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하랑 씨가 유리 멘탈이라 무슨 이야기를 하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랑 씨는 오히려 맨탈이 강한 사람이죠. 연 대표님과 옆에 계신 분들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살짝 즐거움이 느껴지는 담담한 목소리는 사정없이 연유성의 마음을 후벼팠다.“어쨌든 하랑 씨도 예전에 그쪽이 저지른 악행 속에서도 살아남았잖아요. 나중에 해외에서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았는지는 단 대표님도 잘 아시고 말이에요. 그런데 왜 하랑 씨를 위해서 그랬다는 핑계로 하랑 씨에게 과거를 알 권리를 주지 않는 거죠?”“이 세상
지승우를 따라가던 연유성과 단이혁은 서로 마주 보더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아까보단 분위기도 많이 풀려있던 터라 남자의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묻어나 있었다.“그 많은 식당들 전부 먹어본 거야?”연유성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돌려 지승우를 보았다.“당연한 거 아냐?!”다른 건 몰라도 놀고먹는 부분에선 지승우가 1등이었다.이 근처 맛집은 물론 서해의 곳곳을 누비며 놀러 다녔다. 서해는 그에겐 제2의 한주와 다를 바 없는 도시가 되었다.클럽 정보에 대해서도 아주 빠삭했다. 어느 클럽에 예쁜 여자들이 많이 오는
평소에 거만한 모습만 봐왔던 그들은 누군가에게 쫓겨나는 연바다의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쫓겨날 때 연바다는 욕설을 중얼거리기도 했다.이런 모습을 언제 볼 수 있겠는가?구경을 좋아하는 지승우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연유성과 단이혁마저 호기심에 고개를 돌렸다.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을 빼 들고 구경했다.다만 거리가 좀 있었던 터라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남자는 보기 드문 화난 얼굴을 하곤 이내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왜 쫓겨난 것인지는 몰랐다.“일단 먹어. 이따가 무슨 일인지 알게 되겠지.”이 가게의 음식
소문은 퍼지고 퍼져 어느새 진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과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믿을 것이 되지 못했다.손님들이 떠드는 목소리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음식을 많이 주문한 탓에 지승우는 지금도 다 먹지 못한 상태였다.어차피 급할 것도 없으니 그는 천천히 씹어 먹었다.단이혁의 질문에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분명 그 이유로 쫓겨난 건 아니겠죠. 그 미친놈이 뭘 훔치기 위해 여기로 온 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연씨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보거든요.”단이혁은 할 말을 잃었다.
한편, 연유성과 닮은 사람은 여전히 기분이 미묘했다.연바다는 새벽 4시부터 지금까지 눈을 뜬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오래된 동네는 길이 복잡했고 지승우의 짐작대로 처음 2시간 동안 낡은 아파트 건물 주변만 빙빙 돌았다. 누군가가 일부러 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겨우겨우 계단 입구를 찾았다고 해도 정확한 계단 방향을 몰랐다.그렇게 길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날은 점점 밝아져 아침이 되었다.해가 서서히 뜨자 복도로 여러 가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머리를 굴리며 길을 찾고
강하랑은 오래 생각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문가에 서 있는 지승현을 힐끗 보더니 입술을 깨문 채 천천히 다가갔다. 어쨌든 지금은 살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지승현에게 ‘감금’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고생한 것은 아니다.지금으로서 불만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배고프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물론 그녀가 안 먹은 탓이기는 하지만 말이다.“가요, 먼저 밥 먹고 얘기하자고 했잖아요.”지승현이 몸을 흠칫 떨면서 제자리에 굳어버린 것을 보고 강하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
강하랑은 만두를 입에 대지 않고 젓가락으로 찢어냈다. 아쉽게도 강하랑이 먹고 싶지 않았던 돼지고기 만두였다.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지승현은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앞접시를 가져갔다. 그리고 생선 만두가 담겨 있던 접시를 그녀에게 밀어줬다.“먹어요.”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나서 돼지고기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강하랑은 생선 만두를 앞에 두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행동이 지나치게 다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사람처럼 다정한 납치범은 세상에 둘도 없을 거야. 어휴... 음식을 낭비하지 않았으니 된 건가?’강하
마지막 영상에는 4년 전 강하랑이 바다에 뛰어들던 장면이 담겨 있었다. 물론 부두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상처받은 척 무서운 인상의 남자에게 ‘복수’하려는 모습도 포함해서 말이다.아쉽게도 그곳의 CCTV 영상은 선명하지 않았다. 더구나 시간도 오래 지나서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안 그러면 무조건 그때의 상황에 다시 한번 겁먹었을 것이다.강하랑은 영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도 충격받았다. 그녀는 심지어 영상 속의 사람이 자신이 맞는지, 그리고 연바다는 연바다가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