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북성 엔터의 백스테이지에 머물며 몇몇 유명 인사들의 마지막 피팅을 도왔다.계속해서 구지윤과 연락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윤혜인은 도지훈에게 전화를 대신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그때 도지훈이 그녀에게 말했다.“혜인 누나, 방금 어떤 남자분이 전화를 하셨어요. 번호에 메모가 없어서 제가 받았어요.”‘남자?’윤혜인의 첫 예상은 이준혁이었다.이준혁 외에는 오빠나 아빠라고 모두 별칭이 저장되어 있었으니 말이다.“뭐라고 하던가요?”도지훈이 대답했다.“그냥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누나가 바쁘다고 했죠.”“그래요, 알았어요.”그때, 총감독이 윤혜인을 찾아와서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윤혜인은 핸드폰을 볼 틈도 없었다.이준혁에게는 누군가 돌봐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매일 영양 수프와 과일을 보내고 있었다.그러니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것은 없었다.그렇게 바쁘게 보내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다.거의 일이 끝나갈 때쯤, 북성 엔터의 대표가 찾아와 윤혜인과 인사를 나누었다.윤혜인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북성 엔터의 대표와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북성 엔터의 대표는 자신을 소개했다.“안녕하세요, 혜인 씨, 저는 성준이라고 합니다.”“안녕하세요, 성 대표님.”“방금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봤는데 혜인 씨의 작업이 정말 특별하더군요. 인상 깊었습니다.”윤혜인이 말했다.“저희 달밤은 전통 한국풍 시리즈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내륙 시장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죠. 무슨 의견이 있으시면 저희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적절히 수정할 수 있습니다.”대부분의 유명 스타들은 외국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처음으로 전통 한국풍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었다.하지만 의견이 있다면, 윤혜인은 전통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수정할 생각이었다.만약 순전히 서양식으로 바꿔야 한다면 차라리 작업을 포기하고 말이다.‘달밤’은 어머니의
윤혜인의 목소리는 떨렸다.“어떻게...”“사흘 동안 혜인 씨가 오지 않아서 대표님께서는 계속 식욕이 없으셨어요. 제대로 식사도 하지 않으셨고 매일 보내주신 수프만 조금씩 드셨죠. 근데 오늘은 수프도 드시지 않고 갑자기 피를 토하셨어요. 의사 말씀으로는 급성 위출혈이라네요...”주훈은 다급히 말했다.“혜인 씨, 가능하시면 지금 당장 와주실 수 있나요?”전화를 끊고 나자 윤혜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손발은 차가웠다.‘이 남자,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내가 안 가면 밥도 안 먹어? 다 큰 어른이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건가? 환자이면서 왜 이렇게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거야.’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도 잘못한 것 같았다.‘내가 돌봐주겠다고 약속해놓고...’윤혜인의 머릿속은 엉망이었고 마음도 불안했다.그래서 얼른 운전사에게 말했다.“병원으로 가요.”병원에 도착했을 때,주훈이 병실 문 앞에서 그녀를 맞이하며 보온병을 건넸다.“대표님은 방금 수액을 맞고 쉬고 계세요. 깨어나면 죽을 좀 드셔야 합니다. 제발 대표님께서 죽을 먹도록 해주세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옆에 죽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준혁은 눈을 감고 있었고 잠들어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사흘 전보다 더 안 좋은 상태였다.윤혜인의 마음이 아팠다.‘안색이 왜 이렇게 점점 더 나빠지는 거야...’그녀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남자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싶어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호흡을 살폈다.숨은 고르게 쉬고 있었고 윤혜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막 손을 거두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이준혁이 미세하게 눈을 뜨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 아직 안 죽었어.”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윤혜인은 손가락을 뽑아내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보온병을 열더니 말했다.“깼으면 죽 좀 먹어요.”그녀는 죽을 잘 퍼서 이준혁의 침대를 올리고 작은 테이블을
윤혜인은 이런 생각에 스스로 질책했다!‘난 정말 의지가 약하다니까... 기억을 잃은 후에도 이 남자한테 마음이 움직이다니...’정말이지 자신에게 화가 나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변명하고 안 온 게 아니에요. 진짜 바빴던 거라고요.”그러자 이준혁은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어제랑 그제도 바빴어?”윤혜인은 당황했다.마치 감시받고 있는 느낌이었다.‘어제랑 그제도 바빴냐는 건 내가 안 바빴는데 일부러 안 왔다는 건가?’그녀는 불쾌하게 물었다.“저 감시하고 있었어요?”“그냥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주 비서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어.”이준혁은 주훈에게 윤혜인의 일정을 확인하게 한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윤혜인이 집에서 강아지와 놀면서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화가 나서 밥도 한 입도 먹지 않았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그래서 위 기능이 떨어지며 급성 위출혈이 발생한 것이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알지?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난 내 모든 시간을 너를 생각하는 데 쓰고 있었어.”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어떻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지? 식은 죽 먹기네 아주.’그때, 이준혁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가슴에 대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여기, 내 마음속에는 너 하나뿐이야. 다른 사람은 들어 올 수 없어.”갑작스러운 고백에 윤혜인의 얼굴은 익은 복숭아처럼 붉어졌다.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손을 빼려 했지만 남자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그의 눈빛은 뜨겁고 진지했다.“혜인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한번만 기회를 줘.”잠시 멍해 있는 것도 잠시 윤혜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한참 만에 그녀는 당황하며 말했다.“안, 안 돼요.”“너도 나를 아직 신경 쓰고 있잖아, 왜 안 돼?”윤혜인은 머릿속이 하얘져서 무심코 말했다.“우리 오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그러자 이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만 받
“뭐라고요?”남자는 갑자기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감싸 안고 살짝 힘을 주어 윤혜인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줄 알았지만 이준혁은 바로 고개를 숙여 윤혜인에게 키스했다.장난스럽게 살짝 건드린 조금 전의 키스와는 다르게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혀를 밀어 넣어 서로의 침을 교환했다.“읍...”윤혜인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온통 외마디 소리뿐이었다.이준혁은 정말이지 키스의 고수였다.그녀는 머리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그렇게 그냥 이준혁의 품에 안겨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키스를 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윤혜인을 놓아주었다.그러더니 잠긴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이게 진짜 키스야.”얼굴이 마치 피가 나올 것처럼 붉어진 채로 윤혜인은 몸을 움직여 그의 무릎에서 내려오려 했다.하지만 그는 그녀를 꽉 껴안으며 낮게 말했다.“조금만 더 안고 있게 해줘. 이틀 동안 못 봐서 너무 보고 싶었어.”사랑이 담긴 말을 전해보니 이제 이준혁은 그 어떤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특히 그 상대가 윤혜인이라면 말이다.그는 평생 하지 않았던 사랑의 말을 그녀에게 전부 해 주고 싶었다.“정말 너를 많이 생각해. 꿈에서도 너를 봤어. 그런데 넌 나를 무시하고...”윤혜인은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비참함과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남자가 이런 낮고 비참한 말투로 말하다니 정말 상상하기 힘들었다.대기업 대표라는 신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윤혜인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라 이준혁은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내일 네가 직접 만든 전복죽을 먹고 싶어.”그는 5년 전 그녀가 만들어준 그 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윤혜인이 직접 만든 것은 그가 먹어본 최고의 전복죽이었다.“전복죽이요?”곽씨 가문에는 도우미가 많은 탓에 윤혜인은 5년 동안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았지만 듣기에는 간단해 보였다.그래서
원지민은 이준혁의 냉정함에 충격을 받았다.그래서 약간 목이 멘 채로 말했다.“준혁아, 하지만...”“하지만은 없어.”이준혁의 목소리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듯 냉정했다.“원지민, 온진그룹에 위기관리 능력조차 없다면 회사의 관리 센터는 인원을 교체해야 할 거야.”“난...”원지민이 더 말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이렇게 하는 거로 하자.”“뚜뚜뚜...”전화는 무정하게 끊어졌다.잠시 후, 주훈이 들어와서 윤혜인을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줬다고 보고했다.이준혁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원지민 아버지의 병에 뭔가 수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해 봐.”원지민의 의도를 꿰뚫고 나니 원래의 신뢰에 금이 가 이준혁은 현재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하고 있었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원지민의 아버지도 그의 편에 섰던 원로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위기관리 시간을 줄 필요가 있었다.하지만 사실이 아니거나 원지민의 핑계라면, 그는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대응할 것이다.주훈은 빠르게 움직여 곧 원지민 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보고서에는 그가 합병증으로 인해 쇼크 상태에 빠졌고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주훈은 보고했다.“병원을 전부 조사해봤습니다. 원지민 씨 부친의 상태는 확실히 심각하고 원지민 씨는 계속 중환자실에 머물며 부친을 돌보고 있습니다.”이준혁은 보고서를 읽어보았다.사실이라면 문제가 없었기에 그는 주훈에게 지시했다.“심혈관 쪽으로 최고의 전문가를 연결해줘, 그분을 치료할 수 있게 말이야.”“알겠습니다.”떠나기 전 주훈은 또 다른 일을 보고했다.“대표님, 금란 뒷골목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 여성이 사망했습니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공지가 나왔는데 외형상 임세희 씨와 일치하지만 완전히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임세희를 금란 뒷골목에 던져놓은 것은 단지 경고에 불과했다.이준혁의 지시에 따라, 주훈은 그녀의 핸드폰을 압수하지 않았다.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피하려면 임세희는 경찰에 신고할 수 있
하지만 원지민은 확신했다. 반달 후에는 확실히 이씨 가문 안주인 자리를 굳히리라는 것을.기분이 하도 나빠 원지민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그래서 VIP 병실 휴게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들어와.”그러자 임호가 즉시 따라 들어왔다.휴게실은 고급스럽고 화려했다.원지민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약간 꼬고 임호를 바라보며 여왕처럼 말했다.“무릎 꿇어. 날 즐겁게 해줘.”임호의 그 무심한 눈빛에 잠깐의 변화가 일었다.곧이어 그는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더니 익숙하게 행동했다.이 순간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임호는 어둠의 섬에서 태어났고 원지민의 부친은 딸의 안전을 위해 많은 돈을 주고 그를 고용했다.원지민의 부친은 어둠의 섬의 충성스러운 죽음의 전사들을 선택했다.그들은 평생 단 한 명의 주인만 섬기니 말이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경호원이 그에게 치명적인 약을 먹일 줄은 몰랐다.그가 어둠의 섬 전사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다.주인이 시키는 대로라면, 설령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라 해도 그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따를 것이다.그래서 임호는 원지민의 가장 더러운 손발이었다.모든 더러운 일들은 임호가 처리했다.그리고 임호가 배신할 걱정도 없었다.죽음의 전사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배신하지 않으니 말이다.벽 속에 흔들리는 그림자 속에서, 한 검은 그림자가 몸을 숙여 기어 다니며 경건하게 주인을 섬기고 있었다.아무런 거리낌 없이 쾌락을 추구하며...모든 일을 마친 후.조금 전 자극을 받은 몸 때문에 원지민은 의자에 앉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말했다.“다음번에는 주의해, 실수하지 않도록.”그녀는 첫 경험을 최고의 가치로 활용하고 싶었다.임호 같은 출신이 천한 사람에게 말고 말이다.그가 잘 섬기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것이다.얼굴이 붉어진 채로 원지민은 조금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임세희는 지금 어떻게 됐어?”임호는 대답했다.“감시하고 있습니다. 죽지는 않
임세희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남자가 어떻게 욕하든 별 반응이 없었다.이 집은 원래도 고물상이 월세를 내고 있었고 그녀도 고물상이 여기로 데려왔다. 아니면 잘 곳도 없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 성병을 고치려 해도 고칠 수가 없었다. 전에 다친 상처가 아물지 못해 점점 덧나고 있었다.절름발이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서야 임세희는 고개를 들었다.반쪽은 아무 문제 없었지만 다른 반쪽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흉측하기 그지없었다.임세희의 얼굴은 길가에 버려졌을 때 차에 치이는 바람에 아스팔트 길에 스치면서 반쪽 얼굴을 아예 날려버리게 되었다.그 고통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임세희는 고통을 참아내며 차주와 사적으로 해결하며 돈을 좀 받아내려 했지만 차주가 기어코 신고해 보험 처리했다.임세희는 경찰에게 잡혀갈까 봐 두려워 고통도 참은 채 도망갔다.그렇게 최적의 치료 시간을 놓친 얼굴은 아물어가면서 울퉁불퉁해졌고 흉측하게만 변해갔다. 인맥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과도 관계를 끊었으니 여기서 밥이나 얻어먹으며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절름발이도 그녀를 내쫓고 싶어 했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임세희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때 문이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임세희는 아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반쪽 얼굴에 금장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눈빛이 독수리처럼 부리부리했다.“복수하고 싶어요?”남자가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저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인가요?”임세희는 상대가 누군지 묻지도 않고 바로 자신을 도울 수 있는지만 물었다.지금 임세희는 얼굴과 몸이 다 망가진 상태였다. 이대로 그냥 잠자코 있기엔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하지만 이준혁은 옆에 보디가드를 많이 두고 있었기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힘들었다.윤혜인도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복수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이런 상황에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
임세희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고층 빌딩과 별장에서 이 더럽고 지저분한 판잣집에 오기까지 쭉 회상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은 바로 다 윤혜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때 강에 빠져서 죽어버렸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살아서 돌아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임세희는 윤혜인을 뼈저리게 증오했다.그 빌어먹을 윤혜인이 꼭 대가를 치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KB 클럽.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곽경천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이준혁에게로 향했다. 이준혁은 늘 그랬듯 외모가 준수했다.“이 대표님 아프다더니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예요? 혜인이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집에서 전복죽 끓이고 있던데. 아주 내 동생을 꽉 잡고 놓아주지를 않네요.”곽경천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이 따듯해진 이준혁은 표정이 살아났다.준수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곽경천은 그 미소가 유난히 눈에 거슬려 코웃음 쳤다.“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건 정말 타고났네요.”이준혁은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니었기에 어딘가 병약해 보였다. 그는 올라간 입꼬리를 다시 내리며 진지하게 말했다.“형님, 오해에요. 저는 절대 혜인이 가지고 논 적 없어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곽경천은 갑자기 날아든 형님이라는 호칭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다.전에 윤혜인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직 책임을 따져 묻지도 못했는데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곽경천이 표정과 말투가 싸늘해졌다.“형님이라고 부르지 마요. 명을 재촉하는 걸로 들리니까.”까만 보석 같은 이준혁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인내심 있게 곽경천의 비아냥을 받아줬다. 자세를 낮추는 표현이기도 했다.하지만 곽경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렸다.“그 마음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살아있는 한 내 동생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까요.”곽경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내 뜻은 잘 전달된 것 같네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