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리 캐비닛은 일반 유리였기에 강력한 충격으로 금세 깨져버렸다.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고 손등은 찍혀서 피가 흘러 내렸다.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붕대도 감지 않은 채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반승제는 이 장면을 지켜보았지만 아직은 이 남자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방을 지나가다가 불쾌한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정말이지 귀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쾌한 소리였다. 50세 여성이 내는 소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위적이면서도 애교 섞인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는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가 부르는 이름도 들었다.마침내 그는 진세운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했다. 이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기 형제를 보내 뱀 같은 늙은 여자의 시중을 들게 했는데 진세운처럼 오만한 인간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반승제의 눈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이 세상은 정말 판타지와도 같았다.진세운은 자신이 모든 사람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놀아나고 있었다. 세상사는 늘 돌고 도는 법이다.반승제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대략적인 위치를 전부 숙지하고 있었으며 설기웅을 제외한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을 거의 다 찾았다.그러나 그는 환기 통로가 닿지 않은 곳이 여전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연구 기지에서 고위급 인물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한 게 그 증거였다.예를 들면 오늘 중앙 홀에 나타난 남자가 있는 방도 찾지 못했다.원래 이 환기 통로가 연구 기지 전체로 뻗어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4분의 3을 관통하는 것 같았고 환기 통로가 닿지 않은 나머지 4분의 1은 아마도 고위층이 사는 곳 같았다.그리고 그는 이제 핵심 연구실 내부의 독극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아직 감히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며칠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한편 성혜인은 반승제와 연락이 끊긴 이후로 늘 불안한 상태였다. 그
어떻게 이 세상에는 인신매매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 어떻게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납치할 수 있는지,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녀가 이 모든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도.그녀는 그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악몽을 꾸고, 강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꿈속에서 수없이 이 재앙을 막고, 동생의 손을 잡았지만, 깨어날 때마다 이 세상은 정말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혜인 씨, 믿어져요? 동생이 아직 살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가끔 저한테 누나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려요.”성혜인은 옆에서 티슈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여자는 받지 않고 누워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성혜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 여자는 혼자 남겨졌다.자신의 침실로 돌아온 성혜인은 여전히 졸리지 않았다. 왠지 운명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다.이때 강민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 언제 귀국하는지 물었다.“아직 잘 모르겠어. 민지야 너... 정말 결혼할 거야?”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강민지가 일순 침묵하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래, 네가 계속 돌아오지 않으면 더는 못 기다릴 것 같아.”성혜인은 큰 죄책감을 느꼈다. 강민지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제원에 있을 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녀와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결혼식도 참가하지 못한다니.“가능한 한 빨리 돌아갈게.”“혜인아, 그냥 알려주는 거야. 네가 그쪽에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 알아. 참, 너 나한테 장하리를 부탁했잖아. 장하리와 서주혁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서수연 말로는 장하리가 일방적으로 자기 오빠한테 매달리는 거래. 서수연이 지금 업계에 소문을 퍼트렸어. 서주혁 본인은 나와서 해명하지도 않고. 그리고 서주혁이 온씨 가문 온시아와 약혼한다고 하던데, 온시아가 귀국하면 양측의 부모님이 만날 예정인가 봐.”성혜인
[쇼핑하러 가고 싶으면 저랑 함께 가요.]장하리는 다시 이 문자를 보냈지만 강민지가 분명 거절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아니요. 전 정말 괜찮아요. 혜인이와 방금 통화했어요. 그런데 많이 바빠 보이더라고요. 됐어요. 이제 그만 말할게요. 저도 할 일이 있어요.][네, 그럼 일 보세요.]장하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사무실 문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틀 연속 야근을 하며 계속 집에 가지 않았다. 휴게실에서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지금 다시 한가해지니 눈이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온 사람은 한서진이었다. 그의 손에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 장하리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이틀째 안 들어간 거예요?”“네, 최근 한 달간의 모든 문서를 처리하고 싶어서요.”한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하리 씨, 대표님이 떠나기 전에 이렇게 목숨 걸고 일하라고는 안 했잖아요. 대표님이 돌아오실 때면 하리 씨 몸은 이미 다 망가졌을 거예요.”장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넵,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쉬러 갈게요. 처리한 서류는 왼쪽에 있으니 시간 나면 한번 보세요.”한서진은 그녀가 이렇게 빨리 대답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장하리는 가방을 들고 정말 나갔다. 하지만 집으로 간 게 아니라 온시환을 찾으러 바로 향했다.서주혁에 관한 일 때문이 아니라 강씨 집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였다.온시환은 전에 강씨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었는데, 뉴스 보도가 나오기 전에 이미 뭔가 들은 것 같았다.술집에 도착하자마자 장하리는 온시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하리는 온시환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었지만, 온시환은 그녀의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던 터라 살짝 시비조로 물었다.“누구?”“시환 씨, 저 장하리예요.”온시환은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옆에 앉아 있는 서주혁을 힐끗
서수연은 매번 장하리를 볼 때마다 그녀의 몸에 술을 쏟아부었다.“장하리, 지난번에 내가 충분히 알아듣게 말하지 않았어? 너와 우리 오빠는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더러운 년, 너 대체 우리 오빠가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포기할 거야?”이 말은 장하리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오늘 밤 서주혁을 찾으러 여기에 온 게 아니었다. 물론 서주혁이 여기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서수연이 가까이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주저 없이 뺨을 때리려고 했다.장하리는 피하고 싶었지만 두 명의 경호원이 그녀의 뒤로 다가와 어깨를 단단히 눌렀다.짝! 서수연은 한 번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두 번 더 후려쳤다.장하리의 뺨이 금방 부어올랐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당장 안 꺼져? 오늘은 시아 언니랑 우리 오빠의 첫 데이트야. 네가 감히 두 사람데이트를 방해한다면 내가 네 가죽을 벗겨 버릴 줄 알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시선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장하리는 떠나고 싶었지만, 곁눈으로 서수연의 표정을 보고 이 여자가 또 다른 꿍꿍이를 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수연은 아마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모양이었다.서수연의 시선을 따라서 그곳을 바라본 장하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자신의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예전 그녀는 어머니와 한바탕 다투고 이미 관계를 단절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서주혁에게 쏟아붓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하지만 이제 서주혁이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자 그녀는 서씨 집안의 일원인 서수연의 앞에서 체면과 자존심을 전부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서수연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장하리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저 사람 너희 엄마 아니야? 여긴 왜 왔대? 설마 저 나이에 몸 팔러 온 건 아니겠지?”말을 마치자마자 서수연은 노임향이 어린 여자의 앞으로 다가가 미친 사람처럼 그녀의 머리채를 쥐어뜯는 것을 보았다.여기 청소부의 옷을 입은 노임향은 어린 여자와 뒤엉켜 있었다. 어
그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빛은 마치 통째로 집어삼킬 것 같았다.일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온시아가 놀란 척하며 입을 가렸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 여자는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요. 당장 쫓아내요.”이때 온시환이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사실상 장하리의 어머니는 이 바에 들어올 수 없었다. 보나 마나 온시아가 중간에서 수를 쓴 게 틀림없었다.온시아의 원래 계획은 노임향이 서주혁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예상밖으로 장하리도 여기로 올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일타쌍피였다.경비원들이 노임향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욕설을 지껄이고 있었다.“이거 놔! 저년을 죽여버릴 거야! 개 같은 년!”이런 저속한 말은 귀에 담기도 불쾌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온시아가 일부러 장하리에게 물었다.“이봐요. 하리 씨 당신 어머니가 쫓겨났는데 나가 보지 않아도 돼요? 이런 교양 없는 말을 내뱉다니, 같은 여자로서 정말 부끄럽네요. 나가서 겸사겸사 가르쳐줘요. 가정 교육이 너무 의심스럽네요.”장하리는 흠칫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서주혁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고 결국 저도 모르게 그를 보고야 말았다.서주혁도 이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장하리가 현재 처한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노임향이 방금 한 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장하리는 감히 일말의 기대도 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손에 든 가방을 꽉 쥐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녀의 뺨이 부어오른 것쯤은 바로 알 테지만 서주혁의 눈에는 아마 노임향이 때린 거로 보였을 것이다. 장하리와 노임향의 관계는 전부터 좋지 않았으니까. 그 막돼먹은 여자가 자기 딸을 때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절대 자기 친동생이 그랬으리라고는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다.장하리는 서수연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장하리, 봤어? 여긴 너와 네 엄마가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사람은 말이야 때때로
온시환은 시계를 흘긋 보고는 장하리에게 물었다.“몇 분 정도 걸리나요?”“10분이면 돼요.”두 사람은 조용한 룸으로 들어갔다. 장하리가 똑바로 앉아 있는 모습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와 약간의 부조화를 이루었다.온시환은 왠지 모르게 이 여자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연약한 사람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아마도 그녀는 서주혁의 앞에서만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사랑 앞에서 먼저 꼬리를 내리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나 다름없다.“시환 씨, 강씨 집안 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민지 씨가 대표님 친구라서 걱정되거든요. 언론에서는 하루 종일 보도하고 있는데 민지 씨에게 연락했더니 계속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해서요. 민지 씨 아버지가 정말 교도소에 들어간 거예요?”사실 그녀가 이 질문을 할 때 속으로는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이 사실이며 강민지의 아버지가 실제로 감방에 들어간 게 맞을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다.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신예준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것이다.만약 제이엔 대표를 신예준이 직접 감방에 보낸 것이라면 그는 대체 무슨 의도로 강민지와 결혼하려는 건지, 강민지가 강요당한 건 아닌지 걱정됐다.제이엔 그룹의 외동딸이 강제로 결혼 한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힘들었다.강민지는 이 문제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장하리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장하리가 이 일에 관해 물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강씨 집안 말인가요. 이번에 발칵 뒤집혔죠.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어요. 민지 씨가 사랑에 눈이 멀어 늑대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신예준에게 기회를 줘서 난 사달이에요.”장하리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러니까 시환 씨 말은 신예준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민지 씨에게 접근했다는 건가요?”온시환은 피식 웃더니 매니저를 불러 술을 몇 병 주문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 사람들이 이 일을 조사해 봤는데요. 그 당시 민지
그는 조금 전 온시아가 떠날 때 한 말을 떠올렸다.“장하리 씨 어머니 예전에 무슨 짓을 했던 것 같아요. 의붓아버지도 감방에서 나오자마자 밖에서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운다던데, 우리가 장하리 씨 도와야 하는 건 아닐까요?”장하리를 도우려는 척 보이지만 실은 집안일에 대해 폭로한 것이었다.기댈 곳도 내어주지 않던 엄마, 그리고 술에 찌든 의붓아버지를 둔 장하리의 어린 시절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온시아가 말하고 싶은 건, 장하리와 의붓아버지의 사이가 결백하다는 것인가?온시아는 서주혁의 앞에서 너무 속마음을 드러내면 역효과가 날까 봐 조금 돌려 말했다.“아마 지금 시환 오빠 찾아온 것도 오빠가 뭔가 해결해 줬으면 해서겠죠?”그 말뜻인즉슨 장하리가 온시환을 꼬시고 있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말을 마치며 온시아는 슬쩍 서주혁의 눈치를 보았다.다행히도 서주혁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장하가 그에게는 낯선 사람인 듯 말이다.온시아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득의양양했다. 과연 장하리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그녀는 만족해하며 차를 운전해 떠났다.서주혁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닥에 담배꽁초가 여러 대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한참 된 듯하다.그가 곁눈질로 장하리가 차에 오르고 시동을 걸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서주혁을 보지 못한 것처럼.마지막 담배까지 피우고는 차에 올라탔다.그 역시 자신이 왜 여태 남아있었는지 알지 못했다.자동차에 낯익은 별장에 멈추고 그는 입고 있던 트렌치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그리고 정신을 차린 뒤에야 자신이 온 곳이 어디인지 눈치챘다.장하리와 함께 지내던 곳이다. 그녀와 약속을 잡을 때마다 호텔 아니면 이곳에 오곤 했다.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장하리는 일은 야무지고 빠르게 처리했지만 서주혁의 앞에서는 마치 성깔 없는 사람처럼 고분고분했다.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반박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고, 아무리 심하게 대해도 그저 조용히 견뎌낼 뿐이었다.그녀의 이러한 반응이 서주혁의
한편, 장하리는 차에 올랐을 때부터 서주혁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곧 시동을 걸고 떠났다.두 차가 스치듯 지나감에도 장하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앞만 쳐다보았다.그리고 차가 대략 500미터 정도 달린 후에야 장하리는 자신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눈치챘다.집으로 향했어야 했는데 회사로 향하고 있었다.장하리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침착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웃었다.모두가 어울리지 않는대도 뻔뻔하다고 해도 장하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장하리는 이런 사람이었다. 전에 어머니가 아무리 괴롭혀도 그녀는 마치 스펀지처럼 어머니께서 가끔 주는 가식적인 사랑만이라도 필사적으로 받으며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했다.방우찬과의 7년간의 관계도 그러했다. 아무리 그가 자신에게 몇억의 빚을 지게 하고 사장의 딸과 바람을 피우더라도 장하리는 그가 어느 순간에는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있었다.어떠한 감정이든 그녀는 항상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곤 했다.다만 어머니, 방우찬에 대한 감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더 실망할 감정도 없을 때야 그녀는 조용히 떠났다.그런데 아직 서주혁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보니 실망이 덜한가 보다.장하리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막 집 문을 열자 회색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장하리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은 뒤 강아지를 안고 높이 들었다.“아리! 미안해. 요 며칠 계속 야근하느라 못 왔어.”아리는 작은 토종 개로 전에 서주혁과 별장에서 지낼 때 함께 입양한 강아지이다. 서주혁은 기억하지 못하는.장하리는 밥그릇의 사료를 갈고, 물을 부어준 다음 배변 패드를 처리했다.체력이 좋은 아리는 계속 장하리의 뒤를 졸졸 쫓으며 꼬리를 흔들었다.장하리는 강아지의 애교에 마음이 녹아 품에 다시 안았다.아리는 그녀가 봐온 강아지 중 가장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장하리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회사에서 야근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아리를 보곤 했다.지금은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