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지난 다섯 해 동안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씩 치유되었다.소원과 구지윤을 떠올리면 그녀는 늘 감사했다.그녀의 오랜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항상 곁에 있었다.윤혜인과 아름이는 삼촌과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냈다.모든 것이 완벽했다.사람은 과거의 고통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그녀는 앞으로의 삶에서 더 이상 이준혁에게 좌우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자신을 어리석게 그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윤혜인은 이준혁을 바라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이준혁 씨, 한때 나는 당신을 많이 사랑했어요. 정말 많이...”그녀는 자신을 잃고, 감각이 마비되며, 스스로를 속였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이준혁과 그저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가능한 한 멀리.윤혜인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이제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한때 그가 자신을 위해 칼을 맞았던 것도 그녀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상처를 줬지만 당신은 나를 구해준 적도 있죠. 그러니 앞으로 우리 서로 빚진 게 없는 셈 치고 각자 잘 지내요.”그때, 이준혁이 그녀의 손목을 갑자기 꽉 잡으며 말했다.“그렇게는 안 돼!”물기가 맺혀있는 그의 눈은 별처럼 빛났다.“각자 잘 지내고 싶지 않아. 나랑 약속했잖아. 너희 오빠를 내가 설득하기만 한다면 나랑 함께하겠다고.”기억 상실 중에 했던 그 약속이 떠오르자 윤혜인은 머리가 아팠다.그녀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그럼 헤어져요!”“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검게 빛나는 눈으로 이준혁이 결연하게 말했다.“난 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이준혁 씨!”냉정한 목소리로 윤혜인은 그의 이름을 무겁게 불렀다.“난 당신과 함께할 수 없어요. 자기 체면은 자기가 알아서 지키고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날 귀찮게 하지도 마요.”그 말에 이준혁은 충격을 받았다.태생부터 남 부러울 것 없이 자란 이준혁은 늘 자기가 원하는 것은 전부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때문에 지금
차 문이 열리자, 윤혜인은 아름이의 손을 잡고 뒷좌석에 올라탔고 그렇게 두 사람은 아름이의 양쪽에 앉았다.이준혁은 차 안에 많은 어린이용품을 준비해 둔 것은 물론 어린이를 위한 안전 좌석도 마련했다.가는 내내 아름이는 이준혁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했다.아름이가 선생님에게 이끌려 유치원으로 들어간 후, 윤혜인은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거두고 이준혁을 추궁했다.“이준혁 씨,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거예요?!”차가운 목소리에 이준혁의 심장이 한 번 더 뛰었다.그러나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름이는 내 아이이기도 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곁에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는 아름이의 옆에서 아름이가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그가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들의 생활에 간섭하려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요. 과거에도 필요 없었고 앞으로도 필요 없을 거예요!”이 말에 이준혁은 얼굴이 창백해졌다.하지만 그래도 애써 마음속의 고통을 무시하며 목소리를 낮췄다.“혜인이 너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겠지만, 정말 아름이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어?”이준혁은 정확히 윤혜인의 아픈 곳을 찔렀다.아름이는 겉으로는 천진난만해 보였지만 실은 민감하고 세심한 아이였다.어릴 때 자폐증 경향이 있었고 치료는 되었지만 심리치료사는 아름이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윤혜인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 이준혁은 계속 말했다.“나는 아름이를 빼앗지 않을 거야. 친아빠로서 아이한테 해를 가하지도 않을거고. 단지 많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어.”무거운 목소리로 그는 간절하게 부탁했다.“부탁이야. 나도 아름이의 성장에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줘.”윤혜인은 침묵했다.이준혁의 말처럼, 그녀는 아름이를 대신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이준혁은 아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였다.게다가
이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조건을 수용했다.“알겠어.”윤혜인은 그의 순종적인 태도를 의심스러워하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약속 지켜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모든 게 무산될 거니까.”이준혁은 주저 없이 말했다.“알겠어. 다 네 말대로 할게.”그렇게 윤혜인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돌아서서 걸어갔다.하지만 이준혁이 그녀를 따라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회사까지 데려다줄게. 마침 같은 방향이라서.”“필요 없어요.”윤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리고 앞으로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지 마요. 밤새우는 건 늙고 빨리 죽는 지름길이니까.”핏발 선 그의 눈과 밤새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윤혜인은 그녀의 운전 기사에게서 이미 모두 들었다.당연히 윤혜인은 그가 아름이에게 정을 붙이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지,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이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알겠어.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뒤이어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집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전 기사에게로 향했다.그러고는 차에 올라타며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이준혁은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약간의 희망도 느꼈다.‘적어도 조금 진전이 있어.’차에 올라탄 후, 주훈은 차를 시동을 걸며 말했다.“대표님, 최근 아버님께서 L 국을 자주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그곳에서 생물학 박사를 만난 것 같아요.”그러자 이준혁은 넥타이를 풀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아봐.”과거에 그의 아버지인 이천수는 권력을 빼앗으려 했지만 그 이후로 한동안 조용했다. 한때는 이준혁에게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가문을 이어가라고 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주훈은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고 백미러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대표님, 조금 쉬시는 게 어떨까요?”밤을 새운 탓에 그의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지만 피
윤혜인은 열어서 내용이 뭔지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사이트를 다시 클릭하니 없는 화면이라고 나왔다.검색어 순위를 새로 고치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검색어들이 한순간 사라졌다.누군가 ‘특수’ 처리를 한 게 틀림없었다.신기하다고 생각한 구지윤도 앨범에서 기사를 찾아냈다.“다행히 전에 기사 캡처했어. 한 번 봐봐.”호소자는 듣보잡 작업실이었는데 사진을 비교하며 몇 년 전에 이미 전시한 제품이라고 주장했다.그리고 달밤 작업실은 그들이 작은 작업실인 걸 노리고 이렇게 대담하게 베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윤혜인은 사진 속 복장을 보며 무언가 번쩍 생각났다.꽤 연식이 있어 보이는 옷이었는데 작업실에서 잘 보관해서 그런지 보존 상태는 완벽했다. 한눈에 봐도 정성스레 봉제한 옷 같았다.자수의 디테일이나 패턴은 윤혜인이 패스티벌에서 사용한 전통 시리즈와 거의 똑같았다.유일한 차이라면 바로 텍스쳐와 컬러였다.비교 샷과 상대 작업실에서 남긴 영상으로 보면 누가 디자인을 베꼈는지는 확연히 알 수 있었다.하지만...윤혜인이 잠깐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이 상대 작업실에 연락 좀 해줘.”“뭐?”구지윤은 살짝 놀랐다. 피해도 모자랄 판에 상대에게 연락하겠다는 윤혜인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윤혜인이 말했다.“상대에게 이 작품을 사겠다고 해봐. 그리고 일단 값부터 부르라고 하고.”구지윤이 다시 한번 확인했다.“정말 연락해?”구지윤은 윤혜인이 베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아직 사태 파악도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상대에게 연락해 그 작품을 사겠다고 하면 약점을 다른 사람 손에 쥐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구지윤이 귀띔했다.“검색어는 내렸지만 주문을 취소하겠다는 고객이 꽤 밀려들고 있어요.”북성이 주최한 연중 패스티벌에서 성공을 거머쥔 뒤로 작업실도 많은 주문을 받게 되었다.적합하지 않은 주문은 모두 거절했다.윤혜인은 돈을 벌고 싶어서 품질에 들여야 할 시간을 단축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검색
이준혁이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해서야 성준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피해는 돈으로 메꿀 수 없었다.예를 들면 연예인의 가치가 이번 일로 크게 요동치거나 많이 깎일 수도 있다.“대표님, 사실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24시간 이내에 제가 해결하겠습니다.”윤혜인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성준의 마음도 조금 풀렸다.사실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윤혜인이 덧붙였다.“그리고 검색어는 내리실 필요 없어요. 그냥 판이 점점 더 커지게 놔두세요. 괜찮아요.”성준이 눈썹을 추켜세웠다.“오해한 것 같네요. 검색어는 제가 내린 게 아니에요. 이 대표님이 내렸지.”이 일을 만든 게 윤혜인이니 수습도 남편인 이준혁이 해야 했다. 성준은 다른 사람이 싸지른 똥을 치워줄 생각이 없었다.윤혜인이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최근 며칠간 제가 대표님 회사로 피팅하러 갔을 때 CCTV를 전부 저한테 넘겨주실 수 있나요?”성준도 총명한 사람이었기에 바로 반응했다.“회사 내부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요.”윤혜인이 말했다.“그래요. 직접 주긴 어렵지만 조사하라고 할게요. 찾아내면 연락하죠.”“네, 부탁드릴게요.”전화를 끊고 윤혜인은 태블릿에 보이는 사진을 매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한편, 서재.머리를 높게 묶은 원지민은 세련된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 폼이 매우 깔끔하면서도 멋졌다.임호가 들어와서 보고했다.“아가씨, 달밤이 작업실에 연락해 큰돈을 주고 전시품을 구매하겠다고 했답니다.”“허허.”원지민이 차갑게 웃더니 비아냥댔다.“이준혁이 좋아하는 여자가 고작 이 정도라니. 결국엔 허울뿐이지 아예 실력이 없네. 지금까지 받은 영예도 다 베껴서 받은 거고.”원지민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했다.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여자가 뭐가 좋다고 이준혁은 보물처럼 감싸고 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에 반해 원지민은 일에서 과감하고 패기 넘쳤다. 이선 그룹에서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성사한
원지민은 마치 여왕처럼 옆으로 누우며 명령했다.“머리 좀 안마해 줘.”임호가 고분고분 쪼그리고 앉았다.웅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가 지금은 부드럽게 원지민의 머리를 안마해 주고 있다.임호는 어둠의 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보기 드물게 깔끔한 걸 좋아하는 죽음의 기사였다.항상 몸은 뽀송뽀송했고 땀 냄새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모발이 매우 풍성한 편이라 남성적인 매력도 다분했다.안마를 한참 받았지만 뭔가 2퍼센트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호르몬 문제인지 요즘 그쪽으로 욕구가 들끓어 올랐다.원지민은 빨간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임호를 보며 암시했다.“조금만 더 아래로 가봐.”임호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거친 손으로 목덜미를 스쳐 쇄골을 안마했다.두꺼운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만지니 묘한 자극적인 맛이 있었다.원지민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볍게 신음했다.“힘 조금만 더 써도 될 것 같아...”임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원지민이 교태를 부리자 몸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 혹시...”“음...”원지민은 지금 정신이 약간 몽롱한 상태라 무의식적으로 이런 소리를 냈다.임호는 원지민이 동의했다는 생각에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머리를 천천히 숙였다.“읍...”원지민은 자기도 모르게 또 신음했다. 그러다 안색이 변하더니 손을 들었다.찰싹.원지민이 임호의 따귀를 찰지게 내리쳤다.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보고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빌어먹을 새끼, 누가 너더러 키스하래.”꿈에서 깬 임호는 안색이 삭 변했다.원지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털썩 바닥에 꿇어앉더니 자기 따귀를 힘껏 내리치기 시작했다.철썩, 철썩, 철썩.그렇게 임호는 연거푸 10대를 내리쳤다. 손에 힘을 풀기는커녕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더 세게 후려쳤다.임호도 자기가 그렇게 불경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정말 무엇에 단단히 홀린 것 같았다.여자의 향기를 맛보고 싶었지만 결벽이 있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임호의 마음속에는 오직
원지민이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기억해. 너는 영원히 내 발치만 맴도는 개 같은 존재야. 내 개가 됐으면 영원히 주인 말을 잘 들어야겠지? 네 주장이나 생각 같은 건 있어서는 안 돼. 알아들어?”임호는 입이 피투성이라 말하는 것도 아팠다.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네, 아가씨.”원지민은 뭐나 생각난 듯 차갑게 물었다.“임세희 쪽은 가서 알아봤어?”“알아봤습니다. 아직 안에서 치료받는 중입니다. 다음 달 판결 예정이라고 합니다.”원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입막음은 잘 해뒀지?”“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예 혀를 잘라버렸는데 혼비백산해서 이미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입니다.”임호는 병원에서 선수를 쳤다. 야밤에 병원으로 잠입해 임세희의 혀를 자르면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혼비백산한 임세희는 당장에 바지에 실수하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정말 미친 거라면 임세희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걸 빌미로 며칠 더 살다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원지민은 임세희의 처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뒤처리만 깔끔히 하면 된다는 취지였다.사실 원지민도 아직은 임세희가 죽는 게 싫었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이용할 셈이었기 때문이다.임세희는 죽음도 가치 있는 죽음이어야 했다.원지민은 임호의 손을 야무지게 지르밟더니 욕설을 퍼부었다.“꺼져.”임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이런 대우를 받고도 눈빛은 여전히 미련 가득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굽신거리며 방에서 나갔다.원지민은 임호의 충심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면 시중들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임호는 생긴 것도 꽤 잘생겼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는 준수하면서도 튼튼해 보였고 짐승미가 다분한 터프가이 같았다.신분만 바꾼다면 원지민도 그를 거들떠봤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임호는 비천한 신분을 가졌기에 시중을 드는 데에만 만족해야 했다.원지민은 거울 앞으로 걸어가 옷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는 하얀 뱃가죽을 내려다보았다.만삭
아주 예의 바른 볼 키스였기에 사실 정상이었다. 외국에서는 흔한 인사였다.하지만 윤혜인이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돌렸다. 그러더니 곽아름의 볼을 꼬집으며 이준혁의 품에서 내렸다.“엄마가 안 아프다고 했잖아. 얼른 손 씻고 와서 아침 먹어야지.”곽아름은 살짝 실망했지만 이준혁과 같이 밥 먹는다는 생각에 그래도 기뻤다.하여 잽싸게 대답했다.“알겠어요. 엄마.”곽아름이 자리를 비우자 윤혜인이 얼굴을 굳히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이준혁 씨, 도대체 뭐 하자는 거죠?”윤혜인이 내비치는 거리감과 적대감에 이준혁은 가슴이 찢기는 것처럼 아파져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름이랑 아침 먹고 싶어서.”윤혜인은 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았다.이준혁이 찾아온 목적은 얼굴에 쓰여있을 만큼 선명했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곽아름을 핑계 삼아 그녀에게 접근하려고 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윤혜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그저 준혁 씨가 아름이의 상 하굣길에 동행하는 것만 동의했을 뿐이지 우리 생활까지 공유하겠다고 한 적은 없어요.”우리라는 단어에는 이준혁을 아예 포함하지 않고 있었다.이준혁은 목구멍이 막혀왔지만 진심으로 말했다.“혜인아, 난 정말 그냥 아름이랑 더 같이 있고 싶을 뿐이야.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을 놓쳐버려서 더는 한 순간도 낭비하기가 싫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아름이 자주 보게 해줘.”당연히 곽아름뿐만 아니라 윤혜인도 보고 싶었다.하지만 이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우 한걸음 가까워졌는데 다시 망칠 수는 없었다.만약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윤혜인은 곽아름도 만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윤혜인은 이준혁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에 이준혁도 곽아름을 뺏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기에 윤혜인도 부녀의 만남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이준혁은 꼴 보기 싫었지만 곽아름이 실망하는 것도 싫었다.잠깐 고민하던 윤혜인도 더는 뭐라 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밥 먹고 얼른 가요.”이준혁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표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