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습니다. 최면을 건 그 사람보다 더 대단한 최면술사를 찾는 것밖에는요. 지하 격투장에서 오랜 시간 몸을 담갔지만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인상 깊었던 최면술사는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혜인 씨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아마 전 세계 탑 5위안에 드는 실력을 가졌을 겁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일찍이 나라에 편입되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접근할 수조차 없을 겁니다.”반승제는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알겠어요.”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반승제는 문을 열고 성혜인의 곁으로 다가갔다.그 시각 잃어버린 핸드폰 때문에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성혜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혜인아, 우리 영화 보러 갈까?”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반승제는 그녀를 품에 안고 넓은 거실로 걸어갔다.소파에 앉은 성혜인은 환경이 주는 위압감에 불편함을 느꼈다.“보고 싶은 영화 있어?”성혜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반승제가 좋아하는 걸 보려고 했지만, 그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몰랐고 나아가 두 사람이 영화를 봤던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영화는... 보고 싶지 않아요.”“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모르겠어요.”그녀는 정말로 몰랐다. 마치 혼돈의 방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자아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그럼 놀러 가자.”반승제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혔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가면을 쓴 수많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고 극소수만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성혜인은 무의식적으로 반승제에게 바짝 붙은 채로 걷다가 어느새 긴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귓가에 들리는 건 사람들의 열띤 토론과 주사위를 던지는 소리뿐이었다.그녀는 반승제의 다리에 앉게 되었고, 그의 맞은편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칩이 놓여있었다.“혜인아, 예전에 제원에서 텍사스 홀덤 했었는데 기억나?”“기억나요.”당시 놀이꾼이었던 반승제는 성혜인이 자신의 아내인 줄 모르고 있었다.“진
반승제의 품에 안긴 채로 잠이 든 성혜인은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이때 문을 지키던 경호원이 다가왔다.“대표님, 혜인 씨 핸드폰 수리 완료됐습니다.”반승제는 핸드폰은 손에 쥐고선 생각에 잠겼다.“혜인 씨의 핸드폰에는 모든 정보를 삭제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고, 해커를 동원했지만 데이터를 복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삭제하고 나니 그저 평범한 핸드폰이 되었습니다.”“그래.”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반승제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사람을 시켜 배현우를 데려왔다.배현우는 기억을 찾겠다는 핑계로 최근까지 7층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었다.이렇게 넓은 아량을 베풀었는데도 아무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방으로 들어온 배현우는 그의 곁에 있는 성혜인을 보고선 눈썹을 치켜올렸다.반승제는 소파에 앉아 차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기억나는 게 있어?”배현우가 자연스레 그의 곁에 앉자 반승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야, 내가 지금 너랑 장난하는 것 같냐? 놀러 왔어?”그 시각 배현우의 시선은 성혜인을 향해 있었다.“혜인이한테 무슨 일 있는 거야?”반승제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묻는 거야? 아니면 우리 형?”배현우는 혼란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렇게 서로 대치한 상태로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반승제가 입을 열었다.“최면에 걸렸어. 날 잊은 건 아니지만 예전 같지 않아.”배현우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반승제가 얼마나 난폭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어 성혜인으로부터 1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최면?”반승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답했으나 그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약물 섭취하게끔 유도하면서 동시에 최면을 걸었어. 그 인간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지.”배현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반승우가 깨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번 성혜
반승제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며 성혜인을 품에 안았다.배현우가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도 성혜인은 잠에서 깨기는커녕 그의 품을 비비적거리며 더 파고들어 가 색색거렸다.배현우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다친 손을 거들먹거리며 다그쳤다.“반승제, 너 정말 더 안 물을 거야? 네 형 성혜인을 포기한 게 아니라 분명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혜인을 볼 때마다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나까지 느껴지는데 지금 그런 남자를 옆에 두겠다는 거야? 심지어 반승우는 성혜인의 첫사랑인데? 내가 너였다면 반승우가 사라지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거야. 너랑 나는 지금 한배를 탄 거라고!”그의 말을 줄곧 무시하던 반승제가 점점 높아지는 그의 언성에 성혜인이 깰까 봐 화가 났다.그가 고개를 홱 돌려 배현우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 투덜거렸다.“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하지만 배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구에 대기하던 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끌고 나갔다.안타깝게도 시끄러운 소리에 성혜인은 이미 깬 상태였다. 밖을 내다보니 또 오후다.성혜인을 진세운에게 데려가겠노라 약속했기 때문에 성혜인은 기분이 나쁘지도, 반승제에게 거부감이 생기지도 않았다.시간이 조금 지나 저녁이 되었을 무렵, 반승제는 옥상에서 불꽃 쇼를 준비했다.만찬과 함께 테이블 위를 장식하는 여러 대의 촛불은 옥상을 분위기 있게 했다.불꽃놀이는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고, 성혜인은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불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다.턱을 괴고 불꽃놀이를 다 구경하고 나니 또 잠이 몰려왔다.반승제가 그녀의 손을 매너 있게 들어 올렸고 곧이어 네번 째 손가락에 무언가를 끼워주었다.반지였다.성혜인은 어리둥절한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반승제는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그저 성대한 불꽃놀이가 막을 내릴 때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었을 뿐.성혜인은 반지를 빼내고 싶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기쁜 감정이 들었다.“저
그리고 나서는?뭐야? 아무 말도 안 해?성혜인은 그가 붙잡거나 다른 어필을 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 달리 반승제는 아무 말 없었다.그저 “그래”라는 두 글자뿐. 그는 반지 두 개를 낀 손으로 턱을 괴고 조용히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성혜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왜 화가 난 건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심지어 억울한 감정까지 생겼다.이러면 안 되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성혜인은 포크로 접시 위에 놓인 스테이크를 있는 힘껏 푹 찔렀다. 얼굴빛은 얼음장같이 차갑다.반승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 입맛이 없어?”“내버려둬요.”이 한마디를 내뱉은 그녀는 미간을 찡그린 채 스테이크를 우걱우걱 먹었다.“그래.”가볍게 대답한 그가 성혜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성혜인은 무언가에 짜증 버튼이 눌린 듯 벌떡 실어나 식탁보를 휙 잡아끌었다.테이블 위의 스테이크, 와인, 양초가 쨍그랑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그 소리에 문득 성혜인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그제야 자각한 듯 했다.그녀는 반승제를 한 번 힐끗 보더니 7층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혼자서 샤워하고 머리를 말렸다.새벽 두 시까지 침대에서 뒤척였지만 반승제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또 짜증이 치밀어오른 성혜인은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반승제를 찾아다녔다.결국 그를 발견한 곳은 베란다. 반승제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여러 대나 쌓여 있었다. 그는 팔꿈치를 난간에 걸친 채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손에 든 담배는 불이 꺼져있었다.뒤에 서서 1분 동안 보고 나서야 성혜인은 그를 향해 다가갔다.“왜 아직도 안 자?”“잠이 안 와서요.”성혜인은 반지가 두 개나 끼워져 있는 그의 왼손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안 받은 반지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줄 거죠?”반승제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아마도.”또 한 번 짜증이 치밀어오른 성혜인은 속이 너무 답답했다. 그러나 요즘 머릿속이
반지를 손에 넣으니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침대에 누운 성혜인은 반지를 보고 또 보았다.여전히 설레는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마음 편히 잠에 들 수 있다.성혜인은 쉴 새 없이 뒤척였다. 오른쪽으로 누워 반지를 한 번, 왼쪽으로 누워 반지를 또 한 번 바라보았다.반승제가 방으로 들어오며 반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성혜인을 발견했다.그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깨끗이 없앤 뒤였다.침대에 누운 뒤 반승제는 한 손으로 성혜인을 안아 침대에서 뒹굴지 못하도록 했다.“늦었으니 얼른 자. 내일 진 선생님 보러도 가야 하잖아.”성혜인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의 품에 기대었다.“승제 씨, 진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에요.”“응.”“절 구해주기도 하셨고, 저한테 다정하게 대해줘요.”“응.”“그리고 엄청 대단해요. 아, 그거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께 쌍둥이 동생도 있다는 거.”눈을 감고 있던 반승제가 성혜인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순간 말실수를 자각한 성혜인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아, 잘못 말한 거예요. 진 선생님은 없다고 했어요.”“없다고 했다고?”“네.”반승제가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본인의 똑똑함이 해가 됐네. 진세운이 실수했어.”성혜인은 급속도로 불안해졌다. 너무 마음을 열어준 듯했다. 반지를 받아서일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기분이 좋다고?이제 보니 성혜인은 이런 작은 즐거움 정도는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혜인아, 더 말해봐. 쌍둥이 동생 그 다음은? 혹시 생긴 건 똑같은데 한 사람은 귓불에 점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없어?”반승제는 천재 소리를 듣는 똑똑한 사람이다. 전에는 진세운이 둘이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이제 알 것 같다. 설의종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BKS에는 두 명의 핵심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B, 한 사람은 K라고 불리며 둘은 쌍둥이 형제이다. 두 사람이 늘 신분 교환을 하므로 누구도 그들을 의심하지 않는다.그들은 세
말을 마친 성혜인은 자신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바라보았다.“저도 제가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 건지 말하지 못하겠어요. 그냥 모든 일이 당황스럽게 다가오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표달하지 못해요. 승제 씨와 함께했던 모든 일들도 기억하고는 있는데 제 마음은 마치 고인 물처럼 아무런 파동도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아요.”그녀가 손가락을 살짝 움츠렸다.“이 반지를 처음 봤을 때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긴 했는데, 뭐가 달라진 건지는 모르겠어요.”반승제가 크게 심호흡한 뒤 성혜인을 꼭 안았다.“혜인아.”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성혜인이 물었다.“그래도 내일 진 선생님 만나게 해주실 거죠?”참 분위기 깨는 발언이다.“응. 그러니까 지금은 얼른 자.”그제야 안도한 성혜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반승제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맞추고 또 맞추었다. 아무리 입을 맞추어도 더 맞추고 싶은 생각만 들 뿐이었다.그는 한참 후에야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이 순간 그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성혜인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그녀의 사랑은 반승제의 것에 못지않았다.다만 둘 다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이제 그는 성혜인에게 미안할만한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선택밖에는....다음 날 아침, 막 잠에서 깬 성혜인은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옷을 대보며 고르고 있었다.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반승제는 그녀가 방정을 떠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세 벌을 갈아입어 보았는데도 성혜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을 뵈러 가는 건데 더 예쁘게 입어야 할 것이 마땅했다.반승제도 재촉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가 다른 한 벌을 갈아입으려 할 때 조용히 물었다.“이렇게까지 신경 쓴다고?”성혜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는데, 그냥 사람이 좋아서 믿어야 할 사람,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돼요.”침대 위에 앉은 반승제가 오라고 손짓했다.“이리 와봐.”성혜인
혼란스럽던 정신세계가 한순간에 선명해졌다. 그녀의 말간 눈동자에 온통 핏빛이 비쳤다.성혜인은 반승제의 곁에 꿇고 앉아 총상 부위를 꾹 눌러 지혈하려 했다.“살려주세요!”“빨리 아무나 좀 와주세요! 여기 환자 있어요!”주위를 향해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하고 허전한 느낌. 계단 내에 성혜인의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혼돈의 세계에 갇혔음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반승제의 몸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건너편 계단에 서 있던 장미는 한 손에 총을 꽉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너무 떨려 불을 제대로 붙일 수가 없었다.옆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를 힐끗 보며 다급히 말했다.“장미 누나, 이거...”장미는 답답해져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퍽 쳐버렸다.“뭘 쳐다봐.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지! 우물쭈물하다가 사람 죽게 할 거야?”“아! 예!”장미는 계단을 내려가다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X발. 다음에 또 나한테 이런 일 시키기만 해봐.’“반승제 씨!”누군가 반승제의 이름을 외치며 데려가려 했다.성혜인은 반승제를 꼭 껴안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품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힘을 풀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병원에 데려가세요. 당장.”지하 격투장의 사람들은 반승제라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오히려 그를 부축해야 하는 경호원이 긴장했다.성혜인이 경호원을 밀어내며 말했다.“제가 할게요.”조금 전 당황하던 그녀는 온데간데없는 더없이 확고한 말투였다. 그녀는 반승제의 한 쪽 팔을 자신의 목에 걸치도록 했다.일행이 모두 차에 오른 뒤 경호원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성혜인의 눈치를 살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손을 꼭 잡은 채 표정은 담담했다.그 전의 막막함, 순진함, 머뭇거림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경호원은 조금 전의 일에 대해 더 생각할 엄두를 내지
병원에서.성혜인은 여전히 복도에 조용히 앉아 있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반승제가 침대 카트에 실려 나왔다.의사가 마스크를 내리고 말을 전했다. 다행히 총알이 심장과 멀리 떨어져 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성혜인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침대 곁에 꿇어앉아 그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쫓기는 신분이었으므로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었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 그는 지하 격투장 7층으로 옮겨졌다.성혜인은 방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다.중간중간 그를 보러 들어오려던 장미는 성혜인의 원한 섞인 눈빛을 보고 물러났다.전에도 아우라가 이렇게 강했던가?장미는 양미간을 찌푸렸지만, 기세에 눌려 들어가지 못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손을 잡고 자신의 볼에 갖다 댔다.반승제는 마취에서 깨지 못했지만 의식은 있었다.그는 자신의 이러한 결정이 성혜인에게 미안할 짓임을 잘 알고 있었다.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것이고 이 정신적 자극은 그녀를 최면에서 깨어나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반승제는 줄곧 도박에 목숨을 내던져온 사람이었다.그리고 지금, 그는 내기에서 이겼다.성혜인의 맑은 눈물이 손등에 톡 떨어졌다. 반승제는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일어날 힘이 없었다.그렇게 이틀간 그는 줄곧 누워있었다. 적지 않은 격투장의 사람들이 병문안을 오려고 했으나 모두 성혜인에 의해 병실에 발 한번 들이지 못했다.성혜인은 문 앞에 떡하니 서서 한 손으로 문을 잡고 눈은 결연히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는 듯 앞을 내다보았다.무어라 말하려던 사람들도 그녀의 기세를 마주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틀 뒤 아침, 반승제가 드디어 눈을 떴다.다친 상처 부위는 여전히 아팠다. 비록 급소를 피했다 하지만 결국 총에 맞은 것은 사실이었다.다소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성혜인과 눈을 마주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