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원래 외부에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위험부담이 너무나 컸다.하지만 노예찬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데 도움을 준 것을 보고는 즉시 마음을 바꿨다.이제 그의 사람들이 섬에 들어왔으니 그 이후의 일은 더욱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저녁 식탁에 앉은 두 사람은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가정부가 쉴 수 있도록 각자의 방으로 안내하기 전까지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연태광과 구창모는 노예찬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노예찬은 피곤하다며 자리를 떠났다.반승제는 성혜인의 방 문 앞을 지나가면서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창문이 강화되어 있고 커튼이 완전히 쳐져 있어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는 잠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있었다. 밖에서 꽹과리와 장구, 북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윽고 누군가 방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가정부가 송편을 담은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곧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테니, 가주님께서 송편을 드시라고 합니다.”“무슨 경사스러운 일인데요?”“배현우 씨가 결혼합니다.”배현우가 결혼한다니. 대체 누구랑? 연씨 가문 또래의 여성과 결혼하는 걸까? 하지만 배현우의 성격상 자신의 평생이 걸린 일을 이런 섬에서 한다고?머릿속에서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배현우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배현우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배현우가 성혜인에게 결혼을 강요하지는 않을 터였다.성혜인이 임신한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으며 배현우 처럼 오만한 사람이 다른 남자 아이의 아버지가 되려고 하지 않을 거니까.반승제는 손에 든 송편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반면 노예찬의 경호원은 가정부가 들고 온 송편을 바로 거절했다. 노예찬은 송편은 보지도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잠긴 방의 문밖에 와 있었다. 그는 옆에 있던 연씨 가문의 경호원에게 물었다.“여기 누가 갇혀 있지?”“배현우 씨의 애인인데, 정신에 문제가 생겨서 가
누군가가 만지는 것을 느낀 성혜인의 미간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배현우가 몸 어딘가에 주사를 놓았는지 그녀는 의식은 있었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노예찬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성혜인 씨, 그거 알아? 배현우랑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거.”성혜인의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배현우는 미친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고 있는 그녀와 결혼이라니.이 남자는 누구이며 어디서 이런 소리를 들은 걸까?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말을 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노예찬의 미간이 좁아졌다.이런 의학적인 부분에 재능이 없는 노예찬은 성혜인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배현우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아닌 거야? 아닌 거면 눈을 깜빡여.”성혜인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눈을 연거푸 스무 번 정도 깜빡였다.성혜인은 지금의 배현우가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였다.대답을 들은 노예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문밖을 지키고 있던 연태광은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장로님, 마침 잘 오셨네요. 경사에 참여하게 되셨으니.”노예찬은 이유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강요당한 사람이 다른 여인이었다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왜 성혜인은 다를까.그는 연태광을 상대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의자에 앉았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연씨 집안 하인들이 결혼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둘 준비하는 것 같았다. 배현우라는 인간은 정말 한시도 기다릴 수 없는 듯했다. 노예찬은 반승제가 오늘 밤 무슨 일을 저지를 지 궁금해졌다.배현우와 결혼하는 이가 성혜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까?가만히 앉아 기다리기 힘들었던 노예찬은 아예 잠을 자버릴 심산으로 침대에 누워버렸다.한밤중에 노예찬은 K의 무리가 많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을 부하로부터 전달받았다
문 주변은 이제 한 무리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찬의 부하들과 연씨 집안 사람들이었다. 연태광은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지금 나선다면 노예찬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꼴이 될 테고 노예찬은 당장이라도 그를 눌러버릴 수 있었다.연씨 집안에서 나선 이들은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노예찬이 일이 끝난 뒤 추궁하더라도 연태광은 그들이 배현우의 사주를 받고 행동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앞으로 나서서 자신을 나타내지만 않는다면 연태광은 언제든 이 일에서 몸을 뺄 수 있었다. 배현우의 뒤에 서 있는 연씨 집안 사람들을 본 노예찬의 입가에 냉소가 감돌았다.“뭐 하자는 거지?”그의 옆에는 방금 발사된 총에 맞은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오늘 밤의 내섬은 필시 조용하긴 글렀다. 배현우가 망설임도 없이 손을 흔들었다.“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처리해.”그는 오늘 밤 내섬을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배현우는 미친놈 그 자체였다. 노예찬은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난 그때 양측의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서로의 거리가 가까운 탓에 곧바로 20여 명이 땅에 쓰러졌다. 모두 큰 상처를 입거나 죽어버렸다.노예찬은 이미 몸을 숨겨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찾아 숨었었다.문 앞에 있는 기둥에 몸을 기댄 배현우는 공기 중에 피어난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그의 눈에 냉기가 차올랐다.배현우가 열쇠를 들어 성혜인이 있는 방문을 열었다. 모든 소음을 문밖에 차단한 채 곧장 성혜인이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여전히 움직일 수조차 없는 성혜인은 그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녀를 안아 든 배현우가 많은 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땅이 순식간에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존재했던 모양이었다.성혜인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배현우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그 장로라는 사람과 반승제, 둘 다 오늘 밤 연씨 집안에서 살아 나가선 안 돼요. 연가주님, 저한
오늘 밤, 모든 것이 혼란으로 뒤덮여 있었다. 성혜인은 도무지 배현우의 생각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은 배현우가 한 짓이 틀림없었다. 반승우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이 폭발물들은 틀림없이 누군가를 통해 사들인 것이 아니라 배현우가 직접 제조한 것이다. 폭탄 제조는 그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반승우는 이쪽 분야에서는 천재이기 때문이다.피비린내를 맡은 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폭발음 속에는 기괴한 통곡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배현우의 이런 수법은 누구에게도 살길을 주지 않았다. 연씨 가문에도 예외는 없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독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러 너무나 괴로웠다.배현우는 한 손으로는 그녀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천을 찢어내 피가 나오는 곳을 감싸고 있었다.“배현우, 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거야?”왜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걸까. 만약 이곳을 떠나고 싶은 거라면 반승제와 손잡으면 가능했을 일이었다. 애초에 세 사람이 함께 들어왔으니. 굳이 수고롭게 많은 일을 설계하고 폭발물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배현우는 반승제를 죽음으로 내몰고, K의 무리를 죽이고, 구금섬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그 틈을 타서 이 섬을 벗어나려 했을까? 왜 그녀를 데리고 가려는 걸까.만약 성혜인을 포기했다면 그는 이미 안전한 곳으로 도피 했을 것이다“입 닥쳐!”배현우는 다시 일어나 그녀를 안고 걸어 나갔다. 하지만 주변의 먼지가 너무 짙어 그가 기침을 몇 번 했을 때, 갑자기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를 내게 넘겨.”반승제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은 배현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오늘 밤 연씨 가문에 있어야 했다. 그곳은 폭탄의 수가 가장 많아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을까?먼지가 조금씩 걷히자, 눈앞에 있는 사람의 정체가 똑똑히 보였다. 확실히 그는 반승제였다.
배현우는 정말 놓기 싫었다. 그의 시선이 반승제로부터 성혜인에게 옮겨갔다. 얼마 후, 그는 차갑게 웃었다.“성혜인의 몸에 있는 그 주삿바늘들, 내가 빼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할 거야. 아니면 연구기지에 있는 사람들한테 찾아가서 도움이라도 구해볼래. 악마로 가득 차 있는 그 속에서 널 도와줄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지 혹시 알아?”반승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성혜인을 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에게 제압당해 있던 배현우가 별안간 소리쳤다.“반승제!”반승제의 걸음이 멈췄다. 배현우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배현우는 머리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왜...”“왜 좋은 건 항상 너의 차지야. 너만.”반승제는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끌고 따라와.”“예.”이들은 구지한 한테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에 타려던 순간, 반승제는 불빛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소위 신비한 장로로 받들리던 그 인물, 노예찬이었다.당시 반승제가 찻물로 테이블 위에 쓴 글자는 바로 ‘협력’이었다. 사실 그도 노예찬이 수락할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다행인 것은 그가 내섬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반승제도 바보가 아니었다. 노예찬이 항상 자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가 도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누구를 도왔던 걸까?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이득을 보는 쪽은 항상 자신이었다.그는 성혜인을 더욱 껴안은 채 불빛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노예찬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배현우의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구금섬의 진정한 주인은 노예찬이었다.아무리 배현우가 치밀하게 계획했을지라도 내섬의 모든 사람이 노예찬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리 대 가문에 속한 사람일지라도 그를 따랐다.어떤 방식으로 그가 구금섬의 주인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섰으며, 이 사람들이 이토록 그에게 순종적인 이유가 무엇일까.노예찬은 마음만
달리고 있는 차 주변엔 온통 불꽃과 통곡 소리로 가득했다. 배현우 한 사람으로 인해 내섬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반승제의 품에 기댄 성혜인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느끼자, 눈가가 시려왔다. 그는 묵묵히 그녀를 안은 채 오랫동안 그녀의 등을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구지한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 구지한은 정원에 서서 멀리 보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승제가 무사히 살아 돌아올 줄 몰랐던 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몇 걸음 다가온 그가 반승제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반승제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자 구지한의 시선도 그를 따라 위로 향했다. 하늘에는 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누가 보낸 헬기인지 알 수 없었다.“구지한, 얼른 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구지한은 급히 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내섬이 혼란에 휩싸여 외섬으로 통하는 길은 한적했다. 반승제는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섬에 배치해 둔 장애물들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장벽들이 하나둘 산산조각나 버렸다.중섬과 내섬에 들어오고 싶어 했던 이들이 하나둘 파괴된 장애물을 넘어 밀려들기 시작했다.외섬에 있는 이들은 중섬으로, 중섬에 있는 이들은 내섬으로 몰려들었다. 조용했던 길엔 갑자기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안쪽으로 돌진하는 모습은 마치 세계 종말이라도 온 듯했다.창가에 앉은 구지한이 필사적으로 안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이렇게나 상반된 욕망이라니. 내섬 밖의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내섬 안의 사람들은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다니.”말을 마치고 그는 눈을 감았다.차는 성남 정신병원에서 멈췄다. 누군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안쪽으로 안내했다.문이 열리자 안쪽에는 열 몇 명의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이들이 묶인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반승제 씨, 이들이 바로 도망치려던 의사들입니다.”“제가 찾아 달라고 했던 사람은요?”“지하실에 있습니다.”여전히 성혜인을 품에 안은
다가간 반승제가 나하늘의 발목에서 반짝이는 빨간 불빛을 발견했다. 발목에 있는 그 무언가를 잡아당기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하늘, 또 도망가려고?”“어떻게 명령을 어기고 또 도망칠 생각을 해?”“다리라도 부러뜨려놔야 정신을 차리겠어?”남자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분명 온화한 말투였으나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나하늘은 이젠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발목에 묶인 쇠사슬에서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목에서 그것을 뜯어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꺼져!”“꺼져버려!”그녀의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발목에 채워진 그 물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눈도 멀고 귀도 멀게 했는데, 이젠 말도 못 하게 만들어줄까?”“또 문에 가까이 가 봐. 계속 감전될 테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반승제는 그제야 이 지하실은 결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외부의 모든 신호를 차단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스위치도 있었다.나하늘의 위치가 문에 가까워짐을 감지하면 전류가 흘러나왔다. 그녀를 부축하던 두 남자도 함께 이 전류에 당해버렸다. 감전이 익숙해져 버린 나하늘이 도망치려 한 적은 아마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난감한 것은 지금의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소식을 전할지였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끌어가려는 이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욱 최악인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반승제는 얼굴을 구기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발목에 있는 물건을 해체할 방법은 없어?”“대표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우리도 수없이 시도해 봤지만, 재질이 워낙 단단한지라 해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다리를 자르지 않는 한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반승제가 손을 들어 자신의 미간을 문질렀다.“혹시 문 쪽에 센서가 있는지 확인해 봐. 있다면 파괴해 버려.
성혜인은 현재 상황을 알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제 어떡하지? 엄마를 겨우 찾았는데 계속 이 어둡고 추운 지하실에 내버려둬야 하는 거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도대체 누가!’입술을 감쳐문 성혜인은 눈가에 살기가 번뜩였다. 이토록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혜인아...”반승제는 성혜인을 품에 안은 채 무력감만 느꼈다. 모든 것을 예측했지만 나하늘이 갇혀 있는 곳이 이렇게 견고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밖에서는 여전히 총소리가 들려왔고 반승제는 성혜인을 안아 들었다. 성혜인은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미안하지만 일단 좀 자고 있어.”반승제는 손을 들고 성혜인의 목덜미를 쳤다. 성혜인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곧 기절했다.그들 뒤에서 나하늘은 여전히 문 안에 앉아 있었다. 아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말이다.반승제는 다른 사람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전에 나하늘을 보살폈던 농인 데리고 와서 계속 돌봐달라고 해.”“네.”K의 부하들이 이미 들이닥쳤기 때문에 반승제는 먼저 성혜인을 데리고 떠나야 했다.반승제는 성혜인을 안고 밖으로 걸어갔다.나하늘은 조용한 지하실에 앉아 있었고 옆에 있던 전류에 감전되어 기절한 두 사람은 이미 끌려 나갔다.이 공간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나하늘에게 지하실은 늘 조용한 공간이었다. 마치 세상에 자신만 남은 것처럼 말이다.지하실의 견고한 벽 안에는 천 개가 넘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마치 천여 개의 눈이 나하늘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지하실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나하늘은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려는 것도 모르고 자신이 늘 그리워 마지않던 딸이 이미 여기로 왔었던 사실도 몰랐다.반승제는 성혜인을 안고 지하실에서 나오자마자 총소리를 들었다. 반승제의 부하들도 총을 들고 반격하고 있었다.차가 있는 곳으로 가자 배현우는 이미 깨어나 눈을 뜬 채 반승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그것을 모습을 본 반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