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은 추위에 팔짱을 끼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이때 뒤에서 갑자기 마른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톡 쳤다.“꺄악!”깜짝 놀란 강하랑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단이혁의 여유로운 눈빛을 마주하고는 복수라도 하려는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놀랐잖아!”강하랑의 솜방망이는 아무런 타격감도 없었다. 그래서 단이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겁도 많은 애가 무슨 생각으로 혼자 나왔어?”단이혁은 정장 외투를 벗어서 강하랑을 꽁꽁 싸맸다. 그러자 그녀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이게 다 오빠
“아까... 집에 있을 때 네 손을 뿌리쳐서 미안해.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사과할게.”단이혁은 진지한 말투로 말하면서 강하랑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떼어내면서 말을 이었다.“난 혼자 갈 테니까, 넌 이만 돌아가. 세혁이한테 데리러 나오라고 문자 했어. 내일 혹시 놀고 싶으면 다시 데리러 올게. 그럼 나간다.”단이혁이 몸을 돌린 순간 강하랑은 또다시 쪼르르 쫓아가면서 그의 팔을 잡았다.“나도 데려가!”단이혁은 또다시 멈춰 섰다. 아무 말도 안 하기는 했지만 표정만으로도 의아함이 보였다. 그런데도 강하랑은
강하랑은 단이혁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고서도 당당하게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혼내 볼 테면 혼내 보라는 식의 반응에 단이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고 강하랑을 기다려줬다.“뭐해? 빨리 들어가자.”달빛은 별장 양측의 나뭇잎 사이로 비쳐서 두 사람의 그림자 사이에 떨어졌다. 마치 넘을 수 없는 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강하랑은 가볍게 선을 넘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경험담이니까 흘려듣지 마. 울고 나면 진짜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난 오빠가 모
단원혁은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어린이와 어른이들을 데리고 북적북적 단시혁의 별장에 도착했다.단홍우가 도착했다는 말에 강하랑은 한창 재미있는 얘기를 주고받던 온마음도 뒷전인 채 부랴부랴 마중 나갔다. 단홍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서 그녀의 품에 쏙 안겼다.“우리 단무 너무 사랑스러운 거 아니야? 분유 냄새 나는 걸 보면 아직도 아기네, 아기야~”“단무 아니고 홍우야!”“홍우는 홍당무같이 귀여우니까 홍단무라고 부르게 해줘~”한때 강하랑도 어린 인간을 극혐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대여섯 살짜리 유딩
강하랑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아까 한참이나 훔쳐본 것이 이제야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색하지 않은 척 밝게 말했다.“하나도 안 무거워. 나 운동 엄청 열심히 해서 홍단무 정도는 가뿐하게 들 수 있어.”단시혁의 말을 들은 단홍우는 무의식적으로 강하랑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그녀를 밀어내면서 말했다.“고모, 나 이제 혼자 걸을래. 나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고모는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어. 이제는 홍우가 지켜줘야 해. 어리다고 투정 부리면 안 돼.’단홍우는 이
한주시.저녁 사이 계속된 폭우에 창문은 타닥타닥 빗물에 맞으며 흔들리고 있었다.폭우 속에서 연유성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막연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창가로 가서 야경을 바라봤다.강하랑과 이혼한 후로부터 그는 회사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가끔 본가에 가서 이틀 정도 지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시간을 일하는 데 썼다.꿈속에서 그는 또다시 그녀를 만났다.강하랑.진작 잊어야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밤마다 꿈에 찾아와서 그를 이렇듯 괴롭히고는 했다.‘도대체 왜 이
만약 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생로병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상대는 가족이었으니 말이다.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어차피 사랑받지 못할 운명이기에 자신의 재력이라도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밤이 되면 이혼한 아내를 그리워하고는 한다.연유성은 시선을 떨궈 핸드폰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켰다가 끄고, 다시 켰다가 끄고 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이런 게 바로 그리움이라는 거야?’그는 유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갖은 핑계를 찾아 한남정에 갈 때, 그리고 더 오래 전 해외에 있던 강하랑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지승우는 문을 열자마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평소 언제나 깔끔한 정장 차림만 보여주던 남자가 오늘은 넋이라도 나간 표정으로 앉아서 산산이 조각난 핸드폰만 오매불망 바라봤기 때문이다.손바닥은 또 언제 다쳤는지 원래의 흉터 위로 다른 상처가 생겼다. 이미 마른 피딱지는 손바닥 가득 붙어있어서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다.지승우는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잠깐 주저하더니 지정석으로 가는 게 아닌 연유성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책상을 똑똑 두드리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괜찮아?”“...”연유성은 아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