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미터 뒤처진 설우현은 섬에 갇힌 여인이 나하늘이라는 사실을 설기웅에게 알렸다. 설기웅은 두 사람이 나하늘에게 간다고 하자 쉰 목소리로 당부했다.“혜인이 잘 보고 있어.”“형, 걱정 마요.”설우현은 손을 흔들며 성혜인을 뒤따라갔다.설기웅의 곁에 선 남성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정말 네 동생이라고?”두 사람 사이의 괴상한 분위기는 전혀 한 가족 같지 않았다.설기웅은 푹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지금은 동생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원가주님은 정말 섬에 있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까?”그 곁에 서 있던 남성은 바로 원진이었는데, 설씨 가문과의 이번 협력으로 인해 그도 섬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깊이 생각했다.“그렇게 큰 욕심은 없습니다.”“하지만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가주님도 섬의 실험실을 봤죠? 아무도 그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가주님께서 신경 쓰는 그 사람이 마침 표적이 될지는 더더욱 모르죠. 원씨 가문이 이곳이나 플로리아나 모두 자리를 잡았으니 가주님을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가주님이 신경 쓰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게 될 겁니다. 그렇게 강하던 우리 아버지도 지금 침대에 누워 있어요. 다음으로 독살당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고요.”구금섬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내부에 남아 있는 일부 알약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약이기 때문이었다.누군가 그곳에서 줄곧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금지된 약들이 어딘가로 흘러가지는 않았을까?모두가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섬의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그의 말은 원진을 확실히 설득했다. 그는 돌아서 담담하게 벽에 등을 기댔다.“원씨 가문에선 여전히 지원할 것이지만 함께 따라다니진 않을 겁니다.”이 정도면 충분하다.설기웅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가주님께 보호받는 여인은 분명 행복할 겁니다.”다른 사람에게 원진
지하실에는 의사도, 공사팀 책임자도 있었다.의사는 여인의 몸을 진찰하고 있었고 공사팀 사람들은 지하실의 구조를 알아보고 있었다.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공사팀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의사만이 조금의 소득을 얻었을 뿐이다.“도련님, 낯선 사람과 말을 나눈 지 너무 오래돼서 언어 능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분명히 몸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설우현은 온몸이 굳었다. 나하늘과는 함께 있어 본 적도 없지만 역시 핏줄이라 그런지 가슴이 아팠다.“몸에 손을 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뼈가 몇 군데 제거되어 인공 기구로 교체되었습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인공 기구가 이미 뼈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인공기구의 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소리를 전달하거나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일 겁니다. 안에 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참 앞선 기술이라 저 같은 의사 한 명으로 검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국가의 기계를 사용하더라도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뼈가 몇 군데나 적출되었다니, 얼마나 아팠을까.성혜인은 벌써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른 나하늘의 곁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러나 나하늘은 거부감을 느껴 성혜인을 박차며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 온몸을 움츠렸다.지난번 반승제의 사람들이 데리고 떠나려 했을 때 역시 이런 반응이었다.이렇게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면 원래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걸까.의사는 수첩에 빼곡히 기록하며 안경을 올려 썼다.설씨 가문이 청한 의사는 모두 엘리트라 불리는 의사들이었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지하실로 오는 모든 사람들이 업계 최고의 엘리트였다.“도련님, 이분은 PTSD를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일종의 정신 장애인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여인은 성혜인의 손을 뿌리쳐버리고 뒤로 움츠러들었다.그녀는 줄곧 조용했다. 그녀는 마치 연약하고 아름다운, 날개가
무슨 신념?성혜인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며 의사의 이러한 말들을 듣고는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성혜인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물었다.“그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죠?”나하늘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었다. 그녀는 살이 닿기만 해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게다가 말도 듣지 못했다.의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그건 저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공사팀이 지하실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지 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감시당하고 있을 거예요.”그가 주위를 가리키자 성혜인이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전기를 끊으면 안 되나요?”공사팀의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섬의 모든 곳은 전기를 끊을 수 있지만 이곳만 유일하게 전기 회로가 단독 회로입니다. 메인 스위치는 견고한 철제 케이스에 있습니다. 총과 폭탄으로 시험해 보았지만 모두 부서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람과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일으킵니다.”성혜인은 점점 초조해졌다.이때 벽에 기댄 나하늘은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이에 따라 온몸이 땀투성이였다.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와 걸으려 하자 발목을 감은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소리가 지하실을 메아리쳤다.침대에 앉아 있는 성혜인은 큰 무기력함을 느꼈다.특히나 나하늘이 능숙하게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지하실을 샅샅이 뒤지며 도망치려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고 말도 안 될 정도로 흰 피부를 보면 몇 년째 이곳에 갇혀있은 것이 더 잘 느껴졌다.공사팀은 주변을 계속 탐사했고 의사는 종이에 기록된 정보를 되짚고 있었다.몇 분 동안 조용하더니 화장실 문이 열리고 나하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녀와 닿지 않는 한, 나하늘은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성혜인이 또 물었다.“점자는 시도해 보셨어요? 간단한 몇 글자는 알 것 같은데요.”“이미 모두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얼 하든 전혀 협
대략적인 방향을 향해 달려가던 성혜인은 이쪽이 더 황폐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원래의 정원은 이미 사라졌으며 폐허라고 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저 지반의 윤곽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정원이 포탄에 직격당한 것이 분명했다. 만일 정원에 사람이 있었다면 포탄의 위력에 의해 팔다리가 부러질 것도 없이 바로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그녀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곳에 작은 널빤지를 세워주고는 넋을 잃은 듯 되돌아갔다.헬기가 착륙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설우현은 동생의 안색이 좋지 않자 황급히 산소통을 건넸다.“냄새가 견디기 힘들지?”성혜인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두 사람을 태운 헬기는 저녁이 되어서야 반승제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성혜인은 복도 의자에 앉아 두통을 느꼈다.안에 있던 의사가 나오자 성혜인이 물었다.“어때요?”“의지가 강하셔서 내일이면 깨어날 겁니다.”성혜인은 안도했다. 그러나 또 섬에서의 광경을 떠올리니 위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자기 병실의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 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설우현이 저녁을 가져다주며 잘 먹으라고 당부했다.“구금섬에서의 일은 국제기구 사람들이 계속 조사하고 있어. 그런데 연구 기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국제 전문가들이 연구 기지를 조사하고 있다니 반승제와 둘이 고독하게 찾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번거로움을 많이 던 셈이다.“오빠, 연구 기지 위치를 알게 되면 얼른 알려주세요. 아버지의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그리고 배현우는 찾았어요?”구금섬이 폭파되던 날 밤 배현우도 섬에서 죽은 걸까?“못 찾았어. 산산조각 난 시신도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단서를 찾지 못했어.” 성혜인이 등을 뒤로 젖히자 벽의 찬 기운이 느껴졌다.설우현이 도시락을 열고 숟가락을 성혜인의 손에 쥐여주었다.“먹기 싫어도 조금이라도 먹어. 이따가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고.”어쨌든 임산부니까. 이렇게 고생하고도 아이가 멀쩡하다는 건 운이 좋다고
그는 일부러 한쪽에 놓여있던 책을 가지고 설기웅 쪽으로 부채질하며 향으로 꼬드겨보려 했다.그러나 설기웅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정직하게 앉은 채 물었다.“국제 사람들은 아직 아무 단서도 못 찾았대?”최용호가 포기하고 눈을 희번덕거렸다.“그 무리에 희망을 품지 마. 그 안에 연구기지 계획에 참여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지금 구금섬이 폭로되니까 나라마다 무고한 척하고 있잖아. 분명 내부자는 그 안에 있어. 그 작은 섬의 연구기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는데. 원주민을 가축처럼 기르고도 여태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가 보호하고 있었다는 거야.”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다.아주 오래전 생체 실험은 국제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인도주의적이지 않다며 비판했다.하지만 인체를 이용한 실험만이 데이터가 가장 정확하다.어떤 나라들은 겉으로는 잘 사는 척,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몰래 연구기지에 투자했다.일단 실험이 성공하기만 하면 연구한 것은 그들에게 큰 무기가 될 것이며 어느 정도에선 다른 나라보다 20년 이상 앞서게 될 것이니까.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아무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만 앗아갈 뿐이다.실험에 이용되는 사람들의 목숨은 그들에게 개미만도 못한 것이었다.설기웅은 양미간을 꾹꾹 누르며 두통을 느꼈다.“설, 최, 원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연구기지를 조사하고 있으니 단서가 나올 거야.”최용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거하게 차린 테이블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가 조사하기만 하면 누군가 무조건 몰래 막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연구해 낸 약이 뭔지도 몰라. 연구기지에서 잡힌 사람들은 모두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의학 천재들인걸.”설기웅이 침묵을 지켰다.한 명의 천재여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닌 수많은 천재들이 모여서 연구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분명 이름을 널리 알릴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에게 유해한 것이라면 그것은 재앙이었다.최용호가
플로리아의 어느 한 곳에서 남자가 영상을 보고 있다.영상 속에는 나하늘과 외부인들이 있다.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들을 수 없는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그는 여인에게 강한 통제욕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호란을 틈타 그녀를 곁으로 데려오려고 했었다.그러나 다른 곳에 어디 지하실이 있겠는가. 저곳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여인을 가두려고 계획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곳이었다.이만큼 뛰어난 구속 장치는 없었다.영상 속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소리는 아주 작았으며 휴대폰 문자로 의사소통을 했다.남성은 CCTV를 여유작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하늘이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통제 범위에 있는 한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오하고 고귀하던 여인이 인간 존엄까지 잃고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이 여인은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이었다.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던 그때 밖에서 손님이 찾아왔다며 노크했다.그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방을 나갔다.ㅂ층 거실에 도착한 그는 홀에 앉아 있는 진세운, 그리고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진백운을 발견했다.“무슨 바람이 불어서 둘이 함께 온 겁니까?”진세운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전에 노예찬과 정면충돌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남자 때문이었다.남성의 이름은 여석진으로, 연구기지와 관련 있는 사람이었다.BKS 조직에서 그와 이 남성은 유일하게 그곳과 관련 있는 사람이었다.여석진이 구금섬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간 연구기지에 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공하여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모두 연구기지의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었다.그러나 먼저 배신을 한 사람이 노예찬 그 녀석일 줄이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노예찬은요?”진세운의 얼굴은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하루 종일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시신이 밖에 버려졌는데 폭탄으로 시신이 훼손됐는지는 그 녀석 운에 달려 있죠.”아이가
잠든 성혜인은 꿈속에서 따뜻한 손이 자신을 잡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새벽에 자기 전, 그녀는 원래 알람을 놓고 일찍 깨려 했다.그런데 한 번 잠들고 대여섯 시간이나 자버렸다.깨어났을 때 병실 안은 이미 햇빛이 가득 비추고 있었다.반승제는 한 손으로 성혜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하는 것 같았다.그의 얼굴을 본 뒤에도 성혜인은 여전히 멍했다.손에 힘을 주고서야 정신을 차린 성혜인은 반승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다.“오늘 종합검진 해야 하지? 나랑 같이 가. 지금 배 안고파?”“승제 씨, 깼어요?”반승제는 그녀의 손을 놓고 곁에 있는 소독용 물티슈를 가져와 성혜인의 손가락을 닦아주었다.“깬 지 두 시간 됐어. 넌 좀 더 자.”그러나 성혜인은 나하늘과 설기웅의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 잠에 들 수 없었다.반승제는 깨자마자 상황을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는 손을 들어 성혜인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배현우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거야. 단서는 곧 찾을 수 있어.”그는 얼른 성혜인의 허리 뒤에 베개를 깔고 몸을 일으키도록 도왔다.성혜인은 베개에 기대니 정신이 많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그들 모두 연구 기지의 일이 가능한 한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전 세계의 사람들이 구금섬에 주목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지 못했다.오히려 언론들이 구금섬의 존재를 보도하면서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구금섬과 연결된 연구 기지는 분명 곧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반승제는 이미 성혜인을 위해 검진 항목을 예약하고 함께 하나하나 검사하려 했다.검진이 금방 끝나자 영양사가 점심을 가져왔다.배가 고팠던 성혜인은 얼른 수저를 들었고 배부를 때쯤, 장하리와 강민지가 연락하여 근황을 물었다.최근 줄곧 구금섬에 갇혀 있으면서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장하리와 강민지는 걱정되어 매일 연락하여 물어보곤 했다. 이제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
결혼이라니? 강민지가 결혼한다고?잠깐 당황한 성혜인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너 신예준이랑 안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진심이야? 아저씨가 허락했어?”성혜인은 전에 강상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강상원은 말끝마다 결혼은 집안 조건이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앞으로의 나날은 고통과 증오로 얼룩질 뿐이라며.그래서 심예준과 사랑에 빠졌을 때 강민지는 강씨 가문에 그 사실을 숨겼다.“혜인아, 나 여기 아직 할 일이 좀 있어서 먼저 끊을게. 나중에 시간 내서 다시 전화할게. 바이, 우리 애기.”여유로워 보이는 강민지의 말투를 들으면 전혀 일이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자 강민지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제원에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자선 파티를 개최하며 수많은 사람을 초대했다. S.M 측에서도 초대장을 받았다. 성혜인이 자리를 비워서 장하리가 대신 참석했다.화려하게 차려입은 장하리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보더니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블러셔를 더 발라달라고 부탁했다.현장에 도착하자 장하리는 손에든 가방을 꼭 쥐고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최근 참석했던 여러 파티에서 매번 서수연을 마주쳤기 때문이다.서주혁이 장하리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 서수연은 장하리를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괴롭혔다.하지만 서수연이 서씨 가문의 딸이자 서주혁의 친동생이었기에 장하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은 S.M뿐이었지만 장하리는 S.M이 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았다.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장하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파티에 입장했다.이런 저녁 파티는 거의 매달 열리는 행사로 여기서 인맥과 자원을 교환하는 것은 회사에 꼭 필요한 기회였다.S.M이 점점 발전해 나가며 매번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꽤 많은 투자자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그녀는 최근 손잡았던 사람들과 함께 와인을 홀짝이다가 곁눈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