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웅!남자가 또 한 번 ‘예쁜 아가씨’라고 부르기도 전에 엄청난 소리가 지하철에 울려 퍼졌다.띄엄띄엄 앉아있던 사람들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강하랑이 노란 머리 남자를 어깨로 메쳐버린 것이다.지하철 안엔 정적이 흘렀다.심지어 문이 닫히는 소리마저 사람들의 귀에 크게 들려올 정도였다.결국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고 나서야 사람들은 반응을 보였다.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당연히 바닥에 널브러진 노란 머리였다.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자기보다 연약해 보이는 여자에게 이런 꼴을 당했으니 너무도 창피
만약 눈앞에 있는 여자들이 한 번씩 발을 들어 그를 차거나, 아니면 어깨 메치기를 한다면 아마도 그는 너덜너덜해질 것이다.상황 파악이 빠른 남자는 바로 사과했다.“아이고, 예쁜 아가씨들. 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앞으로 더는 저 미인분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다들 각자의 일로 이 지하철을 탔고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이 일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 주시죠.”이 변명으로 당연히 쉽게 넘어가 줄 사람들이 아니었다.노란 머리 남자는 다시 한번 사과하면서 비굴하게 말했다.“전 그냥 저 여자가 예뻐서 연락처라도 물어보려고 했
노란 머리는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강하랑의 말을 듣고 난 뒤 황송한 모습으로 머리를 숙여 사과하면서 얼른 이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했다.그런 그의 태도는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거만하고 건방지던 조금 전의 태도와 달랐다. 꼭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강하랑의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는 것 빼곤 전부 했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란 말인가.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지하철은 빠르게 다음 역에 도착했다. 노란 머리 남자는 여자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문이
[사랑: 오빠, 체온이 36도이면서 어떻게 이런 얼음보다 차가운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거예요? 오빠 양심은 어디?]유감스럽게도 단오혁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다.강하랑은 씩씩대면서 이모티콘을 잔뜩 보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이 오빠는 역까지 자신을 마중 나올 생각이 없다는 것을.안 온다고 하면 안 오는 것이고 경기장 입구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면 그곳에서 기다릴 사람이었다.지하철 입구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단오혁과 단이혁의 성격이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엔 촐싹거려
경기 결과를 예상할 때 XH 팀의 예전 실력을 떠올리면서 꽤 많은 팬들과 관중들이 그들을 응원했다. 비록 겨우겨우 결승에 진출한 것이지만 말이다. 거의 모든 해설가들이 그래도 XH가 우승하리라 예측했다.아쉽게도 부상이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다.너무 열심히 한 탓에 부상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단오혁은 결승전에서 실수 연발했고 결국 첫 탈락으로 경기장에서 나오게 되었다.일찍 탈락한 패배 팀이었던 터라 패자부활전에 들어갈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더욱 속상했던 것은 섬나라 팀에게 패배한 것이다.그해 경기가 끝
그해 우승자는 여전히 그들이 아니었다.삼 년이 지나자 단오혁은 예비 인원으로 되었다.첫 번째 포인트 경기가 끝난 뒤, 팀은 2위라는 성적을 따냈고 1위는 작년에 우승한 팀이었다.포인트 경기의 성적을 본 팬들은 다시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황금비를 맞았던 그때의 마음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그저 포인트 경기에서 2위를 했을 뿐인데 꼭 예전에 우승만 거머쥐던 경기의 왕이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단오혁의 팬들은 기세등등하게 단오혁의 복귀를 원하기도 했다.팬이니까. 당연히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경기에 나오길 바랐다.더군
댓글엔 더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경기 기록만 남아있을 뿐이다.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경기에서 그가 어떤 활약을 보여주었는지, 어떤 실력으로 팀원과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지 말이다.한줄 한줄, 한장 한장 전부 글과 사진의 방식으로 댓글을 남겼다.단순히 단오혁의 명예가 아니다. 그들이 함께 걸어온 길과 시간이기도 했다.강하랑은 경기를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 게임조차 놀아본 적도 없었지만, 팬들이 단 댓글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꼭 그녀도 그때의 현장에서 단오혁을 위해 응원의 목소리를 냈던
강하랑은 당연히 없었다.따릉이를 근처 지정 주차장에 잘 세워둔 뒤 곧바로 단오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걸고 연결음이 몇 초간 들려오자마자 바로 끊겼다.다시 전화를 걸어보려고 할 때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그녀의 곁에 멈춰 섰던.운전석의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자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멈칫하던 강하랑은 한참 뒤에야 정체를 알아보곤 바로 씩씩댔다.“왜 뒤에서 등장해요? 경기장에서 나와서 날 데리러 와야 하는 거 아녜요?”단오혁은 길가에 주차를 해두곤 운전석에서 내렸다. 캐리어를 끌고 있는 강하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