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머리가 무거운 물건에 맞은 적이 있다고요?”이준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네. 몇 년 정도 됐을 겁니다. 피멍은 크지 않지만 위치가 위험해서 수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순식간에 이준혁의 차가운 입술에서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피가 몇 년 동안 고여 있었다.이준혁은 윤혜인이 곽씨 가문에서 무슨 일을 당했다고 의심하진 않았다.곽경천은 윤혜인을 진심으로 예뻐했고 그도 그걸 보아낼 수 있었다.윤혜인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렇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5년 전이다.교통사고로 강에 빠졌을 때 입은 상처.그는 가슴이 아파오면서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다.강에 빠진 후 무엇을 겪었는지 생각하기가 두려웠다.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그러나 그때 이준혁은 윤혜인을 모르는 척 그저 스쳐 지나갔다.그는 마치 망치로 세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자기의 머리를 감싼 채 그는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큰 소리가 들렸다.이준혁의 크고 우람한 몸이 맥없이 쓰러졌다.“대표님!”주훈이 달려와 의사에게 외쳤다.“빨리 우리 대표님을 살려주세요, 알 수 없는 액체를 맞았어요.”방금 경찰이 보낸 감시 카메라에서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준혁이 윤혜인을 찌르는 주사기를 잡은 것을 똑똑히 보았다... 윤혜인은 온 하루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다.그녀의 머리는 아주 말짱했다.이준혁의 잔인함, 외할머니의 죽음, 잃어버린 그 아이... 그리고 모든 것.마치 비극영화처럼 윤혜인의 머릿속에서 재생됐다.모든것이 기억났다.기억을 되찾았지만 그녀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뿐이었다.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이준혁 때문에 윤혜인은 많은 것을 잃었다.하지만 기억을 잃은 그녀는 다시 이준혁과 얽혔다.윤혜인은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냐고 생각했다.이때 문이 열리며 배남준이 들어왔다.그녀가 눈을 뜬 것을 보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혜인아, 일어났어?”윤혜인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몸은 좀 어때?”배남준이 물었
윤혜인은 배남준의 얼굴에서 문제를 알아봤다.“남준 오빠, 이 도안을 아세요?”“네가 이 도안을 어떻게 아는지 먼저 말해봐.”윤혜인은 그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나를 다치게 했던 사람 팔뚝에 있던 문신이에요.”“널 다치게 한 사람? 다 기억이 난 거야?”배남준이 놀라 했다.윤혜인은 배남준을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널 해친 사람은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일어난 일을 나한테 처음부터 말해봐 봐.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배남준이 물었다."그때 일을 한번 나한테 말해 봐,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윤혜인이 기억을 더듬었다.그때 그 운전사는 차량에 강한 빛 반사 때문에 차를 들이박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강한 빛은 평범한 차의 빛이 아니었다.뒷좌석에 앉아 있어 비치지 않았지만 그 운전사가 차를 박은 후 엄청난 충격으로 뒷좌석으로 밀려났을 때 윤혜인은 운전사의 두 눈에서 피가 나고 눈동자가 하얗게 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분명히 누군가가 특수 수단으로 운전자의 눈을 멀게 해서 사고를 낸 것이었다.뒤에서 구급차가 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때 갑자기 창가에서 누군가가 팔을 뻗더니 망치로 윤혜인의 머리를 세게 쳤다.그녀는 난간에 매달렸지만 차는 그대로 강물에 빠졌다.정신을 잃기 전 윤혜인은 마스크를 쓰고 이국적인 눈만 드러낸 남자를 보았다.그리고 남자의 팔에 있는 배지, 그리고 배지 정중앙에 점이 하나 있었다.배남준이 듣고 나서 몇 초 동안 표정이 굳어있었다.“찰스 가문의 배지야.”찰스 가문은 배씨 가문처럼 아주 큰 가문이었다.몇 년 전부터 줄곧 배씨 가문의 아래에 있었다.배씨 가문을 이길 수 없었던 이유는 배씨 가문처럼 튼튼하지 않은데다가 배씨 가문은 재력이 풍부하여 용병을 많이 모집하여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최근 몇 년 동안 가문 형제들의 말에 의하면 찰스 가문은 북안을 제외한 다른 세력의 도움을 받아 몰래 배씨 가문을 우르고 북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나았다.배남준이 말했다.“만약 그 사람이 아직 찰스 가문에 있다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야.”“그래요, 고마워요. 남준 오빠.”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얌전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배남준은 윤혜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이내 그러한 행동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손을 반쯤 들다 멈췄다.“혜인아, 경찬이가 없을 때는 무슨 일이든 나한테 말해. 알았지?”배남준이 미소 지었다.“내 앞에서는 예의 차릴 필요 없어.”그러자 윤혜인이 짧게 대답하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당부했다.“오빠, 내 기억이 돌아왔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줘요. 우리 오빠가 돌아오면 그때 말할게요.”그녀는 지금 머리가 복잡했고 많은 세부 사항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기억을 되찾기 전후의 일들을 정리하기에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배남준이 고개를 끄덕였고 시간이 늦어졌기에 도시락을 들고 말했다.“일찍 쉬어, 내일 올게.”그러고는 자리를 떠나며 여은에게 윤혜인을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전에는 괜찮았지만 윤혜인이 찰스 가문에게 주목받았던 걸 알게 된 후, 그의 마음속엔 항상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다음 날.잠에서 깬 윤혜인은 운동 준비를 했다.하지만 막 두 걸음 정도 걸었을까 귀에 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우유 냄새가 나는 작은 아이가 윤혜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윤혜인은 마음이 따뜻해져 아름이를 안았다.“우리 아가...”홍 아줌마가 뒤따라 들어오며 아름이를 안고 있는 윤혜인을 보고 말했다.“아름아, 내려와서 놀자. 엄마 피곤하게 하지 말고.”그러자 아름이는 그 말을 듣고 내려가려고 발버둥 쳤다.윤혜인은 아름이를 안고 앉아서 아이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괜찮아, 엄마는 괜찮아.”홍 아줌마는 설명했다.“아름이가 아침에 악몽을 꾸고 엄마가 위험에 처했다고 우는 바람에 배 대표님 차를 타고 여기 왔어요. 안심시키려고.”윤혜인은 아름이의 코끝을 다정하게 비비며 부드럽게 말했다.“아름아, 이제 마음
이준혁은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고 그 상태로 무려 사흘이나 지났다.이상한 것은 병원에서도 그에게 주사된 약물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고 그의 몸 상태는 완전히 멀쩡했다.왜 사흘이나 깨어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도 불가능했다.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점이었다.주사기에 남아 있던 물질을 검사해 보았으나 흔한 일산화이수소만 검출되었다.즉, 그냥 물이라는 소리다.주훈은 노련한 전문가를 불러 진단을 받게 했지만 역시 몸에는 문제가 없었고 충분히 자면 깨어날 것이라는 답변뿐이었다.성준도 해외의 전문가들을 불러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주훈은 어쩔 수 없이 이준혁을 지키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이준혁의 지시 없이 주훈은 그의 가족에게 알릴 수 없었고 오직 김성훈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의학 교수이기도 한 김성훈에게 이준혁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심이 되었으니 말이다.잠에서 깨어난 이준혁은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창백한 얼굴로 그는 속눈썹을 살짝 움직이며 방 안의 빛에 적응하려고 애썼다.그러고는 본능적으로 그 모습을 찾았다.그러다 이준혁의 눈 앞에 한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대표님, 깨어나셨습니까?”주훈이 기뻐하며 말했다.“응...”며칠간 말을 하지 않아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매우 쉬어있었다.“다행입니다.”주훈은 눈물이 나올 듯했다.오늘도 깨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쌓인 서류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는 이준혁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숨길 수는 있어도 대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대표님, 그 약물은...”주훈이 주사기의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이준혁이 말을 끊었다.“혜인이는... 어때?”그는 자신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고 깨어나자마자 윤혜인의 상태를 걱정했다.특히 그날 그녀가 그의 품에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이준혁이 걱정하는 듯한 모습에 주훈은 몇 초간 침묵한 후 말했다.“걱정 마세요, 윤혜인 씨는 괜
“혜인이는...”이준혁은 주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언제 깨어났지?”“어제 아침입니다.”“나한테로 왔었나?”그러자 주훈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니요, 아마도 막 깨어나서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겁니다.”이 말은 주훈이 이준혁의 얼굴을 보고 대충 둘러댄 것이다.‘아까는 상태가 완전 좋다더니 이번엔 덜 회복됐다고?’이준혁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 핑계로는 속일 수 없었다.그는 어두운 눈으로 주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주사기 이야기는 혜인이에게 하지 않았지?”주훈은 고개를 저었다.“네. 경찰 쪽에서도 말하지 않았고 김 교수님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이런 일은 주가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 주훈은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래, 혜인이한테 알리지 마.”“대표님, 정말 사모님께 말씀 안 드리실 겁니까?”주훈은 이준혁을 대신해 억울한 지경이었다.그는 분명히 봤다. 만약 윤혜인이 갑자기 발병하지 않았다면 이준혁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주사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대체 이런 일을 왜 알리지 않는 거지?’곧 이준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이런 사소한 일은 혜인이가 알 필요 없어.”그는 그녀가 쓸데없는 걱정을 할까 봐 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그런 생각이 드니 차라리 그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 테니까.주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문이 열리며 김성훈이 들어왔다.그는 얼마 전 주훈의 전화를 받고 이준혁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래서 가장 먼저 와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다.다른 의사들이 다 진단을 마쳤지만 그는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김성훈은 이준혁을 관찰하며 말했다.“임세희가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군.”이준혁의 몸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검사 결과도 포함해서 말이다.임세희가 정말로 단순히 겁을 주려고 한 것일까?그러나 여전히 방심할 수는 없었다.김성훈은 청진기를 거두며 말했다.“네 혈액 샘플을 내 해외
그는 아이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함께 사진을 찍었었다.그리고 이준혁은 사진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아름이랑 내가 닮았다고?”김성훈은 사진 속 아름이의 얼굴을 확대하며 아이의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리켰다.“봐, 이 코, 입, 얼굴형. 어릴 때 너 웃던 모습과 똑같지 않아? 너희 어머니께 여쭤보면 알 거야. 근데 눈은 마치... 마치...”말을 하다 말고 김성훈은 멈칫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혜인 씨! 그래, 혜인 씨의 눈이야!”김성훈은 기억을 되찾고는 농담처럼 말했다.“설마 너희 밖에서 말하는...”말을 다 하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앞을 스쳐 지나갔다.이내 김성훈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준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김성훈은 주훈을 바라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준혁이 뇌 검사했어요?”“대표님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주훈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하지만 교수님께서 방금 대단한 사실을 발견하셨습니다.”‘이게 대체 얼마만의 기쁜 소식이야...’김성훈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설마...”뒤이어 그도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병실 안.배남준은 몇 가지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만 나갈 수 있었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 사과를 깎더니 윤혜인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며 물었다.“이제 기억이 돌아왔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어요.”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자신을 해치려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내는 것이었다.그녀는 이 수수께끼의 인물이 다시 돌아와 자신과 아름이를 해치지 않도록 대비해야 했다.배남준은 물었다.“그럼 이준혁과 재혼할 생각은 있어?”요즘 그녀와 이준혁의 관계가 꽤 좋아 보였고 이번 일도 그가 크게 도와줬기 때문이다.심지어 곽경천도 이준혁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이는 매우 드문 일로 이준혁이 상당한 협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윤혜인은 잠시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기억을 잃었던 기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윤혜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만하면 안 돼? 좀 위험해.”배남준도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아름아, 엄마 말 들어야지. 우리 안전한 놀이 하자.”아름이는 윤혜인과 배남준의 손을 잡아 서로 맞잡게 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손뼉치기 놀이해요!”배남준의 넓고 따뜻한 손이 윤혜인의 손을 감싸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이런 감정에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왜 다른 남자의 손길에 이렇게도 거부감이 드는 거지?’이준혁과는 달랐다. 그의 키스와 포옹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결코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왜 이렇게 다를까...’이준혁은 병실 문 앞에 도착해 그 광경을 보았다.배남준이 윤혜인의 손을 잡고 아름이를 안고 있는 모습,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너무나도 화목해 보였다.마치 그들이 진짜 가족인 것처럼, 자신은 이방인에 불과 한 것 같았다.아름이의 환한 미소는 김성훈의 말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그 아이는 바로 그의 딸이었다!곽경천의 계략과 윤혜인의 기억 상실로 인해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돌이켜보면 아름이는 세 살짜리 아이답지 않게 매우 조리 있게 말했고 윤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반년 만에 곽씨 가문이 그녀에게 남편을 찾아줬다는 것도 어색했다.이 모든 것은 아이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오늘 김성훈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계속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윤혜인은 문 앞에 서 있는 이준혁을 보자 미소가 사라졌다.큰 키를 뽐내며 우뚝 서 있는 그의 눈빛은 매우 어두웠다.그 눈에는 분명히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마치 깊은 슬픔과 고통 같은 것 말이다.윤혜인의 안 좋은 안색을 보고 배남준도 따라서 시선을 돌렸다.곧 이준혁을 보자 그는 오히려 윤혜인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당황한 윤혜인은 본능적으로 배남준의 손을 놓으려 했지만 이내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이 놀라웠다.왜 이준혁에게 자신이 다른 남자와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싫을까 싶어서
순간 당황한 윤혜인은 이준혁의 질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아름이의 옷을 꽉 쥐었고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이준혁은 그녀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속으로 윤혜인이 분명하게 대답해 주기를 바랐다.아름이가 그녀의 딸일 뿐이라고.그럼 그녀 역시 진실을 모르는 것이었을 테니 이준혁은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그를 회피하는 윤혜인의 눈빛과 무의식적인 행동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름이가 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숨기려 했던 것이다.아름이는 이준혁의 품에 안겨 있었고 어른들 사이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다만, 삼촌 대디가 엄마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삼촌 대디 나쁜 사람! 나 놔줘요!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요!”아이는 작은 주먹으로 이준혁의 가슴을 치며 “나쁜 삼촌 대디! 나쁜 삼촌 대디!”라고 반복했다.아이들은 울며 소리를 지를 때 단어를 생략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아름이의 말은 ‘나쁜 대디’로 변해갔다.이 소리를 듣자 윤혜인은 놀라서 아름이를 나무랐다.“아름아, 그런 식으로 부르면 안 돼!”‘대디’라는 호칭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아름이는 엄마가 자신을 나무라자 더 억울해서 이준혁의 품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윤혜인은 당황스러웠다. 아름이를 꾸짖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이준혁의 행동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압적이었던 이준혁은 곧 매우 부드럽게 아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고 있었다.그는 아름이가 조금 덜 울게 된 후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름아, 엄마는 너를 꾸짖은 게 아니야. 나도 너희 엄마랑 싸우는 게 아니고.”그러고는 또 윤혜인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어른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뿐이야.”아름이는 아직 눈물에 젖은 눈으로 흐릿하게 물었다.“진짜요? 대디 우리 엄마 안 괴롭혔어요?”‘대디’라는 호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