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생각하면 할수록…”이준혁은 심플한 디자인의 하얀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묘하게 매혹적이면서도 섹시했다.듣기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돋는 목소리로 그는 느긋하게 자기가 느끼는 바를 말해줬다.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발길질했다.“준혁 씨, 그런 말을 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요? 그만해요.”이준혁은 허벅지로 자기를 향해 날아드는 발을 꽉 잡더니 윤혜인의 손목에 키스했다.“너한테만. 너만 좋으면 돼.”윤혜인이 고집스럽게 말했다.“누가 좋대요?”이준혁이 가볍게 웃었다.“그러면 오늘 오빠한테 애교 부리면서 나 도와주라고 한 사람은 누군데?”윤혜인은 얼굴이 빨개졌다.“다 들었어요?”이준혁이 눈썹을 추켜세웠다.“우리 혜인이가 남편을 구하겠다면서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는 걸 내가 들었지”윤혜인은 귀까지 빨개졌다.“내가 언제 남편 구하겠다고 했어요.”“아니면?”이준혁이 눈까풀을 천천히 들더니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놀려댔다.“그러면 우리 혜인이 애인 정도는 되나?”“애인은 무슨 애인이에요… 헛소리 좀 하지 마요.”윤혜인이 성질을 부리며 그를 째려봤다.이준혁이 입을 앙다물며 말했다.“하긴, 이런 상황만 아니면 누가 애인하고 싶겠어.”이준혁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래서 말인데. 나 언제 정규직으로 승진시켜 주는 거야?”“…”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탄핵을 받고 의지를 상실한 사람 같지 않았다.윤혜인은 지금 이 상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이번에 정말 위험한 거 맞아요?”“갈 곳 없어서 너한테 왔잖아. 그게 위험한 거 아닌가?”윤혜인이 물었다.“그러면 대표 자리는 뺏기는 건가요?”이준혁이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린 채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럴 수도 있지.”윤혜인이 입을 악다물더니 말했다.“준혁 씨, 나한테 10조 원은 있어요. 아버지 말로는 엄마가 내게 남겨준 혼수래요. 아니면…”이준혁이 핵심을 잡아내며 살며시 웃었다.“혼수까지 주면서 구하는데 남편이 아니라고?”이준혁이 손을
연속 5일간 이준혁은 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별장에서 윤혜인과 같이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처럼 한가롭지 못했다. 작업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윤혜인이 작업실에 가면 이준혁은 혼자 집에 남아있었다.홍 아줌마와 요리를 몇 가지 배운 이준혁은 윤혜인이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마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줬다.이준혁이 손수 만든 탕은 홍 아줌마가 몇십 년 끓인 탕보다 더 맛있을 정도였다.윤혜인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왜 이렇게 요리를 잘해요?”전에 만났을 때는 도련님이라 종래로 주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고 요리를 할 줄 아는지도 몰랐다. 솜씨로 보면 절대 한두 날 배운 솜씨가 아니었다.이준혁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어렵지 않아. 그리고 탕은 시간과 비율이 중요하거든. 시간이 조금만 오래도 감칠맛이 사라져. 너무 짧으면 또 맛이 깊지 못하고. 시간을 잘 맞추고 재료를 좋은 걸 선택하면 어렵지 않아. 영양가도 높고.”윤혜인은 이준혁이 시간과 비율, 그리고 재료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역시 모범생은 밥을 하는데도 계산이 필요했다.윤혜인이 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이렇게 말했다.“준혁 씨 덕분에 입맛이 까다로워지겠어요.”이준혁이 물티슈로 윤혜인의 입술을 닦아주며 말했다.“이렇게 거둬주는데 시중 들어주는 건 당연한 거죠.”“…”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준혁의 말투에서 묘하게 원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이준혁은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덤덤하게 물었다.“점심에 먹은 탕이 맛있어? 아니면 저녁에 먹은 게 더 맛있어?”“…”윤혜인은 그제야 기억났다.점심때 이준혁이 전화를 걸어와 도시락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마침 윤혜인은 그때 고객과 밥을 먹고 있었다.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열정적으로 탕을 퍼주며 이렇게 말했다.“혜인 씨, 많이 드세요. 이 탕이 피부 탄력과 미백에 좋대요.”이준혁이 이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윤혜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시중들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이준혁의 갈라진 목소리가 매혹적으로 들렸다.“내가 벗겨줄게.”지퍼가 천천히 열리고 따듯한 물이 몸에 닿자 너무 편안해졌다.“...”물안개가 자욱하게 핀 욕실에는 듣기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소리로 가득했다.“읍... 거기는... 안 돼요...”이준혁이 우쭐대며 웃더니 고개를 들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만족해?”윤혜인은 너무 수치스러워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즐거움에 겨운 신음이 자꾸만 목구멍을 타고 새어 나왔다.정말 미칠 지경이었다.‘출근 안 하면 남자들 정력이 좋아지나? 어떻게 매번 유혹하는 방법도 바뀌지?’이튿날.이준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쳤다.윤혜인은 알람이 울리자 자기도 모르게 꺼버렸다. 잠깐 더 눈을 붙이던 윤혜인이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오늘 중요한 고객을 만나기로 한 날이라 절대 지각하면 안 된다.윤혜인은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너무 오래 잔 건 아니라서 시간이 충분했다.슬리퍼를 신은 윤혜인이 비몽사몽해서 씻으러 들어갔다.방으로 돌아온 이준혁이 칫솔을 입에 문 채 혼이 반쯤 나가 있는 윤혜인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이준혁은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며 양치를 도와주고는 세면까지 시켜줬다.윤혜인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자 이준혁이 부드럽게 말했다.“조금 더 잘래?”윤혜인이 머리를 이준혁의 어깨에 기대더니 나른하게 말했다.“안 돼요. 고객 만나기로 했단 말이에요. 이게 다 준혁 씨 때문이에요...”어젯밤 욕실에서 거울 앞으로, 그러다 끝내는 침대까지 올라가 또 한참 사랑을 나눴다. 몸이 탈탈 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윤혜인이 품에 기대자 기분이 좋아진 이준혁은 호수 같은 눈망울에 웃음이 번졌다.“그래. 다 내 탓이야. 잘 보이려고 너무 힘줬네.”윤혜인이 얼굴을 붉히더니 이준혁의 가슴을 솜방망이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다 이준혁이 슈트를 입고 넥타이까지 맸다는 걸 발견했다.“어디 가려고요?”윤혜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원지민이 이렇게 말하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윤혜인이 약혼에 관한 문제를 물어보기를 기다렸다.하지만 윤혜인이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수요만 알려주세요.”“...”원지민은 윤혜인이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자 말문이 막혔다. 윤혜인이 궁금해하면 자연스럽게 이선 그룹 이사회의 감사 결과를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말이다.윤혜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있어서요. 달밤은 주문만 도와드리지 담소를 나누고 싶다면 커피숍으로 가는 걸 추천합니다.”일반 손님이라면 윤혜인도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지민이 자꾸만 괴롭히니 더는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원지민은 고분고분 갈 리가 없었다. 여기에 온 것도 드레스를 맞추러 온 게 아니었다.윤혜인이 만든 드레스를 원지민이 입을 리 만무했다. 입었다가 두고두고 기분이 더러울 것 같았다.“내가 말했죠. 주문한다고.”윤혜인이 눈썹을 추켜세웠다.“달밤은 주문 시 선불금이 필요합니다.”“...”“얼만데요?”“10%를 받고 있습니다.”고작 천만 원이라 원지민도 통쾌하게 카드를 긁더니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드레스 완성되면 바로 이선 그룹으로 보내면 돼요. 미납금은 이선 그룹에서 낼 거예요.”원지민은 이 말을 듣고도 윤혜인이 차분함을 유지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혜인은 오히려 흔쾌히 수락했다.“네, 그러죠.”게다가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았다.원지민은 인내심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윤혜인이 물어보지 않는다 해서 말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일단 목을 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윤혜인 씨, 오늘 이선 그룹에 큰 인사이동이 있는 거 알고 있어요?”윤혜인이 고개를 들었다.“원지민 씨, 화이트 좋아해요, 아니면 레드 좋아해요?”이 말에 원지민은 표정이 굳더니 이를 악물었다. 윤혜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뭐 어떤 색이든 좋아요. 돈은 다 낼 테니 일단 만들어봐요. 그때 가서 고를게요.”윤혜인은 자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원지민이 윤혜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윤혜인이 앞으로 팔짱을 끼고는 편안한 자세로 바꾸더니 느긋하게 말했다.“이준혁과 결혼하고 이선 그룹 주식까지 사들이면 두 사람 관계도 있으니 부정당 거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준혁이 맞닥트린 위기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요?”“날 감시라도 하는 거예요?”원지민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혜인이 몰래 자기 몸에 도청 장치라도 단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이구운이 한 말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뜻은 같은 뜻이었다.윤혜인은 원지민에게 설명해주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원지민 씨, 꿈 깨요. 준혁 씨는 절대 받아주지 않을 거예요.”원지민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질투 나서 그러는 거죠? 서로 어깨를 견줄만한 가문이라 결혼하면 윈윈일 수밖에 없어요. 나는 준혁이가 사업을 펼침에 있어서 큰 힘이 될 거라고요. 준혁이 바보가 아닌 이상 왜 받아들이지 않겠어요?”윤혜인이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느긋하게 말했다.“준혁 씨가 총명하니까 이런 뻔한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거예요.”지난 몇 년간 윤혜인은 아버지가 국제 무역을 할 때 옆에서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윤혜인의 경험이 모자라 혹시나 사기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했다.국제 무역은 여러 나라의 각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거래라 암투가 국내 시장보다 훨씬 심각했고 수단도 훨씬 독했다.한구운은 절대 원지민을 돕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퇴로를 남겨둔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일 것이다.첫째, 한구운의 능력으로 아직 이선 그룹을 먹어 치우기엔 역부족이라는 것. 둘째, 이준혁이 원지민과 결혼하게 되면 감사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언제든 한구운이 준비만 되면 이를 다시 문제 삼으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된다는 것이다.원지민은 총알받이가 되었는데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했다.미련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한 건지 꼼꼼하기로 소문난 원지민도 결국 이렇게 어리석은 모습으로
원지민이 멈칫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현미가 타일렀다.“지민아,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 믿어. 근데 준혁이 그 아이를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있잖아. 너랑 절대 관계를 가진 적 없다고 하니까 나도 좀 그러네. 도대체 너희 둘 중 누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어머님, 저는 절대 어머님 속인 적 없어요.”원지민이 큰 소리로 말했다.“이 아이 준혁이 아이 맞아요.”“하... 너희가 서로 딴소리하고 있으니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힘이 달리네. 임신 몇 개월인지도 모르잖아.”“3개월이에요.”원지민은 얼떨결에 이렇게 말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절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말이다.다행히 문현미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지민아, 나는 네가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너는 내가 믿을 수 있거든. 나는 너 무조건 응원한다.”불안했던 원지민의 마음도 살짝 풀렸다. 원지민은 억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어머님, 몇 개월인지는 일단 비밀로 해주세요. 준혁이 알면 배가 불러오기 전에 애 떼라고 할 거예요.”“걱정하지 마. 내가 비밀로 할게.”문현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우리 이씨 집안 첫 손주인데 손대면 내가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원지민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어머님.”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어머님, 요즘도 머리 아파요? 약 거의 다 먹었죠? 선생님께 더 부탁해 볼까요?”“그래, 거의 다 먹긴 했어. 잘됐네. 마침 말하려고 했는데.”“네, 내일 바로 가져다드릴게요.”원지민이 전화를 끊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문현미만 잘 구슬리면 이준혁이 넘어오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준혁에게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이선 그룹, 회의실.회사 내부 감사팀에서 나오자마자 히든카드를 내밀었다. 이선 그룹과 온진 그룹 간의 부정당 거래에 관한 자료였고 거래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준혁의 사인이 보였다.이준혁은 자리에 앉아 아무 표정 없이 상대가 질책하는
하지만 이태수의 자필 편지가 공개되자 주주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는 한구운도 있었다.이씨 가문 사람으로 인정받은 그날을 평생 기다려왔다.이제 남은 건 천천히 잠식해 이선 그룹을 완전히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준혁이라는 사람이 이선 그룹의 미래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이천수도 기분이 좋았다.주주들이 이 소식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준혁도 철저히 무너지게 된다.계획을 한번 쭉 돌이켜본 이천수는 좋은 사람인 척 쇼를 이어갔다.“오늘 제가 할 말은 이상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저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더 부연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3일 뒤에 다시 의논할 예정이니 여러분 의견에 따라서 결론을 내시면 됩니다.”이천수는 예정대로 3일이라는 시간을 남겨두고 이준혁을 핍박하는 데 쓰려고 했다.거기에 원지민과 문현미까지 합세하면 이준혁이 타협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은 입을 꼭 앙다물었다. 여전히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회의실 분위기가 매우 딱딱했다.이천수와 이준혁은 전에는 그저 암투였지만 지금은 대놓고 서로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니 주주들도 더는 어물쩍 넘기지 못하고 라인을 잘 타야 했다.이제 파벌이 명확하게 나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천수의 마지막 히든카드는 늙은 보수파를 흔드는 데 쓰였다. 보수파들이 전처럼 표정이 어둡지 않자 기분이 좋아진 이천수는 서류를 정리하더니 수장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이제 다들 나가보셔도 됩니다.”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준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잠깐만요.”지배자와도 같은 아우라에 일어났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미 이준혁의 명령에 습관된 것 같았다.이천수가 코웃음 치더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준혁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봤다.이준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끝났어요?”이천수가 대답했다.“네.”“그러면 제가 보충하는 걸로 하죠.”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며 중지로 테이블
이천수가 씩씩거리며 손에 든 서류철을 이준혁에게 힘껏 던졌다.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이준혁은 머리만 살짝 갸우뚱하는 것으로 피했다.주훈이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 이천수의 팔을 뒤로 꺾더니 그의 얼굴을 테이블에 꽉 눌렀다.이천수는 처량한 모습으로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야 이 자식아. 지금 존속 살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애초에 너 같은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주주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천수가 아들을 욕하는 게 너무 듣기 거북했기 때문이다. 켕기는 게 있어서 이렇게 발악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한구운이 얼른 앞으로 다가가더니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아빠, 진정해요.”이천수는 그제야 자기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인정하지만 않으면 이준혁도 어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한구운은 이천수가 차분해지자 주훈에게 소리를 질렀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어떻게 이사님한테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어요?”주훈은 한구운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이천수의 목덜미를 꽉 잡은 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한구운의 안색이 순간 너무 어두워졌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지만 이내 다시 풀었다.한구운은 일단 침착함을 유지하며 고개를 돌려 이준혁을 바라봤다.“형,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우리 아빠잖아요. 이러면 주주들도 실망할 거라고요.”그는 일부러 ‘우리 아빠’라고 하면서 이준혁을 자극하려 했다.게다가 진실을 흐리려고 했다. 주훈은 그저 이천수가 이준혁에게 상해를 가하지 못하게 막았을 뿐인데 한구운은 이를 아버지에 대한 불경이라고 과장했다.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을 빙빙 둘러서 하고 있었다.이준혁이 입꼬리를 당기며 경멸에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주 비서, 이사님이 꿈꾸는 큰 그림을 주주들께 보여드려.”주훈은 그제야 이천수를 풀어주더니 미리 준비한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재생하기 시작했다.이내 이천수의 목소리가 스크린에서 들려왔다.“주 대표님, 이 대표님, 황 대표님, 저희 둘째를 지지해 주세요. 둘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