?”강민지는 신예준이 나가는 소리에 이어, 물을 받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뭐 먹고 있어?”“비타민.”신예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강민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신예준이 몸을 눌러올 때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쌌다.한 번의 정사가 끝난 후 강민지는 신예준의 품에 안겨 숨을 헐떡였다.신예준은 침대에 더 누워있지 않고 주방으로 가서 차가워진 음식을 다시 데웠다.강민지는 이제 정말로 배가 고팠다.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힘이 빠진 채로 나왔다. 식탁 앞에 가서 앉자 음식이 이미 데워져 있었다.신예준이 막 앉으려는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아마 조희서가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몰랐다.신예준의 속눈썹이 떨렸다. 그는 강민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나 좀 나가봐야 할 일이 있어. 너 혼자 먼저 먹어.”강민지는 지금 몸이 편치 않았다. 사람이 약해질 때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길 바라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 사람이 남자 친구라면 더욱 그랬다.그러나 강민지는 이미 신예준의 일을 방해했다고 생각해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신예준은 서둘러 떠났다. 그가 나가는 순간 강민지는 그가 한숨을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가 차려준 음식을 보며 그 생각을 떨쳐냈다.자신이 너무 생각이 많았다고 여긴 강민지는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신예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강민지는 옆에 있는 휴대폰를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세 시였다. 그가 집으로 바로 돌아간 걸까?강민지가 전화를 걸려던 찰나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전화기 너머에서 신예준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민
강민지는 자신의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며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렸다.신예준은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러 사람을 기절시킨 후 그녀를 바라보았다.강민지의 얼굴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순간 그가 그녀에게 달려왔다.“조심해!”이 한마디를 끝으로 그는 그녀를 단숨에 품에 안았다.강민지의 머리에 떨어질 뻔했던 돌이 신예준의 머리에 떨어졌다.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신예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돌을 던진 남자를 발로 차냈다.남자는 땅에 쓰러져 신음하며 신예준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신예준, 너 지금 뭐 하는지 알아? 네가 어떻게 그 여자를 보호할 수 있어. 너는...”강민지는 신예준이 다시 앞으로 나가려 하자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그만해, 예준아. 이제 그만해. 나 다치지 않았어, 정말이야. 이러다 사람 죽겠어.”강민지는 전에도 신예준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모습은 여유가 넘쳤다. 그러나 오늘 밤 그는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남자는 계속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신예준이 강민지의 손을 뿌리치고 다가오자 입을 닫았다.차가운 신발에 얼굴과 턱을 걷어차인 남자는 턱이 탈구되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신예준의 눈에는 짙은 어둠이 깃들었다.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강민지는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다 그녀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다치게 된 것이다.그녀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옆에 멍하니 서 있는 택시 기사를 바라보았다.“어서 사람을 살려요, 사람을!”택시 기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잠시 주저하다가 신예준을 병원으로 데려갔다.신예준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강민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고 곧바로 강상원의 비서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리고 그녀는 강상원에게는 알리지 말고 조용히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늦은 밤에 문제를 일으켰다면 강상원이 또 뭐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비서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가씨. 이 일은 제가 깔끔하게 처리하겠
강민지는 아파트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옷에 묻은 핏자국을 내려다보니 피는 거의 말랐지만 콧속에는 아직도 비릿한 피 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얼른 샤워를 한 뒤 근처 마트로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지난번에 신예준이 면을 많이 먹지 않았던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면 대신 죽을 만들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하나하나 레시피를 찾아가며 채소와 고기를 넣어 죽을 끓였다.중간에 죽이 너무 묽어져서 한 번 실패했지만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도전했고 이번에는 딱 알맞은 농도로 죽이 완성되었다.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한 입 맛보았을 때 손가락이 냄비 가장자리에 닿아 물집이 생겼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정성스럽게 죽을 담아 병원으로 돌아갔다.이리저리 시간이 지체되어 벌써 아침 6시 반이 되었다. 죽을 들고 병실로 들어가니 신예준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곧바로 병실을 나가서 옆에 있던 의사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신예준이 문가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어디 갔다 온 거야?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 움직이지 말랬잖아.”돌에 맞아 생긴 상처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녀는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오싹해졌다.“괜찮아. 화장실에 다녀왔어.”강민지는 보온 용기를 옆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에는 여러 개의 밴드가 붙어 있었다.“예준아, 와서 아침 좀 먹어.”신예준은 보온 용기 속의 죽을 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 민지야. 그나저나 그 녀석들 때문에 너무 걱정돼.”강민지는 그의 얼굴을 감싸며 자신의 신분을 고백할까, 고민했지만 신예준의 다음 말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그래도 네가 부잣집 아가씨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아니면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있을지 걱정했을 거야.”고백하려던 말이 그대로 목에 걸렸다.“왜? 부잣집 아가씨면 더 좋은 거 아니야?”신예준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눈을 감으며 말했다.“그럼 너랑 만날 자신이 없었겠지. 결과가 뻔한데, 괜히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신예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천천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희서야, 더는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조희서는 다급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난 그저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의사 말로는 이번 수술에 전문의를 초빙해야 한다고 하던데,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맥도 필요해.”“내가 해결할게.”신예준은 다시 숟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죽을 떠서 그녀의 입가에 가져갔다.“넌 몸만 잘 돌보면 돼.”“그럼 약속해 줘. 아무리 바빠도 자주 와서 날 봐준다고. 나 혼자 있으면 정말 너무 답답해.”“알았어.”강민지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섰을 때 이미 몇 명의 간호사들이 타고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간호사들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위층 그 여자 정말 운도 좋아. 다른 남자 같았으면 분명 짐이라 생각하고 벌써 버리고 도망갔겠지.”“약혼자가 잘생기고 또 얼마나 다정한지, 아무리 피곤해도 꼭 와서 보고 간대. 이런 좋은 남자를 어디 가서 찾지?”“언제면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올까? 그런 잘생긴 남자와 잠깐이라도 입맞출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그녀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강민지는 그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강상원의 전화로 가득 차 있었다.아버지는 여러 번 그녀에게 가난한 남자와 얽히지 말라고 경고했었고, 신예준 역시 부잣집 아가씨와 연애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제 이 속임수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강상원은 그녀를 아끼긴 했지만 이런 원칙적인 문제에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강민지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집사가 말했다.“회장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강민지는 곧바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서재 문을 열자 강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밤중에 어떻게 그런 곳을 돌아다녀?”“아빠, 연지가 요즘 시합이 있잖아요. 나도 오토바이에 관심이 생겨서 연지한테 태워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걔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급히 가야 했거든요. 친구한테 급한 일이
강민지는 미소를 지으며 한숨에 먹고 싶은 음식 몇 가지를 말했다. 신예준의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저녁에 만들어 줄게. 이미 퇴원했어.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뛰지만 않으면 문제없대.]강민지는 이내 그를 용서했다.[좋아, 그럼 지금 당장 갈게.]강민지는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 문을 열고 강상원에게 간단히 말한 뒤 밖으로 나섰다. 예전에도 그녀는 자주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밖에 별장이 있었고, 강상원도 구속하지 않았다.강민지는 버스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갔다. 일부러 사람을 시켜 고급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채소를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예준이 요리하는 것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졌다.강민지는 주방 문 앞에 서서 신예준이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으로 칼을 잡고 다른 손으로 채소를 누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뒤에서 그를 꼭 껴안았다. “너도 다쳤잖아. 요리하지 말고 차라리 우리 그냥 배달시키자.”신예준은 허리 쪽에 감긴 그녀의 손을 보며 눈빛이 잠깐 어두워졌다.“괜찮아. 가서 앉아 있어.”강민지는 고개를 그의 등에 묻으며 말했다. “나가기 싫어.”신예준은 칼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뒤의 조리대를 받치고 강민지에게 키스했다.주방에는 세제 냄새가 났다. 신예준은 주방을 아주 깨끗하게 정리해 두었다. 강민지는 그의 몸에서 나는 살냄새까지 느낄 수 있었다.신예준의 향기는 따뜻하고 깨끗한 느낌이었지만 그 깨끗함 속에는 은근히 차가운 기운이 숨어 있었다. 강민지는 그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반시간 동안이나 키스하고 나서야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거실로 걸어갔다.신예준은 다시 주방에서 바삐 돌아쳤다. 강민지는 소파에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강민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신예준의 표정은 무척 담담했다. 마치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요리가 끝나자 그는 식탁에 차려 놓았다. 강민지는 도와주려고 서둘러 나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