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며 서현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그는 소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가 유진이를 바라볼 때의 눈빛은 마치 달빛처럼 부드러웠다.그런데 왜 유독 그에게는 이리도 냉정할까.“그 사람 때문인가요?”서현재는 소원의 입술과 목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뚜렷한 흔적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었다.스스로를 속일 수도 없었다.서현재의 눈빛에 소원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그래서 마치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손을 들어 머리카락으로 목을 가리려 했다.잠시 동안 그녀는 해명하려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을 멈추었다.그러고는 포기한 듯 그 흔적을 서현재의 눈앞에 훤히 드러내었다.“그 사람과는 상관없어. 그냥 네가 싫은 거야, 그러니까 헛된 노력은 그만해.”소원은 이 말을 하면서 서현재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눈을 감고 모든 감정을 억누르며 서현재가 떠나는 발소리를 기다렸다.서현재는 재능이 뛰어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그녀가 이 얇은 막을 깨뜨리기만 하면 그는 결코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마침내, 그녀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그 순간, 소원은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방금 그녀는 서현재의 출신을 비하하는 듯한 말을 일부러 해서 그가 오해하도록 만들었다.사실 서현재와 비교하면 자신이 더 비참한 존재인데 말이다.‘현재는 나를 떠나야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야.’그는 더 빛나는 삶을 살아야 했다.사방의 작은 이런 도시에 갇혀 그녀의 복수심을 대신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육경한 같은 미친 사람이 그녀가 하려는 일을 알게 된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누구도 연루시키지 않기로 결심했다.‘적응 안 될 것도 없지. 난 원래부터 혼자였으니까... 혼자 버텨야 하고 혼자 살아야 하고 난 혼자 죽어야 해...’소원은 스
가까운,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소원은 그제야 서현재의 촉촉하게 붉은 입술이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이미 매우 가까웠지만 서현재는 더 다가왔다.순간, 소원의 심장이 북처럼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그의 자세는 마치 입을 맞추려는 것 같았다.당황한 소원이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지만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서현재가 그녀의 눈을 가볍게, 부드럽게 불어준 것이었다.“호 하면 안 아파요.”이 말에 소원의 눈에서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아주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도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착한 우리 아가, 호 하면 안 아파...”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그 고통스러운 슬픔이 그녀의 유리 같은 눈동자에서 흘러나왔다.서현재는 소원의 팔을 잡고 갑자기 힘을 주더니 그녀를 힘껏 안았다.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소원의 귓가에 한마디가 들려왔다.“안 돼요.”소원은 몸이 굳어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뭐가?”“전 헛된 노력을 하는 게 아니에요.”서현재는 계속해서 말했다.“전 누나를 좋아하는 게 확실해요. 지금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기다릴 수 있어요. 하지만 누나를 떠나는 건 안 돼요.”소원이 흔적을 감추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서현재는 상처받고 실망하며 떠났을 것이다.하지만 무의식적인 행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소원은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고 그는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이 순간, 소원은 매우 두려웠다.그의 진심 어린 고백은 그녀에게 전에 없던 공포를 안겼다.서현재의 맑은 눈빛을 그녀는 감당할 수 없었다.그래서 소원은 자신이 마치 로봇이 된 것처럼 무감각하게 말했다.“난 널 좋아하지 않아. 이미 말했잖아.”“괜찮아요. 제가 누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서현재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하고, 집요했다.소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서 흘러내렸다.그녀의 상처투성이의 마음은 이 무거운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다.결국 그녀가 흐느꼈다
윤혜인은 병원에서 나온 후 일로 바삐 보내며 머릿속의 혼란을 떨쳐냈다.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이준혁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받았지만 하는 말은 전부 형식적이었다.일이 바빠서,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접대 중이라서 등등 말이다.이런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을 이틀 연속으로 반복했다.윤혜인은 자신이 변심한 나쁜 여자처럼 느껴져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셋째 날, 이준혁은 화를 참고 전화를 걸지 않았다.오후가 될 때까지도 참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오늘 올 거야?]문자를 보내고 나서, 김성훈이 어제 단체 채팅방에 올린 기사가 생각났다.기사에는 ‘여자는 다정한 말을 좋아하니, 당신의 사랑을 아끼지 말고 표현하라'고 적혀 있었다.이준혁은 망설이다가 세 글자를 더 보냈다.문자를 보내고 나서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치 연애를 처음 하는 청소년처럼 사랑하는 여자의 답장을 기다렸다.핸드폰 화면을 한참 바라봤지만 윤혜인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이준혁의 마음속 실망과 불만이 점점 쌓여갔다.자신을 돌봐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사흘째 얼굴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역시 혜인이 말은 믿을 수 없어... 그날 아침 속아서 보내주는 게 아닌데. 한번 떠났다고 이렇게 안 돌아올 줄 알았다면...’이준혁은 점점 화가 났고 결국 참지 못해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전화가 빨리 연결되었다.이준혁은 화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그렇게 바빠?”“안녕하세요.”젊은 남자의 활기찬 목소리에 이준혁은 한순간 당황했다.“누구야?”이준혁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묻어 있었다.“저는 혜인 누나의 비서, 도지훈입니다.”‘비서? 남자 비서?’이준혁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전화 바꿔줘요.”“무슨 일이신지 말씀해 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이 비서가 그녀를 부르지도 않자 이준혁은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냥 전화 바꿔줘요. 내가 직접 말할 거니까.”그러나 비서 도지훈은 거절
그래서 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북성 엔터의 백스테이지에 머물며 몇몇 유명 인사들의 마지막 피팅을 도왔다.계속해서 구지윤과 연락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윤혜인은 도지훈에게 전화를 대신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그때 도지훈이 그녀에게 말했다.“혜인 누나, 방금 어떤 남자분이 전화를 하셨어요. 번호에 메모가 없어서 제가 받았어요.”‘남자?’윤혜인의 첫 예상은 이준혁이었다.이준혁 외에는 오빠나 아빠라고 모두 별칭이 저장되어 있었으니 말이다.“뭐라고 하던가요?”도지훈이 대답했다.“그냥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누나가 바쁘다고 했죠.”“그래요, 알았어요.”그때, 총감독이 윤혜인을 찾아와서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윤혜인은 핸드폰을 볼 틈도 없었다.이준혁에게는 누군가 돌봐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매일 영양 수프와 과일을 보내고 있었다.그러니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것은 없었다.그렇게 바쁘게 보내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다.거의 일이 끝나갈 때쯤, 북성 엔터의 대표가 찾아와 윤혜인과 인사를 나누었다.윤혜인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북성 엔터의 대표와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북성 엔터의 대표는 자신을 소개했다.“안녕하세요, 혜인 씨, 저는 성준이라고 합니다.”“안녕하세요, 성 대표님.”“방금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봤는데 혜인 씨의 작업이 정말 특별하더군요. 인상 깊었습니다.”윤혜인이 말했다.“저희 달밤은 전통 한국풍 시리즈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내륙 시장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죠. 무슨 의견이 있으시면 저희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적절히 수정할 수 있습니다.”대부분의 유명 스타들은 외국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처음으로 전통 한국풍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었다.하지만 의견이 있다면, 윤혜인은 전통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수정할 생각이었다.만약 순전히 서양식으로 바꿔야 한다면 차라리 작업을 포기하고 말이다.‘달밤’은 어머니의
윤혜인의 목소리는 떨렸다.“어떻게...”“사흘 동안 혜인 씨가 오지 않아서 대표님께서는 계속 식욕이 없으셨어요. 제대로 식사도 하지 않으셨고 매일 보내주신 수프만 조금씩 드셨죠. 근데 오늘은 수프도 드시지 않고 갑자기 피를 토하셨어요. 의사 말씀으로는 급성 위출혈이라네요...”주훈은 다급히 말했다.“혜인 씨, 가능하시면 지금 당장 와주실 수 있나요?”전화를 끊고 나자 윤혜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손발은 차가웠다.‘이 남자,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내가 안 가면 밥도 안 먹어? 다 큰 어른이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건가? 환자이면서 왜 이렇게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거야.’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도 잘못한 것 같았다.‘내가 돌봐주겠다고 약속해놓고...’윤혜인의 머릿속은 엉망이었고 마음도 불안했다.그래서 얼른 운전사에게 말했다.“병원으로 가요.”병원에 도착했을 때,주훈이 병실 문 앞에서 그녀를 맞이하며 보온병을 건넸다.“대표님은 방금 수액을 맞고 쉬고 계세요. 깨어나면 죽을 좀 드셔야 합니다. 제발 대표님께서 죽을 먹도록 해주세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옆에 죽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준혁은 눈을 감고 있었고 잠들어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사흘 전보다 더 안 좋은 상태였다.윤혜인의 마음이 아팠다.‘안색이 왜 이렇게 점점 더 나빠지는 거야...’그녀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남자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싶어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호흡을 살폈다.숨은 고르게 쉬고 있었고 윤혜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막 손을 거두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이준혁이 미세하게 눈을 뜨고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 아직 안 죽었어.”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윤혜인은 손가락을 뽑아내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보온병을 열더니 말했다.“깼으면 죽 좀 먹어요.”그녀는 죽을 잘 퍼서 이준혁의 침대를 올리고 작은 테이블을
윤혜인은 이런 생각에 스스로 질책했다!‘난 정말 의지가 약하다니까... 기억을 잃은 후에도 이 남자한테 마음이 움직이다니...’정말이지 자신에게 화가 나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변명하고 안 온 게 아니에요. 진짜 바빴던 거라고요.”그러자 이준혁은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어제랑 그제도 바빴어?”윤혜인은 당황했다.마치 감시받고 있는 느낌이었다.‘어제랑 그제도 바빴냐는 건 내가 안 바빴는데 일부러 안 왔다는 건가?’그녀는 불쾌하게 물었다.“저 감시하고 있었어요?”“그냥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주 비서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어.”이준혁은 주훈에게 윤혜인의 일정을 확인하게 한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윤혜인이 집에서 강아지와 놀면서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화가 나서 밥도 한 입도 먹지 않았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그래서 위 기능이 떨어지며 급성 위출혈이 발생한 것이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알지?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난 내 모든 시간을 너를 생각하는 데 쓰고 있었어.”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어떻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지? 식은 죽 먹기네 아주.’그때, 이준혁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가슴에 대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여기, 내 마음속에는 너 하나뿐이야. 다른 사람은 들어 올 수 없어.”갑작스러운 고백에 윤혜인의 얼굴은 익은 복숭아처럼 붉어졌다.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손을 빼려 했지만 남자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그의 눈빛은 뜨겁고 진지했다.“혜인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 한번만 기회를 줘.”잠시 멍해 있는 것도 잠시 윤혜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한참 만에 그녀는 당황하며 말했다.“안, 안 돼요.”“너도 나를 아직 신경 쓰고 있잖아, 왜 안 돼?”윤혜인은 머릿속이 하얘져서 무심코 말했다.“우리 오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그러자 이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만 받
“뭐라고요?”남자는 갑자기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감싸 안고 살짝 힘을 주어 윤혜인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무슨 말을 하려고 그런 줄 알았지만 이준혁은 바로 고개를 숙여 윤혜인에게 키스했다.장난스럽게 살짝 건드린 조금 전의 키스와는 다르게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혀를 밀어 넣어 서로의 침을 교환했다.“읍...”윤혜인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온통 외마디 소리뿐이었다.이준혁은 정말이지 키스의 고수였다.그녀는 머리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그렇게 그냥 이준혁의 품에 안겨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키스를 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윤혜인을 놓아주었다.그러더니 잠긴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이게 진짜 키스야.”얼굴이 마치 피가 나올 것처럼 붉어진 채로 윤혜인은 몸을 움직여 그의 무릎에서 내려오려 했다.하지만 그는 그녀를 꽉 껴안으며 낮게 말했다.“조금만 더 안고 있게 해줘. 이틀 동안 못 봐서 너무 보고 싶었어.”사랑이 담긴 말을 전해보니 이제 이준혁은 그 어떤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특히 그 상대가 윤혜인이라면 말이다.그는 평생 하지 않았던 사랑의 말을 그녀에게 전부 해 주고 싶었다.“정말 너를 많이 생각해. 꿈에서도 너를 봤어. 그런데 넌 나를 무시하고...”윤혜인은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비참함과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남자가 이런 낮고 비참한 말투로 말하다니 정말 상상하기 힘들었다.대기업 대표라는 신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윤혜인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라 이준혁은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내일 네가 직접 만든 전복죽을 먹고 싶어.”그는 5년 전 그녀가 만들어준 그 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윤혜인이 직접 만든 것은 그가 먹어본 최고의 전복죽이었다.“전복죽이요?”곽씨 가문에는 도우미가 많은 탓에 윤혜인은 5년 동안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았지만 듣기에는 간단해 보였다.그래서
원지민은 이준혁의 냉정함에 충격을 받았다.그래서 약간 목이 멘 채로 말했다.“준혁아, 하지만...”“하지만은 없어.”이준혁의 목소리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듯 냉정했다.“원지민, 온진그룹에 위기관리 능력조차 없다면 회사의 관리 센터는 인원을 교체해야 할 거야.”“난...”원지민이 더 말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이렇게 하는 거로 하자.”“뚜뚜뚜...”전화는 무정하게 끊어졌다.잠시 후, 주훈이 들어와서 윤혜인을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줬다고 보고했다.이준혁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원지민 아버지의 병에 뭔가 수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해 봐.”원지민의 의도를 꿰뚫고 나니 원래의 신뢰에 금이 가 이준혁은 현재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하고 있었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원지민의 아버지도 그의 편에 섰던 원로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위기관리 시간을 줄 필요가 있었다.하지만 사실이 아니거나 원지민의 핑계라면, 그는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대응할 것이다.주훈은 빠르게 움직여 곧 원지민 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보고서에는 그가 합병증으로 인해 쇼크 상태에 빠졌고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주훈은 보고했다.“병원을 전부 조사해봤습니다. 원지민 씨 부친의 상태는 확실히 심각하고 원지민 씨는 계속 중환자실에 머물며 부친을 돌보고 있습니다.”이준혁은 보고서를 읽어보았다.사실이라면 문제가 없었기에 그는 주훈에게 지시했다.“심혈관 쪽으로 최고의 전문가를 연결해줘, 그분을 치료할 수 있게 말이야.”“알겠습니다.”떠나기 전 주훈은 또 다른 일을 보고했다.“대표님, 금란 뒷골목에서 화재가 발생해 한 여성이 사망했습니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공지가 나왔는데 외형상 임세희 씨와 일치하지만 완전히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임세희를 금란 뒷골목에 던져놓은 것은 단지 경고에 불과했다.이준혁의 지시에 따라, 주훈은 그녀의 핸드폰을 압수하지 않았다.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피하려면 임세희는 경찰에 신고할 수 있
아줌마가 보낸 건 유진의 근황 사진이었다. 옷도 계절에 맞춰 입었고 얼굴도 발그스름한 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소원은 약간 게걸스럽게 사진 속 유진을 바라봤다. 전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때 유진을 보면 육경한이 떠올라 유진을 만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유진을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육경한에 대한 원망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두 감정이 섞여 있으니 소원은 정서가 안정적인 엄마가 될 수 없었다.심리상담 주치의는 소원에게 유진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소원이 테스트를 통과해 아이 앞에서 정서를 안정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같이 지내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고 소원은 그 말에 따랐다.떨어져 지낼 때면 소원은 사진으로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하여 매번 새로운 사진을 보내올 때마다 그 어떤 디테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보고 또 봤다.소원은 아줌마가 보내온 사진을 부드럽고 따듯한 표정으로 만지작거렸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육경한이 아이를 잘 돌볼 수만 있다면 양육권을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 그저 이렇게 뒤에서 유진의 성장을 지켜보며 유진이 보고 싶다고 하면 가끔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지금 이런 상태도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 유진은 환경에 잘 적응해서 그런지 소원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에 소원은 유진이 새로운 가정을 더 좋아해 정서가 불안정한 엄마를 싫어하게 된 게 아닌지 걱정하며 마음이 씁쓸해지기 시작했다.이제 멀리서 유진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만약 유진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면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았지만 정말 그날이 온다면 별수 없이 손을 놔야 할 것이다.소원은 유진을 아이로 보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한 개체로 보며 유진을 존중하고 유진의 모든 생각을 존중했다. 사진을 조금 더 보고싶어 유진의 귀여운 얼굴을 만지작거리다 의도치 않게 사진의 아랫부분이 확대되었다. 소원의 얼굴을 보고싶어 다시 위로 올리려던 소원이 눈을 무언가가 갑자기 끌어당겼다.
엄마와 같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유진의 얼굴도 부드러워지고 밝아졌다. 방민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사진을 찍더니 아이를 육씨 저택으로 보내주고는 시터가 아이를 씻기는 것까지 기다렸다가 육경한에게 답장했다.“경한 씨, 미안해요. 유진이랑 놀아주느라 핸드폰 확인을 못 했네요. 씻기고 침대에 눕히니 이제 조금 확인할 시간이 나네요. 내게 가정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방민아는 유진이 진심으로 좋아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육경한에게 보내주더니 시터에게 눈치를 주자 시터가 방민아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방민아는 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가서 이렇게 물었다.“그 아줌마 요 며칠 좀 어때요?”방민아가 물은 아줌마는 전에 소원이 유진을 보살펴달라고 위탁한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유진에게 진심이었기에 절대 유진을 해치지 않았고 돈으로 매수될 사람도 아니었다.하여 방민아는 그 아줌마가 먹는 식수와 음식에 다른 사람은 쉽게 발견하지 못할 미량의 독을 탔고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쓰러진 것이었다. 그러다 더는 유진을 보살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자 방민아가 제일 좋은 의사를 불렀지만 의사도 여전히 무슨 질병인지 알지 못했고 그저 위장에 문제가 생겼다고만 했다.아줌마는 소원의 위탁을 받았는지라 몸이 아픈 와중에도 유진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옆에 꼭 붙어있으려 했다. 유진은 이제 아줌마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 소원 못지않게 유진을 챙기고 보호했다.방민아는 아줌마가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자 유진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다는 이유로 별장 뒤에 있는 창고에서 지내게 했고 사람과 의사를 보내 아줌마를 보살폈기에 다른 사람은 전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고 소종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을 보고할 때면 늘 방민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시터가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얼마 안 남은 것 같아요. 아마 다음 달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방민아의 눈빛이 살짝 빛나더니 웃으며
유진이 처음 왔을 땐 정말 말 그대로 고슴도치 같았고 평소 그를 보살펴주던 시터와 아줌마 외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게 했을뿐더러 원망이 담긴 눈빛으로 모두를 쏘아봤는데 지금은 아예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변화라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육경한의 눈동자가 깊어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종은 최근 방민아가 집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했다. 유진을 보살피던 아줌마가 갑자기 병이 도지는 바람에 계속 휴가를 내고 쉬는 중이라 방민아가 매일 육씨 저택으로 가서 유진과 늦게까지 시간을 보낸 덕분에 유진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게다가 육씨 저택은 유진이 올 때부터 데려온 아줌마 외에 전문적인 시터 두 명을 따로 들였기에 방민아가 유진을 해칠 걱정도 없었다.“방민아 씨 아이를 꽤 잘 다루는 것 같아요. 가정 심리 주치의도 작은 도련님 진료를 보고는 진보가 크다며 매우 만족해하셨거든요.”소종의 말에 육경한이 시선을 축 늘어트린 채 방민아가 요 며칠 보낸 안부 문자를 확인했다. 많이 보낸 건 아니었고 하루에 한두 개 정도, 그것도 다 육경한의 몸을 걱정하는 문자지 다른 걸 묻지는 않았다.유진의 사진도 틈틈이 보내왔다. 유진이 진흙을 가지고 노는 사진, 책을 보는 사진, 뭔가를 손으로 만드는 사진, 그리고 밥 먹는 사진까지... 진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긴 했다.육경한이 잠깐 생각하더니 답장을 보냈다....한편, 차 안에 있는 유진은 얌전하고 부드럽던 아까와는 달리 방민아를 살짝 무서워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이모, 나랑 약속했잖아요. 말도 잘하고 행동도 예쁘게 하면 엄마 보여주겠다고.”방민아도 아까와는 달리 차가운 표정으로 훈계했다.“조금 더 노력해야지. 아빠가 진짜 만족해야만 엄마 볼 수 있어.”유진은 금세 김이 빠졌다. 원래도 내향적인 성격이었기에 아까 그 연기가 살짝 버거웠지만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노력했다.왜냐하면 방민아가 육경한을 아빠라고 부르고 아빠와 몇 마디 대화해 아빠를 기쁘게 해주면
육경한은 방민아의 유도가 유진의 반감을 살까 봐 입을 열려는데 유진이 한발 빨랐다.“몸은 좀 나아졌어요?”나지막한 목소리는 어딘가 주눅이 들어있었지만 유진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다시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아빠.”이 말에 병실 안이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방금... 뭐라고?”육경한은 믿을 수가 없어 큰소리로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아 최대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이 착하지... 다시 한번 말해봐.”육경한이 흥분하자 유진이 살짝 놀랐는지 머리를 방민아 뒤로 숨기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방민아가 다시 쪼그리고 앉아 유진과 눈을 맞추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유진아, 우리 아까 한 말 다시 아빠한테 들려주는 게 어떨까?”유진이 방민아와 육경한을 번갈아 보더니 입술을 오므린 채 이렇게 말했다.“많이 좋아졌요? 아빠.”이 목소리는 전보다 컸고 전보다 뚜렷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상처가 찢어져 너무 아팠지만 육경한은 꾹 참으며 유진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유진아... 아빠 괜찮아.”육경한에겐 머리를 만져주는 게 그가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었다. 어릴 때 육경한의 아버지가 육경한을 격려할 때도 머리를 쓰다듬어줬기에 육경한에겐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일종의 인정이자 칭찬이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육경한은 자기 자신을 꼭꼭 싸맨 상태였고 괴물로 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원한에 사로잡힌 육경한은 가족 간의 사랑이나 윤리 도덕은 안중에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유진이 아빠라고 부르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 소리는 그동안 육경한이 저지른 수많은 죄를 씻어내리는 천사의 목소리와 같아 육경한은 눈시울을 붉히며 작게 기침했다.“민아 씨, 여기 아이가 있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에요. 일단 유진이 데리고 돌아가요.”“그래요. 경한 씨. 몸조리 잘해요. 국 좀 가져왔는데 이따 챙겨 먹어요.”방민아가 테이블에 놓인
육경한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이었다. 침대에 누운 육경한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아직 창백했고 입술 색도 참담하기 그지없었다.안으로 들어온 소종은 육경한이 문 쪽을 보며 멍때리는 걸 발견했다. 육경한이 멍때리는 건 아주 드문 장면이었기에 소종은 순간 그런 육경한이 마음이 아팠지만 육경한이 실망할까 봐 어색하게 부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했다.“소원 씨 어제 병원에 같이 왔다가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니까 그때 갔어요. 많이 피곤해 보였는데 집에 가서 쉬는 게 맞을 것 같더라고요.”소종의 말은 내용은 사실이었지만 앞뒤 순서가 바뀌어 있었고 흐릿한 게 맥이 없었다. 그래도 소종은 음울해 보이는 육경한이 걱정되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졌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대표님, 소원 씨 그래도 많이 감사해하더라고요. 그때 그 산길에서도 목숨 걸고 대표님을 끌어올린 걸 보면...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됐어. 너 나가.”육경한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는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고 소원이 어떤 태도인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10번, 100번을 더 구해도 소원은 전혀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소원이 육경한에 대한 원한은 육경한을 깊숙한 지옥에 빠트려도 모자랄 정도의 그런 원한이었다.게다가 산길에서 만약 소원이 육경한을 알아봤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소원이 육경한을 해치려 한다는 게 아니라 살려야 하는 사람이 육경한이라면 아마 망설였을 것이다.소원은 늘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육경한을 죽일 듯이 원망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구한 육경한을 나 몰라라 하지는 못했을 테고 육경한을 살리면 그런 자신이 밉겠지만 살리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기에 어떤 선택을 하든 소원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육경한은 왜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소원이 영원히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런 일로 엮일 때마다 서로 힘들어했지만 육경한은 소원을 아직 놓아주기
그렇다는 건 서현재가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 행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일단은 다시 계획을 짜보기로 다짐하고는 소종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에는 함께 따라온 의사가 육경한에게 간단한 구급 조치를 하고 있었다.육경한은 의사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지만 소종까지 그럴 수는 없었기에 가정 주치의를 불러 같이 왔다. 의사는 육경한의 상처를 처치해 주며 지혈했지만 빨갛게 물든 셔츠가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소종이 나지막한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소원을 노려봤다. 가는 길에 적어도 백번은 소원을 째려보더니 뭔가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하자 응급 의사가 허둥지둥 달려와 육경한을 데리고 들어가며 상처를 확인했다. 새로운 상처가 새로 난 상처와 겹쳐 너무 흉측해 의사가 놀란 나머지 신고할 뻔했지만 소종이 제때 해석하며 산에서 입원했던 증명과 사건 기사를 의사에게 보여준 덕분에 의사는 비로소 신고할 생각을 버리고 육경한을 응급실로 데려갔다.소종은 마음이 답답했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른 의사에게 소원도 검사해달라고 했지만 소원이 거절했다.“나는 됐어요. 지금 바로 돌아가 봐야 해요.”소원이 말했다.“어딜 돌아간다는 거예요?”소종이 경계하며 말했다.“서씨 가문에 제 발로 죽으로 들어가려고요?”소종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젠장, 애초에 당신을 구하는 게 아니었는데. 대표님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당신이 다시 서진태에게 잡히면 정말 서진태 손에 죽을지도 몰라요.”소원이 그런 소종을 바라보며 말했다.“아까는 고마웠어요. 하지만 내가 죽으러 가든 아니든 소종 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소종은 도무지 소원이라는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그때 소원이 한마디 덧붙였다.“육경한 깨어나면 고마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얘기해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예전에 저지른 일들이 잊히는 것도 아니고 원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아무는 것도 아니니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요.
서진태는 여전히 느긋한 표정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소 비서, 소원 씨가 우리 집 액세서리를 훔친 건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이렇게 데려가면 안 되죠.”“어르신, 후과는 생각해 보셨어요?”소종은 육경한을 꽤 오래 따라다녔기에 표정을 굳히면 육경한의 모습이 살짝 보였고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서진태는 살짝 겁이 났지만 소종은 하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만약 육경한의 비서가 아니면 이렇게 눈길을 줄 일도 없이 바로 혼내주고 내쫓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침착한 척했다.“어르신, 저는 일개 서민일 뿐이라 어르신이 무슨 꿍꿍이를 펼치려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 대표님은 아니에요. 우리 대표님 앞에서 그런 얕은수를 썼다고 생각해 보세요, 승산이 얼마나 될 것 같으세요?”소종이 차갑게 웃으며 말하자 서진태가 화들짝 놀라며 식은땀을 흘렸다. 육경한은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 누구보다 총명할뿐더러 수단도 좋았다.오늘은 소원을 어쩌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서진태는 얼른 기회를 잡았다.“소 비서, 오해에요. 우리가 소원 씨를 남긴 건 다 좋은 뜻이 있어서 그래요.”서진태가 억지로 웃자 얼굴에 잡힌 주름은 파리를 잡아도 될 만큼 깊었다.“그저 이 일을 확실하게 조사해서 소원 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거예요. 얼마나 큰일인데 소원 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할 수는 없잖아요.”짬밥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서진태가 한 말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참 잘했다.소종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기에 서진태가 뭔가를 꾸민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정확히 뭘 꾸미는지 몰라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건 기억하고 차갑게 웃었다.“어르신, 그 말은 대표님이 깨어나시면 직접 하세요. 서씨 가문과 육씨 가문 사람이 결혼했다 해도 하고 싶은 대로 막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아직 우리 대표님을 몰라도 한참 모르네.”소종의 말에 서진태의 얼굴이 잿빛이 되더니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눈알이 뒤집힐 뻔했다. 비서
분풀이를 마친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눈이 멀어나. 감히 우리 대표님을 때려? 짐승 같은 것들, 내가 오늘 너희들 혼내주지 않으면 소종이 아니라 잡종이다.”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소종이었다.그때 소원의 옆으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려보니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대표님.”소종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육경한을 부축했다. 육경한은 지금 꼴이 많이 처참했는데 하얀 셔츠는 피로 물들었고 전에 차 사고로 다친 상처가 지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덧난 데다가 소원 대신에 몽둥이까지 맞아 다 터지고 말았다.차 사고를 겪으면서 피를 많이 잃었는데 여기서 또 피를 흘리는 바람에 얇은 입술은 무서울 만큼 창백했고 극도로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육경한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몰라 아직도 멍한 상태였다. 보디가드가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그대로 쓰러질 줄 알았는데 육경한이 갑자기 튀어나와 대신 막아준 것이다.소종이 소원을 째려보며 말했다.“소원 씨 때문에 또 이렇게 다쳤네요. 대표님은 정말 소원 씨와 엮어서 좋은 일이 없어요.”소종이 이렇게 말하더니 허리를 숙여 육경한을 업으려 했지만 정신을 잃은 육경한은 소종에게 잘 업히지도 못했다. 이에 소종이 소원을 힐끔 째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좀 도와주면 안 돼요? 대표님이 소원 씨를 몇 번이나 구했는데, 피도 눈물도 없어요?”소원이 멈칫하더니 허둥지둥 육경한을 소종의 등에 업혔다. 그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서진태가 소종의 등에 업힌 육경한을 보더니 놀란 듯 연기하며 말했다.“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어르신, 제 앞에서는 연기하지 않아도 돼요.”소종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소 비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통 못 알아듣겠는데.”서진태가 얼굴을 굳히자 위엄은 여전했다.“허허.”소종이 콧방귀를 뀌었다.“제 기억으로는 대표님이 절대 이 여자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죠? 이 정도로 굵은 몽둥이를 가져왔다는
집사가 대답했다.“소원 씨는 지금 대기실에 갇혀 있습니다.”서진태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톡톡히 손봐주고 던져버려.”서진태는 독벌레가 진귀하지만 않으면 존재 자체가 화근인 소원에게도 한 마리 넣어 뇌를 남김없이 모조리 잠식당하길 바랐다. 엮이면 재수 없는 여자라 이가 바득바득 갈렸지만 다행히 몸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었고 이번 기회에 쌍으로 지옥에나 보내버릴 생각이었다.상황이 종료되자 서진태가 손을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대기실.소원은 여기 갇힌 후로 도무지 나갈 방법이 없었고 서현재가 한 말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상했다. 그 모습은 마치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영혼을 뺏긴 사람 같았고 생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고민하는데 대기실 문이 다시 열렸고 까무잡잡한 보디가드 두 명이 들어오더니 몽둥이를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소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소원이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뭐 하려는 거야?”“뭐 하긴 뭐해? 위쪽 지시를 받고 너 혼내주러 온 거지.”“이거 불법인 거 알아, 몰라.”소원이 매섭게 쏘아붙였다.몽둥이를 잡은 기세를 봐서는 소원을 때려죽이기라도 할 것 같았다. 서진태는 보면 볼수록 음침하고 교활한 노인네였다.“우린 그냥 명령을 받고 결혼식에 물건을 훔치러 온 도둑을 혼내줬을 뿐이야.”보디가드가 한마디 덧붙였다.“결혼식에서 20억짜리 액세서리가 사라졌는데 그 범인이 너야. 지금은 잡힌 거고.”보디가드가 이렇게 말하며 액세서리 몇 개를 바닥에 던졌다.서진태는 소원을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한 것 같았다. 소원은 바닥에 떨어진 액세서리를 보며 넋을 잃었다.“나 아니야. 나는 훔친 적 없어. 이건 모함이야.”보디가드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더니 말했다.“인증도 있고 물증도 있는데 네가 아니라고 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보디가드는 그저 서진태가 시키는 대로 죄명을 소원에게 덮어씌우고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앞으로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