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피한답시고 움직였다면 바로 총알에 맞았을 것이다.반승제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발밑으로 멀지 않은 곳의 해변을 제외하고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총을 쏜 사람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 힘든 것으로 보아 저격수임이 틀림없었다.게다가 한 명이 아니었다. 저격수가 많았기에 그의 위치를 정확히 겨냥할 수 있었다.이때 헬리콥터의 굉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아마 상대방이 협상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가만히 서 있는 반승제의 귀에 미스터 K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혜인은 두고 가.”미스터 K의 본심은 이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구금섬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한 것은 바로 성혜인과 반승제 두 사람을 영원히 이곳에 가두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변고가 하도 많았으므로 이제 작은 놀이 정도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다른 변고가 더 생길까 걱정되었다.그러나 그 사람은 성혜인이 살아있기를 원했으며 성혜인이 자신에게로 왔으면 했다.미스터 K가 그와 협력하기로 결정했으니 약속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성혜인이 그곳에 가면 분명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반승제는 오늘 밤 이곳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고.반승제가 죽는다는 것은 미스터 K에게도 좋은 일이었다.미스터 K는 반승제의 죽음이 목적이었으므로 헬리콥터 옆에 담담히 서 있었다.조금 전의 사격과 더불어 헬리콥터의 굉음이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반승제의 품에 안겨있는 성혜인은 바로 미스터 K의 잔꾀를 읽어냈다.“승제 씨, 당신을 두고 가려는 심산인 거예요.”“응.”반승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는 성혜인을 더 꽉 안았다.성혜인이 반승제의 품에 기댄 채 입을 열었다.“절 넘기면 승제 씨는 목숨을 잃을 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쪽에선 내가 살아있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성혜인이 주위를 훑어보며 담담히 말했다.“이 지하도의 끝은 바다예요. 승제 씨, 지금 남은 무기가 있어요?”구금섬에서 난투극이 있었으므로 무기가 없을 리가
파도가 덮쳐오자 성혜인은 무의식적으로 반승제를 꼭 끌어안았다.그러나 반승제는 그보다 먼저 품에 끌어안고 함께 파도에 말려들어 갔다.구금섬은 고립된 섬으로서 백 리 이내에 어떠한 섬도 없었으므로 쉽게 소용돌이를 일으켰다.바다에 뛰어든 지 1초 만에 성혜인은 자신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엄청난 흡입력을 느꼈다.반승제는 그녀를 힘껏 안은 채 해안으로 밀어 올리려 애썼다.10분 동안 소용돌이와의 사투가 계속되었고 성혜인은 반승제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오늘 밤 그는 내섬에서의 모든 것을 계획했고 이행하느라 충분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했고 완벽하게 설기웅과 원진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렸다.이제 미스터 K의 세력은 발이 묶였다. 두 사람이 바다에서 안전히 나오기만 하면 이번 구금섬에서의 힘들었던 여정 역시 끝나게 된다.이때 큰 파도가 덮쳐와 성혜인을 잡아 삼켰다.그러나 반승제는 여전히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혜인아!”성혜인이 잡았던 손을 놓았으나 반승제는 끝까지 마지막 힘을 다해 해안으로 밀어냈다.해안으로 올라간 성혜인이 다시 그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려 할 때, 더 세찬 파도가 용솟음치더니 반승제를 집어삼켰다.“승제 씨!”성혜인이 바다 깊은 곳으로 몇 미터 달려가자 뒤에서 누군가 재빨리 뛰어들어 그녀를 잡아당겼다.“더 들어가면 위험해.”바닷물은 검은색이었다. 멀리 내다보니 끝없는 망망대해였다.힘이 얼마 남지 않았던 성혜인은 누군가에게 갑자기 끌어당겨지자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뒤를 돌아보니 설우현이었다.설우현은 그녀를 안아 들고 얼른 해안가로 달려갔다.“설... 설우현 씨, 승제 씨가 파도에 휩쓸려 갔어요.”구금섬에서 하도 많은 일을 겪었기에 갑자기 오빠라고 부르기 어려웠다.설우현은 무전기로 누군가와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구금섬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설우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재빨리 성혜인의 귀를 막아주었다.“혜인아, 너무 걱정하지 마. 승제 씨 구하러 간
해파리 도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미스터 B와 미스터 K의 수장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해파리 도장은 열명의 장로들이 줄곧 찾던 물건이기도 했지만 노예찬이 손에 넣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손이 닿으면 따뜻하고 독특한 글자까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짝퉁이 아니라 진짜였다.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라졌던 해파리 도장이 돌아오다니.남성은 해파리 도장을 받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뭐, 벌을 달게 받고 싶다니 그렇게 해줘.”그 옛날 그 녀석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두었다면 아마 고아들 사이에서 싸우다 죽었을 것이다.노예찬은 최근 몇 년 동안 말도 잘 들었고 구금섬을 잘 관리해 왔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냉담하고 무자비한 그의 성격으로 볼 때 가장 만족스러운 후계자였다.그러나 그 후계자가 하마터면 구금섬을 파괴할 뻔했고 지금도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 밤이 지나고 섬이 여전히 존재할지조차 미지수였다.이 섬은 그 사람들이 원하던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나중에 노예찬을 찾겠다 하면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게다가 그가 같은 조직 내부 사람인 미스터 B와 미스터 K에게 손을 댄 것부터가 이미 큰일이었다.“하지만 고문이 계속되면 정말 죽을지도...”“본인 선택이야. 나한테 예비 후계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걔 아니어도 후계자 할 사람은 많아.”그의 말은 낯선 사람이 들어도 마음이 아플 만큼 차가웠다.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를 이만큼 키웠더라도 정이 들 터인데.그러나 그는 노예찬을 모르는 사람인 듯 취급했다.보고한 수하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고문실에 알렸다.또 한 번 시작된 새로운 고문은 꼬박 세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고문이 끝난 뒤 노예찬은 만신창이가 되었다.노예찬은 자리에서 일어설 힘도 없어 밖으로 기어 나갈 뿐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미터도 기어가지 못하고 맥없이 엎드렸다.고통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느낌조차 사
성혜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결국 그대로 배 벤치에 앉아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배에 오르며 설우현이 본 그녀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그가 다가가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바닷물이 차. 곧 날이 밝을 테니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와.”성혜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려던 찰나, 누군가 크게 외쳤다.“이쪽에 있습니다!”성혜인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갔다.그러나 발견한 건 사람이 아닌 옷이었다. 반승제의 옷이 물 위에서 떠다니고 있었다.고개를 드니 섬 위의 하늘과 끝없이 하늘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어젯밤의 난투극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성혜인이 시선을 거두고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자 설우현이 가로막았다.“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색하고 있어. 반승제가 바다에 있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어.”성혜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망원경을 들고 바다 곳곳을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헬리콥터도 하늘을 빙빙 돌며 수색하고 있었다. 이런 대규모 수색이니 파도에 휩쓸려 멀리 밀려났더라도 반드시 찾게 될 것이다.성혜인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혹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걸까.성혜인은 사람을 시켜 구명보트를 내리게 한 뒤 직접 내려가 반승제를 찾으려 했다.설우현은 그녀를 막지 못한 채 무전기에 성혜인을 잘 보고 있으라는 명령을 했다.성혜인은 노를 저으면서 망원경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을까 하여 열심히 살펴보았다.그녀의 눈이 멀리 있는 나무 몇 그루로 향했다. 성혜인은 망설임 없이 배를 저어 그쪽으로 향했다.그리고 나무 한가운데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확인하니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반승제는 가장 가운데 있는 나무에 엎드려 있었다. 나무가 너무 컸으므로 하늘에서 보든 육지에서 보든 확인하기 힘들었다. 커다란 나뭇잎들이 떠다녔으므로 더 그러했다.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보기조차 힘든 위치였다.성혜인은 바로 하늘의 헬기를 향해 사람을 데려오라고 손짓한 뒤 바로 바닷속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는 설우현은 마음이 아팠다. 구금섬에서 얼마나 시달린건지 몸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성혜인은 베개에 기댄 채 반승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설우현이 한숨을 내쉬었다.“원래 그 섬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어. 그런데 최근 이틀간 연속된 폭발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지. 이미 여러 나라가 그곳을 답사했는데 폭발로 극소수만 살아남게 되었고 게다가 병원까지 노출되는 바람에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어. 이미 많은 나라가 신청서를 제출해서 이 섬의 배후를 조사하려고 해. 배후는 아마 어떤 조직이거나...”설우현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씩 웃었다.“혹은 진짜 주인이 어느 한 나라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지금 언론에서 매일 보도하고 있고 단서를 찾으려고 하고 있으니 아마 범인들은 당분간 경거망동하지 않을 거야.”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반승제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안정감 있고 편하다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처음으로 가족이 곁에 있음이 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설씨 가문에 별 감정은 없었지만 설우현은 좋았다.“그, 아빠... 회장님은 어떻게 됐어요?”원래 구금섬에 들어간 목적도 해독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섬의 모든 것이 망가졌으니 이제 설의종은 어떡한단 말인가.“지금은 상태가 안정되었지만 그래도 해독제는 얼른 찾아야 해. 이건 너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섬에는 단서가 반드시 있을 거야. 설씨 가문 사람들이 계속 찾고 있기도 하고.”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내리깔았다.“오빠, 지하실에 갇힌 그 여자...”성혜인이 말을 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지하실의 구조가 아주 기이할 거예요. 아마 그분은 어떻게 해독약을 만드는 건지 아실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과 얘기해 봐요. 그분은... 우리 어머니예요.”설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대략 이런 추측을 하고 있긴 했다.병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침묵을 지키다가 양미간을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이미 많은 사람
몇 미터 뒤처진 설우현은 섬에 갇힌 여인이 나하늘이라는 사실을 설기웅에게 알렸다. 설기웅은 두 사람이 나하늘에게 간다고 하자 쉰 목소리로 당부했다.“혜인이 잘 보고 있어.”“형, 걱정 마요.”설우현은 손을 흔들며 성혜인을 뒤따라갔다.설기웅의 곁에 선 남성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정말 네 동생이라고?”두 사람 사이의 괴상한 분위기는 전혀 한 가족 같지 않았다.설기웅은 푹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지금은 동생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원가주님은 정말 섬에 있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까?”그 곁에 서 있던 남성은 바로 원진이었는데, 설씨 가문과의 이번 협력으로 인해 그도 섬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깊이 생각했다.“그렇게 큰 욕심은 없습니다.”“하지만 보호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가주님도 섬의 실험실을 봤죠? 아무도 그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가주님께서 신경 쓰는 그 사람이 마침 표적이 될지는 더더욱 모르죠. 원씨 가문이 이곳이나 플로리아나 모두 자리를 잡았으니 가주님을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가주님이 신경 쓰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게 될 겁니다. 그렇게 강하던 우리 아버지도 지금 침대에 누워 있어요. 다음으로 독살당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고요.”구금섬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내부에 남아 있는 일부 알약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약이기 때문이었다.누군가 그곳에서 줄곧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금지된 약들이 어딘가로 흘러가지는 않았을까?모두가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섬의 진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그의 말은 원진을 확실히 설득했다. 그는 돌아서 담담하게 벽에 등을 기댔다.“원씨 가문에선 여전히 지원할 것이지만 함께 따라다니진 않을 겁니다.”이 정도면 충분하다.설기웅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가주님께 보호받는 여인은 분명 행복할 겁니다.”다른 사람에게 원진
지하실에는 의사도, 공사팀 책임자도 있었다.의사는 여인의 몸을 진찰하고 있었고 공사팀 사람들은 지하실의 구조를 알아보고 있었다.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공사팀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의사만이 조금의 소득을 얻었을 뿐이다.“도련님, 낯선 사람과 말을 나눈 지 너무 오래돼서 언어 능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분명히 몸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설우현은 온몸이 굳었다. 나하늘과는 함께 있어 본 적도 없지만 역시 핏줄이라 그런지 가슴이 아팠다.“몸에 손을 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뼈가 몇 군데 제거되어 인공 기구로 교체되었습니다. 시간이 오래되어 인공 기구가 이미 뼈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인공기구의 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소리를 전달하거나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일 겁니다. 안에 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참 앞선 기술이라 저 같은 의사 한 명으로 검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국가의 기계를 사용하더라도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뼈가 몇 군데나 적출되었다니, 얼마나 아팠을까.성혜인은 벌써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른 나하늘의 곁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러나 나하늘은 거부감을 느껴 성혜인을 박차며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 온몸을 움츠렸다.지난번 반승제의 사람들이 데리고 떠나려 했을 때 역시 이런 반응이었다.이렇게 오랫동안 갇혀있었다면 원래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걸까.의사는 수첩에 빼곡히 기록하며 안경을 올려 썼다.설씨 가문이 청한 의사는 모두 엘리트라 불리는 의사들이었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지하실로 오는 모든 사람들이 업계 최고의 엘리트였다.“도련님, 이분은 PTSD를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일종의 정신 장애인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여인은 성혜인의 손을 뿌리쳐버리고 뒤로 움츠러들었다.그녀는 줄곧 조용했다. 그녀는 마치 연약하고 아름다운, 날개가
무슨 신념?성혜인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며 의사의 이러한 말들을 듣고는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성혜인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물었다.“그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죠?”나하늘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었다. 그녀는 살이 닿기만 해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게다가 말도 듣지 못했다.의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그건 저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공사팀이 지하실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지 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감시당하고 있을 거예요.”그가 주위를 가리키자 성혜인이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전기를 끊으면 안 되나요?”공사팀의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섬의 모든 곳은 전기를 끊을 수 있지만 이곳만 유일하게 전기 회로가 단독 회로입니다. 메인 스위치는 견고한 철제 케이스에 있습니다. 총과 폭탄으로 시험해 보았지만 모두 부서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람과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일으킵니다.”성혜인은 점점 초조해졌다.이때 벽에 기댄 나하늘은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이에 따라 온몸이 땀투성이였다.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와 걸으려 하자 발목을 감은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소리가 지하실을 메아리쳤다.침대에 앉아 있는 성혜인은 큰 무기력함을 느꼈다.특히나 나하늘이 능숙하게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지하실을 샅샅이 뒤지며 도망치려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고 말도 안 될 정도로 흰 피부를 보면 몇 년째 이곳에 갇혀있은 것이 더 잘 느껴졌다.공사팀은 주변을 계속 탐사했고 의사는 종이에 기록된 정보를 되짚고 있었다.몇 분 동안 조용하더니 화장실 문이 열리고 나하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녀와 닿지 않는 한, 나하늘은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성혜인이 또 물었다.“점자는 시도해 보셨어요? 간단한 몇 글자는 알 것 같은데요.”“이미 모두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얼 하든 전혀 협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