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반희월을 처음 봤을 때부터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말투에서부터 따뜻한 게 느껴졌다.임경헌은 자신의 어머니를 ‘호랑이’라 칭했지만 성혜인은 마냥 부러웠다. 성혜인이 만나본 사람 중 그녀의 어머니 다음으로 성격이 좋았기 때문이었다.납치 사건을 겪고 병원에서 지금까지 혼자 있었다 보니 정신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날이 습했던 지난밤. 얼굴에서는 통증이 느껴지고 약 기운으로 온몸이 불편했다.잠이 든 이후에는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하지만 너무나도 짧은 꿈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도 몇 년. 엄마의 온기가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있다.반희월의 존재는, 온기 그 자체였다.“페니?”성혜인이 넋을 놓고 있자 반희월은 스스로 상처를 준 것으로 생각했다.“저마다 다 힘든 일이 있지. 내가 너희 부모를 만나는 게 불편하다면 가지 않을게. 지난번에 내가 한 말 기억나니? 무슨 일 있으면 경헌이한테 부탁해. 여자친구니까 도와줄 거야.”반희월이 잘해줄수록 성혜인은 죄책감이 더 커졌다.“네, 아주머니. 기억하고 있어요.”성혜인은 이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불편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반희월은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기도 센 성혜인이 이런 일을 경헌에게 알리는 게 난감한 일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반희월은 싱긋 웃어 보였다.“내 번호 갖고 있지? 내 마음은 예전과 변함없으니 편하게 연락해.”성혜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겨우 병원 입구를 빠져나왔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차에 올라탄 그녀는 포레스트 펜션으로 향했다.반승제가 회사에 있을 시간이니,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도 질렸다. 은행 돈이 어서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로비로 들어서자, 성혜인의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을 발견한 유경아가 소스라치게 놀랐다.“사모님, 얼굴이 왜...”유경아는 황급히 계란을 가져와 성혜인의 얼굴을 문질렀다.어젯밤
성혜인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마침 로비에 사람이 없었다. 회사 사람들과 저녁 7시로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현관에 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 했다. 티테이블에 올려진 선물은 전혀 보지 못한 채 말이다.유경아는 주방에서 성혜인을 위한 보양식을 만들도록 지시를 내리고 있었기에 성혜인이 나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포레스트 펜션 내 도우미는 많은 편이 아니다. 성혜인은 유경아 외에 다른 도우미들과는 대화해 본 적도 별로 없었다.초반에 반태승에게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그 때문에 반태승은 최소 필요 인원 정도만 고용하도록 지시했었다.포레스트 펜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반승제는 마침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반태승의 잔소리에도 건강을 생각해 반박하지 않았다.“할아버지, 저 이미 포레스트에 도착했어요.”반태승은 드디어 걱정을 한결 덜 수 있었다. 아버지가 투병 중이니 성혜인이 우울한 것은 당연했다. 이럴 때 남편으로서 옆에서 위로할 줄도 알아야 했다.전화를 끊은 반승제는 셔츠 단추를 풀며 안으로 들어갔다.회의가 막 끝났을 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아 황급히 포레스트에 와야 했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명령 하나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었다.그는 셔츠 소매를 몇 번 접어 올렸다. 그러자 다부진 힘줄이 존재를 한껏 뽐냈다.위로 우뚝 솟은 콧대에 비해 그의 입꼬리는 아래로 쳐져 있었다. 문을 열 때 느껴지는 냉기는 모든 걸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반승제를 발견한 유경아는 멈칫하다 이내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대표님.”반승제는 현관 옷걸이에 옷을 걸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1층을 둘러보았다.어떤 이유에서인지, 유경아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냉기에 뼛속까지 오싹해졌다.“저녁 준비해 두었습니다. 사모님 모셔 올게요.”“네.”반승제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소파에 앉았다.티테이블을 가득 채운 선물을 보는 순간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최고급 식재료에 명품 액세서리까지 있었다.도우미는 차를 내오면서 상황을
반승제와의 약속을 어긴 것도 벌써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치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늦잠이라니.반씨 집안만 믿고 세상 편히 살아가는 여자.반승제의 눈에 성혜인은 그런 여자였다.“기다리지 말고 먹죠.”반승제는 무덤덤하게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걸어갔다.이 순간 유경아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웠다. 반승제의 화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하지만 성혜인이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정말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성혜인을 대신해 몇 마디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반승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성혜인과 관련된 일은 듣고 싶지 않네요.”차가운 눈빛으로 말하는 반승제는 목소리에서도 냉기가 느껴졌다. 그의 말에 유경아는 말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식사 시간 내내 유경아는 최대한 존재감을 없애려 했다.다른 도우미들 역시 매우 조심스러웠다.반승제는 입이 짧은 편이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그는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유경아는 도우미들에게 그릇을 치우도록 지시한 후 성혜인의 식사를 따로 마련해 두었다.그 시각. 성혜인은 BK사가 위치한 곳에 이미 도착했다. BK사는 성혜인과 이번 작업을 함께 하게 된 협력사다.한숨 자고 난 이후 컨실러로 손바닥 자국을 가린 덕분에 얼굴 흉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으로 협력사를 찾아가는 건 실례일 것 같았다.BK사의 책임자는 조희준보다 훨씬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회의를 진행하다 저녁 식사 약속까지 잡았다.일종의 성의를 보이는 자리이다 보니 술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성혜인은 세 시간 동안 두 잔 정도 마시고는 다음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그녀는 상대에게 시공 설계도를 건넨 뒤 기본 인테리어와 관련된 자재 선택 역시 거의 다 맞췄다.매우 순조롭게 협상이 이뤄진 덕에 이틀 후 곧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성혜인은 술을 몇 잔 했기 때문에 대리운전을
성혜인은 휴대폰 빛을 바닥에 비춰 깨진 조각들을 주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순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반승제의 목소리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반승제는 손에 컵을 쥐고 있었다. 야근을 위해 커피를 마시려는 것 같았다.정전 때문에 어두워져 반승제는 그녀의 희미한 형체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도우미일 것으로 생각했다.“커피 머신 어디 있어요?”반승제가 물었다. 코끝에서 커피 향이 느껴졌다.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유경아가 커피는 항상 준비 되어있으니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내려오라고 했었다.밤새 일을 해야 할 때면 정신을 깨워줄 커피가 필요하다.널따란 주방. 커피 머신은 성혜인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성혜인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커피 향을 맡은 반승제는 이미 주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그는 굳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고 도우미를 등진 채 머신 앞에 컵을 내려놓았다.보온 기능 덕분에 정전이 되었어도 따뜻한 커피를 컵에 담을 수 있었다.커피를 따르자 주방 전체에 짙은 커피 향이 퍼졌다. 반승제가 가장 좋아하는 원두였다.바로 그때, 향긋한 커피 향을 비집고 들어오는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반승제는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 도우미를 쳐다봤다.성혜인은 그를 등진 채 여전히 쭈그려 앉아 있었다.‘귀가 먹었나?’성혜인은 여전히 깨진 그릇을 집고 있었다. 창밖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불빛 삼아 빠르게 주워 담고 주방 쓰레기통에 버렸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일으켜 급하게 주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반승제가 입을 열었다.“차단기가 내려간 것 같아요. 다들 자고 있으니 분전함으로 안내 좀 해줄래요?”반승제는 포레스트 펜션의 집 구조가 익숙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도우미라면 잘 알 것으로 생각했다.아무래도 성혜인을 도우미로 착각한 것 같다.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성혜인은 그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맹하게 행동하는 그녀가 반승제는 조금 답답했다.성혜인은 목소리를 잔뜩 깔며 말했다.
핸드폰은 성혜인 옷의 호주머니에 있었다. 발신인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그녀가 수신 거절을 해도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운이 나쁜 건가. 핸드폰 벨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그녀가 받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전화를 걸 기세였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어떻게 해명해야 반승제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도 그의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을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밤, 밖에는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창문을 두드렸고 실내에는 핸드폰 벨 소리뿐이었다. 성혜인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다. “반 대표님, 사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번개는 치지 않아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천둥소리 때문에 반승제는 그녀가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자기의 디자이너라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천둥소리와 핸드폰 벨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성혜인은 이미 포기한 상태로 어떻게 사과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려던 순간, 핸드폰이 완전히 꺼졌다. 이번에는 그녀가 끈 것이 아니었다. 배터리가 다 닳은 것이었다. 오늘 밤 나올 때부터 급하게 나왔고 또 어제는 병원에서 온 하루 있었으니 핸드폰을 충전할 기회가 없었다. 또 계속해서 울린 벨 소리 때문에 배터리가 결국 다 닳은 것이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타이밍의 신이 그녀를 도운 듯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성혜인은 마침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승제도 그녀의 폰이 꺼진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익숙한 체향이 코끝을 스쳤지만 어디서 맡은 향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반 대표님, 저는 새로 왔습니다. 방금 그릇을 깨서 살짝 긴장한 것입니다.”수상하게 쪼그려 앉아있는 것은 깨진 그릇 파편을 줍기 위해서였다. 분전함이 있는 곳도 모르는 이유는 새로 와서 였다. “아주머니께서 말씀하
윤선미가 사람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기에 성혜인은 자기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윤선미의 옆을 지나쳤다. 윤선미는 충분히 대놓고 그녀에게 망신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무시당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헤픈 여자 같으니라고! '윤선미가 성혜인을 따라가서 잡으려고 했지만 성혜인은 이미 반승제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성혜인은 걸어 들어갔고 분에 차 있는 윤선미만 사무실 밖에 남았다. 윤선미는 성혜인을 막으려고 달려들다가 하마터면 문에 코를 찧을 뻔했다. 놀란 그녀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선 후에 겨우 중심을 잡았다. 이를 뿌득뿌득 갈며 윤선미가 닫힌 사무실의 문을 노려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또 사촌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야 할 참이었다. 그녀는 구석에서 윤단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빨리 전화를 받아 든 윤단미의 목소리는 꽤 친절했다. “선미야, 왜? 승제가 또 너한테 못되게 굴었니?”“언니, 내가 저번에 말했던 그 디자이너 있잖아. 또 형부를 찾아 BH그룹에 왔어. 저번에 깜빡하고 말 못 한게 있는데 저 디자이너가 형부를 따라 호텔까지 갔더라? 게다가 형부한테 4천만짜리 커프스를 선물했어. 언니, 언니가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저 디자이너가 언니 자리를 뺏을지도 몰라!”예쁘게 휘어졌던 윤단미의 눈이 순식간에 독기를 품었다. 그리고 미간이 살짝 찌푸려 지며 물었다. “어떻게 생겼는데?”“딱 봐도 꽃뱀처럼 생겼어.”윤단미는 살짝 불안했다. 그녀와 반승제가 오랫동안 냉전하고 있었으니 이젠 화해할 때도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예쁜 여자가 반승제의 곁에 나타나서 마침 반승제가 거기에 넘어갔다면?하지만 반승제는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기에 윤단미는 다시금 안심되었다. 여태까지 어떠한 스캔들도 없었고 결혼했다고 해도 그저 허울뿐인 결혼이었다. 반승제는 지금까지 그 아내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꽃뱀따위에 쉽게 넘어갈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윤단미는 윤선미가
반승제는 시선을 내려 성혜인을 쳐다보지 않았다. 시야 밖에서는 그녀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어 윤선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 대표님.”“들어와.”그는 시선을 돌려 또 컴퓨터에 집중했다. 윤선미는 성혜인을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아까 사촌 언니가 연락이 왔는데, 대표님께 선물을 준비했대요. 배달원이 급하게 가져왔어요. 반 대표님, 받으세요.”윤선미는 일부러 성혜인이 보게끔 커프스를 열어 보였다. “사촌 언니가 말하기를 맘에 들지 않으면 바꿔도 된다고 했어요. 아직 배달원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거든요.”성혜인은 그 커프스가 자기가 준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발견했다. 그때 커프스를 고를 때 죄책감 때문에 오랜 시간을 들여 골랐기에 아직도 인상이 깊었다. 윤선미가 무슨 생각으로 보낸 건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살짝 과한 반응이었다. 반승제가 그렇게 중요한가. 반승제는 이미 성혜인이 그에게 준 커프스가 어떻게 생겼던지도 까먹었기에 그대로 건네받았다. “단미가 왜 갑자기 선물을?”윤선미는 잘난 척 성혜인을 쳐다보았다. 이게 바로 윤단미다. 반승제는 윤단미와 관련된 일이라면 바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윤선미는 성혜인이 주눅 들 줄 알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침착했다. 마치 이 일이 그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무슨 일이지? 연기하는 건가? 그녀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반승제의 핸드폰이 울렸다. 윤단미가 걸어온 것이었다. 반승제가 수신 버튼을 누르자 그쪽에서 윤단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제야, 선물 받았어?”“응.”“마음에 들어? 꽤 오래 고른 건데, 너랑 어울릴 것 같아서.”“괜찮네.”반승제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의 전속 코디네이터도 있었기에 전혀 이런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윤단미는 웃음을 지었다. 사무실 안에 성혜인도 있을 것을 생각하며 일부러 애교 섞인 말투를 썼다. “네 마음에 들면 됐어. 앞으로
전에 그녀를 위해 손바닥이 뚫렸고 지금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 후에는 또 납치범한테서 그녀를 구해냈고. 반승제에게 있어서 그녀와 함께 있기만 하면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니 국을 갖다주는 것쯤은 당연한 것 아닌가?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태연하다는, 오히려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반승제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성혜인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서류를 챙기고 나가버렸다. 윤선미는 성혜인을 괴롭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라 나갔다. 사무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이제 마음 접어요. 사촌 언니랑 형부는 사이가 엄청 좋거든요. 누구도 못 끼어들 만큼.”성혜인은 그저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윤선미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윤선미는 그런 변함없는 성혜인의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남자를 꼬시려고 왔으면서 도도한 척은. '“아, 그러고 보니 신이한씨랑 가깝게 지낸다더니. 진짜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 안 잡네요. 어쩐지 형부가 싫어하더라니.”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성혜인은 계속 윤선미를 무시한 채 걸어 들어갔다. 윤선미는 화가 치밀어 목까지 빨개졌다. 마치 허공에 주먹질한 것 같았다. 아프지는 않지만 창피한. “이 더러운 년이!”결국 참지 못하고 따라 들어가 손을 올린 윤선미가 바로 성혜인의 뺨을 내리치려고 했다. 성혜인은 윤선미의 손목을 딱 잡고 윤선미를 벽으로 밀고 차갑게 말했다. “윤선미 씨, 제가 같은 수에 연속 당할 줄 알아요? 계속 사촌 언니를 들먹이는데, 당신 사촌 언니는 윤선미 씨가 반 대표님을 좋아한다는 건 알아요?”윤선미의 낯빛이 삽시에 어두워졌다. 이 일은 사촌 언니가 알아서는 절대 안 되었다. “놔!”성혜인은 CCTV를 확인했다. 여기는 BH그룹이니 여기서 윤선미와 싸웠다가는 윤선미와 같은 편인 윤단미를 위해 반승제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윤선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아까 누구도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지 않았기에 엘리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