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유진을 혼수상태에서 출산한 후, 2년의 긴 회복 기간을 보냈다.절망에 빠져 생존 의지조차 없었던 그녀는 이제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서현재는 그런 그녀를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지금, 그는 소원이 자신을 향한 태도가 달라지길 바랐다.단순한 가족 간의 의존이 아닌 더 깊은 관계로 말이다.그 맑은 서현재의 눈빛에 소원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서현재는 달랐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소원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현재야, 나 정말 너한테 신세 많이 졌어. 난...”“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 머리 안 말리면 나중에 감기 걸려요.”그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는지라 서현재는 부드럽게 피했다.그러고는 소원의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그들 사이에 있는 장벽을 깨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그는 그녀가 더 이상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비록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소원이라서 그는 기꺼이 할 수 있었다.소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거울 앞에 서 있었고 소원은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몰라 거울 속에 집중했다.‘현재 키가 많이 크구나...’그녀보다 한참 더 큰 그는 평소에 셔츠를 입고 있어 날씬해 보였다.그러나 호텔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금, 그는 몸에 딱 맞는 흰 티셔츠를 입고 있어 단단한 허리선과 복근이 뚜렷이 드러났다.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이지만 옷을 벗으면 근육질인 전형적인 타입이었다.소원의 얼굴은 드라이기의 열기 때문인지 붉어져 있었지만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서현재는 소원의 머리를 말린 후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놓지 않고 거울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누나, 누나는 내게 영원히 짐이 될 수 없어요.”순간 소원은 멍해졌다.‘영원히'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들어봤지만 오직 서현재의 이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미안해...”“미안해, 내 새끼. 엄마가 너무 몹쓸 짓을 많이 했어.”서현재가 들어와 보니 소원이 쪼그리고 앉은 채 유진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유진에게 손가락을 잡힌 채 잠들어 있는 소원의 속눈썹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서현재는 마음이 아팠다.서현재도 소원의 마음이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움은 항상 사람이 없을 때만 표출되었다.그녀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고 그 누구보다도 힘들었다.서현재는 소원을 깨우기 싫어 얇은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고는 유진의 이불을 꼭 여며주었다....밖으로 나온 서현재는 소원이 무음으로 설정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에 전화가 들어온 걸 발견했다.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상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구력 있게 계속 걸어왔다.서현재가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 그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원아, 당장 나와! 내가 말하는데...”“누나 자요.”서현재가 남자의 말을 잘라버렸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조용하던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소원에게 전화 넘겨요.”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서현재가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못 들었어요? 누나 잔다고요.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대신 전달할게요.”수화기 너머로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빠드득빠드득 참으로 날카로웠다.“당신 누구야?”“젠장, 너 누구냐고?”서현재가 대답하기도 전에 육경한이 먼저 난폭하게 입을 열었다.“네가 누구든 경고하는데. 그 여자 함부로 건드릴 생각하지 마. 얼른 그 집에서 나와! 안 그러면 내가 죽여버린다!”서현재가 청아한 말투로 덤덤하게 물었다.“육경한 씨, 아직도 예전처럼 서울에서 잘 먹히는 줄 알아요?”최근 5년간, 명성이 자자하던 미우 그룹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육경한이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소종은 바로 인터컨티넨탈 대표에게 연락했다.하지만 웬일인지 인터컨티넨탈 대표는 무슨 말을 해도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소종은 인터컨티넨탈 대표가 있는 곳으로 질주해 갔다. 그렇게 달래고 달래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소종은 바로 현재 판가의 두 배로 인터컨티넨탈을 인수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인터컨티넨탈 대표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호텔은 가족 기업이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물려줬느니 이런 말만 늘어놓았다.이에 소종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인터컨티넨탈 호텔은 프렌차이즈였고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었다. 근데 왜 서울의 인터컨티넨탈만 가족 기업이 된 걸까. 이것은 분명 아무렇게나 둘러대 소종을 돌려보내려는 심산이었다.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소종은 가격을 2배에서 3배로 올렸다. 인터컨티넨탈 대표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거절했다.육경한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면서 쌓아온 경험으로 보면 이 일은 어딘가 많이 수상했다.육경한도 서울 재벌 순위 10위 안에는 드는 사람이라 인터컨티넨탈 대표가 따라오기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런 사람이 호텔을 인수하겠다는데 만나주지도 않을뿐더러 3배의 가격을 쳐주겠다고 해도 거절하고 있다.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장사꾼이 눈앞에 횡재를 두고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터컨티넨탈 대표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보였다.소종은 다시 육경한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육경한은 고작 두 글자로 대답했다.“5배.”“…”소종은 할 말을 잃었다.5배라는 건 호텔을 인수하고도 50년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이건 아예 돈을 갖다 바치는 장사나 다름없었다.하지만 소종은 알고 있었다. 만약 오늘 거래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육경한은 가격을 10배로 올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소종은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터컨티넨탈 대표를 설득했다.드디어 거대한 이익 앞에 인터컨티넨탈 대표가 넘어왔다.더는 가족 기업 같은 소리는 지껄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밑지는 장사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
사실 서현재는 소원이 떠나는 꿈을 꿨다.너무 슬픈 꿈이라 소원을 안아야만 그 슬픔이 해소될 것 같았다.이내 서현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누나, 일단 씻어요. 내가 아침 사다 줄게요.”소원이 멈칫하더니 말했다.“아니야. 나 원래 아침 안 먹어.”미각이 없는 사람에게 산해진미를 차려준다 한들 나무껍질을 씹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하지만 서현재는 아니었다.소원에게 그녀가 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미각이 없다 해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서현재는 소원의 손을 가볍게 잡고는 좌우로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누나. 가지 마요. 아줌마 곧 도착하니까 옆에 있는 스위트룸 가서 기다려요. 네?”서현재는 소원에게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 보니 가끔 애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맑은 목소리에 깔끔하고 잘생긴 얼굴, 애교를 떨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서현재를 보며 소원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서현재는 가끔은 위험한 허스키 같다가도 가끔은 귀여운 푸들 같았다. 여자라면 그 누구도 서현재의 이런 매력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서현재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중요할 때만 한 번씩 매력 발산했다.너무 발산하면 효과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망설이자 서현재는 구체적인 시간까지 제시했다.“반 시간, 반 시간이면 꼭 돌아온다고 약속할게요.”아침을 사러 나가려면 거리가 좀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다녀올 생각이었다.소원은 그런 서현재의 성화에 못 이겨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기다릴게.”서현재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즐겁게 키를 들고 밖을 나섰다.아줌마가 도착하자 소원은 유진과 마주칠까봐 두려워 얼른 다른 스위트룸으로 향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샤워나 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마침 옷을 다 챙겨 입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소원은 서현재가 돌아온줄 알고 웃으며 문을 열었다.“이렇게 빨리…”하지만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육경한이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꺼져!”소원이 역겹다는 듯 말했다.육경한은 고개를 숙여 소원의 쇄골을 힘껏 깨물었다. 그러더니 핏빛으로 물든 눈으로 소원을 노려봤다.“말해! 좋았냐고!”소원은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한쪽 팔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힘껏 귀싸대기를 날렸다. 그러자 육경한의 입가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너랑 무슨 상관이냐고!”육경한의 입술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차가운 얼굴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소원의 손을 꽉 움켜쥔 채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나 때리면 기분이 좋아지나?”소원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지.”“그럼 이쪽도 때려.”육경한이 다른 쪽 얼굴도 들이밀더니 소원의 손을 잡아 힘껏 자신의 따귀를 때렸다.찰싹.크고도 묵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육경한의 볼이 순간 빨갛게 부어올랐다. 소원이 직접 날린 따귀보다 훨씬 강력했다.“만족해?”육경한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그가 얼마나 화나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아니면 계속해. 네가 만족스러울 때까지.”소원의 눈에 그제야 육경한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왔다. 새로 난 상처와 전에 난 상처가 겹쳤지만 육경한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원의 손으로 자기 얼굴을 후려쳤다.정말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소원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육경한. 미친 거라면 차라리 정신 병원에 가. 여기 와서 지랄하지 말고.”“그러면 그냥 미쳤다고 생각해. 내가 미우면 미운 만큼 화풀이해도 좋아. 하지만 다른 남자랑 있는 건 용납할 수 없어.”육경한의 눈은 여전히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변함없이 음침했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내뱉었다.“만나서 밥 먹고, 손잡고, 안고, 자는 거 다 안 돼!”소원이 다른 남자랑 좀 자면 어떠냐고 비꼬려는데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흑흑.그 소리가 너무 작아 육경한이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육경한은 소원의 표정에서 이상한
육경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찌푸린 채 소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미칠 거면 확실히 미쳤으면 해서. 어떻게 죽여버리든 나는 네 뜻에 따를 테니까.”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여 저돌적으로 키스했다.오랜만에 느껴보는 말캉함이 가뭄에 단비처럼 육경한의 메마른 곳에 고였다. 순간 모든 이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워했던 사람이 지금 그의 품에 안겨있고 그와 키스를 나누고 있다. 이보다 더 위안이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았다.육경한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점점 빠져 들어갔다.소원은 의외로 반항하지 않았다. 육경한은 소원이 입을 벌린 틈을 놓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들었다.육경한은 소원을 점점 더 갈구했다. 혀와 입술을 뜨겁게 부딪치는 와중에도 육경한은 소원의 다리를 허리춤에 올리며 몸을 바짝 붙였다.순간 엘리베이터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러자 수없이 많은 플래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육경한이 5배의 가격으로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퍼지자 기자들은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호텔로 몰려들었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렇게 화끈한 장면을 목격할 줄은 몰랐다.기자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경쟁하듯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그러면서 기사까지 다 생각해 두었다.[육경한 대표, 그녀만을 위한 인터컨티넨탈.]육경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함정에 빠져들었다는 걸 깨달았다.호구처럼 5배의 가격으로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사들였다는 기사가 나가게 되면 미우 그룹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하지만 육경한은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른 소원을 품속에 끌어안은 채 다른 사람이 염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더니 얼른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갔다.육경한이 고개를 돌려 소원을 바라봤다.“돌아가기엔 무리인 거 같은데. 이 호텔 이제 내 소유니까 방은 네가 알아서 골라.”소원이 웃음을 터트렸다.“정말 돌았구나.”그녀가 어느 방에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분명 밑
육경한은 소원의 이마 라인을 따라 옆으로 슬쩍 움직이더니 뜨거운 숨결을 소원의 귓가에 불어넣었다.“나만 원한다면 못 할 건 없다는 거.”이렇게 말하면서도 육경한의 손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갑자기 들이닥친 육경한의 손짓에 소원은 온몸이 딱딱히게 굳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소원은 오히려 웃기 시작했다.그러더니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육경한의 턱을 꼬집었다.“내가 싫다고 했잖아. 육경한. 설마 억지로 밀어붙이려는 건 아니지?”육경한의 어두운 눈동자가 소원의 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녀의 눈동자에서 역겨움과 차가움을 읽어낸 육경한이 순간 동작을 멈췄다.소원은 육경한의 얼굴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손 하나 까딱하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할 거야.”계속 밀어붙일 줄 알았던 육경한이 갑자기 꼬리를 내렸다.“지금 나 갖고 놀았네.”질문이 아니라 확신이었다.소이현은 육경한을 올려다보며 비웃었다.“갖고 놀면 안 돼? 싫으면 관두든지.”“아니.”육경한이 소원의 팔목을 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얼마든지 상대해 줄게. 하지만 다른 남자랑 노는 건 절대 안 돼.”소원이 웃으며 비아냥댔다.“육경한. 내가 누구랑 놀든 어떻게 놀든 내 자유야.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 하는데?”육경한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전에 한 짓만 봐도 그녀에게 이런 요구를 꺼낼 자격은 없었다.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육경한이 소원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소원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나를 미워하면서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겠지. 근데 나도 한계라는 게 있어. 그 한계를 건들지는 마. 그것만 아니면 얼마든지 상대해 줄게.”소원이 웃음을 터트렸다.“건드려봐야 알지. 네 한계가 어딘지, 날 위해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죽었다 살아난 내가 과연 네 한계를 무서워할 거라 생각해?”오만방자한 소원을 보며 육경한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육
윤혜인은 이준혁의 병실 앞에서 빙빙 돌았다.보디가드가 많아 뭔가 들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디가드가 교대를 서는 틈을 타 윤혜인이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다행히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있어 눈속임하기가 쉬웠다. 게다가 철저하게 이 병원의 간호사 명찰까지 만들어 달았다. 그러니 더 들키기 쉽지 않았다.윤혜인이 병실로 들어가 보니 이준혁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에 채 내려가지 않은 멍 자국이 보였다.팔뚝에 난 작은 상처들은 붕대를 감지 않고 그저 물리 치료만 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깨에 난 상처는 옷에 가려져 있어도 불룩하게 올라온 게 붕대를 두껍게 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윤혜인은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어깨에 난 상처도 그녀를 구하려다 다친 건데 그 뒤로 곽경천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하면서 상처를 한 번 더 입다 보니 이렇게 심각한 상태가 된 것이다.이준혁은 잠을 자면서도 잔뜩 긴장한 상태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이준혁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손가락이 이준혁의 미간에 닿은 순간 이준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번쩍 떴다.윤혜인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비몽사몽인 상태라 이준혁은 아직 눈앞이 흐릿했다. 그는 까만 눈동자로 앞에 있는 섬섬옥수를 바라보더니 덤덤하게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윤혜인은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찰싹.윤혜인이 이준혁의 이마를 내리쳤다. 그러자 정신을 번쩍 차린 이준혁이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윤혜인은 가슴이 벌렁거려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모, 모기 있어요.”“...”이준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자기가 한 분장에 자신감이 넘쳤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알아챈 게 아닌지 의심 갈 정도였다.윤혜인이 메추리처럼 머리를 처박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푹 쉬세요. 저는 그만 나가볼게요.”생명의 위협이 없는 걸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