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 화내지 마.”진백운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선생님을 기분 좋게 해드렸으니 선생님이 기분 좋으면 진세운도 기분 좋을 텐데. 설마 그가 또 일을 그르친 걸까?그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다시 차가운 기기 속으로 던져질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다.“세운...”진세운은 이 목소리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는 진백운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백운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는 진세운이었지만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무슨 생각으로 그 여자랑 잤어?”“나, 나는 세운이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그런다고 내가 기뻐할 것 같아?”진백운은 맹한 눈빛으로 기쁘지 않냐고 재차 물었다.갑자기 다시 수치심이 밀려들며 진세운은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오랫동안 제원에서 살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속임수를 보고, 얼마나 많은 추악한 심리를 보아왔던가. 이제 그는 순수한 마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그는 진백운의 손을 놓아주고 한참을 생각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돌아서자 진백운은 그가 다시 화를 낼까 봐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방으로 돌아온 진세운은 옆에 있는 캐비닛 앞에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진백운이 하나하나 깨끗이 씻어서 모아놓은 나뭇잎이 가득했다. 이 표본들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다.진세운은 눈을 감고 일 분 뒤에야 입을 열었다.“다시는 그 여자와 자지 마.”“하지만...”“하지만이란 건 없어.”진백운은 마침내 반박을 멈추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스킷을 꺼내 조금씩 깨어 먹었다. 진세운은 안타까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도 이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50세 여자와 관계를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다시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결국 한숨밖에 내쉬지 못했다.“이제부터는 너를 행복하게 하는 일만 해.”진백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나타나더니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세운이 행복
사라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선택된 몇 명에게 걸어갔다.이 몇 사람은 인지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통나무처럼 서 있었다.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시선이 반승제에게 머물렀다.“사라 박사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그녀의 손가락이 반승제를 가리켰다.“이 사람 따라오라고 해요.”옆에 있는 남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규칙상 구역 간 사람들이 서로 이동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사라가 여기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윗선에서 이미 그녀에게 자유를 준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다른 사람도 멋대로 데려가려고 하다니. 이건 좀...“네?”그녀의 기세에 눌린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네, 네. 박사님께서 요구하신 일이니 얼른 보내드리겠습니다.”가벼운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태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지금 당장 데려갈 거예요.”남자의 얼굴에 다시 곤란한 표정이 나타났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 여박사를 따라가는 반승제의 눈가에 냉기가 감돌았다.보아하니 이 박사가 연구 기지에서의 지위는 낮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 다른 구역을 둘러볼 기회였다.가는 길에 여러 복도를 지나야 했는데 층마다 신원 확인을 위한 수많은 장치가 있었다. 사라는 그를 데리고 핵심 연구실까지 갔다.반승제는 여전히 방호복 차림이었다. 이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글 읽을 수 있어요?”사라 박사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게다가 발음도 매우 표준적이었다.“네.”“시약을 건네줘요. 밤이 되면 잠잘 곳을 마련해 줄게요.”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시약을 건네며 그녀에게 협조했다. 30분 후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연구 기지의 고위층에서 걸려 온 전화로 그녀에게 왜 함부로 사람을 데리고 구역을 이동했는지 묻는 것 같았다.오는 동안 반승제는 연구 기지의 지형을 간신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연구 기지는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부분마다 기능이 달
반승제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는 이 목소리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진세운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진세운이 아니라 진세운의 쌍둥이 형제였다.그들도 연구 기지에 온 건가?반승제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소리는 들리지만 내부의 장면을 똑똑히 볼 수는 없었다.대부분의 장소는 봉인되어 있었고 약간의 틈새를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방과 연결된 환기구가 없어 나갈 수 없었다. 그가 머무르는 곳에만 환기 통로와 연결된 환기구가 있었다.그는 한참을 더 앞으로 걸어가 마침내 다른 환기구를 발견했다. 이 커버는 열 수 있었지만 그는 바로 열지 않고 아래를 내려보았다.유리로 둘러싸인 내 부 공간으로 보이는 곳에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누워 있었다. 소년의 긴 머리카락이 눈 아래를 덮고 있었기에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없었지만 소년이 목에 걸고 있는 에메랄드 구슬이 보였다.반승제는 순간 호텔에서 만났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도 손목에 에메랄드 구슬을 차고 있지 않았었나?그러나 이런 에메랄드 구슬은 그렇게 보기 드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거리가 조금 멀어 구슬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소년은 순식간에 눈을 뜨고 눈앞의 머리카락 사이로 반승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꿰뚫어 보는 듯한 소년의 눈길에 반승제는 일순간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하지만 여기 틈새는 실 한 올 드나들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커버를 열지 않으면 소년은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설사 그를 보았다 할지라도 바로 신고했을 것이다.그러나 소년의 드러난 두 눈은 아무런 감정 변화 없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몇 초 후, 소년은 머리로 다시 두 눈을 가렸다. 반승제의 존재를 고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 소년이 연구 기지의 수많은 실험 대상 중 하나라고 짐작했다.하지만 그는 오늘 핵심 구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계속 여자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볼 시간
반승제는 시선을 거두었다. 마침내 그는 가장 중앙에 있는 홀에 도착했다.통로 아래에는 홀의 상황을 볼 수 있는 몇 개의 갈라진 틈새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연구원들이 줄지어 서서 온갖 종류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었다.“저 괴물의 신체 데이터는?” “1번 박스 상황은 어때, 오늘 번식은 성공했어?”“3번 박스는 이미 죽었으니, 시체를 처리해 주세요.”이 연구원들의 눈에 유리방에 갇힌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실험체일 뿐이었다.“5번 박스는 온몸에 피부가 곪고 있습니다. 이번 바이러스가 아주 성공적이에요. 다음번엔 방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아악! 더는 못 견디겠어! 죽여줘!, 차라리 그냥 죽여줘, 제발! 더 이상 인간을 상대로 실험하고 싶지 않아. 하나님, 저는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떨어져야 합니다!”이 마지막 광란의 외침과 함께 홀 전체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긴장감이 감돌았다.이윽고 가장 큰 문이 열리고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스물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홀의 분위기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남자는 냉소를 흘리며 천천히 소리를 지르는 연구원에게 다가갔다.연구원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남자는 그의 머리채를 잡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사람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을 텐데.”겁에 질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연구원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남자는 곧바로 발을 들어 올려 가죽 부츠로 상대방의 얼굴을 짓밟았다.“박스 3번 이미 죽지 않았나? 이 자를 들여보내.”이건 연구원도 실험체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다른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감히 아무 소리도 못했다. 특히 남자가 나타난 순간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실험에 임했다.남자의 강한 기세는 그들의 머리를 누르는 거대한 산과 같았다.“가장 강력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이자의 몸에 주입해 봐. 효과를 보고 싶어.”그의 입꼬리가
몇 개의 내부와 연결된 환기구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후 반승제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캐비닛을 열자, 그 안에는 새 방호복이 몇 벌 들어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무의식적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금 들어왔을 때 캐비닛을 열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방호복이 원래 캐비닛 안에 있던 것인지 아니면 후에 여박사가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방 문을 안에서 잠그긴 했지만 그녀는 분명 열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반승제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쉬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착용한 후 밖으로 나갔다.사라는 이미 연구대 앞에 서 있었고, 손에는 여러 가지 시약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시험관 랙에 내려놓으며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는 물건을 가져다가 8번 실험 박스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줘요.”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험관 랙을 옮겨왔다. 랙에는 형형색색의 액체로 가득 찬 열 개 정도의 시험관이 있었다.이 핵심 연구실은 두꺼운 문으로 외부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안쪽에서는 열 수 있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려면 반드시 옆에 인터폰을 누르고 사라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반승제는 문을 열고 수백 미터를 걸어 가장 중심에 있는 홀에 도착했다. 어젯밤에 본 곳이기도 한 이곳은 각 유리 상자마다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8번을 찾아 그 옆에 트레이를 내려놓았다.그는 눈을 들자마자 8번 실험 상자에 갇혀 있는 소년이 바로 어제 그 소년이라는 것을 알았다.소년은 어젯밤과 똑같은 자세로 조용히 안에 누워 있었다. 다만 어젯밤 반승제는 위에서 내려다보았기에 옆에 있는 번호를 볼 수 없었다.옆에 있던 연구원들은 이 액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박사님께서 드디어 진정제를 가져다주셨군요. 기체 상태로 만들어서 안에 방출해요.”“빨리 움직여요. 나중에 또 미쳐 날뛰면 모두가 힘들어져요.”반승제는 옆에 서서 누군가 시험관을 가져다가 기계에 넣는 것을 보았다. 그
진세운은 옆으로 늘어뜨린 주먹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처음 생각대로라면 당장 상대방에게 수긍해야 한다.한 개의 회장 자리의 가치는 한 나라의 재정에 버금가는 부를 가지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연구 기지의 약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슨 목적인들 못 이룰까. 이건 그가 줄곧 추구해 오던 목표가 아니던가?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몇 초 동안 망설였다. 10초가 지나서야 그는 부드럽게 눈을 들어 배민희의 눈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선생님.”배민희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진세운이 물 불 가리지 않고 항상 결단력 있게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나밖에 없는 가족은 절대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진백운 처럼 존재감이 낮은 아이는 신경 쓸 가치가 없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진세운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래, 가서 일 봐.”돌아선 진세운은 흐릿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반승제의 몸에 닿았다.반승제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방호복이 너무 두껍고 고글까지 쓰고 있어서 눈조차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진세운의 시선이 여전히 그를 몇 초 동안 쫓더니 그제야 서서히 멀어졌다.반승제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혔다.진세운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였고 두 사람을 동시에 마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예전 그와 진세운이 제원에 있을 때는 도중에 사람이 바뀐 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다.이제 보니 두 형제는 복제해 낸 것처럼 꼭 닮아 있었다.그러나 지금 진백운의 표정은 단순했다. 그는 반승제를 보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진세운을 보자 기뻐서 소리쳤다.“세운아!”제자리에 서 있던 진세운은 이제 이 얼굴만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연구 기지에는 이런 하얀 백지장 같은 사람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 철이 들까.“세운, 이거 봐.”진백운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가왔다. 손가락을 펴자 곤충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연구 기지에는 이런 것들
한편, 다른 방에서 반승제는 다시 환기 통로를 살펴보러 들어갔다. 그는 계속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드나들 수 있는 환기구 커버가 연결된 건 세 곳밖에 없었다.낮 동안은 그 여자가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 낮에는 환기구에 들어갈 수 없었다.반승제는 다시 매개 구역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최용호를 발견했다. 그의 발아래에는 최용호가 머무는 방이었다. 보아하니 최용호도 하층 직원들 틈에 섞여 들어온 것 같았다.이곳의 하층 직원들은 모두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있었기에 사칭하기 가장 좋았다.이때 최용호는 이미 방호복을 벗고 있었다. 반승제는 위에서 몇 번 두드렸다. 이곳에는 연결된 환기구 커버가 없었다. 그저 공기가 아래로 새어 나갈 수 있는 틈새만 몇 개 있었는데 최용호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최용호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자 반승제가 물었다.“기웅 씨는요?”하도 최용호가 강심장이라서 망정이지 아니면 아마 귀신을 본 줄 알았을 것이다.그는 하층 직원인 척할 때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다른 곳으로 섞여 들어갈 기회가 전혀 없었다.일단 신분이 노출되면 무척 위험했다. 이곳에는 사람을 상대할 수단과 방법이 난무하는 곳이었다.하지만 반승제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는 정확히 어떻게 여기로 온 걸까?“저도 몰라요. 우리는 다른 장소로 보내졌어요. 아니, 그런데 당신은 핵이라도 썼어요?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간 거예요?”반승제는 최용호가 머무는 방의 위치를 기억하고 그에게 당부했다.“신분을 노출하지 마세요.”최용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물론 신분을 노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백 개라도 부족하다.“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전하러 올 게요. 이 통로는 당신들이 들어올 방법이 없어요. 제가 여기서 모두를 조율할게요.”최용호는 오케이 제스처를 취했다. 원래는 마음이 상당히 조급했지만 반승제가 여기에 나타나자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설기웅이든 반승제든 둘 다 사람에게 안심할 수 있는 느낌을 준
이 유리 캐비닛은 일반 유리였기에 강력한 충격으로 금세 깨져버렸다.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고 손등은 찍혀서 피가 흘러 내렸다.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붕대도 감지 않은 채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반승제는 이 장면을 지켜보았지만 아직은 이 남자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방을 지나가다가 불쾌한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정말이지 귀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쾌한 소리였다. 50세 여성이 내는 소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위적이면서도 애교 섞인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는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가 부르는 이름도 들었다.마침내 그는 진세운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했다. 이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기 형제를 보내 뱀 같은 늙은 여자의 시중을 들게 했는데 진세운처럼 오만한 인간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반승제의 눈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이 세상은 정말 판타지와도 같았다.진세운은 자신이 모든 사람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놀아나고 있었다. 세상사는 늘 돌고 도는 법이다.반승제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대략적인 위치를 전부 숙지하고 있었으며 설기웅을 제외한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을 거의 다 찾았다.그러나 그는 환기 통로가 닿지 않은 곳이 여전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연구 기지에서 고위급 인물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한 게 그 증거였다.예를 들면 오늘 중앙 홀에 나타난 남자가 있는 방도 찾지 못했다.원래 이 환기 통로가 연구 기지 전체로 뻗어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4분의 3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환기 통로가 닿지 않은 나머지 4분의 1은 아마도 고위층이 사는 곳 같았다.그리고 그는 이제 핵심 연구실 내부의 독극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아직 감히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며칠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한편 성혜인은 반승제와 연락이 끊긴 이후로 늘 불안한 상태였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