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은 윤혜인의 아이에 관한 얘기가 나오니까 이준혁이 빼앗고 싶어 하는 모습이 가득한 표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김성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윤혜인의 아이가 진짜 귀여울 거라고 짐작했다.이제 시간이 나면 꼭 만나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육경한의 전화벨이 울렸다.휴대폰 너머에서 무슨 말이 왔는지 육경한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육경한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자리를 떠났다.김성훈은 육경한의 뒷모습을 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소원이 사망한 후, 육경한은 자기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이 삶을 허비하며 고통에 허덕였다.김성훈이 곁에서 애써 설득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그러다가 삶을 허비하며 고통에 허덕이는 남자가 두 명이 되었다.두 친구가 너무나 타락한 삶을 사는 걸 번연히 보면서도 김성훈은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다행히도 이준혁은 어머니가 아들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기운 내라고 등을 떠밀어 드디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이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그리고 육경한에게 남겨진 유일한 목표는 아마 그 사람의 여생과 노후를 책임지는 일일 것이다....클럽에 도착한 육경한은 방문을 하나하나 발로 차서 열어 확인했다.방에서 쾌락에 젖어 있던 남녀들은 한결같이 소란에 놀랐고 잇따라 각종 욕설을 퍼부었다.육경한은 욕설에 아랑곳하지 않고 찾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주저없이 다음 방 문을 열어제꼈다.클럽의 접대 매니저 영숙은 이 남자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자 깜짝 놀라 허겁지겁 뛰어와 담배를 드리고 불을 붙이며 소통하려고 애썼다.“육 대표님, 왜 이러시는 거죠?”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은 험상궂은 기색이 역력했고, 불붙은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쌀쌀하게 물었다.“선미는 어디에 있어?”영숙은 그 말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이 쌍년이 영숙 몰래 원군을 부를 줄 생각하지 못했다. “선, 선미는...”영숙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선미는 오늘 밤에 친한 친구의 생일을 쇠어준다며
턱은 마치 압력계로 눌러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선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육경한의 사나운 태도에 놀라 가슴이 두근두근 심하게 떨렸다.콩알만 한 눈물이 눈에 고였고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육경한은 선미의 얼굴 중 어느 부위가 그렇게 닮았는지 주의 깊게 살피다 두 눈이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둘 다 위로 휘어진 여우 눈이지만 소원의 눈에는 아무리 비천할 때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하지만 선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쪽 바닥에서 뒹굴고 놀아나 비굴하고 아부하는 데 능숙한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그래서 남자를 잘 유혹할 만한 이 여우 눈에는 아부와 순종만이 가득했다.소원과 가장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가장 닮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았다.선미는 꾹 참다가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계속 이대로 누르면 자기 턱이 분명 육경한의 손에 의해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놓아달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육경한은 눈꺼풀을 내리깔며 흥미를 잃은 것처럼 손을 놓았다.선미는 관성에 의해 바닥에 주저앉았고 심장이 여전히 쿵쾅쿵쾅 심하게 뛰었다.자기 턱이 가짜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가짜였다면 이미 부서졌을 것이다.육경한은 상반신을 펴고 긴 다리를 무심하게 꼬고 앉아 쌀쌀한 말투로 명령했다.“술을 따라.”선미는 부들부들 떨며 술을 따랐고 육경한은 술잔을 술을 벌컥벌컥 마셨으며 어느새 두 병을 다 마셨다.양주는 술기운이 셌다.육경한은 어느새 시선이 흐릿해졌고 눈앞의 여자도 점점 매일 밤 그의 곁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여자와 닮아갔다.육경한은 모호한 말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소원아...”이 이름은 선미가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육경한이 처음으로 선미를 지목했을 때 육경한은 선미를 옆에 두고 밤새도록 말없이 얼굴만 바라봤다.육경한은 선미에게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고 심지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게 명령했다.그때부터 선미는 자기가 소리를 내면 그 여자가 아니라는 게 들통나기에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걸 눈
그리고 육경한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선미가 가늘란 손가락을 내밀자마자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꺼져!"선미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술잔이 선미의 얼굴을 스쳐 뒤쪽의 액정화면에 부딪혀 와르르 깨졌다.남자는 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치켜뜨고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악마처럼 음흉한 소리를 냈다."꺼져!"그 무서운 표정에 선미는 놀라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옷 단추를 잠글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뛰쳐나갔다.밖으로 막 나왔을 때, 영숙이한테 한 발 걷어 맞았다."이년아, 그 남자가 너 좀 더 쳐다보면 데려갈 줄 알았냐?”선미의 마른 몸은 바닥에서 끓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아니에요.”"그렇게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희망을 품고 발버둥 치더니, 이젠 정신 차렸지?”영숙이는 영수증 한 묶음을 꺼내 선미의 얼굴에 내던졌다. "오늘 밤의 손실한 돈을 다 갚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선미는 그 영수증 위에 찍혀진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고 놀라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정말 잘못했어요!”이 돈은 그녀가 죽어서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네가 벌린 일이야. 사람은 마음이 하늘보다 높아서는 안 돼.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우리는 단지 너더러 함께 술을 마시라는 것일 뿐인데, 너는 밥 한술에 배불러지고 싶어 하잖아!”영숙이는 조금도 공감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늘에 너 같은 작은 참새가 날아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아?”그녀가 이렇게 건방지게 작은 참새 따위가 가지 위로 날아올라 봉황새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큰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이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큰놈에게 미움을 사면 안 된다.육경한처럼 일이 많은 사람한테도 웃는 낯으로 받쳐줘야 한다. 영숙이는 선미의 순진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가 그를 따라가서 사는 삶은 여기보다 더 비참할 것이야.
이 목소리...육경한의 눈은 순간 뭔가에 홀린 듯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손을 짚고 바닥에서 일어나 이 여자를 자기 품에 껴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이때 그녀가 검은색 하이힐을 들어 올려 그의 손등에 발을 디뎠다.여자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너 지금, 이 꼴이..."말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구두 굽이 남자의 손등을 짓눌렀는데 마치 남자의 손바닥을 뚫고 싶은 것 같았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들개 같아.”이 말을 마치자 검은 구두 굽은 육경한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소원아!"그는 그제야 막혔던 목구멍이 터졌다."가지 마!"그는 입안에 온통 피 냄새였고, 말도 안 되게 쉰 목소리였다.파란색 고급 차의 후미등이 깜빡였는데 마치 그를 비웃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가지 마...”모든 소리가 자동차의 시동 소리 속에 파묻혔다."가지 마...제발...”육경한은 눈 밑이 촉촉하게 되었고, 바닥 위로 눈물을 떨구며 바람 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소종이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날 밤, 소중은 육경한을 태우고 온 서울을 돌아다니며 소원을 찾았다.하늘가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소종은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셨으니 먼저 약을 드실래요?”사실 그는 육경한이 너무 많이 마셔서 환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한 것이었다.소원 씨가 죽은 지 이미 5년이 되었다.뒷좌석에 앉은 육경한은 검은색 셔츠 위에 흙을 뒤집어쓴 채 풀이 죽어 있었다.그는 손등의 핏자국을 보며 엉뚱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돌아왔어.”소종은 여전히 그가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만약 소원 씨가 아직 살아 있다면 대표님 집에 누워있는 사람은 또 누구야?'소종은 감히 계속 생각하지 못했고, 진저리가 났다....아침에 작업실에 가려 하는 윤혜인이 차에 올라탔는데 운전자는 기사가 아니라 곽경천이었다."오빠, 오늘 안 바빠?”"응, 내가 데려다줄게.”곽경천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소송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너무 어렵다.윤혜인은 이선그룹 법무부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소송에서 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이기고 지는 것은 둘째치고 그 긴 시간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놓았다.그녀는 지금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남자의 아내라는 신분을 계속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정말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했다.윤혜인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오빠, 내가 더 해보고 안되면 오빠 말대로 할게.""그래."곽경천은 윤혜인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알겠지?”"걱정하지 마, 오빠. 그럴 일 없을 거야.”차에서 내리려던 윤혜인이 갑자기 뭔가 생각나는 듯이 물었다."오빠, 주변에 괜찮은 남자 있어?”"응?""괜찮은 사람 있으면 구지윤한테 하나 소개해 줘.”곽경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구지윤의 뜻이야?”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에 얘기해 봤는데 싫지 않아서 하더라고.”윤혜인의 착각 때문인지 상관 곽경천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먼저 네 골칫거리부터 해결해.”구지윤 대신에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윤혜인은 육선재 그 미친놈이 다시 찾아왔는데 구지윤을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었다.차에서 내린 후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곽경천에게 물었다."남준 오빠 출장 갔다 왔어?”배남준은 곽경천의 오래된 동창이다. 돈 많고 잘생겼는데 심지어 아직 여자 친구도 없다.윤혜인은 곽경천의 내키지 않은 표정을 보고 자신이 나서서 구지윤에게 남자를 찾아줄 생각을 하고 있다."응, 어제 왔다고 문자 받았는데, 왜?”이 말에 윤혜인은 몰래 좋아하며 뭔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심히 가.”몸을 돌리자마자 윤혜인은 휴대폰을 꺼내 배남준한테 메시지를 보냈다."남준 오빠, 바빠요?”빠르게 답장이 왔다."안 바빠.""무슨 일 있어?"그는 두 개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오
윤혜인은 이준혁도 여기서 밥을 먹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가 술 한 병을 보내온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별로 좋은 뜻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배남준도 위층에서 기개가 당당하고 잘생긴 남자가 매서운 눈매로 그들의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혜인아."그가 불렀다.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배남준을 보며 대답했다."네?”"무슨 일이야?"이 질문은 그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윤혜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빠. 어서 드세요.”배남준은 일을 캐묻는 스타일이 아니다. 윤혜인이 말하지 않으면 더는 묻지 않는다.웨이터는 옆에 서서 물었다. "아가씨, 이 와인을 따 드릴까요?”윤혜인은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버리세요.”웨이터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술잔에 따르라는 줄 알고 병을 따서 술잔에 따르려고 하였다.윤혜인은 눈을 치켜들며 말했다. "버리라고요.”그래도 어리둥절해서 하는 종업원을 보고 다시 말했다. "쓰레기통에 버리라고요.”"쓰, 쓰레기통에 버려요?"종업원이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네."윤혜인은 혼자 생각했다. '보기 좋아하면 잘 봐봐, 당신이 준 술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까지."종업원이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래도 아홉 자리 술을 쓰레기통에 버리려 하니 그는 손까지 벌벌 떨었다.그녀도 종업원이 난처 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와인을 받아와 말했다."제가 할게요."그러더니 술을 쓰레기통에 깔끔하게 집어 던졌다.위층에서 모든 것을 본 이준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회거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분명 자기한테는 바쁘다고 해놓고 여기서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그가 보낸 술마저 쓰레기통에 버리니 말이다.그녀의 그 표정...이준혁은 그녀가 마치 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버린 후에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이 손을 닦았다.김성훈은 웃으며 말했다. "준혁아, 혜인 씨는 정말 너
평소에 곽경천한테 아부하는 것처럼 배남준에게 똑같이 했다. 어쨌든 효과는 똑같다."넌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배남준은 담담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요?" 윤혜인이 의아해했다."음, 아름이에게 어떤 아빠를 찾아주고 싶어?”아름이 아빠라...윤혜인은 얼핏 아름이가 좋아하는 그 남자를 떠올렸다.그리고 그녀는 빠르게 이 생각을 접었다. 누가 돼질지언정 그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요구는 한 가지에요, 아름이한테 잘해주면 돼요.”"그럼 너한테는?""나한테?"배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성격이 좋고 책임감 있고 바른 사람이면 돼요.”배남준은 따뜻한 음료를 윤혜인에게 건네며 물었다. "내가 네 조건에 맞는다고 생각해?”콜록콜록윤혜인은 방금 뜨거운 음료를 마셔서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배남준이 일어나 그녀의 등을 다독이려 하자 그녀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하고는 괜찮아졌다.그녀가 어색한 듯 또 한 번 물을 마시자 배남준은 숨김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경천이한테 네가 아름이 아빠를 찾아주고 싶다고 들었는데, 나는 어때?”윤혜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남준 오빠...”"혜인아, 나는 감정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혼할 나이가 됐어. 우리는 여러모로 잘 맞고, 아름이도 나를 좋아하잖아.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아.”그렇다, 그냥 딱 어울린 것뿐이다. 배남준은 학문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이성과의 애정 이런 것에 대해 줄곧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그는 줄곧 착실하게 생활하는 습관이 되었다.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니 결혼 상대가 윤혜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윤혜인도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녀가 익숙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으로 말이다.그녀는 묵묵히 생각해. 보았는데, 결국 그녀도 배남준이 가장 적합한 상대라고 생각했다.적어도 서로 잘 알고 있으니, 그가
그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윤혜인은 더는 발버둥 치지 않았다.배남준은 고개를 돌려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며 물었다."혜인아?”이준혁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잡으려는 짐승과 같았다.윤혜인은 두 사람이 이러다가 싸움이라도 날까 봐 두려웠다. 배남준 같이은 공부만 해 온 사람은 싸워봤자이 이 미친놈이랑 싸우면 분명 손해 볼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남준 오빠, 먼저 차에 들어가 계세요. 이 사람이랑 몇 마디하고 갈게요.”배남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물었다."괜찮겠어?"이 말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이준혁이 손에 힘을 더하게 의 손을 더 힘껏 쥐게 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가서 배남준을 때릴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황급히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리고서서 그를 가로막는 듯이 두 팔을 벌렸다.이 모습은 본 이준혁은 무언가가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윤혜인이 배남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남준 오빠. 제가 곧 찾아갈게요.”배남준은 그이 남자의 표정을 보고 그녀를 해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머리를 약간 갸우뚱한 채로 밖으로 나갔다.배남준이 멀어지자 그녀는 시무룩하게 손을 뿌리쳤다."이제 좀 놔줄래요?”이준혁은 손에 힘을 줄였을 뿐, 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네가 바쁘다고 한 이유였어?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는 게?”말 속에 가득한 질투심이 느껴졌다.만약 곽경천이 그녀에게 이준혁이 남자가 예전에 첫사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이준혁이이 남자가 자기를 사랑해서 질투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웃으며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대표님,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이준혁이은 입술을 오므린 채리고 입을 열려고 한 순간하자 그녀가 계속 말했다. "질투 나면 준혁 씨도 다른 여자랑 데이트해요., 상관없어요,. 저는.”이런 상황을 그녀는 개의치 않을뿐더러 두 팔을 들어
그녀가 당한 모든 불행은 전부 이 남자 때문이었다.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할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원진우 씨, 지금 무슨 헛된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쪽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날 거예요. 당신이 우리 엄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감금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절대 잊지 않았어요.”윤혜인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나 가야 해요!”그러자 원진우는 분노가 가득 찬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는 대화가 안 되겠군.”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우리 세 식구에게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내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지 천천히 알게 될 거야.”윤혜인은 경계심을 품고 원진우를 응시했지만 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곧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를 불러 들어오게 한 후, 지시를 내렸다.“아가씨의 짐을 챙겨서 비행기에 실어라.”윤혜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원진우는 느긋하게 설명했다.“우린 곧 떠날 거라서.”원진우가 윤아름과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한다는 말에 윤혜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원진우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윤아름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던 걸 보면 그의 경계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이번에 끌려가면 아버지, 큰오빠, 아이들,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안 가요!”윤혜인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 온 힘을 다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문에 도달하자마자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곧 원진우는 넥타이로 그녀의 손을 묶은 뒤 그대로 어깨에 들쳐 업었다.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이곳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즉시 떠나야 했다.바깥에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떠나기만 하면 전처럼 윤아름과 윤혜인 모두 꽁꽁 아무도 모르게 숨
윤혜인이 갑자기 손을 들자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안에 들어있던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윤혜인은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하얀 나무젓가락을 들어 원진우의 목에 찔러넣고 싶었다. 두 사람은 신장 차이가 있었지만 원진우는 지금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있어 윤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뾰족하게 자른 나무젓가락이 그대로 원진우의 목에 들어갔다. 그러자 피가 나무젓가락을 타고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지는 피의 양에서 윤혜인은 글렀다는 걸 알아챘다. 동맥을 찌르지 못했으니 원진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원진우는 고개를 들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더니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바라봤다.“나 죽이고 싶어요?”원진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윤혜인이 뒤로 물러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곧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구하러 들이닥칠 거예요. 도망은 꿈도 꾸지 마요.;원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연락이 됐나 보네요.”윤혜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윤혜인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원진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아니면 윤혜인도 이렇게 무모하게 나가기보다는 계속 위장하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원진우는 목에 꽂혀있는 젓가락을 뽑지도 처리하지도 않은 채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제법인데? 역시 내 핏줄이라 그런가? 배짱이 커.”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사하기로 소문난 원진우가 친자 감정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미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원진우는 윤혜인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나 속이려 했나 본데...”원진우가 허리를 굽혀 서류를 줍더니 윤혜인에게 건네줬다.“봐... 네 말이 맞아. 너 정말 내 딸이야.”“...”윤혜인은 원진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결과지에 적힌 숫자에 눈길이 갔다.99.99%.그럴
문이 삐걱 열리더니 원진우가 안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밝아진 윤아름을 보고 원진우의 표정도 살짝 풀렸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있는 시간을 연장해 주지는 않았다.“시간 됐어요.”원진우가 덤덤하게 말하더니 윤아름이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윤아름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방에서 나갔다.다음날.윤아름이 제시간에 나타나자 윤혜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줬다. 이야기가 결말까지 이어지자 윤아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성을 잃은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거야?”윤아름이 마술을 부리듯 손목에 묶었던 레이스를 풀더니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헤헤 웃었다.“이거?”윤혜인은 원하던 물건이 윤아름 몸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손목에 묶여있는 레이스가 그저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윤혜인은 얼른 자수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치 추적기가 아직 들어있었다. 윤혜인은 자수를 더듬거리며 버튼을 찾더니 꾹 눌렀다. 그때 문 쪽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윤혜인이 얼른 자수를 윤아름의 손목에 묶어줬다.발신기의 발신 기회는 고작 두번이었다. 마지막 한 번을 사용했으니 이제 더는 기회가 없다. 윤혜인은 윤아름이 다시 끌려가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지만 곧 구출될 거라는 희망을 안고 꾹 참았다.한편, 곽경천과 배남준은 북안도를 이 잡듯이 뒤지며 윤혜인을 찾고 있었다. 원진우의 출입국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아직 북안도에 숨어있다는 의미였다.이준혁도 온 힘을 다해 윤혜인을 찾았다. 꼬박 3일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치던 이준혁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깐 휴식하려 했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안으로 들어왔다.“발신기... 발신기에서 또 한 번의 신호를 보내왔습니다.”이준혁이 얼른 외투를 집어 들더니 지하 차고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훈은 발신기 주변에 위험 물체가 있는지 탐색했다. 이준혁은 이 소식을 곽경천과 배남준에게 알렸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는 똑같이 윤혜인과 윤아름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아름아, 왜 그래?”원진우가 앞으로 다가와 윤아름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확인하려 했다. 뒤를 힐끔 돌아본 윤아름이 원진우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윤혜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윤아름이 오히려 애가 된 것 같았다.“삼촌, 일단 나가 계세요. 삼촌이 여기 있으면 오히려 자극만 받을 거예요.”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진우는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윤아름을 보고 한발 양보했다.“윤혜인 씨, 얌전하게만 있으면 절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원진우가 타이름 반 협박 반으로 말했다. 얕은 수작을 부리면 벌을 내리겠다는 경고였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윤아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엄마, 엄마, 나 혜인이야...”원진우는 겨우 차분해진 윤아름을 보며 더는 자극하기 싫어 방에서 나갔다. 윤혜인은 방문이 닫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오전에 방안을 둘러보며 카메라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새 거처를 바꿔서 그런지 아니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날 계획이라 그런지 여기는 카메라가 없었다.“엄마, 미안해요. 아팠죠?”윤혜인이 얼른 윤아름의 등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살짝 빨개진 정도였다. 이런 위험한 수를 둔 건 윤아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원진우가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윤아름의 정서를 이용해 원진우를 영향 주려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윤아름이 아닌 윤혜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면 죽을 정도가 아니고서는 원진우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윤아름은 여전히 아무 감각이 없는 듯했지만 윤혜인이 친근하게 다가가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을 깜빡였다가 윤혜인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떨궜다.“엄마...”윤혜인은 한참 동안 속 시원하게 울더니 울음을 그치고는 물었다.“엄마, 그때 그 자수는 어디에다 뒀어요?”윤혜인이 물은 자수는
윤혜인이 문 앞으로 다가가 힘껏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화들짝 놀란 도우미가 얼른 달려와 윤혜인을 막았다.“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세요.”도우미가 윤혜인을 안더니 힘껏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윤혜인은 문을 두드릴 수 없어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엄마. 엄마. 엄마.”윤혜인이 큰 소리로 외치자 바깥에서 들리던 웅얼거리는 소리가 달라졌다.쿵.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쿵. 쿵. 쿵.휠체어로 문을 힘껏 부수는 소리와 도우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사모님.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안 돼요.”윤혜인이 더 높은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 엄마.”방 안에 있던 도우미가 윤혜인의 입술을 틀어막자 윤혜인이 팔다리를 마구 버둥대며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망가졌다. 문이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안으로 쌩하고 들어왔다. 윤아름은 큰 꽃병 하나를 이고 들어와 윤혜인의 입을 막고 있는 도우미를 내리쳤다. 도우미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윤아름이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나 윤혜인을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윤혜인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다시 안아보는 거라 윤혜인도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도우미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다른 도우미를 보고 윤아름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긴 윤아름은 아까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았다. 게다가 원진우가 윤아름을 다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기에 과분하게 말렸다가 윤아름이 다치는 날에는 도우미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이때 소식을 들은 원진우가 다급하게 걸어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녀를 보게 되었다. 원진우는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윤혜인은 정상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멍하던 예전과 비기면 정서라는 게 생겼다. 윤혜인이 확실히 윤아름을 치유
원진우는 연속 몇 시간이나 윤혜인을 관찰했다. 관찰한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원진우는 윤혜인이 자는 모습이 자신과 쏙 빼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든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것도 말이다.“일어났으면 뭐 좀 먹어요. 도우미에게 이쪽으로 가져다주라고 할게요.”원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만약 윤혜인에게 예전 경력이 없었다면 원진우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잔혹한 사이코패스 성향을 뒤로 잘 숨긴 것 같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가는 원망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정서도 도라는 게 있어 일정한 포인트까지 닿으면 되지 아니면 원진우가 오히려 경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진우는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그저 윤혜인이 보면 볼수록 귀엽다고 생각했다.“혜인 씨, 이름은 엄마가 지어준 거예요?”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혜인의 몸에는 금패가 하나 있는데 위에 윤혜인의 이름이 적힌 금패였다. 양아버지가 길다가 그녀를 줍고 주변과 경찰서에 윤혜인이라는 아이가 실종됐는지 물었지만 윤혜인이라는 아이를 잊어버린 적은 없다고 했다. 전에 조사가 어려웠던 건 윤혜인이 원진우의 의해 먼곳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기술이 좋지 않아 실종자를 찾는 것도 힘든 일이긴 했다. 게다가 양아버지는 인자한 사람이었기에 윤혜인의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만 말할 뿐 이기적이게 그녀의 모든 걸 묵살하지는 않았다. 원래 이름을 쓰겠다고 한 것도 어느 날 친부모님을 만나면 그들이 자기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듣기 좋네요.”원진우가 말했다. 윤혜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원진우가 뭔가 말하려다가 방향을 잃었다.“일찍 쉬어요.”원진우가 이렇게 말하더니 방에서 빠져나갔다. 도우미가 아침을 가져다줬는데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윤혜인은 그 요리와 밥을 이미 보며 원진우가 아직 독을 타지는 않았을 거라는
윤혜인은 다시 눈을 감으며 잠을 자야 체력을 보존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오빠가 사람을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자신을 타일러도 윤혜인의 잠자리는 여전히 뒤숭숭했고 악몽만 연거푸 꿨다. 엄마가 여기 있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도 여기 있다는 생각에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겨우 동이 틀 때까지 버틴 윤혜인이 눈을 뜨자 침대맡에 놓인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원진우였다. 윤혜인은 순간 얼굴을 굳히더니 혹시나 하지 말아야 할 잠꼬대를 하면서 마음에 담아뒀던 말을 전부 쏟아낸 게 아닌지 걱정했다.“깼어요?”원진우는 그런 윤혜인을 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윤혜인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매우 덤덤했다.“네.”“어제 잠을 설치는 것 같던데요?”원진우가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차갑디차가운 눈동자에 담긴 의미가 뭔지는 알아내기 힘들었다.윤혜인은 혹시나 실수한 건 아닌지 의심되어 심장이 철렁했다. 얼른 머리를 굴린 윤혜인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렇게 말했다.“네. 잠을 잘 자지 못한 건 맞아요. 어제 겪었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무섭거든요. 나는 정말 거기서 죽는 줄 알았어요.”윤혜인이 솔직하게 말하자 원진우의 눈빛도 살짝 풀렸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요?”원진우가 물었다.“네. 너무 무서워요. 나를 세 번이나 죽이려고 했는데 어떻게 안 무섭겠어요?”윤혜인은 두려움을 전혀 위장하지 않았다. 원진우와 말할 때도 몸을 살짝 움츠리며 뒤로 빼고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이에 원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평소 곽진명과는 어떻게 지내는데요?”윤혜인은 원진우가 무슨 뜻으로 묻는지 몰라 잠깐 넋을 잃었다.“곽진명과도 이렇게 지내요?”원진우가 물었다. 윤혜인은 그제야 원진우가 자기를 윤혜인의 아버지로 대입해 곽진명과 비교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곽진명을 떠올리자 윤혜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아빠는 내게 무척이나 잘해줬어요. 그래서 한 번도 무섭다고
원진우가 눈길을 돌리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묵묵히 다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총명한 여자라는 걸 알아챘으니 윤혜인이 한 말과 보이는 행동을 믿으면 함정에 빠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원진우는 윤아름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윤아름의 어깨를 잡고 힘껏 흔들었다.“아름아,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윤아름의 동공은 여전히 풀려 있었고 원진우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원진우는 윤아름의 어깨를 점점 더 억세게 부여잡더니 이를 악물고 캐물었다.“말해. 말하라고. 있어, 없어?”“...”윤아름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흥흥거릴 뿐이었다. 진우희가 그렇게 된 걸 본 다음부터 줄곧 이 상태였다.원진우는 윤아름의 멘탈이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다. 양자를 총으로 쐈다는 소식부터 먼저 알려주고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진우희의 시신까지 보여줬다. 지하실에 갇혀 있으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윤아름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다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곽경천도 그녀를 구하려다 총에 맞았고 진우희도 그녀를 도우려다 원진우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이 모든 건 다 그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고 그 뒤에 아무리 다시 이어주려 해도 이어지지 않았다. 무의식적인 흥얼거림과 가끔 입가로 흘러내리는 침은 윤아름을 모두가 알아주던 미녀에서 바보로 전락하게 했다. 하지만 미인은 미인인지라 치매에 바보가 되어도 예쁘기만 했다.윤아름은 초점 없는 동공으로 무의식적으로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때 미약하게나마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윤아름의 눈동자가 다시 초점을 되찾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넘어졌다. 원진우가 부축하려 했지만 윤아름이 그 손을 탁 쳐내더니 미친 듯이 모니터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화면으로 보이는 윤혜인은 어느새 몸을 웅크리고 있
그 누구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아이를 본다면 차분함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윤아름처럼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윤아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멍한 표정이었다.원진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이번에는 정말 연기가 아닌 진짜였다. 윤혜인의 쓸모도 이제 끝났기에 원진우는 윤혜인의 손에 올렸던 발을 뗐고는 입을 열었다.“온도 영하 80도로 내려.”“!”윤혜인이 화들짝 놀랐다. 이건 윤혜인을 산채로 냉동시켜 저번에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겠다는 뜻이었다. 원진우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자 윤혜인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원진우가 문밖으로 나서는 날에는 죽음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어떻게 해야만 살 수 있을까...’윤혜인은 죽기 싫었다. 살아서 엄마를 구하고 오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싶었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얼굴을 떠올리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원진우!”윤혜인이 성까지 붙여서 부르자 아니나 다를까 원진우가 걸음을 멈추더니 윤혜인을 돌아봤다. 윤혜인은 혀끝을 꽉 깨물었다. 피비린내가 혀끝에서 느껴져서야 윤혜인은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윤혜인의 목은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내가 누구 딸인지 생각해 본 적 없어요?”윤혜인을 보는 원진우의 눈빛에서 보기 드물게 두려움이 묻어났다. 비록 몇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윤혜인이 그 눈빛을 캐치하고는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머지 반이야말로 윤혜인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이었다.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고민할 기회도 주지 않고 꿋꿋하게 말했다.“삼촌, 그렇게 총명하신 분이 이미 눈치채고 계신 거 아니에요? 경천 오빠랑 나랑 친 남매가 아닌 건 알고 있잖아요. 아버지가 왜 직접 낳지 않고 남자아이를 입양했는지 생각해 본 적 없어요?”원진우가 윤혜인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혹시 지금 내 딸이라고 하고 싶은 거예요?”“머리는 썼는데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렇게 쉽게 속지 않아요.”원진우가 이렇게 말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