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을 바라보는 설우현은 마음이 아팠다. 구금섬에서 얼마나 시달린건지 몸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성혜인은 베개에 기댄 채 반승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설우현이 한숨을 내쉬었다.“원래 그 섬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어. 그런데 최근 이틀간 연속된 폭발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지. 이미 여러 나라가 그곳을 답사했는데 폭발로 극소수만 살아남게 되었고 게다가 병원까지 노출되는 바람에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어. 이미 많은 나라가 신청서를 제출해서 이 섬의 배후를 조사하려고 해. 배후는 아마 어떤 조직이거나...”설우현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씩 웃었다.“혹은 진짜 주인이 어느 한 나라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지금 언론에서 매일 보도하고 있고 단서를 찾으려고 하고 있으니 아마 범인들은 당분간 경거망동하지 않을 거야.”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반승제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안정감 있고 편하다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처음으로 가족이 곁에 있음이 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설씨 가문에 별 감정은 없었지만 설우현은 좋았다.“그, 아빠... 회장님은 어떻게 됐어요?”원래 구금섬에 들어간 목적도 해독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섬의 모든 것이 망가졌으니 이제 설의종은 어떡한단 말인가.“지금은 상태가 안정되었지만 그래도 해독제는 얼른 찾아야 해. 이건 너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섬에는 단서가 반드시 있을 거야. 설씨 가문 사람들이 계속 찾고 있기도 하고.”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내리깔았다.“오빠, 지하실에 갇힌 그 여자...”성혜인이 말을 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지하실의 구조가 아주 기이할 거예요. 아마 그분은 어떻게 해독약을 만드는 건지 아실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과 얘기해 봐요. 그분은... 우리 어머니예요.”설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대략 이런 추측을 하고 있긴 했다.병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침묵을 지키다가 양미간을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이미 많은 사람
몇 미터 뒤처진 설우현은 섬에 갇힌 여인이 나하늘이라는 사실을 설기웅에게 알렸다. 설기웅은 두 사람이 나하늘에게 간다고 하자 쉰 목소리로 당부했다.“혜인이 잘 보고 있어.”“형, 걱정 마요.”설우현은 손을 흔들며 성혜인을 뒤따라갔다.설기웅의 곁에 선 남성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정말 네 동생이라고?”두 사람 사이의 괴상한 분위기는 전혀 한 가족 같지 않았다.설기웅은 푹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지금은 동생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원가주님은 정말 섬에 있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까?”그 곁에 서 있던 남성은 바로 원진이었는데, 설씨 가문과의 이번 협력으로 인해 그도 섬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깊이 생각했다.“그렇게 큰 욕심은 없습니다.”“하지만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가주님도 섬의 실험실을 봤죠? 아무도 그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가주님께서 신경 쓰는 그 사람이 마침 표적이 될지는 더더욱 모르죠. 원씨 가문이 이곳이나 플로리아나 모두 자리를 잡았으니 가주님을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가주님이 신경 쓰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게 될 겁니다. 그렇게 강하던 우리 아버지도 지금 침대에 누워 있어요. 다음으로 독살당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고요.”구금섬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내부에 남아 있는 일부 알약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약이기 때문이었다.누군가 그곳에서 줄곧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금지된 약들이 어딘가로 흘러가지는 않았을까?모두가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섬의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그의 말은 원진을 확실히 설득했다. 그는 돌아서 담담하게 벽에 등을 기댔다.“원씨 가문에선 여전히 지원할 것이지만 함께 따라다니진 않을 겁니다.”이 정도면 충분하다.설기웅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가주님께 보호받는 여인은 분명 행복할 겁니다.”다른 사람에게 원진
지하실에는 의사도, 공사팀 책임자도 있었다.의사는 여인의 몸을 진찰하고 있었고 공사팀 사람들은 지하실의 구조를 알아보고 있었다.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공사팀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의사만이 조금의 소득을 얻었을 뿐이다.“도련님, 낯선 사람과 말을 나눈 지 너무 오래돼서 언어 능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분명히 몸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설우현은 온몸이 굳었다. 나하늘과는 함께 있어 본 적도 없지만 역시 핏줄이라 그런지 가슴이 아팠다.“몸에 손을 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뼈가 몇 군데 제거되어 인공 기구로 교체되었습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인공 기구가 이미 뼈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인공기구의 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소리를 전달하거나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일 겁니다. 안에 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참 앞선 기술이라 저 같은 의사 한 명으로 검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국가의 기계를 사용하더라도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뼈가 몇 군데나 적출되었다니, 얼마나 아팠을까.성혜인은 벌써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른 나하늘의 곁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러나 나하늘은 거부감을 느껴 성혜인을 박차며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 온몸을 움츠렸다.지난번 반승제의 사람들이 데리고 떠나려 했을 때 역시 이런 반응이었다.이렇게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면 원래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걸까.의사는 수첩에 빼곡히 기록하며 안경을 올려 썼다.설씨 가문이 청한 의사는 모두 엘리트라 불리는 의사들이었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지하실로 오는 모든 사람들이 업계 최고의 엘리트였다.“도련님, 이분은 PTSD를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일종의 정신 장애인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여인은 성혜인의 손을 뿌리쳐버리고 뒤로 움츠러들었다.그녀는 줄곧 조용했다. 그녀는 마치 연약하고 아름다운, 날개가
무슨 신념?성혜인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며 의사의 이러한 말들을 듣고는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성혜인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물었다.“그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죠?”나하늘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었다. 그녀는 살이 닿기만 해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게다가 말도 듣지 못했다.의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그건 저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공사팀이 지하실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지 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감시당하고 있을 거예요.”그가 주위를 가리키자 성혜인이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전기를 끊으면 안 되나요?”공사팀의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섬의 모든 곳은 전기를 끊을 수 있지만 이곳만 유일하게 전기 회로가 단독 회로입니다. 메인 스위치는 견고한 철제 케이스에 있습니다. 총과 폭탄으로 시험해 보았지만 모두 부서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람과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일으킵니다.”성혜인은 점점 초조해졌다.이때 벽에 기댄 나하늘은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이에 따라 온몸이 땀투성이였다.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와 걸으려 하자 발목을 감은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소리가 지하실을 메아리쳤다.침대에 앉아 있는 성혜인은 큰 무기력함을 느꼈다.특히나 나하늘이 능숙하게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지하실을 샅샅이 뒤지며 도망치려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고 말도 안 될 정도로 흰 피부를 보면 몇 년째 이곳에 갇혀있은 것이 더 잘 느껴졌다.공사팀은 주변을 계속 탐사했고 의사는 종이에 기록된 정보를 되짚고 있었다.몇 분 동안 조용하더니 화장실 문이 열리고 나하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녀와 닿지 않는 한, 나하늘은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성혜인이 또 물었다.“점자는 시도해 보셨어요? 간단한 몇 글자는 알 것 같은데요.”“이미 모두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얼 하든 전혀 협
대략적인 방향을 향해 달려가던 성혜인은 이쪽이 더 황폐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원래의 정원은 이미 사라졌으며 폐허라고 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저 지반의 윤곽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정원이 포탄에 직격당한 것이 분명했다. 만일 정원에 사람이 있었다면 포탄의 위력에 의해 팔다리가 부러질 것도 없이 바로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그녀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곳에 작은 널빤지를 세워주고는 넋을 잃은 듯 되돌아갔다.헬기가 착륙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설우현은 동생의 안색이 좋지 않자 황급히 산소통을 건넸다.“냄새가 견디기 힘들지?”성혜인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두 사람을 태운 헬기는 저녁이 되어서야 반승제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성혜인은 복도 의자에 앉아 두통을 느꼈다.안에 있던 의사가 나오자 성혜인이 물었다.“어때요?”“의지가 강하셔서 내일이면 깨어날 겁니다.”성혜인은 안도했다. 그러나 또 섬에서의 광경을 떠올리니 위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자기 병실의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 구역질을 했지만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설우현이 저녁을 가져다주며 잘 먹으라고 당부했다.“구금섬에서의 일은 국제기구 사람들이 계속 조사하고 있어. 그런데 연구 기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국제 전문가들이 연구 기지를 조사하고 있다니 반승제와 둘이 고독하게 찾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번거로움을 많이 던 셈이다.“오빠, 연구 기지 위치를 알게 되면 얼른 알려주세요. 아버지의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그리고 배현우는 찾았어요?”구금섬이 폭파되던 날 밤 배현우도 섬에서 죽은 걸까?“못 찾았어. 산산조각 난 시신도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니까. 아직은 단서를 찾지 못했어.” 성혜인이 등을 뒤로 젖히자 벽의 찬 기운이 느껴졌다.설우현이 도시락을 열고 숟가락을 성혜인의 손에 쥐여주었다.“먹기 싫어도 조금이라도 먹어. 이따가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고.”어쨌든 임산부니까. 이렇게 고생하고도 아이가 멀쩡하다는 건 운이 좋다고
그는 일부러 한쪽에 놓여있던 책을 가지고 설기웅 쪽으로 부채질하며 향으로 꼬드겨보려 했다.그러나 설기웅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정직하게 앉은 채 물었다.“국제 사람들은 아직 아무 단서도 못 찾았대?”최용호가 포기하고 눈을 희번덕거렸다.“그 무리에 희망을 품지 마. 그 안에 연구기지 계획에 참여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지금 구금섬이 폭로되니까 나라마다 무고한 척하고 있잖아. 분명 내부자는 그 안에 있어. 그 작은 섬의 연구기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는데. 원주민을 가축처럼 기르고도 여태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가 보호하고 있었다는 거야.”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다.아주 오래전 생체 실험은 국제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인도주의적이지 않다며 비판했다.하지만 인체를 이용한 실험만이 데이터가 가장 정확하다.어떤 나라들은 겉으로는 잘 사는 척,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몰래 연구기지에 투자했다.일단 실험이 성공하기만 하면 연구한 것은 그들에게 큰 무기가 될 것이며 어느 정도에선 다른 나라보다 20년 이상 앞서게 될 것이니까.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아무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만 앗아갈 뿐이다.실험에 이용되는 사람들의 목숨은 그들에게 개미만도 못한 것이었다.설기웅은 양미간을 꾹꾹 누르며 두통을 느꼈다.“설, 최, 원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연구기지를 조사하고 있으니 단서가 나올 거야.”최용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거하게 차린 테이블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가 조사하기만 하면 누군가 무조건 몰래 막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연구해 낸 약이 뭔지도 몰라. 연구기지에서 잡힌 사람들은 모두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의학 천재들인걸.”설기웅이 침묵을 지켰다.한 명의 천재여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닌 수많은 천재들이 모여서 연구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이라면 분명 이름을 널리 알릴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에게 유해한 것이라면 그것은 재앙이었다.최용호가
플로리아의 어느 한 곳에서 남자가 영상을 보고 있다.영상 속에는 나하늘과 외부인들이 있다.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들을 수 없는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그는 여인에게 강한 통제욕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호란을 틈타 그녀를 곁으로 데려오려고 했었다.그러나 다른 곳에 어디 지하실이 있겠는가. 저곳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여인을 가두려고 계획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곳이었다.이만큼 뛰어난 구속 장치는 없었다.영상 속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소리는 아주 작았으며 휴대폰 문자로 의사소통을 했다.남성은 CCTV를 여유작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하늘이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통제 범위에 있는 한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오하고 고귀하던 여인이 인간 존엄까지 잃고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이 여인은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이었다.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던 그때 밖에서 손님이 찾아왔다며 노크했다.그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방을 나갔다.ㅂ층 거실에 도착한 그는 홀에 앉아 있는 진세운, 그리고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진백운을 발견했다.“무슨 바람이 불어서 둘이 함께 온 겁니까?”진세운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전에 노예찬과 정면충돌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남자 때문이었다.남성의 이름은 여석진으로, 연구기지와 관련 있는 사람이었다.BKS 조직에서 그와 이 남성은 유일하게 그곳과 관련 있는 사람이었다.여석진이 구금섬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간 연구기지에 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공하여 자리를 잡았다.두 사람 모두 연구기지의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사이가 틀어질 필요는 없었다.그러나 먼저 배신을 한 사람이 노예찬 그 녀석일 줄이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노예찬은요?”진세운의 얼굴은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하루 종일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시신이 밖에 버려졌는데 폭탄으로 시신이 훼손됐는지는 그 녀석 운에 달려 있죠.”아이가
잠든 성혜인은 꿈속에서 따뜻한 손이 자신을 잡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새벽에 자기 전, 그녀는 원래 알람을 놓고 일찍 깨려 했다.그런데 한 번 잠들고 대여섯 시간이나 자버렸다.깨어났을 때 병실 안은 이미 햇빛이 가득 비추고 있었다.반승제는 한 손으로 성혜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하는 것 같았다.그의 얼굴을 본 뒤에도 성혜인은 여전히 멍했다.손에 힘을 주고서야 정신을 차린 성혜인은 반승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다.“오늘 종합검진 해야 하지? 나랑 같이 가. 지금 배 안고파?”“승제 씨, 깼어요?”반승제는 그녀의 손을 놓고 곁에 있는 소독용 물티슈를 가져와 성혜인의 손가락을 닦아주었다.“깬 지 두 시간 됐어. 넌 좀 더 자.”그러나 성혜인은 나하늘과 설기웅의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 잠에 들 수 없었다.반승제는 깨자마자 상황을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는 손을 들어 성혜인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배현우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거야. 단서는 곧 찾을 수 있어.”그는 얼른 성혜인의 허리 뒤에 베개를 깔고 몸을 일으키도록 도왔다.성혜인은 베개에 기대니 정신이 많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그들 모두 연구 기지의 일이 가능한 한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전 세계의 사람들이 구금섬에 주목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지 못했다.오히려 언론들이 구금섬의 존재를 보도하면서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구금섬과 연결된 연구 기지는 분명 곧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반승제는 이미 성혜인을 위해 검진 항목을 예약하고 함께 하나하나 검사하려 했다.검진이 금방 끝나자 영양사가 점심을 가져왔다.배가 고팠던 성혜인은 얼른 수저를 들었고 배부를 때쯤, 장하리와 강민지가 연락하여 근황을 물었다.최근 줄곧 구금섬에 갇혀 있으면서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었기 때문에 장하리와 강민지는 걱정되어 매일 연락하여 물어보곤 했다. 이제 성혜인의 목소리를 듣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