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그녀는 그의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우현은 더욱 마음에 찔려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럼 내가 잘 보관해 줄게. 김상아 일은 신경 쓰지 마. 반승제가 버틸 수만 있으면 되잖아, 맞지?”말할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하나는 반승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김상아를 놓친 사실 때문이었다.반승제는 이번에도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성혜인이 그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깊이 잠든 성혜인은 한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여기는 네이처 빌리지의 안방이었다.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가슴이 순간 부드러워지며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손을 빼내려 했지만 성혜인이 너무 단단히 잡고 있었다. 눈가는 여전히 붉어 있었고, 분명 울었던 것 같았다.심장이 시큼하고 아팠다. 반승제는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성혜인은 깨어나자마자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정말 괜찮아.”반승제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눕혀져 검사를 받았다. 외상은 거의 다 나았지만 독에 당한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었다.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그녀와 정상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입안의 살점을 너무 씹은 나머지 전부 짓물렀다.뼛속까지 새겨진 가려움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이내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는 일어나서 성혜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안심시킨 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몸 구석구석에서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고통이 들끓고 있었다.설우현이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누군가가 자신의 혈액으로 약을 제조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샤워를 마친 후 그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두드리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평온한 얼굴로 욕실에서 나왔다.그날 저녁, 반승제의 몇몇 친구들이 네이처 빌리지에 찾아왔다. 네이처 빌
강씨 가문의 사건은 제원에서 떠들썩하게 퍼져나갔다. 강민지가 요즘 감옥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문과 함께, 심지어 외출할 때도 신예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신예준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약혼녀를 돌보면서도 여전히 강민지와의 결혼을 고집하고 있었다.온시환이 강민지의 마음을 찌르는 말을 했을 때, 현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옇다.강민지는 온시환에게 술을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온시환뿐만 아니라, 쓰레기 같은 서주혁에게도 말이다.이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나쁜 놈들이었다.분위기가 잠시 얼어붙었지만 온시환이 금세 분위기를 다시 띄웠다.성혜인은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강민지를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이 모임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강민지가 떠날 때 성혜인은 배웅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했다.“혜인아, 내가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너 지금 임신 중이잖아. 집에서 푹 쉬어. 내 결혼식 날에는 아마 많이 걷게 될 거야.”두 주 후에는 강민지의 결혼식이 있었다. 초대장은 이미 발송되었고, 업계 대부분의 사람이 받았다.신예준은 대단한 능력자였다. 강상원의 감옥 수감에도 불구하고 제이엔 쥬얼리의 주가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단 두 달 만에 두 개의 경쟁사를 인수하며 제이엔 쥬얼리는 오히려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이런 남자가 강민지 곁에서 이렇게 낮은 자세로 오래 있었던 것만 봐도 그의 속셈이 얼마나 치밀한지 알 수 있었다. 강민지가 그에게 속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였다.강민지가 네이처 빌리지에서 나와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차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오늘 밤은 매우 추웠다. 최근 기온이 많이 떨어지며 길가의 불빛조차 얼어붙은 듯했다.강민지는 운전기사가 데리러 온 줄 알았지만 차 문을 열자마자 뒷좌석에 앉아 있는 신예준을 보았다.그는 최근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제이엔 쥬얼리가 크게 성장하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게다가 제이엔 쥬얼리의 모든 핵심 인사들이 그의 사람들로 교체되었다
강민지는 너무 아파서 몸이 흠칫 떨렸다. 게다가 사람들이 발견할까 봐 걱정되었다. 이런 자세는 너무나 굴욕적이었다. 그녀는 몸부림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신예준은 힘이 빠진 강민지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강제로 입맞춤했다.강민지는 그의 혀를 힘껏 깨물었다. 두 사람의 입안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신예준은 그녀가 몇 번이나 물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과 혀를 탐닉했다.‘미친놈.’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강민지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눈빛은 음침하고, 탁하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강민지는 무서워서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 부딪히며 속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이때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그냥 순순히 결혼하면 되잖아?”강민지는 순간적으로 이 남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착각에 빠졌다. 예전에 연애할 때 그는 항상 다정하게 ‘민지야’라고 불렀다. 정체가 드러난 후에는 비웃듯이 ‘강민지 아가씨’라고 불렀다. 지금은 매번 차갑게 ‘강민지’라고만 부른다.그녀는 신예준을 사랑하는 걸까? 처음에는 그의 외모에 속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아마도 그가 꾸며낸 다정하고 착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이 미친 남자는 아니다.눈물이 순식간에 흘러내리며, 강민지는 신예준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비록 그것이 그의 계획된 함정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되돌아보면 여전히 아름다웠다. 시간은 그해의 스카이웨어로 거슬러 올라갔다.강민지는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어릴 적부터 귀하게 자라 고생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강상원은 혼자서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하며 강민지를 길렀다. 강민지가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다 해주었다. 그래서 강민지는 돈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잔액이 20억 원이 넘는 카드가 몇 장 있었고, 강상원이 준 블랙카드도 있었다.그날 밤, 그녀는 스카이웨어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 아버지 강상원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안으로 들
부유한 여자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나비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몇몇 여자들이 순간적으로 “와!”하고 감탄했다. 눈가에는 조롱이 가득했다.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그렇다. 남자든 여자든 돈이 생기면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변하지 않았다면 그건 유혹이 부족했던 것뿐이다.강민지는 가장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신예준의 넥타이가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강민지의 눈에도 흥미로운 표정이 스쳤다.비록 악질적인 장난이긴 했지만 이 남자 웨이터는 확실히 잘생겼다. 특히 강민지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가슴 아래의 근육도 보였다. 부유한 여성은 신예준의 머리카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웨이터가 이 술병을 열면 40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며? 예준 씨, 요즘 내가 찾으면 항상 무시하더라?”신예준은 성격이 좋기로 유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있었다.“미경 누나, 저 좀 그만 괴롭혀요.”꽃미남이 이렇게 말하니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진미경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좋아. 괴롭히지 않을게. 대신, 예준 씨가 술 세 잔을 마시면 내보내 줄게.”다른 사람들도 말을 꺼냈다.“미경 언니, 이러기예요?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어떻게 그동안 우리한테 비밀로 하셨대?”“미경 언니가 전남편한테서 돈을 받자마자 영계를 만나려는 것 같은데?”“그러게, 정말 젊어 보여. 대학생 같은데, 집에 있는 지긋지긋한 남편보다 백 배는 낫지.”여러 모욕적인 말들이 오갔지만 신예준의 얼굴에는 여전히 영업용 미소가 떠 있었다.한 병의 술이 2천만 원이다. 만약 웨이터가 직접 열면 인센티브를 받는다.진미경이 이곳에 놀러 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처음 왔을 때 신예준에게 반해서 따로 만나자며 스폰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오늘 다시 만나게 되자 자연스럽게 심통이 났다.그녀는 옆에 있는 하얀 병에서 술을 따라내며 웃음을 흘렸다.“이 술
신예준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웨이터에게 2천만 원짜리 고급술을 다섯 병 가져오라고 했다.강민지는 구석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이 남자가 꽤 줏대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취했으면서 진미경이 다섯 병의 고급술을 열겠다고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시키다니. 술을 열자마자 신예준은 옆에 있는 벽을 짚으며 자리를 떠났다.강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뒤따라 나갔다. 문을 나서자 신예준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벽을 짚으며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방금 그가 발로 걷어찬 웨이터가 마침 쟁반을 들고 다가오더니, 그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 미경 누나 만나러 간 신예준 아니야? 왜 이래, 억지로 술이라도 마신 거야?”이전에 신예준은 억지로 술을 마신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위장이 뒤집어질 것 같았고, 언제든지 토할 것 같은 상태였다.그 웨이터가 앞으로 다가가서 그를 밀쳤다.“조금 전까지 설치지 않았어? 지난달에 인센티브로 600만 원이나 받았으니 기분 좋았겠지? 이제 미경 누나뿐만 아니라 현주 누나와 수진 누나도 너에게 관심을 보이더라. 이 껍데기로 많이도 꼬셨네. 방금 미경 누나가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너를 더 이상 룸에 들이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기회가 나한테 넘어왔거든. 정말 안타깝게 됐네, 신예준.”그 웨이터는 비웃음을 흘리며 안타깝다고 말하더니 또 신예준을 밀쳤다. 하지만 신예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에게 밀려 뒤로 몇 번 휘청거리다가 실수로 강민지의 신발을 밟았다.신예준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말 많이 취한 듯했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으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신예준의 귀와 목은 알코올에 의해 붉게 달아올랐다. 강민지의 시선에서 보면 꽤 귀여워 보였다.신예준은 상대방과 더는 말다툼하지 않고,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토하기 시작했다.강민지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잘생긴 웨이터는 그녀에게 낯선
강연지가 급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서둘러 옆에 놓인 헬멧을 집어 들었다.“언니, 나도 같이 먹고 싶지만 정말 급한 일이 생겼어. 경기 끝나고 다시 올게. 안녕.”강연지는 항상 바쁘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강민지는 지루함을 느꼈다. 성혜인도 바쁘고 강연지도 바쁜데 자신만 이렇게 여유로운 재벌가 아가씨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그녀도 예전에는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두 달 만에 강상원에게 200억 원의 손해를 안겨주었다. 그때 강상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민지야, 우리 강씨 집안의 재산으로 네가 매일 남자를 만나는 데는 충분하겠지만 창업하면 아마 몇 년 못 버틸 거야.”그 말에 강민지는 화가 나서 발끈했지만 자신에게 사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 후 다른 회사에서 인턴을 해보려고 했지만 인턴 월급은 1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녀의 하루 식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강상원의 말이 맞았다.“네 통장 잔액에서 나오는 이자만으로 한 달 월급보다 훨씬 많아.”그 충격에 강민지는 밥만 축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날들로 접어들었다.그녀는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강상원은 그녀에게 요구하는 바가 극히 적었다. 절대 다른 제약으로 그녀를 구속하지 않았다.그래서 다른 재벌가에서 큰돈을 투자해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는 동안, 강민지는 성혜인과 함께 국내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강민지는 어릴 적부터 다섯 개의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영어 전공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통역 일을 할 것도 아니었으니 쓸모가 별로 없었다.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했다. 강민지는 눈앞에 남아 있는 손대지 않은 음식을 보며 방금 그 종업원을 떠올렸다.강민지는 한 번 결심이 서면 절대 망설이지 않았다. 신예준이 마지막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입을
레스토랑이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하게 일식을 판매했으며 돈 많은 회원의 도움으로 레스토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들이었다.강민지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솔직히 알려줘요. 이 레스토랑 식재료가 정말 모두 수입품이에요?”숨결이 귓가에 닿자 신예준은 고개를 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강민지 역시 의식하고 고개를 뒤로 뺐다.“아닌가 보네요. 발해 쪽에서 가져온 거겠죠.”신예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민지 씨, 계속 이야기하다간 제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겠어요.”강민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잃으면 그만이죠. 웨이터 일자리 찾기가 어디 어렵겠나요?”말을 꺼내자마자 강민지는 후회했다. 신예준이 입술을 짓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보아온 바로 이 동작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인 듯했다.게다가 강민지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으므로 마치 고의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렸다.그녀는 황급히 사과했다.“아, 죄송해요. 웨이터님을 말하려던 게 아니라 사실 저도 웨이터거든요. 샤브샤브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5개의 샤브샤브 가게에서 일했고 저는 이 웨이터 일은 찾기가 매우 쉽다고 생각했어요. 제원은 결국 대도시이고 어디든 수요가 많기 때문에요.”신예준은 그녀의 말에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강민지는 얼른 옆에 있는 공용 젓가락을 가져다가 튀김 하나를 집어주었다.“우리 모두 웨이터가 이런 음식을 자주 먹지 못 하잖아요. 발해에서 온 생선이라도 값이 싸지 않으니 저와 함께 드셔 보실래요?”“좋습니다.”그는 이제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금방 처음 본 두 사람은 이렇게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강민지는 줄곧 조용히 신예준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는 밥을 먹을 때 느릿느릿하게 먹었고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는 소리조차 가벼워 전혀 웨이터로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여느 부잣집 자제처럼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었다.신예준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많았다.그들은 모두 진미경을 알고 있었다. 진미경은 비록 전 남편과 이혼했지만 돈을 많이 나눠 가졌다. 그녀는 지금도 그 주얼리 회사의 주주였으며 매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사람이었다.하여 회사에서도 발언권이 있는, 권력 있는 사람이었다.그리고 그 회사는 바로 강씨 가문의 라이벌 회사인 NG 주얼리 회사였다.진미경의 전남편은 여전히 회사의 대표이고 진미경 역시 주주였기에 그의 언행이 지나치더라도 주변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추켜세울 수밖에 없었다.게임은 또 한 번 진행되었고 신예준은 게임에 재능이 없는지 또 져버렸다.이번에 진미경은 새 애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여보는 이 사람이 진실 게임을 했으면 좋겠어? 아니면 벌칙을 받았으면 좋겠어?”“벌칙으로 하죠. 계속 술만 마시면 재미가 없잖아요. 이번엔 반드시 벌칙이어야 해요.”“음, 아무 여자나 찾아서 10초 동안 키스하는 걸로 하죠.”현장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집에 남편이 있거나 혹은 누군가 스폰으로 데려온 여자였다. 신예준이 누구를 벌칙 상대로 뽑든 모두 미움을 살 수 있는 것이었다.만약 진미경을 벌칙 상대로 한다 해도 굴욕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멀찌감치서 보고 있던 강민지는 신예준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화가 났을 것이다.그녀를 등지고 있었어도 강민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가 또다시 입술을 짓씹었을 거란 것이라는 걸.벌칙을 말하는 남자는 진미경이 옆에 앉아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고결한 척했었잖아. 스폰을 받는 사람을 업신여겼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키스하고 비위 맞춰 봐.현장에서 순간 야유가 터져 나왔고 스폰으로 온 여자들은 모두 신예준이 자기를 고를까 봐 뒤로 숨었다.강민지는 신예순이 걱정되어 그쪽으로 걸어가려 했다.그런데 간 지 몇 걸음 되지 않아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예준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받쳐 들었다.이렇게 가벼운 키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
연승혁은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했지만, 공지민이 소파로 이끌어 앉고 나서야 그나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공지민의 휴대전화는 이미 연승혁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는 전부 온시환에게서 걸려 온 것이였다.연승혁은 휴대전화를 다시 공지민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이 번호에 전화 걸어 최근 한 달 동안은 연씨 가문에서 할머님을 보살펴야 한다고 해.”공지민은 부재중으로 적힌 온시환이라는 이름을 보고 물었다.“이건 누구예요?”“네 친구야. 네가 어떻게 된 건지 걱정되어 연락이 온 같으니 내 말대로 문자 한 통 보내줘.”“알겠어요.”공지민은 머리를 끄덕이며 연승혁이 말한 대로 메세지를 작성하여 발송했다.하지만 회답은 바로 오지 않았고 몇분이 지나서야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걱정되니까 전화 좀 받아.”연승혁은 바로 휴대전화를 뺏어가 대충 한 줄로 답장을 보냈다.“걱정하지 말아요.”답장을 받은 온시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공지민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온시환이 바다에 보낸 사람은 지금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고 오늘 밤 연승혁은 그쪽에서 명령을 받을 것이다.연승혁의 꼬리는 이미 잡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도 증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증인은 연승혁에 의해 불 속에 버려진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행방불명이고 이 사람만 찾으면 연승혁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다.지금 공지민은 혼자 움직이고 있는 듯 하였으나 그녀의 계획을 들은 적 없는 온시환은 매우 불안했다.온시환은 자신이 막지 않으면 공지민은 죽을 길밖에 없고 그녀 역시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럼 난? 단 일 분이라도 날 생각한 적 있었나?’온시환은 공지민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 항상 잘해주고 있는 자신을 거절할 방법이 없어서 함께 지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소파에 드러누운 온시환은 문자로 공지민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지만, 연승혁한테 들킬까 봐 섣
연승혁은 온시환에게 술을 건네며 말했다.“결혼도 했으니 이제 좀 안심하지 그래? 누나는 연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태도도 한결 누그러졌잖아. 할머니를 돌보러 간다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돼? 설마 누가 누나를 괴롭히기라도 할까 봐?”온시환은 술잔을 비우고 몸을 뒤로 기대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었다.“그래서 원아정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원래 해외로 보낼 계획이었는데,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도망쳤어. 지금까지도 행방을 못 찾고 있어.”온시환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사람들 진짜 무능하네?”이 일은 연승혁 자신도 잘못 처리한 게 분명했기에 그는 드물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온시환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이곳에 공지민이 없으니 흥미를 잃은 듯 지루해졌다.연승혁 역시 마음이 이곳을 떠나 있었다. 그는 이상우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집에 공지민이 있는데...’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어딘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술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단지 그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또다시 선을 넘는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이 게임은 분명 자신이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기분은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생소했다.그는 다시 한 잔의 술을 들이켜고는 옆에 앉은 온시환을 흘깃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해, 온시환의 외모는 인정할 만했다. 여자 친구도 여럿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공지민도 그에게 그런 눈빛을 보냈던 적이 있지 않을까?그녀가 두 다리로 이 남자의 허리를 감싸안은 적은 없었을까?그런 생각만으로도 속이 답답해지고 묘한 불쾌감이 밀려왔다.연승혁은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집으며 말없이 나갈 준비를 했다.이상우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연승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이상우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조금 떨어져서 걸어가며 말했다.“나
공지민의 눈빛은 너무 맑았다. 연승혁은 이런 순수함이 싫었다. 그는 예전부터 너무 깨끗한 것을 보면 망가뜨리고 싶어졌다.마치 과거 드라마 속 공지민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과도 같았다.지금은 상황이 그의 손아귀에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공지민은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그 모습은 그날 폐공장에서 보여주었던 농염한 태도와는 전혀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다.“오빠, 저녁은 뭐 먹어요?”“네가 먹고 싶은 걸로. 내가 요리사에게 시킬게.”연승혁은 시선을 피하며 어둑한 눈빛을 감추고 소파로 가 앉았다. 공지민은 그의 꽁무니를 따라가 곁에 앉았다.“아무거나요.”그녀는 어느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예전에 오빠를 좋아했던 건 오빠 얼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공지민은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턱선을 따라 손끝으로 훑더니, 손가락 끝이 그의 목젖을 스치듯 지나갔다.그 순간, 연승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무엇인가 가볍고도 날카로운 것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혔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끝 온기가 은근히 탐이 났다.요리사가 저녁을 가져올 때까지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지민은 연승혁에게 같이 앉아 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연승혁은 갑자기 나갈 일이 있다며 혼자서 먹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차에 앉은 연승혁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그때 친구로부터 술자리에 오라는 연락이 와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마침 그 자리에는 이상우도 나와 있었다.이상우는 여전히 금테 안경을 쓴 채 그를 보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연승혁은 평온한 얼굴로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원아정이 사라졌다는데, 그거 진짜야?”연승혁은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응, 진짜야
공지민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진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런 거였군요.”그녀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얼굴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혼란과 미묘한 행복감이 섞여 있었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를 골려주려던 참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바지를 벗긴 걸 생각하면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그날 폐공장에서 그녀가 ‘오빠’라고 불렀던 그 농염한 목소리는 마치 주문처럼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두 다리를 꼬아 올리며 보였던 그 요염한 눈빛은 숲속의 교활한 여우처럼 그를 현혹시켰다. 하지만 지금의 공지민은 순수하고 멍한 토끼처럼 덫에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처음에는 그저 장난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심장이 조금씩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이상우는 커튼을 닫고 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같이 밥이나 한번 먹자. 연락해.”이상우와는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친구였기에 그 정도의 약속은 자연스러웠다.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지민의 볼을 꼬집었다.그녀의 피부는 매끄럽고 부드러웠으며 도톰한 볼은 꼬집을 때마다 화난 햄스터를 연상케 했다.방 안에 둘만 남았을 때 공지민은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연승혁은 살짝 힘을 주며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귀여워서. 다시 한번 오빠라고 불러볼래?”그날 폐공장에서 불렀던 것처럼 농염하고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이다.공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평소에 제가 그렇게 불렀어요?”연승혁은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그래.”“정말 오글거리네요.”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오빠.”공지민의 목소리는 지난번처럼 농염하고 유혹적이지 않았지만 왠지 이번에는 지켜주고 싶어지는 느낌이 들었다.연승혁은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트는 걸 느꼈다. 손을 내리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가슴이 이상하게 뛰었다.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