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유성의 통화와 문자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했다. 누가 봐도 개무시를 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첫 통화가 가져다준 희열은 서서히 식어갔고, 남은 것이라고는 분노와 불안밖에 없었다.지승우는 어이없는 듯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말했다.“나까지 차단당해야 속이 시원하겠냐? 자기가 잘못해서 차단당해 놓고서는... 그러게 누가 수세미를 편들어 제 발등 깨랬어?”“...”연유성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티켓을 바라봤다. 잠시 후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이 울리면서 그의 사색을 멈췄다.그는 핸드폰을 힐끗 보더니
임서화는 황급히 말리면서 전화한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나도 어쩔 수 없이 너한테 전화한 거야. 너도 봤지? 우리 세미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어제 병원에 왔는데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단다. 결혼식 일은 세미가 잘못했어. 하지만 너희 둘 서로 많이 좋아하잖아. 그러니 병원에 와주면 안 되겠니? 우리 세미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제발 한 번만 보러와주렴.”“저는 의사가 아니에요. 기절한 사람을 깨울 재주도 없고요.”연유성은 마치 감정 없는 로봇같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누구 덕분에 할아버지가
임서화는 마치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범인과 같았다. 특히 ‘너도 알았니?’라는 말이 연유성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더욱 큰 충격이었다.‘나만 우스워졌네.’연유성은 자신의 인생 전체가 우스워진 것 같았다.반항할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그는 온서애의 마리오네트였다. 그녀가 하라는 일만 하고, 그녀가 하라는 말만 하는 인형 같은 존재 말이다. 그다음 손잡이를 물려받은 사람은 강세미였다.더 이상 임서화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연유성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단원혁이 서채은에게 마음이 있다는 생각에 정희월은 이미 그녀를 반쯤 며느리로 생각했다. 그래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반대로 서채은은 과하게 친절한 정희월의 태도가 부담스러워서 슬슬 뒤로 피하면서 말했다.“아닙니다, 사모님. 사랑 씨 아직 갈 곳도 있을 텐데요. 오후에는 공항에 갈 일도 있어서 점심 식사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이 더운 날에 어딜 간다고 그래요? 태양이 뜨거워서 피부라도 상하면 큰일이잖아요. 요즘은 쇼핑몰도 참 지루해요. 게다가 어디나 다 똑같아서 굳이 영호 쇼핑몰을 구경할 건 없
“아니, 언니랑 홍우는 잘 지내고 있어. 딱히 뭘 물어본 적도 없고.”강하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 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둘이 아직 정식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도 아닌데, 언니가 왜 홍우에 대해 물어보겠어? 그냥 내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둘이 잘된 다음 홍우 친엄마가 나타나면 어떡하나 혼자 생각하다가.”“하하, 그런 걸 생각해서 뭐해? 애를 한 번 버린 여자한테 내가 홍우를 다시 주기라도 할까 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만약 단홍우의 어머니가 서채은이면 어떡할 거냐고, 강하랑은 또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 아니,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최동근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곤 마른 목에 침을 삼키며 부랴부랴 나가려다가 그만 커다란 유리에 부딪히게 되었다.대표이사실의 문은 특수 유리로 만든 것이었다. 안에서는 밖의 상황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의 상황을 볼 수 없는 그런 특수 유리였다. 경쾌한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단단했던 특수 유리는 망치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유리였기에 고작 겁에 질려 도망가려는 최동근의 이마로 깨질 리가 없었다.단원혁은 냉담한 얼굴로 그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보았다.강하랑이 보낸 몇
“경솔이라는 단어도 알다니, 의외네요.”단원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 위에 있던 두 서류에 사인하더니 대충 옆으로 치워두곤 컴퓨터와 다른 설비의 전원을 꺼버렸다.“그런데 어쩌죠? 유감스럽게도 애원하는 방법은 나한테 안 통하거든요. 당신이 우리 회사 앞에서 난동을 부려 우리 회사 직원의 명예가 훼손되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경찰은 왜 있고, 법은 또 왜 있겠어요. 안 그래요? 당신 같은 사람을 봐주면 매일 우리 회사 앞에서 민폐를 끼칠 것이고, 그럼 우리 회사 직원은 앞으로 출근도 못 할 거 아니에요.”
영호 공항.“내가 말하는데, 이번에 절대 우리 선배님 심기 불편하게 하지 마. 알았냐? 또 저번처럼 그러면 선배님 요리는 물론 한남정 요리도 입에 대지도 못하게 해줄 테니까!”박재인은 투덜투덜하며 게이트에서 나왔다.뒤에 있는 그와 나이가 비슷한 이덕환은 그런 박재인을 무시하며 나오고 있었다.박재인이 다시 똑같은 말로 투덜대자 그는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알았어, 알았다니까? 대체 몇 번을 말할 셈이냐? 내가 이런 기회에 또 그럴 사람으로 보여?”이미 한번은 투덜대다가 또 먹을 기회를 놓쳤기에 그는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