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만지는 것을 느낀 성혜인의 미간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배현우가 몸 어딘가에 주사를 놓았는지 그녀는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노예찬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성혜인 씨, 그거 알아? 배현우랑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거.”성혜인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배현우는 미친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고 있는 그녀와 결혼이라니.이 남자는 누구이며 어디서 이런 소리를 들은 걸까?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말을 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노예찬의 미간이 좁아졌다.이런 의학적인 부분에 재능이 없는 노예찬은 성혜인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배현우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아닌 거야? 아닌 거면 눈을 깜빡여.”성혜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눈을 연거푸 스무 번 정도 깜빡였다.성혜인은 지금의 배현우가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였다.대답을 들은 노예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문밖을 지키고 있던 연태광은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장로님, 마침 잘 오셨네요. 경사에 참여하게 되셨으니.”노예찬은 이유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강요당한 사람이 다른 여인이었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왜 성혜인은 다를까.그는 연태광을 상대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의자에 앉았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연씨 집안 하인들이 결혼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둘 준비하는 것 같았다. 배현우라는 인간은 정말 한시도 기다릴 수 없는 듯했다. 노예찬은 반승제가 오늘 밤 무슨 일을 저지를 지 궁금해졌다.배현우와 결혼하는 이가 성혜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까?가만히 앉아 기다리기 힘들었던 노예찬은 아예 잠을 자버릴 심산으로 침대에 누워버렸다.한밤중에 노예찬은 K의 무리가 많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을 부하로부터 전달받았다
문 주변은 이제 한 무리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찬의 부하들과 연씨 집안 사람들이었다. 연태광은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지금 나선다면 노예찬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꼴이 될 테고 노예찬은 당장이라도 그를 눌러버릴 수 있었다.연씨 집안에서 나선 이들은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노예찬이 일이 끝난 뒤 추궁하더라도 연태광은 그들이 배현우의 사주를 받고 행동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앞으로 나서서 자신을 나타내지만 않는다면 연태광은 언제든 이 일에서 몸을 뺄 수 있었다. 배현우의 뒤에 서 있는 연씨 집안 사람들을 본 노예찬의 입가에 냉소가 감돌았다.“뭐 하자는 거지?”그의 옆에는 방금 발사된 총에 맞은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오늘 밤의 내섬은 필시 조용하긴 글렀다. 배현우가 망설임도 없이 손을 흔들었다.“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처리해.”그는 오늘 밤 내섬을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배현우는 미친놈 그 자체였다. 노예찬은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난 그때 양측의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서로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곧바로 20여 명이 땅에 쓰러졌다. 모두 큰 상처를 입거나 죽어버렸다.노예찬은 이미 몸을 숨겨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찾아 숨었었다.문 앞에 있는 기둥에 몸을 기댄 배현우는 공기 중에 피어난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그의 눈에 냉기가 차올랐다.배현우가 열쇠를 들어 성혜인이 있는 방문을 열었다. 모든 소음을 문밖에 차단한 채 곧장 성혜인이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여전히 움직일 수조차 없는 성혜인은 그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녀를 안아 든 배현우가 많은 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땅이 순식간에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존재했던 모양이었다.성혜인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배현우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그 장로라는 사람과 반승제, 둘 다 오늘 밤 연씨 집안에서 살아 나가선 안 돼요. 연가주님, 저한
오늘 밤, 모든 것이 혼란으로 뒤덮여 있었다. 성혜인은 도무지 배현우의 생각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은 배현우가 한 짓이 틀림없었다. 반승우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이 폭발물들은 틀림없이 누군가를 통해 사들인 것이 아니라 배현우가 직접 제조한 것이다. 폭탄 제조는 그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반승우는 이쪽 분야에서는 천재이기 때문이다.피비린내를 맡은 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폭발음 속에는 기괴한 통곡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배현우의 이런 수법은 누구에게도 살길을 주지 않았다. 연씨 가문에도 예외는 없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독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러 너무나 괴로웠다.배현우는 한 손으로는 그녀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천을 찢어내 피가 나오는 곳을 감싸고 있었다.“배현우, 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거야?”왜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걸까. 만약 이곳을 떠나고 싶은 거라면 반승제와 손잡으면 가능했을 일이었다. 애초에 세 사람이 함께 들어왔으니. 굳이 수고롭게 많은 일을 설계하고 폭발물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배현우는 반승제를 죽음으로 내몰고, K의 무리를 죽이고, 구금섬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그 틈을 타서 이 섬을 벗어나려 했을까? 왜 그녀를 데리고 가려는 걸까.만약 성혜인을 포기했다면 그는 이미 안전한 곳으로 도피 했을 것이다“입 닥쳐!”배현우는 다시 일어나 그녀를 안고 걸어 나갔다. 하지만 주변의 먼지가 너무 짙어 그가 기침을 몇 번 했을 때, 갑자기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를 내게 넘겨.”반승제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은 배현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오늘 밤 연씨 가문에 있어야 했다. 그곳은 폭탄의 수가 가장 많아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을까?먼지가 조금씩 걷히자, 눈앞에 있는 사람의 정체가 똑똑히 보였다. 확실히 그는 반승제였다.
배현우는 정말 놓기 싫었다. 그의 시선이 반승제로부터 성혜인에게 옮겨갔다. 얼마 후, 그는 차갑게 웃었다.“성혜인의 몸에 있는 그 주삿바늘들, 내가 빼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할 거야. 아니면 연구기지에 있는 사람들한테 찾아가서 도움이라도 구해볼래. 악마로 가득 차 있는 그 속에서 널 도와줄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지 혹시 알아?”반승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성혜인을 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에게 제압당해 있던 배현우가 별안간 소리쳤다.“반승제!”반승제의 걸음이 멈췄다. 배현우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배현우는 머리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왜...”“왜 좋은 건 항상 너의 차지야. 너만.”반승제는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끌고 따라와.”“예.”이들은 구지한 한테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에 타려던 순간, 반승제는 불빛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소위 신비한 장로로 받들리던 그 인물, 노예찬이었다.당시 반승제가 찻물로 테이블 위에 쓴 글자는 바로 ‘협력’이었다. 사실 그도 노예찬이 수락할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다행인 것은 그가 내섬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반승제도 바보가 아니었다. 노예찬이 항상 자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가 도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누구를 도왔던 걸까?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이득을 보는 쪽은 항상 자신이었다.그는 성혜인을 더욱 껴안은 채 불빛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노예찬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배현우의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구금섬의 진정한 주인은 노예찬이었다.아무리 배현우가 치밀하게 계획했을지라도 내섬의 모든 사람이 노예찬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리 대 가문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그를 따랐다.어떤 방식으로 그가 구금섬의 주인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섰으며, 이 사람들이 이토록 그에게 순종적인 이유가 무엇일까.노예찬은 마음만
달리고 있는 차 주변엔 온통 불꽃과 통곡 소리로 가득했다. 배현우 한 사람으로 인해 내섬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반승제의 품에 기댄 성혜인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느끼자, 눈가가 시려왔다. 그는 묵묵히 그녀를 안은 채 오랫동안 그녀의 등을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구지한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 구지한은 정원에 서서 멀리 보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승제가 무사히 살아 돌아올 줄 몰랐던 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몇 걸음 다가온 그가 반승제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반승제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자 구지한의 시선도 그를 따라 위로 향했다. 하늘에는 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보낸 헬기인지 알 수 없었다.“구지한, 얼른 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구지한은 급히 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내섬이 혼란에 휩싸여 외섬으로 통하는 길은 한적했다. 반승제는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섬에 배치해 둔 장애물들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장벽들이 하나둘 산산조각나 버렸다.중섬과 내섬에 들어오고 싶어 했던 이들이 하나둘 파괴된 장애물을 넘어 밀려들기 시작했다.외섬에 있는 이들은 중섬으로, 중섬에 있는 이들은 내섬으로 몰려들었다. 조용했던 길엔 갑자기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안쪽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마치 세계 종말이라도 온 듯했다.창가에 앉은 구지한이 필사적으로 안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이렇게나 상반된 욕망이라니. 내섬 밖의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내섬 안의 사람들은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다니.”말을 마치고 그는 눈을 감았다.차는 성남 정신병원에서 멈췄다. 누군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안쪽으로 안내했다.문이 열리자 안쪽에는 열 몇 명의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이들이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반승제 씨, 이들이 바로 도망치려던 의사들입니다.”“제가 찾아 달라고 했던 사람은요?”“지하실에 있습니다.”여전히 성혜인을 품에 안은
다가간 반승제가 나하늘의 발목에서 반짝이는 빨간 불빛을 발견했다. 발목에 있는 그 무언가를 잡아당기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하늘, 또 도망가려고?”“어떻게 명령을 어기고 또 도망칠 생각을 해?”“다리라도 부러뜨려놔야 정신을 차리겠어?”남자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분명 온화한 말투였으나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나하늘은 이젠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발목에 묶인 쇠사슬에서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목에서 그것을 뜯어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꺼져!”“꺼져버려!”그녀의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발목에 채워진 그 물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눈도 멀고 귀도 멀게 했는데, 이젠 말도 못 하게 만들어줄까?”“또 문에 가까이 가 봐. 계속 감전될 테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반승제는 그제야 이 지하실은 결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외부의 모든 신호를 차단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스위치도 있었다.나하늘의 위치가 문에 가까워짐을 감지하면 전류가 흘러나왔다. 그녀를 부축하던 두 남자도 함께 이 전류에 당해버렸다. 감전이 익숙해져 버린 나하늘이 도망치려 한 적은 아마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난감한 것은 지금의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소식을 전할지였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끌어가려는 이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반승제는 얼굴을 구기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발목에 있는 물건을 해체할 방법은 없어?”“대표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우리도 수없이 시도해 봤지만, 재질이 워낙 단단한지라 해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다리를 자르지 않는 한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반승제가 손을 들어 자신의 미간을 문질렀다.“혹시 문 쪽에 센서가 있는지 확인해 봐. 있다면 파괴해 버려.
성혜인은 현재 상황을 알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제 어떡하지? 엄마를 겨우 찾았는데 계속 이 어둡고 추운 지하실에 내버려둬야 하는 거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도대체 누가!’입술을 감쳐문 성혜인은 눈가에 살기가 번뜩였다. 이토록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혜인아...”반승제는 성혜인을 품에 안은 채 무력감만 느꼈다. 모든 것을 예측했지만 나하늘이 갇혀 있는 곳이 이렇게 견고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밖에서는 여전히 총소리가 들려왔고 반승제는 성혜인을 안아 들었다. 성혜인은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미안하지만 일단 좀 자고 있어.”반승제는 손을 들고 성혜인의 목덜미를 쳤다. 성혜인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곧 기절했다.그들 뒤에서 나하늘은 여전히 문 안에 앉아 있었다. 아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말이다.반승제는 다른 사람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전에 나하늘을 보살폈던 농인 데리고 와서 계속 돌봐달라고 해.”“네.”K의 부하들이 이미 들이닥쳤기 때문에 반승제는 먼저 성혜인을 데리고 떠나야 했다.반승제는 성혜인을 안고 밖으로 걸어갔다.나하늘은 조용한 지하실에 앉아 있었고 옆에 있던 전류에 감전되어 기절한 두 사람은 이미 끌려 나갔다.이 공간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나하늘에게 지하실은 늘 조용한 공간이었다. 마치 세상에 자신만 남은 것처럼 말이다.지하실의 견고한 벽 안에는 천 개가 넘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마치 천여 개의 눈이 나하늘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지하실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나하늘은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려는 것도 모르고 자신이 늘 그리워 마지않던 딸이 이미 여기로 왔었던 사실도 몰랐다.반승제는 성혜인을 안고 지하실에서 나오자마자 총소리를 들었다. 반승제의 부하들도 총을 들고 반격하고 있었다.차가 있는 곳으로 가자 배현우는 이미 깨어나 눈을 뜬 채 반승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그것을 모습을 본 반승
배현우는 그것을 보고 더욱 우쭐해져서 손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 단검을 천천히 밀어냈다.“만약 손을 못 대겠으면 나랑 여기 남아 있어야 할 거야. 아참, 성혜인 임신했어. 참 불쌍하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없을 테니 말이야. 아니면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지?”마지막 세글자를 말할 때 배현우의 눈빛에는 도발의 기색이 가득했다.반승제는 배현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배현우가 갑자기 왜 이렇게 광기를 부르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K와 거래했는데 K가 어떻게 그를 그냥 놓아주겠는가?게다가 K가 추적기를 사용해 위치를 알아내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부으면 배현우 본인도 죽게 될 것이다.그렇게 목숨을 아끼던 사람이, 그렇게 반승우를 완전히 몰아내고 이 몸을 독점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을까?반승제가 날린 주먹에 맞자 배현우의 광대뼈가 부어올랐다. 배현우는 아픔을 느꼈지만 그냥 혀끝으로 볼 안쪽을 핥을 뿐이었다.반승제는 배현우의 옷깃을 다시 움켜쥐고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배현우, 너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성혜인을 원하는 건가?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는 것인데 성혜인에 대한 배현우의 마음은 순수하게 사랑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배현우가 성혜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분명 복잡하고 고민이 많아 보였다.배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긴 머리카락이 내려와 눈을 약간 가려서 매우 우울해 보였다. 반승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배현우를 놓아주었다.서둘러 설기웅과 원진을 만나러 가야 했다. 이 두 세력이 지원해 주면 반승제가 구금섬를 떠난 뒤에도 무사할 것이다.하지만 배현우의 몸에 부착된 추적기가 골칫거리였다. 그 추적기 때문에 K는 언제든지 무차별적인 폭탄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다.차가 몇 분 동안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앞에 많은 양의 자동차가 나타났다.반승제는 성혜인을 품에 안고 다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배현우와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