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자신을 대하는 성혜원의 태도가 미심쩍었다. 둘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기에 성혜원은 성휘 앞에서 뒷담화를 하곤 했다. 종종 눈치 없이 말을 꺼냈다가 성휘가 화를 낼 정도로 말이다.그렇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매번 성혜인을 다정하게 ‘언니’라고 불렀다. 마치 정말 성혜인을 ‘언니’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소윤은 대놓고 성혜인을 미워했지만, 성혜원은 달랐다. 늘 성혜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성혜인은 순간 깨달았다. 성혜원이 자신을 좋아할 수가 없다. ‘반승제의 아내’라는 그 자리를 성혜인이 차지했기 때문이다.그전에 있던 일을 떠올려 보니, 이제야 뚜렷하게 이해가 됐다. 성혜원이 왜 아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는지 말이다.성혜원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성혜인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코끝에서 반승제의 향기가 느껴졌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깝게 붙어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성혜인이 고개를 드는 순간, 반승제 역시 고개를 밑으로 떨구면서 두 사람의 코끝이 서로 부딪쳤다.성혜인은 이마를 짚는 척하며 급히 몸을 뒤로 뺐다. 마치 몸이 좋지 않아 그에게 기댄 것처럼 말이다.반승제는 눈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몸 앞이 갑자기 텅 비자 허전함이 느껴졌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성혜인은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혜원이 타고 있던 차는 이미 이곳을 떠난 상태였다. 그녀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막 차에서 내리려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성휘에게 온 전화였다.성혜인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순간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받기 버튼을 눌렀다.수화기 너머로 성휘의 목소리가 들렸다.“혜인아, 2차 융자 성공했다. 반씨 집안에서 투자해줬어. 퇴원 기념으로 같이 축하하고자 하는데, 승제랑 집으로 오렴. 감사 인사도 전해야 하니 이모에게 저녁 준비시킬게.”말이 좋아 ‘감사 인사’지, 사실 반씨 집안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속셈이었다.성혜인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
이성을 다잡고 마음을 가라앉힌 반승제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병원으로 들어온 성혜인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약 기운이 여전히 몸을 지배하고 있었고, 뺨을 맞은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렸다.따가우면서 화끈거리기까지 하니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때마침 앞을 지나가던 간호사 덕분에 부축을 받아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성혜인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다 정말 구토를 하고 말았다. 결국 창백한 얼굴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수액을 맞았다.하필 그때, 성휘가 또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잊지 말고 반승제를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었다.「혜인아, 승제와 결혼했으니 한 번쯤은 집에 데리고 와야지.」성혜인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외부에서 판을 치던 유언비어를 잠재우고자 반승제를 불러들이려는 것이었다.2차 융자도 유치했으니 앞으로 인맥이 넓어질 일만 남았다.하지만 성씨 집안과 반씨 집안이 정략결혼을 하고 난 이후, 사람들이 성씨 집안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 반승제, 그리고 반씨 집안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다.이 무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선 단체를 자처하고자 모인 것이 아니다. 체면을 살려줬다면 그만큼의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다.성씨 집안과 반씨 집안의 사이가 좋지 않다면, 그건 분명 성씨 집안이 충분히 보답하지 못했다는 뜻이니 어느 누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씨 집안은 반승제가 그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했다.그래야만 그들의 체면을 살려줄 사람들이 계속 곁에 존재할 테니 말이다.성혜인은 홀로 병원에 앉아있으니 쓸쓸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하지만 성휘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나도 너와 다투기 싫어... 하지만 다 너를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라.」병 주고 약 주는 것이 성휘의 특기다.성혜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성휘가 그녀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했다. 어렸을 때는 돈을
반승제는 어둠이 깔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할 일 다 끝났어?”3년 전. 백연서는 반승제와 윤단미의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았다. 반승제가 성혜인과 결혼하자 윤단미는 해외로 떠나버렸다.사실 윤단미에게 ‘할 일’ 같은 건 없었다. 백연서가 둘을 떼어놓으니 속으로 참고 삭이는 일 말고는 더 있겠는가.반승제가 직접 그녀를 찾으러 가거나 수도 없이 전화를 해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동안 반승제는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그렇다 보니 윤단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 발로 돌아온다면 백연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반승제와 완전히 끝이었다.사실 그 당시 반승제는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했던 그런 설득은 아니었다. 반승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고 싶었다. 자신을 위해 백연서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과 함께 도망가길 바랐던 것이다.윤씨 집안은 적은 재산 정도 가지고 있는 가문일 뿐, 재벌에 속하지는 않았다.윤단미는 제원에서 권력 집단에 속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부유한 편에 속했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반승제와 사귄 이후로는 그녀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윤단미가 반승제에게 시집 가 그림 같은 한 쌍이 되리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모두가 그렇다 보니 윤단미 역시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반승제가 자신과 화해하고자 고개를 숙이며 들어올 줄 안 것이다.반승제가 붙잡을 때, 윤단미는 거절했다. 그녀가 원하던 건 반승제가 평생 윤단미 없이 살 수 없다고 선포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반승제의 행동은 윤단미의 기대에 못 미쳤다. 그렇게 윤단미는 반승제가 결혼할 때까지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당장이라도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해외에서 슬픈 마음을 억누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늘 반승제가 달래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 이후로 3년 동안 반승제는 아주 드물게 연락을 하며 회사 업무에 치여 살았고, 그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다.심지어 귀국한 이후, 반승제가 직접 자신의 아내와 상의해 윤단미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라고 할 것이라는 상상까지 했다.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알고 있으니까.윤단미가 냉전을 끝내기만 하면, 그 자리는 바로 그녀의 것이다.윤단미는 입꼬리를 올리며 휴대폰을 뒤져보다가 반승제와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사진 속의 반승제는 풋풋했다. 오랫동안의 애정이 갑자기 솟아난 돌부리에 부서질 리가 없기에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휴대폰을 막 내려놓자, 벨소리가 울렸다. 윤선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며칠에 한 번씩 윤선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반승제의 최근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예전에 이미 이 디자이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윤단미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동안 반승제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캔들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 디자이너에 대해서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언니, 그래도 빨리 오는 게 좋겠어. 그 여자, 아무래도 형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선미야. 그렇게까지 의심 안 해도 돼. 승제 마음속에는 나뿐이니까.”윤선미의 머릿속에 성혜인이 떠올랐다.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성혜인은 정말 예뻤으니까.이렇게까지 안심하는 그녀에게 윤선미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성혜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얼굴이 거슬렸다....성혜인은 홀로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뺨에 남은 손자국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어젯밤 그 남자들이 무자비하게 힘을 휘둘렀던 걸 다시 떠올리니 조금 무서워졌다.그녀는 신고할 생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때, 경찰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순간 흠칫했지만, 반승제가 그들을 신고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납치 수법이 허술해서 경찰이 조사하면 금방 잡힐 것이다.“성혜인 씨, 맞으시죠? 어제 그 사람들 잡았는데 청부업자들이더군요.”“절 해치려 한 사람들을 처벌하고
조희준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자신이 차단당했다는 걸 알아차렸다.‘이 년이 감히...!’망할.성혜인을 잘 구슬릴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터지는 순간, 경찰에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성혜인이 합의를 해주지 않아 경찰로 사건이 넘어간다면 분명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고, 회사는 그대로 나락의 길을 걷고 말 것이다.조희준은 속이 뒤틀렸다. 여자 혼자서 두 납치범을 경찰서에 보낸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그는 지금까지도 누군가 성혜인을 도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성혜인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바람에 이렇게 당한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나쁜 년!”그는 욕을 뱉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성혜인을 직접 찾아가 합의해 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다.조희준은 성혜인에게 가고자 급히 문밖을 나섰다.하지만 더 이상 이 일에 얽매여 있을 생각이 없던 성혜인은 경찰에게 모든 걸 맡겼다. 어차피 합의도 없으니까.그녀는 퇴원하는 길에 우연히 반희월과 마주쳤다.지난번 병원에서 반희월과 마주쳤을 때도 뺨에 손바닥 자국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성혜인은 최대한 몸을 돌리며 반희월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반희월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페니 양?”지난번과 똑같았다.이름까지 불렀는데 숨는 건 의미가 없었다. 성혜인은 이렇게 된 거 당당하게 인사했다.반희월의 시선이 성혜인의 얼굴로 향했다.손바닥 자국이 너무 선명해서 무시하기도 애매했다.교양을 갖춘 반희월은 상대방의 상처를 대놓고 들춰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여자친구를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성혜인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잘 청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경헌이 얘도 참... 여자친구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데도 가만히 있다니.’“안녕하세요.”성혜인은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자 반희월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왜 또 이렇게 된 거니? 아파?”갑작스러운
성혜인은 반희월을 처음 봤을 때부터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말투에서부터 따뜻한 게 느껴졌다.임경헌은 자신의 어머니를 ‘호랑이’라 칭했지만 성혜인은 마냥 부러웠다. 성혜인이 만나본 사람 중 그녀의 어머니 다음으로 성격이 좋았기 때문이었다.납치 사건을 겪고 병원에서 지금까지 혼자 있었다 보니 정신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날이 습했던 지난밤. 얼굴에서는 통증이 느껴지고 약 기운으로 온몸이 불편했다.잠이 든 이후에는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하지만 너무나도 짧은 꿈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도 몇 년. 엄마의 온기가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있다.반희월의 존재는, 온기 그 자체였다.“페니?”성혜인이 넋을 놓고 있자 반희월은 스스로 상처를 준 것으로 생각했다.“저마다 다 힘든 일이 있지. 내가 너희 부모를 만나는 게 불편하다면 가지 않을게. 지난번에 내가 한 말 기억나니? 무슨 일 있으면 경헌이한테 부탁해. 여자친구니까 도와줄 거야.”반희월이 잘해줄수록 성혜인은 죄책감이 더 커졌다.“네, 아주머니. 기억하고 있어요.”성혜인은 이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불편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반희월은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기도 센 성혜인이 이런 일을 경헌에게 알리는 게 난감한 일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반희월은 싱긋 웃어 보였다.“내 번호 갖고 있지? 내 마음은 예전과 변함없으니 편하게 연락해.”성혜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겨우 병원 입구를 빠져나왔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차에 올라탄 그녀는 포레스트 펜션으로 향했다.반승제가 회사에 있을 시간이니,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도 질렸다. 은행 돈이 어서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로비로 들어서자, 성혜인의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을 발견한 유경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사모님, 얼굴이 왜...”유경아는 황급히 계란을 가져와 성혜인의 얼굴을 문질렀다.어젯밤
성혜인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마침 로비에 사람이 없었다. 회사 사람들과 저녁 7시로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현관에 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 했다. 티테이블에 올려진 선물은 전혀 보지 못한 채 말이다.유경아는 주방에서 성혜인을 위한 보양식을 만들도록 지시를 내리고 있었기에 성혜인이 나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포레스트 펜션 내 도우미는 많은 편이 아니다. 성혜인은 유경아 외에 다른 도우미들과는 대화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초반에 반태승에게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그 때문에 반태승은 최소 필요 인원 정도만 고용하도록 지시했었다.포레스트 펜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반승제는 마침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반태승의 잔소리에도 건강을 생각해 반박하지 않았다.“할아버지, 저 이미 포레스트에 도착했어요.”반태승은 드디어 걱정을 한결 덜 수 있었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니 성혜인이 우울한 것은 당연했다. 이럴 때 남편으로서 옆에서 위로할 줄도 알아야 했다.전화를 끊은 반승제는 셔츠 단추를 풀며 안으로 들어갔다.회의가 막 끝났을 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아 황급히 포레스트에 와야 했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명령 하나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었다.그는 셔츠 소매를 몇 번 접어 올렸다. 그러자 다부진 힘줄이 존재를 한껏 뽐냈다.위로 우뚝 솟은 콧대에 비해 그의 입꼬리는 아래로 쳐져 있었다. 문을 열 때 느껴지는 냉기는 모든 걸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반승제를 발견한 유경아는 멈칫하다 이내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대표님.”반승제는 현관 옷걸이에 옷을 걸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1층을 둘러보았다.어떤 이유에서인지, 유경아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냉기에 뼛속까지 오싹해졌다.“저녁 준비해 두었습니다. 사모님 모셔 올게요.”“네.”반승제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소파에 앉았다.티테이블을 가득 채운 선물을 보는 순간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최고급 식재료에 명품 액세서리까지 있었다.도우미는 차를 내오면서 상황을
반승제와의 약속을 어긴 것도 벌써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치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늦잠이라니.반씨 집안만 믿고 세상 편히 살아가는 여자.반승제의 눈에 성혜인은 그런 여자였다.“기다리지 말고 먹죠.”반승제는 무덤덤하게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걸어갔다.이 순간 유경아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웠다. 반승제의 화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하지만 성혜인이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정말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성혜인을 대신해 몇 마디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반승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성혜인과 관련된 일은 듣고 싶지 않네요.”차가운 눈빛으로 말하는 반승제는 목소리에서도 냉기가 느껴졌다. 그의 말에 유경아는 말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식사 시간 내내 유경아는 최대한 존재감을 없애려 했다.다른 도우미들 역시 매우 조심스러웠다.반승제는 입이 짧은 편이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그는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유경아는 도우미들에게 그릇을 치우도록 지시한 후 성혜인의 식사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그 시각. 성혜인은 BK사가 위치한 곳에 이미 도착했다. BK사는 성혜인과 이번 작업을 함께 하게 된 협력사다.한숨 자고 난 이후 컨실러로 손바닥 자국을 가린 덕분에 얼굴 흉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으로 협력사를 찾아가는 건 실례일 것 같았다.BK사의 책임자는 조희준보다 훨씬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회의를 진행하다 저녁 식사 약속까지 잡았다.일종의 성의를 보이는 자리이다 보니 술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성혜인은 세 시간 동안 두 잔 정도 마시고는 다음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그녀는 상대에게 시공 설계도를 건넨 뒤 기본 인테리어와 관련된 자재 선택 역시 거의 다 맞췄다.매우 순조롭게 협상이 이뤄진 덕에 이틀 후 곧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성혜인은 술을 몇 잔 했기 때문에 대리운전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